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4.25 20:04
수정 : 2014.04.25 21:56
친절한 기자들
안녕하세요. 토요판팀장으로 와서 정말 오랜만에 다시 ‘친절한 기자’가 된 이형섭이에요. 제가 사는 집은 경기도 부천이고, 주로 버스로 출근해요. 다행히 고속도로를 통과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23일부터 수도권에서 서울로 출근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날벼락이 떨어졌어요. 평소에 자신이 타던 버스가 갑자기 정류장에 서지도 않고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죠. ‘멘붕’에 빠진 사람들이 이유를 알아보니 이날부터 광역버스에 입석이 전면 금지됐다는 거예요. 좌석은 출발 기점으로부터 몇 정거장 안 돼 만석이 돼버리니 그 뒤 정류장에서 타려던 사람들은 서지 않는 버스만 하염없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죠. 경기도청과 국토교통부 등 관련 기관에는 민원전화가 빗발쳤고, 24일에는 일부 노선에 다시 입석이 허용됐어요.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입석이 금지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에요.
도로교통법 39조는 ‘모든 차의 운전자는 승차 인원, 적재중량 및 적재용량에 관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운행상의 안전기준을 넘어서 승차시키거나 적재한 상태로 운전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 있어요. 대통령령인 시행령의 22조는 ‘자동차(고속버스 운송사업용 자동차 및 화물자동차는 제외한다)의 승차 인원은 승차 정원의 110퍼센트 이내일 것. 다만, 고속도로에서는 승차 정원을 넘어서 운행할 수 없다’고 정하고 있어요. 결국 고속도로를 통과하는 광역버스에서 서서 가는 것은 불법이고 그동안 묵인돼 왔던 셈이죠. 금지 이유는 간단해요. 안전 때문이죠. 시속 100㎞로 쌩쌩 달리는 버스에서 손잡이에 의지한 채 서서 가는 건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에요. 작은 사고라도 바로 대형 참사로 이어질 게 뻔하죠.
입석의 위험성은 그동안 계속 지적돼 왔어요. ‘광역버스+입석’으로 검색하면 거의 연례행사처럼 언론들이 입석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기사를 써왔음을 알 수 있어요. 이번에는 분위기가 달라요. 세월호 참사 때문이지요.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안전규정들이 관행적으로 무시돼온 게 상황을 악화시킨 것만은 분명해 보여요. ‘설마 사고가 나겠어’라는 안일한 생각이 큰 비극의 씨앗이 될 수 있으니 입석을 금지하는 건 잘하는 일이에요. 누군가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고 하겠지만 우리가 언제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친 적이 있나요. 그랬다면 이렇게 수많은 아이들을 눈앞에서 잃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겠죠.
입석 금지의 문제는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많고 버스의 수는 적다는 거예요. 출근시간 광역버스 이용객은 50만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현재 170여개 노선, 2200여대의 버스로 다 실어나를 수가 없어요. 특히 고속도로 진입하기 직전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입석이 금지된다면 거의 ‘영원히’ 버스를 탈 수 없는 지경이에요. 23일의 갑작스런 입석 금지 조처는 국토부가 지방자치단체, 운송업체들한테 간담회를 연다고 알리자 업체가 이를 단속 통보로 받아들이고 결정한 거예요. 아무런 대안도 마련하지 않은 채 결정되는 바람에 많은 이용객들에게 불편을 끼쳤죠. 대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아요.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증차는 버스업체들이 난색을 표시하고 있어요. 출퇴근 시간을 빼면 텅텅 빈 채로 다닐 때가 많은데 무작정 버스를 늘릴 수는 없다는 거예요. 게다가 서울로 진입하는 버스 대수가 늘어나면 서울시내의 교통체증도 심해지는 만큼 서울시도 달가워하지 않는 상황이에요.
국토부는 전세버스 투입, 광역급행버스(M버스) 증차 등의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데 본질적인 문제 해결책은 아니에요. 누리꾼들도 2층버스, 굴절버스 도입 같은 아이디어를 내놓고 있지만 역시 실현 가능성이 높지는 않아요. 교통전문가들은 결국 ‘지하철’이 핵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진단하고 있어요. 지하철과 연계되는 대중교통수단을 강화해 지하철이 출퇴근 인구를 흡수해야 한다는 거죠. 지하철 노선 확충이 뒤따라야 하는데 이 또한 시간과 비용이 엄청나게 소요될 것으로 보여요.
광역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대부분 소시민들이에요. 먹고살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에 올라 서울로 오는 사람들이죠. 이들이 ‘목숨 걸고’ 출퇴근하는 일은 막아야죠. 시간이 흘러 잠잠해지면 다시 입석을 허용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요. 모두가 앉아서 안전벨트를 매고 편하게 출근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까요? 애니메이션 도라에몽의 ‘어디로든 문’(열면 가고 싶은 곳으로 연결돼 있는 문)이 간절히 갖고 싶은 때예요. 목적지가 회사든, 세월호든.
이형섭 토요판팀 팀장
sub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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