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2.17 21:29
수정 : 2012.04.1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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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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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국제부의 친절한 기자 이형섭이에요. 저는 해요체를 쓸게요. 반말보다는 친절하고, 존댓말보다는 글자 수를 줄일 수 있으니까요. 이상하지 않죠?
중국의 차기 지도자로 확정된 시진핑 부주석이 미국을 방문한 일로 법석이에요. 이른바 G2로 불리는,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두 강대국 중 한 나라의 차기 ‘짱’이 상대 나라를 방문한 셈이니 난리가 날 만도 하죠.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지 않나요? 보통 민주국가의 ‘짱’은 선거라는 단판승부를 통해 결정돼요. 우리나라도 내년에 새 대통령이 취임하겠지만 12월 대선날 전까지는 누가 대통령이 될지 그 누구도 장담하지 못해요. 하지만 시진핑은 오는 10월께 치러질 제18기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전대)에서 공산당 총서기가 되고, 내년 초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투표를 통해 국가주석이 될 예정이에요.
시진핑은 중국의 5세대 지도자예요. 마오쩌둥(1기), 덩샤오핑(2기), 장쩌민(3기), 후진타오(4기)에 이은 지도자죠. 임기는 5년이지만 연임은 당연한 셈이라 모두 10년이에요. 중국의 권력체제는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시기에는 절대권력자의 1인 독재 체제였고 권력 암투도 치열했죠. 하지만 이후 장쩌민 시대라는 과도기를 거쳐 후진타오 시기에 이르러 최고 지도부인 공산당 정치국 상무위원 9인의 합의로 운영되는 집단지도체제 방식으로 바뀌었어요.
중국의 지도자가 되는 방법을 대기업의 회장이 되는 것에 빗대 이야기해 볼게요. 시진핑은 1953년 나중에 부총리까지 지낸 시중쉰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대학은 칭화대를 나왔어요. 베이징대와 나란히 중국의 최고 명문대죠. 그러니까 시진핑은 전에 그룹의 계열사 사장까지 지낸 사람의 아들인 셈이에요. 그런데다 학벌까지 좋아요.
일도 곧잘 했대요. 가는 부서마다 일을 잘 처리했고, 핵심 부서의 임원(상하이 서기)이 된 뒤에도 좋은 성과를 낸 거예요. 그러다가 차기에 회장이 될 수 있는 후보군인 주요 계열사 사장(정치국 상무위원)까지 올랐어요.
근데 사장은 능력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중국이라는 회사에는 전임 간부들의 자식들(태자당), 일반 열혈사원 출신 임원들(공산주의청년단), 전전 회장의 동향 출신들(상하이방) 등 3대 파벌이 있고, 전임 간부들도 원로라는 이름으로 막후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해요. 원로들과 파벌의 대표들이 어디 구석진 방에 모여서 ‘쑥덕쑥덕’한 뒤 사장과 차기 회장을 정해요.
시진핑은 2008년 부회장(국가부주석)이 됐어요. 어떻게 이렇게 결정이 났는지는 며느리도 몰라요. 시진핑은 전임 간부의 자식이지만 일반 사원 출신 전 회장(후진타오)의 칭화대 후배고, 상하이 근처에서 오래 일해서 모든 파벌한테 별다른 거부감이 없는 사람이어서 그렇게 된 것 같아요.
하지만 시진핑은 결재권(후계자가 물려받도록 돼 있는 군사위원회 부주석 자리)은 2년이나 물려받지 못했어요. 그 사이 물밑에서는 여전히 차기 회장이 되기 위한 암투가 벌어졌지요. 하지만 결국 2010년 결재권까지 따내 차기 회장이 되는 게 당연해졌어요. 이사회 의결(전대)과 주주총회(전인대)가 남아 있지만, 거기서 뭔가 이변이 일어나는 거 본 적 있어요? 없죠?
재밌는 것은, 이런 과정이 글로벌 기업이 최고경영자(CEO)를 뽑는 과정이랑 꼭 닮았다는 거예요. 세계 최대 공산국가와 자본주의 첨단 기업이 지도자를 뽑는 과정이 비슷하다는 것도 조금 우습죠. 지이(GE)나 제너럴모터스(GM), 폴크스바겐처럼 역사가 오랜 거대기업들은 우선 똘똘한 초급 간부들 중에서 차기 시이오 후보군을 정하고 중요한 일들을 맡겨요. 그리고 일을 계속 잘하면 점점 승진을 시키고, 마지막으로 이사회 내부에서 이런저런 조정을 거쳐 차기 회장을 정해요. 전 회장의 아들이 당연히 회장이 되는 거 아니냐고요? 에이, 글로벌 일류기업 중에 그런 데가 어딨어요. 후진 데나 그렇죠.
이형섭 국제부 국제뉴스팀 기자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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