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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2.24 20:30 수정 : 2012.04.18 10:44

김진철 경제부 산업팀 기자 nowhere@hani.co.kr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싸움 구경만큼 재미난 게 없다지요? 하지만 만날 싸움 구경만 하는 입장에선 그리 즐거운 일만도 아니랍니다. 요즘 삼성가의 유산을 둘러싼 암투(?)를 관전하고 있는 저, 삼성그룹을 비롯한 재계를 담당하는 김진철 기자입니다.

최근 장안의 화제는 단연 이병철 전 삼성 회장의 두 아드님 사이에 진행되는 재산 관련 소송이겠죠. 팔순을 넘은 형이 일흔줄에 오른 동생을 상대로 소송을 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유산을 뒤늦게 알게 됐으니 돌려달라는 겁니다. 동생은 아버지가 내게 따로 줬다는 걸 인정하라고 요구했고, 형은 그럴 수 없다고 받아쳤습니다. 급기야 형의 아들인 조카는 삼촌의 부하들이 자기를 은밀히 미행했다고 폭로하고 나섭니다. 물론 형의 동생이자 조카의 삼촌 쪽에선 미행한 적이 없다고 잡아떼고 있죠. 여기까지가 알려진 내막입니다. 형은 이병철 전 회장의 맏아들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 동생은 이건희 삼성 회장, 조카는 이재현 씨제이(CJ) 회장이라는 건 다들 기사를 봐서 아실 테고. 앞으로 어떻게 사건이 진행되어 갈지 궁금하시죠? 과연 어떻게 될까요?

재벌가 형제들이 재산을 놓고 다투는 일은 아주 흔한 일입니다. 가진 것 없는 집안이 오히려 화목하다는 건 옛말일지 모르지만, 조금이라도 부모의 유산이 있어서 자식들이 싸우는 건 주변에서도 많이들 보지 않으셨나요? 어쩌면 가진 게 많으면 많을수록 싸움은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는 걸지도 모릅니다.

재계 2위인 현대자동차그룹을 아직도 현대그룹으로 착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옛 현대그룹 역시 아들들끼리 다툼을 벌였답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원래 다섯째 아들인 고 정몽헌 회장을 후계자로 지목하려고 했습니다. 다른 형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겠죠. 그래서 차남인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면서 그룹이 쪼개지게 됩니다. 언론은 ‘왕자의 난’이라 불렀죠. 정몽헌 회장은 현대상선·증권·엘리베이터 등을 가진 현대그룹을, 정몽구 회장은 현대·기아차를 가진 현대자동차그룹을, 셋째 아들 정몽근 명예회장은 현대백화점을, 여섯째 아들인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현대중공업그룹을 차지하게 된 거죠.

2005년 두산그룹에서도 ‘형제의 난’이 벌어졌습니다. 박용곤 명예회장은 박용오 회장에게 그룹 회장직을 박용성 회장에게 넘기라고 요구했습니다. 셋은 박두병 초대회장의 6남 중 순서대로 장남, 차남, 삼남이랍니다. 그러자 박용오 회장은 검찰에다 그룹의 비리를 투서까지 했죠. 결말은 비극이었습니다.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둘째 박용오 회장은 2009년 말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됩니다.

가장 최근의 유산 분쟁 사례는 경영난을 겪는 금호아시아나그룹입니다. 박삼구(3남)-찬구(4남) 회장의 갈등으로 형이 이끄는 금호아시아나그룹과 동생의 금호석유화학으로 사실상 쪼개졌죠.

아, 정말 많군요. 회장님들이 벌이는 다툼의 공통점이 보이시나요? 큰아들이 그룹을 물려받지 않은 경우 꼭 분쟁이 벌어지죠? 이런 일은 아마도 2~3세 승계를 지나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많아질 것 같습니다. 자손이 번성할수록 나눠먹어야 할 사람 수가 많아지지 않겠습니까? 구씨와 허씨 가문이 다툼 없이 그룹을 나눠 갖고 현재도 사업 침범 금지를 불문율로 아는 엘지(LG)가가 극히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역설적인 건, 재산을 최대한 많이 물려주려다 보니 다툼이 생긴다는 점입니다. 상속세나 증여세를 물지 않으려는 욕심에 재산을 남의 명의로 모셔두는 일이 아주 일반적이었거든요. 회장님 살아있을 때야 사법당국에 걸리지만 않으면 별문제 없을 테지만, 죽고 나면 자식들은 그걸 어떻게 나눠 갖겠어요? 그러니 형님 몰래 아우가 아버지가 숨겨둔 재산을 가로챘다는 주장이 나오는가 하면, 아버지가 형한텐 일부러 안 준 거라고 맞서기도 하죠.

입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일이 우리나라에선 유독 많습니다. 그래도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수의에는 호주머니가 없다고도 하죠? 아버지 회장님들, 세금이 그렇게 아까우세요? 아들 회장님들, 돈이 그렇게 좋으세요? 손자 회장님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요?

김진철 경제부 산업팀 기자 nowhere@hani.co.kr

▶ 매일 아침, 1면부터 32면까지 신문 전체를 꼼꼼히 읽지만 도대체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됐다는 건지 알 수 없어서’ 고민이라는 독자 나꼼꼼씨. 나꼼꼼씨를 위해 ‘친절한 기자들’이 나섰습니다. 전문용어만 즐비하고, 조각조각난 팩트와 팩트 사이에서 길을 잃은 뉴스의 실체와 배경, 방향을 짚어드립니다. 더 자세히 알고 싶은 궁금한 뉴스가 있을 땐 언제든지 kind@hani.co.kr로 전자우편을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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