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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3.21 20:35 수정 : 2014.03.21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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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주얼스’(가족의 보석)라는 보고서에는 아름다운 보석이 아니라 흉측한 만행들이 가득했다. 시민 감시는 기본이고, 외국 원수 암살 공작부터 시작해 시민에 대한 환각제 엘에스디(LSD) 실험까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불법 공작이 나열됐다. 중앙정보국은 마피아 조직을 일컫는 말인 ‘패밀리’로 지칭됐고, 그런 ‘범죄집단’한테 불법 행위는 ‘보석’이나 다름없었다.

중앙정보국이 워터게이트 사건의 파장에 휩싸이던 1973년 제임스 슐레징거 당시 국장은 모든 불법 공작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워터게이트 건물의 민주당 선거본부에 침투해 선거정보를 훔치려던 이들이 중앙정보국 출신 요원들이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행정부에 대한 견제 여론을 극적으로 고조시켰다. 의회는 물론이고 닉슨의 후임인 제럴드 포드 대통령도 나섰다. 그 결과 중 하나가 ‘패밀리 주얼스’였다. 1953년부터 당시까지 중앙정보국이 자행한 모든 불법 공작을 무려 1000여쪽에 담은 전례없는 자기반성의 고백서였다.

워터게이트 사건 수사에 옥조이자, 닉슨은 중앙정보국을 내세웠다. 워터게이트 수사는 쿠바 피그스만 침공 등에 대한 “구더기로 가득한 깡통 전체를 열 것”이라는 닉슨의 우려가 중앙정보국에 전해졌다. 중앙정보국 쪽도 연방수사국(FBI)에 워터게이트 사건의 자금 수사를 닉슨 쪽으로 연결시키지 말라고 했다. 이는 멕시코 등지에서의 중앙정보국 협력자들을 노출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당시 중앙정보국은 멕시코의 마약조직을 이용해 중미의 좌파 정부 전복 공작을 했고, 연방수사국도 이를 눈감아주며 정보를 얻었다. 서로의 정보원을 보호하는 관행에 따라 연방수사국은 이 ‘신사협정’을 지키려 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의 은폐를 지시하는 닉슨의 육성이 담긴 녹음테이프, 즉 ‘스모킹 건’ 테이프가 공개됐다. 중앙정보국은 결국 ‘패밀리 주얼스’ 보고서 작성으로 내몰린다.

이 보고서는 내부용이었을 뿐이다. 보고서가 작성된 지 1년 만에 <뉴욕 타임스>에 그 내용의 일부가 보도되자, 포드 행정부는 전전긍긍했다. 중앙정보국 “밀실의 뼈대”인 공작들이 공개된다면 “피가 흐를 것”이라고 헨리 키신저 당시 국무장관은 포드에게 경고했다. 키신저는 “(케네디 대통령 밑에서 법무장관을 지낸 그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가 피델 카스트로 쿠바 원수 암살 공작에 개인적으로 연루됐다”며 민주당 쪽도 협박했다. ‘패밀리 주얼스’는 그 후 언론에 일부 내용이 노출됐으나, 결국 2007년에야 전면 공개됐다.

충격적인 내용 중 하나는 중앙정보국이 미국과 캐나다 시민을 상대로 은밀히 엘에스디가 들어간 물체를 섭취하게 하여 실험을 했다는 것이다. 일제의 731부대 만행 같은 것을 자행한 것이다. 보고서를 받아본 포드는 중앙정보국의 암살 공작 금지 등 중앙정보국 개혁을 내놓았다. 하지만 중앙정보국은 80년대 들어 중남미 마약 카르텔을 이용한 공작을 재개하는 등 과거로 돌아갔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보고서 공개를 막으려고 키신저는 “연방수사국이 중앙정보국에 대한 사냥 허가를 가진다면 국가에 워터게이트 사건보다 더 심각한 재앙이 될 것”이라고 협박했다. 많이 들어본 얘기다. 최근 찌질한 만행을 자행한 국정원에 대한 수사는 국가의 안보태세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여권 쪽의 주장이다. 주얼스 보고서를 전후한 사정은 최근 국정원의 작태를 연상케 한다. 대선에서 여당 후보를 지원하는 인터넷 댓글 공작을 자행하고, 간첩 증거를 조작하는 국정원에 대한 개혁은 내부적으로 결코 이뤄질 수 없음을 보여준다.

물에 빠진 미친개는 일단 몽둥이로 흠씬 때려야 한다고 언론인 고 리영희 선생이 지적했다. 그냥 건져주면 구해준 사람을 물기 때문이다.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를 만든 박정희 전 대통령도 “미친개에겐 몽둥이가 약이다”라고 말했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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