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서 개천절로 이어진 징검다리 연휴가 끝났어. 달력을 보니 아, 성탄절까지 휴일이 없어! 한글날(10월9일)이 공휴일에서 제외된 게 1991년, 벌써 20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한글날 이제 안 쉬던가?”를 묻고 있어. 해마다 반복되는 풍경이지.
다만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어서 12월19일 투표일 하루가 남아 있지. 5년에 한 번 돌아오는 이 휴일 덕에, 올 추석은 좀 특별한 의미가 있는 듯 보였어.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민족 대이동’이 민심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하는 관점에서 말이야.
정말 그럴듯한 가설이야. 추석은 전국에 흩어져 살던 가족이 고향집에 모여들어 이야기를 나누는 장이잖아.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조사연구소(KSOI) 조사분석실장은 ‘장터 효과’라는 표현을 쓰더군. 나이, 사는 지역, 처한 상황이 저마다 다른 사람들이 서로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지 들어보고, 누구를 지지하는지를 공유해봄직한 게 사실이지. 그래서 생각이 바뀔 수도 있고 말이야.
2007년 대선 한해 전인 2006년 추석이 대표적 사례야. 그해 서울시장 임기를 마치고 대선 행보를 시작한 이명박 대통령이 추석을 기점으로 다른 주자들과의 차이를 크게 벌리기 시작했거든.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는 박근혜 현 새누리당 대선 후보였어. 당시 두 사람은 몇 달 동안 오차범위 안에서 접전을 벌였는데, 추석이 지나자 이 대통령이 10%포인트 이상 차로 따돌렸어.
왜였을까? 분석가들은 청계천 복원, 버스전용차로 시행, 버스-지하철 환승할인 등 서울시장 시기의 ‘이명박 브랜드’가 추석 기간 전국적으로 홍보됐기 때문이라고들 했어. 서울 사는 젊은 자녀들이 고향 부모님들에게 ‘이명박의 서울’ 이야기를 전한 거지. 이명박이 기업가인 줄로만 알던 부모님들이 ‘행정가 이명박’을 발견했고, 그 추세가 이듬해 대선 때까지 이어졌다는 거야.
사실 지난해 추석도 새로운 대선주자 한 사람을 발견하는 계기였어.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추석(9월12일)이었거든. 출마검토설이 나왔지만 안철수 후보는 9월6일 박원순 시장을 만나 불출마선언을 했지. 이날부터 안 후보는 ‘대선주자 안철수’가 됐어. 여론조사에서 1위에 오르면서 ‘박근혜 대세론’이 무너지는 계기도 됐지. 안 후보는 단연 추석의 화젯거리였어.
우리는 여기서 2006년 ‘이명박 추석’과 2011년 ‘안철수 추석’의 공통점을 눈여겨봐야 해. 대선 직전이 아니라 1년 이상 앞둔 시점이었다는 거야. 어느 정도 구도가 확정돼 선택만 남은 대선 직전의 추석과는 다르지. 누군가 급부상하고 누군가 급락하는 정치적 드라마도 비교적 맘 편히 볼 수 있는 시기야.
하지만 대선 직전 추석은 꼭 그렇진 않아. 대개 추석~대선은 70~100일의 긴 시간이 남아. 더욱이 이번처럼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단일화가 초미의 관심사가 된 상황에선, 추석 여론이 대선 전망에 적확하다고 하긴 힘들 것 같아. 2002년 예를 보면, 추석(9월24일) 직후 여론조사에서 노무현 후보는 이회창, 정몽준 후보에 이은 3위에 그쳤어. 11월 들어서야 정몽준 후보와 노무현 후보는 후보단일화 논의를 시작했고, 후보 등록 이틀 전인 같은 달 25일 단일 후보를 확정했지. 추석보다 훨씬 큰 변수인 단일화가 남아 있으니, 추석 민심만으로는 전망이 난망했던 거야. 이번에도 단일화 추이에 따라 각 후보의 지지율이 춤을 추지 않겠어?
그런데 왜 추석을 앞두고 추석 민심 기사가 쏟아졌냐고? 어쩌면 이런 예측불가능의 책임을 추석한테 물은 건 아니었을까? 윤희웅 실장은 이렇게 말해. “언론이 과도하게 의미부여를 한 측면이 있다. 추석 이후라고 해서 반드시 새로운 흐름이 생기는 건 아닌데, 대선 정국이 역동적으로 진행되지 않는 최근 정국 탓인지 올해 추석은 지나치게 강한 의미를 부여했다.”
귀성하고 온 사람들에게 들어보니 이번 추석은 서로의 지지 후보를 확인하는 기간에 지나지 않았다고들 해. 서로를 확인하고 나면 결국 설득이나 말싸움으로 번질 테니 그마저 귀찮아 아예 정치 얘기를 않았다는 사람도 많아. 야당 지지 성향이 많다는 수도권 거주 30대가 여당 지지가 강한 영남 출신인 경우에 특히 그랬겠지.
귀향길에 이뤄지는 의견 교환이란 게, 요즘 같은 정보기술(IT) 세상에 얼마나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어. 예전처럼 설이나 추석 아니면 얼굴 보고 목소리 듣기 힘든 시절도 아니고 말야. 정말정말 경향 각지의 친지들과 대선에 대한 의견을 나눠보고 싶다면, 오늘이라도 당장 카카오톡 대화방을 하나 열어서 모두를 초대해보는 건 어떨까? 이름은 ‘추석 밥상’으로 지어놓고, 얘기도 듣고, 얘기도 하고, 종종 ‘하트’도 쏴주면서 말이야.
김외현 정치부 정당팀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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