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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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아사드 몰락 뒤 문민정부 가능성불안한 체제와 내란 지속 우려도 시리아 사태가 총리까지 망명하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새로운 국면이 이행할 모델은 리비아나 레바논이다. 즉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몰락하고 취약하나마 대의성을 가진 문민 정부로 이행중인 리비아 모델이냐, 아니면 사실상의 무정부 상태에서 내란이 항상화된 레바논 모델이냐이다. 지난주 리야드 히잡 총리의 망명으로 시리아가 리비아의 길로 갈 것으로 보는 관측통들이 늘었다. 첫째,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 정권의 야만적 탄압이다. 리비아의 카다피 정권은 시위대에 전투기를 동원해 발포하고, 대포를 쏘아대면서 정권의 정통성을 완전히 상실했다. 아사드 정권도 민간인에게 대포를 쏘아대는 등 이미 정권의 국민적 지지를 잃었다. 정부 통계로도 6천여명, 국제 단체 통계로는 1만5천명 이상이 사망한 상태이다. 둘째, 시위대 수준의 반정부 세력이 이제 정부군과 교전을 치를 정도로 성장했다. 일정한 세력 기반을 갖출 기미를 보이고 있다. 리비아 반정부 세력이 동부 벵가지를 중심으로 지역에 바탕한 세력 기반을 가졌듯이, 시리아 반정부 세력은 주민 다수인 수니파를 근거로 종파에 바탕한 세력 기반을 형성할 조짐이다. 셋째, 정권 내부의 와해이다. 총리의 망명으로 상징된다. 심각한 것은 군부의 이탈이다. 반정부 무장세력의 중심인 자유시리아군은 정부군에서 이탈한 병사들이 주축이다. 이미 30여명의 장성이 이탈했다. 지난주에는 한 장성이 5명의 장교와 30명의 병사를 이끌고 터키로 망명했다. 리비아에서는 정부군이 사실상 와해되고 카다피를 경호하는 외국 용병과 친위대만 남았다. 세가지 흐름은 시간이 갈수록 강화될 게 분명하다. 시리아도 결국 리비아 모델을 따라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시리아에는 리비아 모델을 결정지은 핵심 상수가 없다. 외부의 군사개입이다. 카다피 정권 타도에 서방의 군사개입을 빼놓을 수 없다. 시리아 사태가 2년이 다 되지만, 미국 등 서방은 그동안 말로 엄포만 놓았을 뿐이다. 군사개입을 못했다. 능력과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애초 리비아에도 군사개입을 주저했다. 로버트 게이츠 당시 국방장관은 리비아가 지정학적으로 미국의 전략적 이해가 걸린 곳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었다. 이는 역설적으로 프랑스 등이 주도한 나토의 군사개입 부담을 줄였다. 공군력을 동원해 부담 없이 리비아를 때렸다. 군사력 사용 이후의 리비아 미래에 별 부담을 갖지 않은 것이다. 시리아는 사정이 다르다. 중동의 한가운데 위치해 그동안 이 지역의 세력균형추 구실을 했다. 시리아라는 나라 자체가 중동 세력균형의 조정 속에서 생겨났다. 아사드 정권은 겉으로는 미국으로부터 ‘악의 축’의 하나로 지목받았으나, 사실 미국이 벌인 테러와의 전쟁의 실질적 동맹국이었다. 알카에다 등 이슬람 무장세력에 대한 보루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아사드 이후의 시리아가 여전히 중동의 세력균형추로 작용할 보장이 없다면, 서방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 이스라엘을 포함한 인근 국가들도 군사개입에 반대할 것이다. 게다가 시리아는 중동의 민족·종파갈등들을 망라한 판도라의 상자이다. 수니·알라위·시아·드루즈·예지디·기독교 등 종파 분쟁과 쿠르드 민족분쟁이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쿠르드족은 아사드 이후를 자신들의 비원인 민족국가 건립의 기회로 삼을 것이다. 터키가 펄쩍 뛸 문제이다. 그래서 시리아는 서방 등 외부의 군사개입과 아사드 정권의 타도 여부와 상관없이 내란이 항상화된 제2의 레바논이 될 공산이 있다. 아랍의 봄 이후 중동에는 이른바 ‘셰이키 레짐 벨트’(shaky regime belt·취약정권지대)가 형성되고 있다. 통치력이 없는 불확실한 체제와 정권이 줄줄이 들어서고 있다. 이미 리비아부터 시작해 레바논을 거쳐 이라크와 예멘, 그리고 아프가니스탄까지 이어진다. 아랍의 봄=중동민주화는 거시적 역사 시각일 뿐 당장은 아프간까지 포함한 대중동 전역이 ‘셰이키 레짐 벨트’화할 수 있다. 시리아가 제2의 레바논이 된다면 그 가능성은 커질 것임은 물론이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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