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2.08.24 18:48 수정 : 2012.09.26 15:01

24일 구속된 ‘여의도 무차별 칼부림’ 사건 피의자 김아무개(30·가운데)씨가 이날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남부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김씨는 ‘피해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너무 죄송하다”며 울먹였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토요판]
내 목덜미까지 다가온 범죄의 위협
‘자포자기 낙오자’ 돌아보는 계기로

지난 한주 잇따라 터진 ‘묻지마 범죄’(절망 범죄)의 충격이 아직도 크다. 주말인 18일 저녁 경기도 의정부 전철역에서 벌어진 무차별 칼부림을 시작으로, 서울 중곡동에선 집 현관에서 주부가 성폭행범의 칼에 찔려 죽었고, 수원에선 심야의 가정집 거실에서 한 가족이 술 취한 괴한의 칼에 찔려 죽거나 다쳤다. 울산에선 슈퍼 주인이 단골인 20대 청년의 칼에 배를 찔렸고, 22일엔 퇴근길 서울 여의도 거리에서 실직한 30대가 칼을 휘둘렀다.

이유와 배경을 따지기에 앞서, 당장 떠오르는 것은 칼날이 바로 목덜미까지 다가온 듯한 섬뜩함이겠다. 피해자들이 칼부림의 횡액을 만난 곳은 일상의 생활공간이다. 나 자신도 얼마든지 그런 일을 당할 수 있다. 일상의 언제 어디에서도 안심하지 못하는 사회는 정상적인 사회가 아니다.

그런 불안이 커지면 강력한 대응을 요구하게 된다. 실제로 지난 며칠 사이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는 민생치안 현장에 경찰력을 최대한 투입하겠다고 밝혔고, 대통령은 ‘묻지마 범죄’ 대책을 내년 예산에 반영하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성범죄자의 신원 공개를 확대하도록 법령을 개정하기로 했다. 불법 음란물의 제작과 배포를 엄중 단속하겠다는 경찰 방침도 나왔다. 경찰은 몇 달 전부터 ‘주폭’(음주 폭력) 척결, 노숙행위 제재, 성범죄전력자 신상정보 수집과 동향감시 강화 등을 해오고 있던 터였다. 이번 사건들을 계기로 성범죄자·주폭·노숙자 등 ‘우범자’들에 대한 경찰의 감시와 통제는 한층 촘촘해질 것이다.

그러면 다 된 것일까. 으레 그랬던 것처럼, 다음주쯤이나 다른 큰 사건이 터진 뒤에는 지금의 무서웠던 기억을 잊을 수 있게 되는 것일까. 그러기는 힘들어 보인다. 전과자나 주폭, 은둔형 외톨이 등이 절망 끝에 이번과 같은 범죄를 저지를 위험을 안고 있다고 해도, 그들을 무한정 격리하고 매시간 감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기엔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 주폭 척결 따위 ‘배제와 격리’를 앞세운 경찰국가적 대응으로는 자포자기적 분노로 촉발되는 이번과 같은 일들을 모두 막지는 못한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그런 대응에 앞서 이번 일들을 그동안 누적된 압력이 폭발하기 시작한 신호탄으로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번의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대부분 우리 사회의 경제시스템에서 탈락한 ‘사회적 낙오자’였다. 여의도 사건을 저지른 이는 실직이나 불안정 취업 상태였던 신용불량자였고, 의정부역 칼부림 사건의 범인도 10년 가까이 일정한 직업이나 주거가 없던 일용직 노동자였다. 중곡동의 성폭행 살인범도 “출소 후 생활에 너무 제약이 많아 자포자기하는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하나같이 정상적인 노동시장으로 편입되는 길이 사실상 막혀버린 이들이었다. 2008년 일본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묻지마 살인’ 사건도 파견노동자 등 사회적 낙오자들이 자포자기적 심경으로 저지른 일이었다. 이들을 ‘폐기’하고 ‘격리’하려고만 든다면 폭발의 압력은 더 커지게 된다.

여현호 사회부 선임기자 yeopo@hani.co.kr
그렇지 않아도 지금 우리 사회는 ‘사회적 낙오자’들을 양산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 가계부채는 가처분소득의 160%로, 2008년 금융위기 때 미국의 130%보다 높다. 집값까지 급락 추세여서 언제든 개인 파산으로 번질 수 있다. 정부가 요즘 들어 그 숫자를 공개하지 않는 신용불량자도 대략 500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최근 1년 사이에만 80만명이 늘었다고 한다. 고용보험 적용률은 비정규직의 경우 35% 수준에 불과해, 해고나 실업 이후의 사회안전망은 더없이 허술하다. 누구든 한번 실패하면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떨어지면 다시 오를 수 없는 사회인 것이다.

이런 사회적 스트레스가 누적되면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어디로 분노를 터뜨릴지 장담하기 어렵게 된다. 지금의 위험신호를 외면하는 것은 그래서 더 위험하다. 당장은 경찰국가적 해법보다는 사회적 복지의 확대와 보완에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건 발생 때의 충격이 어떤 식의 논의로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

여현호 사회부 선임기자 yeopo@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리뷰&프리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