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3.12.06 20:32
수정 : 2013.12.17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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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준 정치부 통일외교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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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한겨레> 이름에 가장 부합하는 북한 관련 취재·보도를 맡고 있는 최현준 기자입니다. 우리의 반쪽인 북한과 탈북주민, 남북경협기업, 통일부 등이 저의 취재 대상입니다. 넓어서 좋지만, 어깨도 무겁습니다.
어렸을 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 부른 뒤 늑대가 북한 군인으로 나오는 반공영화 <똘이장군>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우리 국민 대부분이 그렇듯 저도 북한에 대해 다중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데 이런 경험 때문일 겁니다. 그래도 지금은 확실히 통일을 소원합니다. 북한을 거쳐 중국과 인도·중동·유럽,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차를 타고 가보는 게 저의 소박한 꿈이거든요.
지난 한 주 장성택 북한 조선노동당 행정부장의 실각 가능성 소식에 온 나라, 특히 언론들이 바빴습니다. 현재 북한을 이끄는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고모부이면서 북한의 2인자라 평가받는 그가 실각했다면 북한 권력 체계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실각이 의미하는 바와 몰고 올 영향 등에 대해 면밀한 분석이 필요합니다.
재밌는 것은 최근 장 부장 실각설 보도가 ‘사실’이 아닌 ‘가능성’을 놓고 이뤄진다는 점입니다. 정보 생산과 공개의 주체인 국가정보원이 이번에 내놓은 사실은 엄밀히 따지면 ‘장성택의 최측근 2명이 처형됐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이를 통해 국정원은 ‘장성택의 실각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제기할 따름입니다. 국정원이 뼈대를 던져놓은 상황에서 살은 언론과 전문가들이 채워가는 형국입니다. 누구는 사자를 만들고, 누구는 원숭이를, 누구는 병아리를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국정원이 의도했을 것 같아 입맛이 씁니다.
국정원은 접근이 어려운 북한 내부 권력의 변화를 어떻게 감지했을까요? 이번의 경우 ‘신호 정보’(시긴트)와 ‘인적 정보’(휴민트)를 섞어 확인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평양과 일선 군부대 사이에 오간 통신 정보 등을 가로채 장 부장 측근의 처형 사실을 알아내고, 이를 평양 내부의 인적 정보로 재확인했다는 것입니다. 이번 실각설의 신뢰도는 높을 수 있지만, 확정된 사실은 아닙니다. 정확도 99%의 첩보를 100%로 만드는 게 국정원의 임무임을 고려하면 매우 아쉬운 부분입니다.
특히 북한 정보를 수집하는 또다른 주체인 통일부와 국방부가 국정원에 견줘 상대적으로 신중한 자세를 보인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통일부는 통신이나 신문·방송, 탈북민 등을 통해 정보를 입수합니다. 정보 수집의 양과 질에서는 국정원에 밀리지만 정보 해석의 측면에서 두각을 나타냅니다. 수십년 동안 북한을 접촉하고 공부한 우수 두뇌들이 체계적으로 정보를 해석해내기 때문입니다.
국군 정보사령부는 감청을 통한 정보 습득에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북한 군 내부의 통신 등을 감청해 주요 정보를 파악합니다. 한 전직 고위 공무원은 “우리 정보사는 미국에서 쓰는 최신 통신감청 장비를 쓴다”고 말합니다. 이 때문에 정보사가 국정원이나 통일부보다 정보의 정확성에서 앞선다고 평가하는 전문가도 있습니다.
이렇게 기관 각각의 장단점이 분명하기 때문에, 정보를 서로 교류하고 보완하는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역대 정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등을 만들어 상시적으로 정보에 대해 토론하고 맥락을 따져보는 작업을 거친 이유입니다. 이번에 이런 과정이 제대로 진행됐는지 의문입니다. 장 부장의 실각을 놓고 국정원과 통일부, 국방부가 다른 목소리를 내기 때문입니다. 통일부 관계자는 “발표 당일 오전에 기관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논의했다”고 말했습니다.
통일부와 국방부가 정보의 생산과 활용을 동시에 한다면, 국정원은 정보 생산에 주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정원은 본인들의 존재 이유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는 듯합니다. 습득한 정보를 국가가 아닌 조직 보호를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국정원이 장 부장 실각설을 내놓은 3일은 바로 국회가 국정원에 대한 개혁 특별위원회 구성을 논의한 날이었습니다. 국정원이 의도적으로 정치에 개입하는 것 아닐까요? 지금도 국정원은 ‘소식통’이라는 이름으로 장 부장 관련 정보를 퍼뜨리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이번 정보 공개로 ‘채동욱 전 검찰총장 찍어내기’에 연루된 청와대도 잠시 한숨을 돌렸을 것입니다. 전 통일부 장관인 정세현 원광대 총장은 “북한의 변동성 증가를 이유로 전작권 환수 연기 등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웃고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최현준 정치부 통일외교팀 기자 hao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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