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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01 19:46 수정 : 2013.03.01 22:23

박근혜 정부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내정된 현오석(오른쪽) 한국개발연구원장이 지난 18일 낮 서울 동대문구 회기로 한국개발연구원을 나서고 있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경제요직에 재무통 지고 기획통 약진
금융시장 미숙 대응 땐 도돌이표 우려

박근혜 정부의 초대 경제팀 진용 갖추기 작업이 착착 진행중이다. 내각과 청와대에서 ‘투 톱’ 역할을 맡는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경제수석 내정자가 발표된 데 이어, 실무를 책임질 경제분야 비서관 구성도 일단락됐다. 한마디로 ‘모피아(재무부+마피아)의 몰락’과 ‘경제기획원(EPB)의 약진’으로 요약할 수 있다는 평가가 많다. 과거 60~70년대 개발독재 시대 내내 쌍두마차였던 경제기획원과 재무부 사이엔 자존심을 건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역사적 경험에 비춰볼 때, 박근혜 정부 초기 경제정책을 좌지우지할 집단의 무게중심이 일단 옛 기획원 전통을 이어받은 인사들에게 쏠렸다는 얘기다.

경제팀 면면을 들여다보면 이런 평가가 충분히 나올 법하다.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와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 모두 옛 기획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 실무진에선 색깔이 더 뚜렷한 편이다. 경제수석실 경제금융비서관에 내정된 주형환 재정부 차관보는 한때 은행제도과장을 맡기도 했으나, 공직생활 내내 주로 중장기 기획과 정책조정 업무를 담당해왔다. 홍남기 국정기획수석실 기획비서관 내정자 역시 대표적인 ‘예산통’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이쯤 되면, 지난 이명박 정부 때까지도 막강했던 모피아 사단의 위세가 한풀 꺾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과연 박근혜 대통령은 기획원 라인의 손을 들어주는 대신, 모피아와는 분명 거리를 두려는 걸까? 아니, 보다 정확하게는, 끝내 모피아를 버릴 수 있을까?

박 대통령의 경제팀 인사 배경을 짐작해볼 만한 근거들은 더러 있다. 우선, 우리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권세를 누려왔던 모피아에 대한 대중적 불만에 눈감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마피아’라는 섬뜩한 단어가 뒤에 따라붙을 만큼, 옛 재무부 출신 핵심인사들은 그들만의 철옹성 같은 네트워크를 형성한 채 주요 요직을 서로 주고받거나 퇴임 뒤에도 민간기관장 자리를 독차지해왔다. 이뿐이 아니다. 박 대통령의 머릿속에 자리잡은 기본적인 경제인식 자체가 금융을 기껏해야 ‘종속변수’쯤으로 여기는 낡은 개발시대의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다는 점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런 패러다임은 정부가 ‘방향’을 제시하고 ‘지침’만 내린다면 민간영역을 돌아다니는 돈의 물꼬를 언제든 자유로이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떨쳐내기 힘들다.

박근혜 정부가 맞닥뜨린 시대상황도 최근의 인사 결과에 녹아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외환위기 직후 출범한 디제이(DJ) 정부나 글로벌 금융위기의 와중에 닻을 올린 이명박 정부와 달리, 새 정부는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진정세로 돌아선 무렵에 임기를 시작하고 있다. 이른바 재무통이 급한 불을 끄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면, 위기가 어느 정도 잦아든 때엔 비전을 제시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기획통이 더 어울리는 법이다. 적어도 현재로선 ‘해결사’ 또는 ‘소방수’가 나설 여지가 그만큼 좁은 셈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끝내 모피아와 ‘단절’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맨 먼저 꼽을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박 대통령의 ‘금융관’에 담긴 한계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간에 박 대통령이 익숙한 70년대식 정책금융과 21세기 최첨단 상업금융이 발 딛고 있는 무대는 너무도 다른 세상이다. 바로 이런 한계 때문에, ‘새 정부는 금융을 너무 모른다’는 모피아 일각의 친절한 우려(!)가 정당성을 얻는 현실은 역설적이다.

더 큰 문제는 이제 막 출범한 새 정부 경제팀이 맞서야 할 대내외 위험요인(리스크)이 현재의 경제팀 실력으론 너무 버거운 과제라는 점이다. 당장 환율전쟁만 놓고 보더라도, 그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는 쉽사리 가늠하기 힘들다. 물론 원화 가치가 높아지는 게 새 정부에 득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당장 물가 안정에도 보탬이 될뿐더러, 수출대기업만 도와준다는 비난의 목소리를 잠재울 수 있는 기회도 준다. 환율을 떠받치느라 불필요하게 쏟아붓던 재원을 복지 쪽으로 돌릴 여유도 생긴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는 환율전쟁은 단순한 경제문제라기보다는, 매우 복잡한 국제정치 역학구도 아래 벌어지는 고도의 전략싸움에 가깝다. 우리의 의도나 정책기조와는 무관하게,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한순간에 확대·증폭될 불씨를 안고 있는 건 물론이다. 모피아와 단절할 정교한 전략과 철저한 대비가 뒤따르지 않는 한, 잠시 숨죽이고 엎드린 모피아가 위기를 명분 삼아 화려하게 복귀할 날은 멀지 않다. 진정 박근혜 정부가 모피아로부터 ‘독립’을 원했다면, 너무도 상상하기 싫은 굴욕의 순간인 셈이다. 그리고 그 숙제를 풀 사람 역시 박 대통령 자신이다.

출범 4일, 박근혜 정부 이상하다 [한겨레캐스트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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