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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4.05 20:21 수정 : 2013.04.05 21:33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여현호 사회부 선임기자 yeopo@hani.co.kr

여현호 기자
채동욱 신임 검찰총장의 취임사 들머리는 사뭇 비장하다. 그는 검찰이 지금 “성난 민심의 바다에서 격랑에 흔들리고” 있고, “크고 작은 비리와 추문, 정치적 중립성 논란으로 국민적 공분과 비난의 파도를 맞아 표류하고 있다”고 말했다. 위태로운 “함선의 선장처럼 절박한 심정”이라는 말도 했다. 그는 “오욕의 시대에 반드시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는 각오”로 “근본적인 혁신을 하는 것만이 이 위기를 넘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새 정권 벽두의 신임 검찰총장이 서슬 퍼런 방침과 지침 대신 ‘자성과 혁신’을 앞세웠으니 그저 해보는 빈말은 아니겠다.

검찰은 위기를 ‘수사’로 타개한다는 생각이다. 채 총장은 “국민의 믿음을 회복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본연의 임무’를 빈틈없이 해나가는 것”이라고 말했고, 여러 중견간부는 총장 취임에 이어 검찰 진용이 갖춰지는 대로 검찰 수사가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불붙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어제 검사장급 인사에 이어 다음주면 부장검사급 인사까지 마무리된다니, 겨울잠을 자던 검찰 수사는 곧 본격화할 것이다.

검찰로선 이런 수사가 절실한 이유가 또 있다. 수사권 조정을 놓고 줄다리기 중인 경찰과는 확실하게 구별되는 역량을 보일 필요가 있고, 중수부 폐지 등 검찰개혁을 압박하는 정치권에 대해선 검찰의 핵심 수사기능을 과시하고 이를 보전하자고 주장할 명분이 있어야 한다. 검찰조직의 위상을 위해서라도, 지금 검찰엔 찬탄을 자아낼 만한 수사가 필요하다.

과연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시금석이 있긴 하다. 검찰이 새로 손댈 사건도 여럿 있겠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것은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사건이다. 의혹의 얼개는 간단하다. “국정원 직원이 대통령선거 기간에 인터넷 여론을 조작하려는 활동을 일상적·지속적으로 했다, 그 직원은 국정원의 관련 조직 소속이다, 국정원장이 이런 활동을 독려하는 듯한 지시도 했다.” 의혹대로라면 국가정보원법이 금지하는 정치관여 행위(제9조)에 해당해, 5년 이하의 징역을 받아야 한다. 국정원 압수수색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 소환도 불가피하다. 그런데도 경찰 수사는 넉 달이 다 되도록 감감무소식, 굼벵이걸음이다. 정치적으로 인화성이 높기 때문이겠지만, 결국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에게 영향을 끼치는 일이라는 점을 의식했을 것이다.

곧 사건을 넘겨받을 검찰은 그런 고민도 함께 인수하게 된다. 잘 처리하면 경찰과의 차별성을 보이고 검찰의 공정성, 정치적 중립도 과시할 수 있지만, 잘못하면 경찰보다, 또 과거의 검찰보다 더한 비난과 불신을 받게 된다는 점에선 ‘양날의 칼’이다. 그러잖아도 검찰은 뻔하게 대통령에게 초점이 맞춰지는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과 내곡동 대통령 사저 터 매입의혹 사건 등을 얼버무려 축소한 전력이 있다. 몇달 전까지 그렇게 좌고우면하며 정치 풍향과 권력의 득실을 살피던 검찰이 금방 바뀔 수 있을까. 사람들이 그렇게 의심하는 터에, 또다시 머뭇대고 사건을 뒤틀려 들다가는 ‘바뀐 게 없다’는 비난은 피할 길 없다.

걱정을 없애는 길은 새 총장의 취임사에 나와 있다. 취임사는 “검찰의 그릇된 관행과 의식과 조직문화가 총체적으로 결합되고 누적”된 것이 지금의 위기라고 진단했다. 엄정한 법집행 대신 정치권력의 눈치를 보는 관행, 그런 이들이 ‘능력이 있다’며 인사에서 우대받는 따위 조직문화를 말하는 것이겠다. 실제로 지난 몇년 동안 검찰이 비난을 받았던 사건을 돌아보면, 수사 능력보다 의지가 문제인 것이 대부분이다. 외압을 견디고 공정성을 지키려는 의지도 검찰한텐 중요한 능력이다. 어제, 그제 검찰의 모습은 그런 의지를 다잡는 것이겠다. 제대로 나아가려면 더한 결심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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