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특파원 ‘한국인은 왜 거짓말을 하는가’ ‘문재인에게 돌고 있는 인지증(치매) 의혹 소문’ ‘일본이 진짜로 마음먹으면 한국 경제는 한방에’. 일본 월간지 <윌>은 최근 ‘드디어 손을 끊을 때가 됐다. 안녕, 한국’이라는 10월호 별책을 냈다. 표지에 적힌 기사 제목들을 보면 한국 비판이라기보다는 저주에 가깝다. 원색적인 ‘혐한’을 전면에 내세운 이 잡지는 우파 성향이 강하다. 또 다른 우파 성향 월간지 <하나다> 10월호 표지 제목은 ‘한국이라는 병’이다. 혐한을 상품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잡지는 <윌>이나 <하나다>뿐이 아니다. 일본 주간지 <주간 포스트>는 최근 ‘귀찮은 이웃에게 안녕. 한국 따위 필요 없다’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냈다가 일본 작가들의 비판을 받고 사죄문을 실었다. 이 매체는 ‘혐한이 아니라 단한(한국과 관계 단절)’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로 한반도 위기’ ‘화를 참지 못하는 한국인이라는 병리’ 따위의 글을 실었다. 혐한 출판물과 영상은 일본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편의점에 놓인 타블로이드 신문에 혐한은 단골 소재로 실린다. 일본 민영 방송 텔레비전 와이드 쇼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나라’라는 식으로 한국을 조롱한다. 한 예로 지난 5월 일본 지역방송인 <간사이 텔레비전>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자가 한국인의 기질에 대해 “(스스로) 손목을 긋겠다는 추녀라는 식으로 생각하면 대개 정리된다”는 발언을 그대로 내보내 물의를 빚었다. 한 일본인 작가는 “일본에서 혐한은 오락이 됐다”고 말했다. 동네 서점에 가서 국제관계를 다룬 책을 살펴보면 혐한과 혐중을 파는 책들로 넘쳐난다. 일본에 거주하는 미국인 변호사 켄트 길버트가 2017년에 펴낸 <유교에 지배된 중국인과 한국인의 비극>은 47만부가 넘게 팔렸다. 켄트는 이 책에서 한국인을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태연하게 거짓말한다”고 적었다. 같은 출판사의 같은 편집자가 전혀 다른 방향의 책을 내는 일도 있다. 아베 정부를 비판하는 책을 낸 한 저자는 지난해 도쿄 시내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내 책을 만든 편집자가 혐한·혐중 책도 만들고 있었다”고 말했다. 혐한 서적과 잡지가 일본에서 넘쳐나는 현상의 배경에는 일본 출판 시장 불황이 있다. 일본 ‘전국출판협회’가 발표한 지난해 일본 출판 시장 규모는 인쇄물 기준 1조2921억엔으로, 전년도 대비 5.7% 감소했다. 전성기인 1996년의 절반 정도 수준이다. 지난해 특히 잡지 시장 규모는 9.4% 감소했다. 일본은 여전히 출판 시장 규모가 큰 나라에 속하지만, 출판사들은 손쉽게 팔릴 만한 소재인 혐한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많은 일본 시민이 이런 배외주의적이고 혐오를 조장하는 주장에 대해 반대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2017년 7월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서 우익 단체가 ‘헤이트 스피치’를 예고하자 수많은 일본 시민이 반대 집회를 열었다. 우익 단체 회원들은 채 몇미터도 전진하지 못하고 자리를 떠야 했다. 8월 초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됐던 아이치현 나고야시 아이치현미술관에서는 소녀상에 종이 봉지를 씌워 모욕하는 이가 나타났지만, 다른 시민들이 바로 제지하고 나섰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서울시 중구가 “노 재팬”이라고 쓴 깃발을 세웠다가 시민들의 비판을 받고 내리는 일이 지난달 있었다. 상대에 대한 일방적 저주와 모욕을 하지 않는 것은 국가 간 관계 이전에 기본적인 양식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일 양국 시민 대부분은 이런 양식을 갖춘 이들이라고 믿고 있다. 혐오가 상품으로 소비되지 않는 날을 보고 싶다. garden@hani.co.kr
