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04.05 20:24
수정 : 2013.04.05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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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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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윤형중 토요판팀 기자 hjyoon@hani.co.kr
안녕하세요. 지난해 <한겨레>에 경력 공채로 들어와 사회부에서 나름(?) 활약하다 2주 전에 토요판팀에 온 윤형중입니다. 제가 그동안 까칠한 기사를 많이 썼지만, 사실 친절한 사람입니다. 이 코너에 얼굴을 들이밀어 친절한 기자임을 증명하려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거든요. 마침 정부가 하우스푸어 정책을 담은 ‘종합부동산대책’을 내놨는데 웬걸~ 지난 대선 공약과 많이 다르더라고요. 이 대책으로 진짜 하우스푸어가 사라지는지도 의문이고요. 좀 어려운 사안이라 제 ‘친절함’을 발휘할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먼저 지난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의 공약집을 소개할게요. 이 공약집에는 “하우스푸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이고, 민생정치의 시작입니다. 보유주택 지분매각제도와 주택연금 사전가입제도를 도입해 하우스푸어의 위기상황을 해결하겠습니다”라고 적혀 있어요.
이 중에서 새로운 내용이 ‘보유주택 지분매각제도’인데요. 쉽게 얘기하면 하우스푸어가 자신의 집을 지분으로 쪼개서 파는 겁니다. 예를 들어 현재 집값이 3억원인데 빚이 2억원이라 부담된다면 집의 지분 66%를 팔아 빚을 탕감하는 거예요. 그러면 자산관리공사(캠코) 등 공공기관이 개인이 판 주택지분을 사는 거죠. 한마디로 개인의 부채를 공공부채로 전환하는 정책입니다.
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인 지난해 9월23일 하우스푸어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야심차게 ‘주택지분매각제도’를 발표했는데요. 당시에도 제도의 현실성을 놓고 논란이 많았습니다. 재정부담이 크지 않냐, 수십만 가구의 하우스푸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등의 의문이 제기됐지만, 새누리당 대선 캠프에선 묵묵부답이었죠.
그리고 지난 4월1일 종합부동산대책에서 하우스푸어 정책이 윤곽을 드러냈습니다. 정책은 공약대로 만들어졌지만, 주택지분을 사는 데 투입될 예산은 단 100억원이 책정됐습니다. 1억원씩 지원한다면 100가구가 혜택을 받을 수 있죠.
정책 실무자의 속내를 들어보면 ‘왜 박근혜 정부의 대표 공약이 시범사업 수준으로 축소됐는지’가 더욱 분명해집니다. “만일 집값이 떨어져 공공기관이 보유한 주택지분의 가치가 하락하면 어떻게 하느냐”는 질문을 던지자, 기획재정부의 정책 담당자는 “정부가 지분을 매입하는 규모가 100억원이 아니라 1조원이 넘게 되면 정말 문제가 될 수 있지만, 지금 규모에선 어느 정도 관리가 가능하다”고 답했습니다. 한마디로 이 정책은 시범사업 수준에서 확대될 수 없고, 하우스푸어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자인한 꼴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주택지분매각제도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한 원인이었던 파생상품 부채담보부증권(CDO)과 구조가 유사합니다. 부동산을 지분으로 쪼개서 거래하는 거죠. 단점도 비슷합니다. 집값이 하락하면 전체 자산이 부실화됩니다. 결국 이 제도를 전면 실시하면 불확실한 부동산 시장에서 정부로서도 상당히 위험한 투자를 하는 셈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시범사업 수준으로 시행되지만, 아직도 준비는 미숙합니다. 주택지분을 매입한 공공기관이 개인에게 주택임대료를 얼마나 부과할지, 주택지분을 시장가격대로 사는지, 몇년 뒤에 집주인에게 지분을 되파는지 등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보유주택 지분매각제도뿐 아니라 하우스푸어 대책 전반을 살펴봐도 문제점은 많습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지원을 받는 대상이 많아야 2000여가구에 그친다는 점입니다. 지난해 10월 금융연구원은 부동산·금융자산을 모두 팔아도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고위험 하우스푸어’가 10만명이라고 추산했는데요. 정부 대책으로 지원받는 대상은 고위험 하우스푸어의 2%에 불과한 셈입니다.
하우스푸어뿐 아니라 집 없는 렌트푸어를 위한 대책도 미진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대표 정책인 ‘목돈 안 드는 전세’는 집주인이 은행에서 집을 담보로 대출받고, 세입자가 대출이자를 부담하는 방식인데요. 정부는 이 대책을 발표하면서 “세입자를 구하기 어려운 집주인이 본 제도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지금 시장에서 찾기 힘든 것은 오히려 전세물량입니다. 대선 공약과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공약집에는 “전세보증금 해당액을 주택담보대출로 조달한다”고 적혀 있지만, 실제 대출 한도는 수도권 5000만원, 지방 3000만원입니다. 수도권에서 ‘전세보증금 해당액’이 5000만원인 곳은 거의 없죠. 어쩌면 이름도 바꿔야 할지 모릅니다. 목돈 안 드는 전세제도가 아니라 ‘목돈이 드는 전세제도’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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