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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1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서울시와 산하 19개 기관 노사는 양질의 청년일자리 공급 확대, 퇴직 예정 중장년을 위한 지원 등의 내용을 담은 ‘서울협약’을 맺었다. 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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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탱크 광장
정부는 지난 12월8일 산하 공공기관 313곳의 임금피크제 도입을 100%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지난해 7월 정부가 ‘청년 고용절벽 해소 종합대책’을 발표할 당시 ‘중장년과 청년세대의 상생고용 모델’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도입 프로젝트가 마무리된 것이다. 하지만 임금피크제 도입이 청년고용 창출로 이어진다는 확실한 보장은 없다. 애초에 정년연장에 따른 인건비 증가를 완화하는 수단인 임금피크제가 갑자기 청년고용 촉진을 위한 ‘도깨비방망이’로 등장한 것부터 어불성설이었다. 과연 임금피크제 도입을 통해 정부가 공언한 대로 공공기관에서나마 청년일자리가 많이 늘어날까? 또 이렇게 채워진 청년일자리가 지속가능할까? 정부 추정으로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도입의 직접적인 기대효과는 청년일자리 4441개이다. 청년 신규채용이 그만큼 늘어난다는 것이다. 이 수치는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는 기관별 정년연장자 수의 단순합으로 산출됐다. 정부도 굳이 이런 사실을 숨기지 않고 있다.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른 직간접 고용확대 효과를 정확하게 산정하기는 힘들다. 그렇더라도 정부가 ‘청년고용 절벽 해소’ 방안으로 선전한 것치고는 ‘4441’이란 수치는 너무 초라하다. 4441명은 해당 공공기관 전체 임직원의 2%도 안 된다. 임금피크제의 청년고용 확대 효과에 대한 의구심은 이미 여러차례 제기되었다. 우리나라 임금근로자의 평균 퇴직연령이 53살 안팎으로, 60살 정년까지 근속하는 경우는 드물다. 법적 정년을 60살로 연장한 데 따른 고용 연장 및 인건비 증가는 공공기관과 일부 대기업에 한정되는 얘기다. 따라서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인건비를 줄인다고 하더라도 전체 청년고용 확대 효과는 미미할 수밖에 없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최근 낸 ‘공공기관의 고용관리 정책평가’라는 보고서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민병찬 공공기관 사업평가관은 “공공기관의 연공급 급여체계와 높은 고연령층 비율로 인해 임금피크제 도입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정부가 발표한 연 4000명이라는 신규일자리 창출 규모에 대해서는 신뢰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의 인건비 총액은 정부 지침에 따라 고정되어 있다. 이런 상태에서 정년연장으로 추가되는 인건비 증가액과 임금피크제를 통한 절감액이 서로 상쇄되면 신규채용의 여지는 별로 없다. 즉 정년퇴직 예정자에 대한 임금피크제 도입만으로 공공기관에서 지속가능한 청년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한계가 뚜렷하다. 제도적 보완이 병행되어야만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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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형 상생고용모델의 일자리창출 예상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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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상 청년고용률 의무할당
노동시간 단축해 일자리 확대
퇴직예정자 창업 지원 등 포함 5년간 일자리 9800개 더 늘어나
임금피크제 단순 적용때의 10배
“3년 뒤면 일자리 증가 멈추는
정부안 한계 극복하려 노력”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이 바로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눈길을 끄는 방안을 내놨다. 이른바 ‘서울형 상생고용 모델’이 그것이다. 서울시와 산하 19개 투자·출자·출연기관 노사는 지난해 9월부터 정부의 임금피크제 권고안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며, 실효성 있는 상생고용 모델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노사 자율의 진지한 논의 끝에 지난 12월15일 합의안을 만들어냈다. 이 과정에서 노사가 봉착한 가장 큰 걸림돌은 중앙정부의 지침이라고 할 수 있는 임금피크제 권고안이었다. 김철수 서울시 공기업 담당관은 “정부의 권고안대로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면 일자리 창출 효과가 2년 동안에는 어느 정도 나타나지만, 3년차부터 정년퇴직자가 늘어 임금피크제를 통한 신규채용 재원은 다시 줄어드는 문제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변창흠 에스에이치(SH)공사 사장도 “공공기관은 정부의 총액 인건비와 정원 규정에 묶여 있기 때문에 임금피크제 도입과 관련해 개별 기관의 특수성을 고려하기 힘들다”고 애로를 토로했다. 변 사장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 노사의 대표자들은 보다 효율적인 청년고용 창출 방안을 찾아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고 평가했다. 노사는 무엇보다 임금피크제 도입을 계기로 청년들에게 제대로 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목표를 분명히 했다. 그리고 10여차례 진지한 논의 끝에 지난 12월15일 ‘서울시 투자·출자·출연기관 일자리창출을 위한 노사정 서울협약’(이하 서울협약)을 맺었다. 서울협약의 내용은 크게 5가지이다. 청년고용 의무할당률 3% 이상 준수, 퇴직 예정 중장년을 위한 창업 준비 지원 및 재취업 연계 신규사업 개발, 노사간 자율 합의로 임금피크제 실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확대 방안 마련, 상시 업무의 단계적 정규직화 등이다. 이 가운데 임금피크제를 통한 청년고용 확대와 퇴직 예정자의 재취업 지원을 연계시킨 것은 세대간 연대를 추구하는 전략으로서 의미가 있다. 임금피크제 도입 뒤 청년 취업자와 중고령 재직자 모두에게 혜택을 주는 방안을 찾은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고용 확대를 임금피크제와 연동시킨 것도 청년고용 개선에 큰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근로시간 특례 등 각종 예외조항을 없애고 주 52시간 법정규정을 준수하면 서울에서만 약 13만7천개의 새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시뮬레이션 결과도 나왔다. 또한 임금피크제 적용 기간을 5년으로 늘리고 임원의 연봉 5%를 자율 반납한다는 합의도 도출했다. 신규채용 재원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서다. 아울러 정년퇴직에 따른 결원은 전원 신규채용하기로 합의했다. 이런 노사 합의안이 제대로 이행되면 앞으로 5년 동안 9801개의 일자리가 더 만들어질 것으로 서울시는 예상한다. 정부의 임금피크제 권고안을 단순하게 적용할 경우(891개)보다 10배 이상이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서울형 상생고용 모델은 임금피크제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지역 노사정간 타협의 산물이다. 하지만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보인다. 정원 대비 3%로 되어 있는 청년고용 의무할당제도를 서울시가 관련 조례 제정을 통해 산하 공공기관 규모에 따라 5%로 확대하는 방안을 선도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합의 내용은 바로 노동시간 단축과 근무형태 변경이다. ‘토요일은 가족과 함께’라는 노동자의 바람이 주 5일근무제를 만들어냈듯이 시민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이 서울지역 공공부문에서부터 이뤄지길 기대해본다. 이상호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연구위원 lshberlin061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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