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20 18:07
수정 : 2019.10.20 19:46
박진영
경제 미디어 <어피티> 대표
“일단 ‘인턴처럼’ 활동해주면 어떠냐.” 첫 미디어 창업을 하고 난 뒤, 언론사 기자가 협업을 하고 싶다고 부른 자리였다. 갈 때만 해도 들뜬 마음이었다. ‘언론사도 이제 우리를 주목해.’ 현실은 달랐다. 기자는 “팀 전체 인력을 활용하고 싶은데 인건비는 아직 잘 모르겠다”며 인턴처럼 활동해줄 수 있느냐는 말을 꺼냈다. ‘뭔가 협업을 할 수 있지 않겠냐’는 말에 그 ‘뭔가’를 찾기 위해 이것저것 준비해 간 게 그저 허무했다.
특정 언론사에서 한번 경험한 게 아니다. 창업 청년들을 착취하는 ‘비즈니스 꼰대’가 참 많다. 의욕도 아이디어도 같이 갉아먹으려 한다. 물론 정당한 대가도 주지 않는다. ‘꼭 같이 일해보고 싶다’는 말만 있고 대부분 ‘뭘 같이 하고 싶은지’는 생각해놓은 게 없다. ‘뭔가 시너지가 나지 않겠냐’는 애매한 말로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고 던진다.
만나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부른 담당자만 들떠 있고, 나머지는 모두 정색 모드. ‘너희들이 뭔데?’ 하는 표정이다. 면접관처럼 어두운 표정으로 침묵으로 일관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미팅도 회의도 아니다. 최소한 서로가 같이 뭔가를 공유하고 토론하면서 결론을 내려야 하는데, 아이디어만 듣는 자리로 끝난다.
일이 진행되지 않거나 진행되더라도 헐값에 제안된다.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이런 거다. “예산은 아직 정해진 게 없다. 이미 정해진 예산 내에서 일의 규모에 따라 짜봐야 한다.” 일의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는 끝까지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자문을 구할 때도 마찬가지다. 부를 때는 ‘도와주십사’ 요청하더니, 만나고 나서는 ‘선배가 술 한잔 사주는 자리’로 퉁치는 경우도 많다.
사업 주제가 조금 겹치는 회사에서는 더하다. 자기네들도 업무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으니, 100% 우리에게 자문만 받는 건 아니라는 거다. 본인들도 주는 게 있으니 좋게좋게 가자고 타협하려 든다. 비용을 깎고 싶어 꺼내는 얘기다.
우리 팀은 자문을 듣기 위해 창업 전부터 쌈짓돈을 털어 투자했다. 20대 타깃 고객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을 한명씩 대면 인터뷰를 하거나 프로토타입에 대한 서면 피드백을 받으면 인당 5만~10만원의 사례로 보답했다. 늘 의미있는 의견을 얻어왔다는 걸 고려하면 적은 금액이었다.
여전히 많은 업계에서 ‘아이디어 좋은 청년’이 헐값에 팔린다. 청년 개인이 아니라 청년 스타트업, 아니 청년 기업한테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우리에게 도움을 구하는 분야가 20대를 타기팅하는 서비스다. 고객의 이야기는 서비스를 기획하고 만들어가는 데 가장 중요하다. 고객 의견을 듣는 게 목적이라면 인터뷰 참여비를 지급해야 하고, 이 고객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노하우를 알고 싶다면 자문료를 지급해야 한다. 원하는 게 있고, 그게 누군가의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면 당연하다. 아니 정당하다.
비즈니스 꼰대들에게 20대는 ‘인턴’이다. 원하는 계획 안에서 소모해놓고 부채감과 책임감을 덜 수 있는 존재. 20대라는 나이로 호명되는 게 비즈니스 예의에서 옳은 것인가. 목적이 분명하다면, 전문가를 모시는 데 그들이 20대인지 50대인지는 중요하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다. 다만 아이디어와 인사이트가 중요할 뿐이다. 나의 아이디어와 인사이트에도 가치가 있다. 정말 필요하다면,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라. 나는 당신들의 밑에서 ‘인턴처럼’ 일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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