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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스톡홀름 사회포럼’ 참가단이 6월23일 최연혁 교수(쇠데르퇴른대학)의 강연 ‘스웨덴의 살트셰바덴 민주주의’를 경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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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스톡홀름 사회포럼’ 참가기
노사문제 대표, 연구자 등이 북유럽 복지 모델을 직접 구경하고 돌아왔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시작해 베스테르비크, 칼마르, 말뫼, 룬드, 덴마크 코펜하겐에 이르는 2000㎞의 여정에서 얻은 것은 무엇일까.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소장 이창곤)와 스웨덴 스칸디나비아정책연구소(소장 최연혁)는 6월22일부터 30일까지 스웨덴과 덴마크에서 ‘2013 스톡홀름 사회포럼’을 진행했다. 이번 포럼에는 서울시 산하기관 노사 관계자, 대학 등 연구기관의 교수와 연구원, 대학원생, 정계, 언론계, 법조계 인사 등 42명이 참가해 북유럽의 노사 화합 및 정치 상생의 현장을 확인했고, 양로원·탁아소 등 복지시설도 방문했다. 스웨덴과 덴마크에 걸쳐 진행된 ‘북유럽 노사관계 및 복지 체험 대장정’을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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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베스테르비크시의 보수정당인 온건당의 하랄드 얄마르손 시장(왼쪽)과 진보정당인 사민당의 토마스 크론스톨 부시장이 지난 6월25일 ‘2013 스톡홀름 사회포럼’에 참여해 전날 밤 예산안 통과를 자축하며 하이파이브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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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스톡홀름 사회포럼’ 참가단이 현지에 도착한 6월22일은 ‘백야의 나라’ 스웨덴의 큰 명절인 하지(6월21일) 바로 다음날이었다. 방문단이 묵은, 스웨덴 은퇴자협회(PRO)에서 운영하는 숙소도 젊은이들이 하얀 밤을 지새우며 ‘하지 축제’를 즐겼다. ‘2013 스톡홀름 사회포럼’은 참가단이 현지에 도착한 다음날인 6월23일 최연혁 교수(쇠데르퇴른대학)의 강연 ‘스웨덴의 살트셰바덴 민주주의’로 문을 열었다. 19세기 산업혁명의 후발주자로, 20세기 초까지 가난한 나라였던 스웨덴이 1938년 노사 대타협인 ‘살트셰바덴 협약’으로 세계 최고의 복지국가로 성장하는 과정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살트셰바덴 협약이란 1933년 스웨덴 건설노조의 장기 파업으로 국가적 위기에 봉착하자 집권 사민당 정부의 중재 아래 스웨덴 노동자총연맹(LO)과 경영자총연합회(SAF)가 5년간 협상 끝에 노동시장위원회, 임금협상, 노동자 해고, 노동쟁의 등 4개 조항을 담은 합의문에 서명한 역사적 사건이다. 최 교수는 “1930년대까지 스웨덴 노동자는 하루 16시간씩 일하면서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노사간 극한적 대립을 배제한 평화적 타결로 스웨덴이 갈등사회에서 복지국가로 탈바꿈했다”고 설명했다. 6월24일 열린 ‘스톡홀름 사회포럼’ 본행사에서도 스웨덴 학자들은 살트셰바덴 협약의 대타협 정신을 강조했다. 에스킬 바덴셰 스톡홀름대 교수(경제학)는 “스웨덴 노사 화합은 긴 시간 동안 발전해 왔다. 노사간 의견이 합치될 때까지 끊임없이 토론하고 타협한다”고 설명했다. 올라 페테르손 스웨덴 노총 수석경제연구원은 “지금은 살트셰바덴 협약이 많이 약화됐지만 대화와 타협은 여전히 노사간의 중요한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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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25일, 남쪽으로 200㎞를 달려 도착한 인구 3만7000명의 스웨덴 중소도시 베스테르비크에서는 좌우 연정으로 민생을 먼저 생각하는 상생의 정치 현장을 목격했다. 보수정당인 온건당 하랄드 얄마르손 시장과 진보정당인 사민당 토마스 크론스톨 부시장은 “정치 이념은 다르지만 시민들의 질 높은 삶이 우선돼야 하기 때문에 손을 잡았다”고 연정 이유를 밝혔다. 둘은 시의회 본회의 마지막날(6월24일) 밤, 두 당이 협력해 내년도 예산안 20억크로나(3400여억원)를 통과시켰다며 환한 웃음으로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베스테르비크에서는 2010년 9월 선거에서 보수당인 온건당이 1위, 사민당이 2위를 차지했다. 두 당의 득표 차는 근소했고, 어떤 당도 50% 득표를 넘지 못했다. 온건당 시 당수인 얄마르손이 시장이 됐다. 그리고 사민당 시 당수인 크론스톨에게 부시장직이 제안돼 ‘연정’이 이뤄졌다. 이로써 두 당은 시의회의 70%가량을 점유했다. 크론스톨은 “부시장이 되기 전까지 이 도시에서 7년간 야당으로 일했다”며 “여당과 갈등이 많았는데, 문제를 서로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게 됐고, 결국 연정으로 이어졌다”고 소회를 밝혔다. 최연혁 교수는 “2010년 선거가 끝난 뒤 308개 시(코뮌·기초지방자치단체) 가운데 10여개 시에서 좌우 연정이 이뤄졌다”고 전했다. 