칼럼 |
[특파원 칼럼] 혐오가 상품이 되지 않는 날 / 조기원 |
도쿄 특파원 ‘한국인은 왜 거짓말을 하는가’ ‘문재인에게 돌고 있는 인지증(치매) 의혹 소문’ ‘일본이 진짜로 마음먹으면 한국 경제는 한방에’. 일본 월간지 <윌>은 최근 ‘드디어 손을 끊을 때가 됐다. 안녕, 한국’이라는 10월호 별책을 냈다. 표지에 적힌 기사 제목들을 보면 한국 비판이라기보다는 저주에 가깝다. 원색적인 ‘혐한’을 전면에 내세운 이 잡지는 우파 성향이 강하다. 또 다른 우파 성향 월간지 <하나다> 10월호 표지 제목은 ‘한국이라는 병’이다. 혐한을 상품으로 전면에 내세우는 잡지는 <윌>이나 <하나다>뿐이 아니다. 일본 주간지 <주간 포스트>는 최근 ‘귀찮은 이웃에게 안녕. 한국 따위 필요 없다’라는 제목의 특집기사를 냈다가 일본 작가들의 비판을 받고 사죄문을 실었다. 이 매체는 ‘혐한이 아니라 단한(한국과 관계 단절)’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로 한반도 위기’ ‘화를 참지 못하는 한국인이라는 병리’ 따위의 글을 실었다. 혐한 출판물과 영상은 일본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편의점에 놓인 타블로이드 신문에 혐한은 단골 소재로 실린다. 일본 민영 방송 텔레비전 와이드 쇼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나라’라는 식으로 한국을 조롱한다. 한 예로 지난 5월 일본 지역방송인 <간사이 텔레비전>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출연자가 한국인의 기질에 대해 “(스스로) 손목을 긋겠다는 추녀라는 식으로 생각하면 대개 정리된다”는 발언을 그대로 내보내 물의를 빚었다. 한 일본인 작가는 “일본에서 혐한은 오락이 됐다”고 말했다. 동네 서점에 가서 국제관계를 다룬 책을 살펴보면 혐한과 혐중을 파는 책들로 넘쳐난다. 일본에 거주하는 미국인 변호사 켄트 길버트가 2017년에 펴낸 <유교에 지배된 중국인과 한국인의 비극>은 47만부가 넘게 팔렸다. 켄트는 이 책에서 한국인을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태연하게 거짓말한다”고 적었다. 같은 출판사의 같은 편집자가 전혀 다른 방향의 책을 내는 일도 있다. 아베 정부를 비판하는 책을 낸 한 저자는 지난해 도쿄 시내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내 책을 만든 편집자가 혐한·혐중 책도 만들고 있었다”고 말했다. 혐한 서적과 잡지가 일본에서 넘쳐나는 현상의 배경에는 일본 출판 시장 불황이 있다. 일본 ‘전국출판협회’가 발표한 지난해 일본 출판 시장 규모는 인쇄물 기준 1조2921억엔으로, 전년도 대비 5.7% 감소했다. 전성기인 1996년의 절반 정도 수준이다. 지난해 특히 잡지 시장 규모는 9.4% 감소했다. 일본은 여전히 출판 시장 규모가 큰 나라에 속하지만, 출판사들은 손쉽게 팔릴 만한 소재인 혐한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많은 일본 시민이 이런 배외주의적이고 혐오를 조장하는 주장에 대해 반대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다. 2017년 7월 가나가와현 가와사키시에서 우익 단체가 ‘헤이트 스피치’를 예고하자 수많은 일본 시민이 반대 집회를 열었다. 우익 단체 회원들은 채 몇미터도 전진하지 못하고 자리를 떠야 했다. 8월 초 ‘평화의 소녀상’이 전시됐던 아이치현 나고야시 아이치현미술관에서는 소녀상에 종이 봉지를 씌워 모욕하는 이가 나타났지만, 다른 시민들이 바로 제지하고 나섰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서울시 중구가 “노 재팬”이라고 쓴 깃발을 세웠다가 시민들의 비판을 받고 내리는 일이 지난달 있었다. 상대에 대한 일방적 저주와 모욕을 하지 않는 것은 국가 간 관계 이전에 기본적인 양식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한·일 양국 시민 대부분은 이런 양식을 갖춘 이들이라고 믿고 있다. 혐오가 상품으로 소비되지 않는 날을 보고 싶다. gard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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