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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8.23 19:21 수정 : 2013.08.23 19:21

정희진 여성학 강사

[토요판] 리뷰&프리뷰 정희진의 어떤 메모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 정치인류학 논고>
피에르 클라스트르 지음, 홍성흡 옮김, 이학사, 2005

“서구 지식이 한국에 잘못 소개되었다. 오독이다.” 종종 이런 말이 오가지만 나는 서구 사회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구에서도 다윈이나 캐럴 길리건(여성주의 평화학자)에 대한 오해는 엄청나다.

특히 동물 행동 분야와 관련해서는 우아한 표현은 아니지만, 간혹 졸도할 만한 ‘지식(인)’을 만나게 된다.(물론 이는 내 입장이고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며칠 전 동물도 성매매를 한다는 주장을 접했다. 동물 세계에도 성폭력이 있다는 주장도 유구하다. 성=‘생물학’이라는 통념인 듯한데, 당연히 둘 다 아니다. 이런 경우 나의 기운은 소중하므로 “이런 책을 읽어 보세요” 하면 그만인데, 반(反)성매매 운동가들이 의견을 물어왔다.

이 언설은 언어, 권력, 몸, 경제 개념이 백지상태의 발상이다. 동물행동학은 이미 1970년대 초반부터 과학자들의 시각 자체가 문제가 되면서 ‘자연과학이 아니라’ 가장 사회문화적인 담론이 되었다. 인간 행동도 오해로 맨날 싸우는데, 동물 행동에 대한 확신은 어디서? 그들이 생존을 위해 경쟁을 하는지 협력을 하는지, 성폭력이 있는지 성매매(구매? 판매?)를 하는지 어떻게 아는가. 동물 행동의 진짜 의미가 무엇이든 결국 인간의 해석이라는 것이다. 주로 백인 남성인 관찰자의 인식이 반영될 수밖에 없고, 그들도 연구 대상이다.

한편, 이런 주장의 목적이 뭘까. 평소에는 만물의 영장이라며 동물을 동물시하던 남성이, 성문제는 동물도 그러니까 우리도 따라할 것이다? 동물도 자웅동체 어류부터 유인원까지 다양한데, 유독 포유류에 이런 논의가 집중된 것도 우연은 아닐 것이다. 성폭력과 성매매는 고도로 복잡한 정치경제학이다. 프랑스의 저명한 동물사회학자, 민속학자, 철학자 J. W. 라피에르는 단언한다. “동물 세계에는 어떤 형태의 정치권력도 찾아볼 수 없다.”(11쪽)

<폭력의 고고학>으로 먼저 소개된 정치인류학자 피에르 클라스트르의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는 남아메리카의 53개 부족이 무대다. 저자는 권력, 국가,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빼어난 사유방식의 모범이 되는 학자다. 생각으로 현실을 판단하지 않고, 현실에서 생각을 만들어낸다. 내 능력 부족으로 이 책에 소개된 부족들의 지혜롭고 잔인하며 합리적이고 흥미진진한 다양한 권력 통제 방식을 자세히 소개하지 못해 안타깝다.

책의 요지는 인간이 만든 가장 진화한 형태의 사회조직은 국가일까라는 질문이다. 국가 있는 사회(문명사회)와 국가 없는 사회(원시사회)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주권이나 관료 체계가 아니다. 권력이 사회에 의해 통제되는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독점되는가이다. 원시사회에는 권력의 독점을 막기 위한 세밀한 장치와 철학이 작동하고 있다(276쪽, 옮긴이). 제목이 국가에 ‘저항’이 아니라 “대항하는 사회”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국가가 필요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 책은 마르크스주의와 반대로, 국가가 계급을 만든다고 본다. 그러므로 국가가 없다면 우리는 “질서 잡힌 무정부 상태”(21쪽)를 상상할 수 있다!

소위 국제사회는 국가 단위의 삶을 정상화하는 가상의 공간이다. 인류가 모두 똑같은 공동체(국가)에서 살아야 할까. ‘국가 건설’만큼이나 ‘좋은 사회’를 만드는 데 힘쓰면 안 될까. 무의식까지 국가를 중심으로 정치를 사고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이상적인, 아니 이상한 질문인가. 우리의 근본적 불행은 서구 강대국의 과거와 현재를 모델로 삼아 평생을 숨찬 추격자로 사는 삶이다.

일본처럼 ‘원본’을 초과한 발전 모델이 있긴 하다. 그들은 행복할까? 클라스트르는 바로 이런 질문이 문제라고 본다. 내부가 동질적인 국가는 없다. ‘하나’로서 국가가 모든 비극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동물이나 원시사회보다 발전한 형태인가. 동물은 성매매만 하는데 우리는 인신매매까지 해서? 국정원에다 인터넷 댓글 문화도 있어서?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는 문명의 개념과 필요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다. 한 사회의 문명화 여부는 무조건적인 발전이 아니라 그 사회의 필요를 얼마나 만족시켰는가에 의해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희진 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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