얄마르손 시장은 “시민들이 우리 두 사람의 휴대전화 번호를 가지고 있을 정도로 시민과 소통하고 있다. 특히 도시계획은 시민 의견을 무시하고 결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여성과 고연령층은 주로 사민당을 지지하고, 40대 남성, 특히 경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온건당을 지지한다”며 “40대인 크론스톨 부시장이 우리 당을 지지하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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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스웨덴 스톡홀름 쇠데르퇴른대학에서 열린 ‘2013 스톡홀름 사회포럼’ 본행사에서 스웨덴과 한국 등에서 참가한 토론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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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중재로 노사가 5년 협상 벌였고
대타협 통해 복지국가로 탈바꿈했다
지금 다시 위기를 맞고 있지만
노동쟁의는 20년래 가장 적다
노동시장은 법의 강제가 아니라
노사 협약으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신뢰
참가단은 6월25일 저녁, 남쪽으로 150㎞를 달려 1397년 북유럽 국가들이 공동 군주 아래 집결하기로 한 ‘칼마르 조약’의 현장인 칼마르성을 찾았다. 다음날 다시 남서쪽으로 250㎞를 달려 생태환경도시로 탈바꿈한 말뫼를 방문했다. 그리고 6월27일, 스웨덴과 덴마크를 연결한 외레순드대교를 건너 코펜하겐으로 향했다. 길이 8㎞로 2001년 건설된 외레순드대교는 스웨덴 말뫼와 덴마크 코페하겐을 공동 생활권으로 묶어 두 나라 경제발전을 촉진시켰다. 코펜하겐에 자리한 덴마크 노총(LO)과 경총(DA)을 방문하면서 덴마크 역시 스웨덴처럼 △노조 조직률 하락 △청년 실업 등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스웨덴의 경우 참가단이 방문했을 때 버스 노조가 파업중이었다. 노조 조직률은 스웨덴의 경우 1990년대까지 80%를 웃돌았지만 2011년 67.7%까지 떨어졌고, 덴마크도 1999년 74.9%에서 2009년 68.6%로 10년 새 6.3%가 낮아졌다. 스웨덴 노총 국제담당 요나스 엘브만은 “최근 1~2년 사이에 노조 조직률이 급격히 떨어졌다”고 걱정했다. 그는 또 “스웨덴 젊은이 25%가 직장이 없어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다. 새로운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고 했다. 덴마크 노총 국제담당 옌스 에리크 오르트는 “덴마크에서 모든 청년은 일을 하거나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지만 덴마크 청년 실업자도 10%가 넘는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외국인 노동자가 대거 유입돼 고용 시장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그러나 두 나라 노사는 강력한 신뢰 관계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었다. 덴마트 경총에서 30년간 근무한 헤닝 가데는 “지금은 비록 경제 위기지만 지난 20년간 노동 쟁의가 가장 적은 시기”라고 했다. 그는 “단체협약은 노사간 신뢰로 맺어진다. 노동시장은 법이나 강제 규정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경총과 노총간 단체협약으로 움직인다”고 했다. 서울에서 스톡홀름까지 2만㎞, 그리고 스톡홀름에서 코펜하겐까지 2000㎞의 대장정만큼이나 참가단은 많은 것을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한 긴 여정이었다. 스톡홀름 베스테르비크 코펜하겐/글·사진 김동훈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수석연구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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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스웨덴 스톡홀름 쇠데르퇴른대학에서 열린 ‘2013 스톡홀름 사회포럼’ 본행사에서 참가자들이 패널들의 토론을 경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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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진 연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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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스톡홀름 사회포럼’ 참가자들이 6월27일 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북유럽 노사 화합과 복지 모델의 시사점’을 주제로 종합토론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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