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3.11.22 19:53 수정 : 2013.11.24 15:44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사기성 기업어음 발행 혐의로 구속 수감된 구자원(78) 엘아이지(LIG)그룹 회장이 지난 19일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금을 마련하기 위해 가족이 보유한 엘아이지손해보험 지분(20.96%)을 모두 팔기로 했다. 구 회장과 아들인 구본상(43) 엘아이지넥스원 부회장은 2011년 엘아이지건설의 법정관리 신청 계획을 미리 알고도 수백명의 투자자에게 2000억원가량의 기업어음을 팔아 손해를 입힌 혐의로 1심에서 실형 선고를 받고 구속 수감됐다.

엘아이지손해보험은 그룹 자산과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핵심 계열사다. 사실상 그룹의 몸통인 셈이다. 재계에서 그룹 자진해체에 준하는 결단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구 회장의 결정은 항소심에서의 선처를 바란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구 회장처럼 팔십을 앞둔 늘그막에 감옥행이란 참기 힘든 일일 것이다. 더구나 앞길이 구만리 같은 장남은 자칫 40대 전체를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그렇다 해도 구 회장이 수십년간 키워온 그룹의 주력 회사를 포기하기로 결단한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구 회장은 직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열정을 모두 바쳤던, 제 인생과도 같은 회사”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구 회장이 애초 엘아이지건설의 기업어음을 발행한 것은 엘아이지손해보험에까지 부실의 불똥이 튀는 것을 막으려던 목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럴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엘아이지손해보험을 팔아 부실을 해결하는 게 더 현명했을 것이다. 최소한 지금과 같은 극한상황은 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구 회장도 감옥에서 “좁은 방에 혼자 앉아 많은 날을 보내며 깊은 고뇌의 시간을 보냈다”고 소회를 밝혔다.

이전 같으면 재벌 총수들은 부정을 저질러도 여론의 비판을 잠시 받다가 잊히고, 법정에 서더라도 집행유예로 풀려나면 그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감옥에서 몇년씩 죗값을 치러야 하는 것은 물론 평생 일궈온 사업까지 포기해야 할 정도로 무한한 책임을 지게 됐다.

그보다 며칠 전인 17일에는 자금난을 겪어온 동부그룹이 3조원의 유동성을 확보하는 고강도 자구계획을 내놨다. 2015년까지 주요 계열사인 동부하이텍·동부메탈 등을 팔고, 김준기 회장의 사재 출연을 더해 취약한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동부하이텍의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은 김 회장이 10년 이상 땀과 눈물을 흘렸던 핵심 사업이다. 웅진·에스티엑스(STX)·동양이 구조조정을 게을리하다가 무너진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15년 전 외환위기 당시 외부 차입에 의존한 무모한 사업 확장으로 30대 재벌의 절반이 쓰러지면서 대마불사 신화도 종말을 고했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 속에 기업경영 전략도 외형 확장에서 내실 위주로 확 바뀌었다. 하지만 형편이 나아지고 시간이 흐르면서 대마불사의 망령이 슬그머니 되살아났다. 에스티엑스의 강덕수 회장은 구조조정 필요성이 거론될 때마다 “업황이 조금만 좋아지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나를 믿고 조금만 더 참으라”고 제지했다고 한다. 웅진·동양도 사정은 비슷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그룹은 공중분해되고, 총수들은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쫓겨나거나 불법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하나도 잃지 않으려다가, 전부를 잃는 어리석음을 범한 것이다.

곽정수 경제부 선임기자

김준기 회장의 결단이 부실(징후) 기업들에 던져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첫째는, 구조조정의 시기와 관련해 기업의 목까지 물이 차오르는 최악의 상황이 되기 전에 서둘러 단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는, 구조조정의 내용과 관련해 남들이 탐내는 알짜배기 사업부터 시장에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구자원 회장과 김준기 회장의 결단은 시대가 바뀌고 경제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곽정수 경제부 선임기자 jskwak@hani.co.krjskwak@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리뷰&프리뷰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