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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3.14 17:41 수정 : 2019.03.14 19:39

황준범
워싱턴 특파원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취재하러 베트남 하노이에 다녀온 기자들이 하는 공통적인 얘기 몇가지가 있다.

첫째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빅딜이냐 스몰딜이냐만 생각했지 노딜은 상상도 못 했다’는 것이다. 지난해 싱가포르에서의 첫 정상회담 뒤 8개월여 만에 각각 66시간의 열차 대장정과 지구 반바퀴 비행 끝에 마주 앉은 두 사람이 ‘오늘은 아닌 것 같다’며 털고 일어설 줄이야. ‘회담이 합의 없이 곧 끝날 것’이라는 정상회담장발 소식이 전세계 취재진이 모인 국제미디어센터에 전해진 뒤 현장은 말 그대로 패닉이었다. 한 동료 기자는 “한반도가 시계 제로가 아니라 내가 시계 제로”라고 했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해결 안 된 북핵 문제의 복잡성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성을 깜빡한 채 ‘그래도 뭔가는 나오겠지’ 하고들 있었다. 일부 기자들끼리 소심하게 “반성”을 입에 올린다.

둘째는, 정상회담 결렬 뒤 회담장인 메트로폴호텔을 따로 찾아가본 기자가 꽤 많다는 점이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취재 때는 회담 뒤 카펠라호텔 안에 들어가볼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하노이에서는 오히려 허전한 마음이 메트로폴호텔로 발길을 이끌었다. 회담 이튿날 오후, 두 정상이 오찬을 할 뻔한 정원에서는 결혼식이 준비되고 있었다. 누군가는 기약도 없이 헤어진 ‘불발의 장소’에서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시작을 하는 셈이다. 두 정상도 두번째 만남이 끝은 아닐 것이다.

‘회담이 결론 없이 끝났으면 조용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다’는 것 또한 기자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북-미는 회담장을 떠난 뒤에도 합의 무산의 원인을 놓고 여론전을 폈고, 상업용 위성사진을 근거로 ‘북한이 위성이나 미사일을 발사할 듯하다’는 추측 보도가 긴장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미국은 연일 ‘단계적 비핵화’가 아닌 ‘일괄 타결’을 주장하고 있다. 양쪽 다 대화를 영영 끝내고 싶지는 않다는 의미다.

하노이 정상회담장에서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그 전에 워싱턴과 평양의 집무실에서 어떤 논의가 있었던 것인지는 훗날 누군가의 회고록을 통해서나 전모가 드러날 것이다. 하지만 하노이 노딜로 몇가지가 분명해졌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의 대가로 핵심적 대북 제재들을 풀기를 원하지만, 미국은 영변은 물론 그 밖의 핵시설과 대랑파괴무기(WMD) 폐기까지 해야 제재를 풀 수 있다는 입장이 뚜렷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직접 만난 자리에서 비핵화 의지를 의심하게 됐을 가능성이 높고, 대북 제재의 효과 또한 체감했을 것이다. 그만큼 ‘일괄 타결’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확신도 굳어진 것 같다. ‘배드딜보다는 노딜이 낫다’는 여야 공통의 평가를 확인했기에 현재의 태도를 고수하려는 유혹을 강하게 느낄 것이다.

과감한 합의에 이르려면 신뢰를 한참 더 쌓아야 한다는 점도 분명해졌다. 북한이 수십년 공들여온 핵 프로그램을 트럼프 대통령만 믿고 일순간에 다 포기하라는 건 비현실적이다. 제재를 해제하면 다른 무기고로 돈이 흘러갈 수 있다는 미국의 우려 또한 현재의 북-미 신뢰 수준에서는 타당한 얘기다. 역설적으로 이번 노딜은 양쪽이 더 자주, 깊이 만나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다행히 양쪽은 대화의 문을 열어두고 있다. 서로 차분하게 새로운 가격 흥정을 준비할 때다. 미국이 먼저 양보안을 들고나올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전부 아니면 전무’ 방식으로는 교착을 못 깬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두 정상의 가격표가 지금보다는 유연해지는 날도 올 것으로 예상해본다.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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