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1.16 20:53
수정 : 2012.11.17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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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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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넌 회사에서 물 좋은 부서만 보내는데 왜 연애를 못하는 거냐!” ‘소개팅만 백만번’인 한 친구는 저만 보면 혀를 찹니다. 그렇습니다. 5개월 전까지 문화부(방송연예 담당)에서 ‘꽃미남’에 호강하다 이젠 ‘짐승남’에 둘러싸인 ‘행복한 남 기자’입니다.
짐승남 중의 짐승남, 프로야구 한화 류현진 투수의 메이저리그행이 화제죠? 아시아에선 역대 4번째로 많은 이적료(포스팅 금액)인 280억원(2573만7737달러33센트)을 받고 엘에이(LA) 다저스로 간다는 기사가 인터넷을 달굽니다. ‘대박’은 대박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류현진은 280억원을 손에 쥔 재벌이 된 걸까요? 아직도 헷갈리시는 분들을 위해 <친절한 기자들>에서 다시 ‘친절하게’ 설명드립니다.
그 280억원 가운데 류현진이 가져가는 돈은 한푼도 없습니다. 세금 빼고 1원까지 한화 구단이 다 가져갑니다. 쉽게 말해 다저스 구단이 280억원의 이적료를 한화에 주는 대가로 류현진과 단독 협상권을 갖게 된 것이죠. 세금을 빼더라도 150억원~200억원은 될 것으로 추정됩니다. 기아 최향남 선수가 2009년 롯데 소속 당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 포스팅 이적료 101달러(약 11만원)에 계약했을 때는 소액이라 ‘잡이익’으로 처리됐다고 하네요.
류현진이 벌어들일 돈은 이제부터입니다. 다저스 구단과의 연봉협상을 남겨두고 있거든요. 이적료 280억원도 연봉협상이 타결돼야 ‘입금’이 최종 결정됩니다. 이적료는 연봉계약서에 사인한 날부터 5일 이내에 송금합니다. 류현진과 다저스 구단의 협상이 결렬되면 메이저리그행은 없던 일이 되니 280억원도 안녕인 거죠. 그러나 연봉협상 과정에서 결렬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미국 진출을 꿈꾸는 선수 입장에서는 양보를 해서라도 계약하고 싶은 게 솔직한 마음이죠.
계약이 깨진 경우도 있기는 있습니다. 2년 전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일본 투수 이와쿠마 히사시를 잡으려고 1910만달러를 이적료로 제시해 단독 협상권을 얻어냈지만, 정작 연봉협상에서는 4년간 모두 1525만달러를 불렀습니다. 이적료에 견줘 연봉이 적다 보니 이와쿠마는 고개를 가로저었고, 결국 협상은 물건너갔죠. 사실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오클랜드 구단이 처음부터 이와쿠마의 영입을 원치 않으면서 다른 팀에도 보내기 싫어 이적료만 부풀려 놓았다는 소문이 돌았죠.
일단 이적료 문제를 넘어섰으니 이제 구단과 선수의 두뇌싸움이 시작됩니다. 구단 입장에서는 쓸 수 있는 돈은 한정되어 있는데 큰돈을 이적료로 지출해야 하니 연봉에서 까고 들어가려고 하죠. 계약 기간은 길게, 연봉은 적게. 선수는 당연히 그 반대입니다. 류현진의 연봉협상은 미국의 유명 에이전트인 스콧 보라스가 담당합니다. 보라스는 미국 구단들 사이에서 돈을 잘 뜯어가는 ‘악마의 에이전트’로 유명합니다. 그만큼 유능하다는 소리니 류현진의 연봉이 얼마나 될지는 국내외 관심사입니다. 추측은 가능합니다. 최소 500만달러라고 내다봅니다. 2006년 류현진과 비슷한 포스팅 금액인 2600만달러로 뉴욕 양키스로 이적한 일본 이가와 게이(투수)에 견준 것이죠. 이가와는 5년간 2000만달러(연봉 400만달러)를 받았습니다. 2006년 당시 리그 평균 연봉(269만달러)과 올 시즌 평균 연봉(344만달러)을 고려하면, 류현진이 최소 500만달러(54억원) 정도는 챙길 수 있다고 보는 거죠.
통상 류현진처럼 포스팅을 통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 자유계약선수로 갈 때보다 연봉이 반토막난다고 합니다. 영입하는 구단에서는 한정된 재원에서 이미 이적료 출혈을 했으니까요. 만약 류현진이 한국에서 9년을 채우고 완전한 자유계약선수 자격으로 다저스로 간다면, 한화 구단은 이적료를 한푼도 못 받겠죠. 다른 보상 장치가 있습니다. 국내로 복귀할 때 한화 구단이 아닌 다른 구단으로 갔다고 치면 다른 구단이 한화에 보상해야 합니다. 방식은 두가지. 류현진의 전년 연봉 200%와 보상 선수 한명을 주거나, 연봉 300%로 돈만 주거나. 류현진의 올 시즌 연봉은 4억3000만원입니다.
포스팅 기회는 한번뿐입니다. 다저스와 협상이 불발되더라도 다른 구단과 재협상이 안 됩니다. 사실 다저스도 류현진이 선택한 구단이 아닙니다. 포스팅에서 팀 선택권은 없습니다. 메이저리그는 최고 입찰액만 한국야구위원회(KBO)에 알려주고, 케이비오는 금액을 한화 구단에 전달하죠. 한화 구단에서 수용하면 그제야 메이저리그가 최고 입찰액을 제시한 팀을 공식 발표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엠엘비닷컴>이 기사를 먼저 내면서 엘에이 다저스인 게 알려졌죠. 그만큼 류현진의 거취가 초미의 관심사였다는 증거겠죠.
남지은 스포츠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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