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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3.15 21:32 수정 : 2013.03.16 10:51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청사에 직원들이 드나들고 있다. 바람에 나부끼는 검찰 깃발이 권력의 풍향에 나부끼는 검찰의 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총장후보 추천부터 내정까지 5주
‘대통령의 뜻’ 그 치열했을 탐색전

새 검찰총장으로 채동욱 서울고검장이 내정됐다. 참 오래 걸렸다. 지난해 12월3일 전임 총장 사퇴 뒤 석 달 열흘 만이고, 2월7일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후보 3명을 추천했을 때부터 5주 만이다. 그 사이 대통령선거와 신구 대통령의 자리바꿈이 있었으니 사정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도 2월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엔 언제든 지명할 수 있었으니, 그것만으로도 한참 지체됐다. 발표만 한없이 기다려야 하는 ‘박근혜 인사’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내정자를 비롯한 후보들에겐 그런 시간이 끔찍했을 것이다. 통보를 기다리며 가슴을 졸이고, 이런저런 구상으로 만리장성을 쌓다 허물기도 여러 차례였을 것이다. 사나흘도 아니고 한 달 넘게 끌었으니 오죽했겠는가. 당사자뿐 아니라 함께 기다려야 하는 검찰조직 전체도 고역이었다.

목을 빼고 청와대만 바라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온갖 얘기도 분분했다. 박 대통령의 뜻이 추천된 3명 말고 다른 사람에게 있다거나, 추천 결과를 뒤집고 재추천 절차를 밟을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처음엔 어떤 이가 유력하다더니 다시 다른 이가, 그러다 또 다른 이가 확정적이라는 말이 나돌았고, 마지막엔 “대통령 말고는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나왔다. 전적으로 대통령 한 사람의 뜻에 달려 있다 보니, 대통령과 그 주변 측근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소스라치듯 예민하게 반응한 탓에 빚어진, 이 시대의 풍경이다.

늦게라도 새 총장 후보가 지명됐으니 문제가 해결된 것일까. 지난 두어 달 동안 검찰은 그 수장과 조직의 앞날이 ‘최고권력의 뜻’에 달려 있음을 확실하게 ‘학습’했다. 이제 대통령의 뜻은 갑작스런 발표를 통해 드러난다. 발표 전까지는 이리저리 짐작하거나 탐색해야 하고, 일단 발표되면 그냥 따라야 한다. 목표와 실적에 따라 책임을 지도록 한다는 ‘순명책실’(循名責實)의 원칙인지, 지난 11일 새 정부 장관들에게 임명장을 준 뒤에는 대통령이 부처별로 목표를 하나하나 제시했다. 그런 분위기에선 대통령의 뜻이 절대시된다.

검찰 입장에서 보면 ‘뜻’을 짐작할 일은 이미 여럿이다. 예컨대 관례상 고검장급 가운데 말석이 맡았던 법무부 차관을 검찰총장보다 하루 먼저 발표하고 검찰총장은 다른 부처의 외청장들과 함께 발표한 것은 자존심 강한 검찰의 힘을 빼겠다는 신호일 수 있다. 법무부 차관에 총장 후보의 사법시험 동기를 임명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법무부 장차관은 모두 권력의 기류에 민감하기 마련인 검찰의 공안부 출신이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법무부는 대통령의 뜻 따르기에 발 빠르다. 박 대통령이 14일 경찰대 졸업식에서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4대 사회악인 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파괴범, 불량식품을 반드시 뿌리뽑겠다”며 특별히 성폭력 문제에 관심을 표시하자, 다음날인 15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검찰 최우수 인력을 성폭력 범죄에 우선 배치하겠다는 등 성폭력 근절대책 청사진을 밝혔다. 얼마나 오래 준비한 대책인지는 알 수 없다. 그렇게 대통령에서 법무부를 거쳐, 검찰로 ‘뜻’이 전해지는 구조는 검찰엔 낯익은 것이다. 검찰은 어어 하다가 어느새 권력의 뜻에 따라 행동하는 오래 길들여진 ‘습벽’ 앞에 다시 선 셈이다.

여현호 사회부 선임기자
따지자면 검찰개혁 문제는 정치권력과의 관계에서 제기됐던 것이다. 검찰이 권력의 눈치를 보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 사건을 왜곡하고 무리한 수사를 한 데서 정치검찰 논란이 비롯됐다. 가깝게는 대통령과 그 주변의 혐의에 눈감은 민간인사찰 사건과 내곡동 사저터 의혹 사건 수사가 그런 예다. 무죄로 귀결된 피디수첩 사건과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 사건에서 검찰이 무리한 기소를 강행한 것도 대통령의 뜻을 빼고는 설명하긴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은 첫 국무회의에서 황 장관에게 검찰개혁을 당부했다. 그 뜻이 과연 권력의 정치적 목적에 휘둘리지 않는 검찰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일까. 지금으로선 검찰개혁이 시늉에 그칠 위험도 크다. 곧 본격화할 검찰 인사에서 ‘정치검찰’의 인적 청산이 이뤄질지부터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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