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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08 19:51 수정 : 2013.03.09 01:14

[토요판] 리뷰&프리뷰 친절한 기자들

오랜만에 ‘친절한 기자’가 되어 독자님들을 뵙자니 감개무량해. 지난해 두 차례의 선거가 끝났으니 ‘정치 대목’도 얼추 한풀 꺾였고, 그만큼 정치부 기자가 ‘친절한 설명’을 맡을 사안도 줄어들 줄 알았거든. 웬걸. 정치가 인기가 없을 줄만 알았지, 이렇게 무시당할 줄은 몰랐어. 새 대통령께서 ‘정치’는 뜻이 없고, ‘통치’만 하려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정치부 기자가 오랜만에 ‘친절한 기자들’의 부름을 다시 받은 이유겠지.

요새 언론 보도를 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정부조직법 개정안 얘기,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의 기능 조정 얘기가 나와. 요약하자면 이런 거야. 박근혜 정부가 정부 부처 조직도를 새로 그렸는데, 현실에 적용하려면 법을 고쳐야 해. 지금의 법은 이명박 정부가 그린 정부 조직도인데, 박근혜 정부는 이걸 좀 바꾸고 싶거든. 그렇지만 박근혜 대통령 마음대로 법을 바꿀 순 없어. 법을 고치거나 새로 만드는 건 국회가 하는 일이야. 국회는 여당과 야당의 협상을 거쳐야 뭐든 결정이 되는 곳이잖아. 여야는 대체로 접점을 찾았지만, 신설 미창과부의 영역 문제에서 결론을 못 내고 있어.

이 정도면 협상 과정에 대해선 충분한 설명일 수도 있으련만, 세부 내용이 알려지면서 한층 복잡한 갈등 구조가 나타났어. 방통위의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 관련 인허가권과 법률 제·개정권, 그리고 아이피티브이(IPTV) 관련 업무를 미창과부에, 곧 박근혜 정부에서 정보통신기술(ICT)을 총괄할 핵심 부처에 넘겨줄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된 거야. 방송시장을 생산과 유통으로 나눴을 때 에스오와 아이피티브이라는 유통의 영역을 미창과부에 넘겨도 되느냐는 거지.

박 대통령은 새 정부의 총아인 미창과부가 이 정도 권한은 갖고 있어야 급변하는 시대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며 제구실을 할 수 있다고 해. 방통위는 여야가 추천하는 위원들(여당 3명, 야당 2명)의 합의체지만, 미창과부는 장관이 혼자 주도할 수 있거든. 반면, 야당에선 몇해 전 종편 방송 출범에 이어 미디어 지형이 또 불공정해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어. ‘방송 유통 인허가권을 장관 혼자 결정하는 부처에 가져가는 건 방송 장악 의도’란 거야.

구체적인 협상 내용의 시비를 따지는 건 쉽지 않아.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잖아. 그러니 설득과 협상을 해야지. 여야 협상이 진행되던 지난 3일 오후 새누리당 쪽에서 “우리도 많이 양보하고 있다. 야당도 계속 지금처럼 할 수 있겠나. 안철수도 출마한다던데”라는 얘기가 나왔어. 타결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왔어.

하지만 청와대가 반발했어. 바로 이튿날 박근혜 대통령은 무서운 표정으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지. “이 문제만큼은 물러설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이라고 한 담화는, 국회가 진행중인 협상을 받아들일 수 없고 자신이 애초에 내놓은 대로 통과시켜 달라는 태도였어. 담화 뒤 여당은 내줄 수 있는 게 없어 협상력을 잃었어. 야당도 대통령 말을 다 들어줄 순 없으니 물러설 곳이 없어졌어.

중요한 건 두 가지라고 봐. 하나는 박 대통령이 선출된 지도자이긴 해도 마음대로 법을 바꿀 수는 없다는 거야. 입법부의 고유 권한이니 최대한 설득하고 결정을 기다려야겠지. 또 하나는 국회에서 결정을 하려면 여야가 협상을 거쳐야 한다는 거야. 대통령을 당선시키고 집권한 여당과, 집권에 실패했지만 견제 세력으로 남은 야당이 이해관계가 같을 수는 없어. 여야 논의와 협상, 어쩌면 대립까지도 아주 자연스럽고 본질적인 과정인 거지. 여기서 협상력을 발휘하며 상대를 설득하고 국면을 이끌어가는 걸 우리는 ‘정치력’이라고 하잖아.

정치력과 ‘전투력’은 달라. 총탄이 빗발치는 전투에선 승패가 분명히 갈리지. 선거도 그런 속성 탓에 흔히 ‘선거전’이라고 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5년 동안 거대 야당의 지도자로, 또 집권 여당의 당내 비주류 지도자로 각종 전투를 이끌어왔어. ‘선거의 여왕’이란 타이틀답게 전투력은 최고 수준이었지. 잇따른 승전보 끝에 대통령이 된 그가, 다시 또 전투 상대를 찾는 걸까? 야당은커녕 여당에마저 협상 여지를 주지 않고 원안을 고집하는 걸 보며, 이젠 전투력이 아닌 정치력을 보여줘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이 들어. 곧 개봉을 앞둔 영화 <링컨>을 보면, 노예제 폐지를 실현할 헌법 13조 수정안 통과를 위해서 대통령이 반대파 의원들을 일일이 만나 설득하는 장면이 나와. 마침 이 영화와 관련해 진행중인 온라인 조사에서 박 대통령은 ‘함께 보고 싶은 명사’ 1위로 꼽힌다지. 바쁘시겠지만, 한번쯤 이 영화를 보시면 어떨까 싶어.

김외현 정치부 정당팀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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