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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01 18:32 수정 : 2019.12.02 02:33

홍진아 ㅣ 커뮤니티 서비스 ‘빌라선샤인’ 대표

파독 간호사와 광부에 대한 이야기를 티브이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이 있다. 흑백 자료 화면 속에서 젊은 여성들과 남성들은 비행기에 올라타며 누군가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타국으로 떠나 돈을 벌었던 그들은 가족의 경제를 책임졌을 뿐만 아니라 나라 살림에도 보탬이 된 ‘대한민국의 아들과 딸'이라고 소개되었다.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옛날을 이야기하는 그들은 중년이었고 가족들과 고향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애국자라고 추어올리는 영상의 내용과는 다르게 그들의 얼굴이 쓸쓸해 보인다는 생각을 언뜻 했다. 나라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한 사람이 그리움과 외로움을 감당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까. 그땐 다 그랬다고 얘기하는 것이 좀 미안하게 느껴졌다.

주말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들어갔다가 예능 프로그램 <아는 형님>의 예고를 보게 되었다. 신곡 발표를 앞둔 가수 박진영이 자신이 운영하는 소속사의 가수인 트와이스 멤버 둘과 함께 나왔다. 그 영상에서 ‘(같은 팀도 아닌데) 왜 트와이스가 함께 나왔냐’는 강호동의 질문에 박진영은 자식 덕 좀 볼 수 있지’라고 대답한다. 궁금해서 찾아본 본 방송에서도 ‘(소속사 가수들은) 동료지만 자식 같은 마음’이나 ‘저작권료 효자곡’ 같은 표현들이 등장했다. 함께 일하는 모두가 가족인 것처럼, 그리고 마치 박진영이 모두의 아버지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의아했다. 가족을 위해, 아버지의 다음 앨범의 성공을 위해 자식들이 예능에 나와 춤을 추고, 몸개그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일까. 그리고 ‘자식 덕을 보는 아버지’는 어떤 아버지인가. 방송을 보면서, 묘하게 60년대에 비행기에 몸을 싣던 젊은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도 여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일반 회사의 사장님이 직원들을 데리고 나와 이런 일을 벌였다면 벌써 신문에는 갑질 논란이 대서특필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다른 잣대가 적용된다. 소속사 사장이 직원들을 ‘낳고’(발굴하고), ‘키우고’ ‘성공시켜서’ ‘서로 덕 보면서 잘사는’ 그런 왜곡된 형태의 가족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팬들도, 언론도, 고용주의 갑질에 민감한 직장인들도 이런 상황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서로 가족이라는 것이 말도 안 된다는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진짜 ‘서로 덕을 보면서 잘사는’ 관계일까.

지금의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성공으로 가기 위해 힘든 상황을 극복하는 것이 당연한 개인만 있다. 몸을 해치며 몰두하는 훈련 과정, 고된 스케줄, 가짜뉴스와 악플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견디기,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감정노동 등은 길러지는 자식들의 몫이다. 케이팝이 한국의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이에 관련된 ‘아버지’들이 덕을 보는 동안, 심각하게 곪아가는 업계의 문제들은 제대로 된 문제제기 없이 계속되고 있다. 그 산업 안에서 같이 혜택을 누리고, 돈을 벌고 있지 않냐고 질문할 수도 있지만, 그 누구도 돈을 번다는 이유로 죽거나 개인이 감당하지 못할 상처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해결되지 않는 업계의 문제 속에서 한 여성 연예인이 죽음을 선택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덕 볼 일은 아버지 때문에 생겼는데, 자식(같은 연예인)의 죽음에는 아버지의 책임이 없는 것일까? 온통 웃음소리뿐인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반성 없이 똑같은 상황이 또다시 시작되는 것 같은 기시감이 드는 주말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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