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9.03.28 17:00 수정 : 2019.03.29 09:45

황준범
워싱턴 특파원

며칠 전 워싱턴의 한 소극장에서 30여명의 백인들 앞에 앉을 일이 있었다. 한 관객이 “한국 사람들은 트럼프와 김정은 가운데 누구를 더 무서워하느냐”고 물었다. ‘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나는 트럼프가 더 무섭다”고 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 ‘노딜’로 일어서고, 행정부 발표 내용을 이튿날 트위터로 뒤집는, 그리고 “김정은과 다음달 만나겠다”고 내일 트위트를 날려도 이상할 게 없는 트럼프의 예측 불가성과 즉흥성이 두렵다고 답했다. 객석에서 “내 생각도 똑같다”는 반응들이 나왔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핵 포기 의사가 없는 잔인한 독재자’로 묘사하는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더 무섭다”는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이번엔 객석을 향해 “내년 11월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할 거라고 보느냐”고 물어봤다. 놀랍게도, 20여명이 손을 들었다.

“와…. 각자 희망과는 무관하게 말씀이죠?”

“예….”

어떤 이는 손을 내리며 고개도 함께 툭 떨궜고, 누구는 한숨을 푹 쉬었다.

트럼프를 무섭고 끔찍하다고 여기면서도 내년 대선 승자 또한 트럼프일 것이라고 보는 미국인들의 복잡한 분위기가 확 느껴졌다.

겨우 서른명의 워싱턴 권역 사람들의 반응을 놓고 미국 대선을 예측하는 것은 무모하다. 하지만 그날 경험은 미국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여론조사 수치들보다 훨씬 생생하게 다가왔다. 여론조사들에서 트럼프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재선과는 거리 멀어 보이는 40%대 초반이다. 하지만 실제의 미국 공기는 여론조사와 다를 때가 많다. “강아지라도 찍어주겠다”며 트럼프 혐오를 드러내는 사람이 있지만, “트럼프 꺾기 쉽지 않다”는 데에도 대다수가 공감한다.

로버트 뮬러 특검의 ‘러시아 스캔들’ 수사 보고서는 트럼프의 재선 가도에 더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다. 뮬러 보고서가 “트럼프-러시아 대선 공모를 확인 못 했다”고 ‘면죄부’를 줌으로써, 트럼프는 취임 뒤 임기의 85%에 이르는 시간을 옥죄었던 족쇄를 벗어던졌다. 뮬러 보고서가 재선 보장 카드는 아니지만, 대통령직을 위협해온 뇌관을 제거한 트럼프는 훨씬 자신감 있게 재선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미 대선의 진짜 승부는 뮬러 이후부터다. 가장 큰 변수는 경제다. 미국의 전문가들은 비교적 높은 경제 성장률과 가처분소득 증가, 저실업률, 저유가 등을 들어 “오늘 투표하면 트럼프가 이긴다”고 진단한다. <시엔엔>(CNN)의 최근 조사에서 응답자의 71%가 “미국 경제가 좋다”고 답했다. 다만 트럼프에게 유리한 경제 상황이 내년에도 지속될지는 알 수 없다.

민주당의 대선 후보도 핵심 변수다. 세대, 성별, 인종, 이념 성향 등에서 다양한 15명이 뛰어들어 흥행을 꾀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이렇다 할 ‘트럼프 킬러’가 안 보인다.

반면 트럼프는 ‘전국에서의 고른 지지’를 포기하고 핵심 지지층을 공략하며 ‘대선 승리에 도움 되는 표’를 차곡차곡 다지고 있다. 트럼프는 2016년 대선 때 전체 득표율 46.1%로 힐러리 클린턴(48.2%)에게 지고도, 주별 승자독식이라는 제도에 힘입어 선거인단에서 승리(306명 대 232명)했다. 이번에도 그는 철저히 이 공식을 따라 경합주 공략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잔여 임기가 1년10개월이 아니라 5년10개월일 수도 있는 트럼프는 한반도에는 어떤 의미일까? 그의 앞에는 북한과 과감하게 협상하는 방안과, 긴장 관리만 하면서 핵심 담판은 뒤로 미루는 방안이 놓여 있다. 이 선택지들 앞에서 트럼프가 조급해 보이진 않는다. 북한도 잘 생각해볼 대목이다.

jaybee@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특파원 칼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