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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09 19:48 수정 : 2013.08.09 20:45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청와대에서 김기춘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임명장을 주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토요판] 리뷰&프리뷰 다음주의 질문

김기춘 신임 청와대 비서실장에 대한 여권 인사들의 의견은 대체로 같다. 한마디로 일을 잘한다는 것이다. 친박계의 한 주요 인사는 “전임 허태열 실장에 비해 김 실장은 경륜이 풍부한데다가 일 하나는 똑부러지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사실 수고로이 탐문할 필요도 없다. 김 실장이 얼마나 똑똑하고 유능한지는 그의 이력만 살펴봐도 나온다.

대통령 선거를 앞둔 1992년 12월11일 당시 법무장관을 그만둔 지 얼마 안 된 김 실장은 시장과 지검장, 경찰청장, 교육감 등 부산의 실력자들을 한데 불러모아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일으켜야 돼”라고 부추기는가 하면 “편집국장, 사회부장, 정치부장, 이런 놈들 뭐… (돈) 주면서” 회유 좀 하라고 지역 상공인을 설득했다. 이른바 초원복국집 사건이다. 그는 이 일로 불법 선거운동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을 구형받았다. 검찰의 봐주기 수사 덕택이었지만, 그로서는 인생 최대의 위기였다. 하지만 그는 일반인의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당시의 대통령선거법을 헌법재판소까지 끌고가서 이기는 ‘법 실력’으로 공소 취소를 받아내 결국 처벌을 면했다.

평검사 시절이던 1972년 박정희 정권의 철권통치를 뒷받침하는 유신헌법 초안을 마련하는 중책을 맡은 것도 그가 훗날 표현했듯이 “상사들이 똑똑하다고 봤”기에 가능했다. 유신헌법을 만든 신직수 당시 법무장관이 1973년 말 중앙정보부장으로 가면서 김 검사를 보좌관으로 데려간 것이 그 증거다. 김 실장은 이듬해 유신헌법에 대한 반대를 금지하고 이를 어긴 사람을 군사재판에 넘기는 내용의 긴급조치 1호와 2호를 만드는 데도 역할을 했다. 이런 ‘활약’ 덕분에 그는 중정에서 대공수사국장에까지 올랐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5일 허태열 초대 비서실장을 느닷없이 하차시키고 김 실장을 전격 기용한 것은 그의 이런 ‘능력’을 높이 샀기 때문일 것이다. 취임 다섯달이 넘도록 공기업 인사조차 마무리하지 못할 정도로 지지부진한 국정을 다잡겠다는 의도에서다.

그러나 이런 구상이 그다지 먹힐 것 같지 않다. 첫째, 김 실장은 20여년 전에 활약한 구시대의 낡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검찰총장(1988년)과 법무장관(1991년) 등 공인으로서의 전성기를 보낸 노태우 정부 이후 4개 정권이 지났다. 18대 총선(2008년) 때 한나라당의 공천 경쟁에서 탈락함으로써 정치판에서도 퇴출됐던 인물이다. 그게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박근혜 정부의 내각과 청와대에서 최고령(74)이라는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자기 시대가 저 멀리 저물어 버린 흘러간 물이다. 불심검문과 강제 연행이 횡행했던 시대에 ‘미스터 법질서’로 불렸던 이가 야간 촛불시위가 자유로운 시대의 감성과 삶의 방식을 이해할 수가 있겠는가.

둘째, 그가 능력을 발휘했다는 일이 모두 민주주의를 짓밟는 것이었다. 유신헌법 초안을 마련한 것은 민주주의 압살의 하수인 노릇이었으며, 지역감정 활용과 관권선거를 꾀했던 초원복국집 사건은 반사회적 범죄였다. 2004년 그가 국회 법사위원장으로서 앞장섰던 노무현 대통령 탄핵도 정략적 목적에서 민주적 헌정질서를 흔든 정치놀음에 불과했다. 불의의 대리인 노릇을 주저하지 않았던 사람이 21세기에 요구되는 정의를 실천하기는 어렵다. 설령 본인이 개과천선했더라도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

셋째, 김 실장은 대통령에게 할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임명 후 첫 언론 발표를 하면서 “윗분의 뜻을 받들어서”라고 말했다. “위임에 따라”라고 하는 북한식 표현과 닮았다. 그는 평소에도 박 대통령을 “주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박 대통령의 가장 큰 문제인 불통이 더 깊어지기 쉽다. 바다까지 흘러간 물을 끌어온 결과 물레방아가 거꾸로 돌까 걱정된다.

김종철 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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