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고백건대 꽤 오랫동안 그를 미워했습니다. 그와의 인연은 2012년 시작됐습니다. 사회부 법조팀 근무를 마치고, 경제부 정책금융팀으로 자리를 옮긴 뒤였습니다. 저는 기획재정부와 당시 국토해양부를 중심으로 경제정책에 대한 여러가지 기사를 썼습니다. 가장 천착했던 주제는 ‘철도민영화’였습니다. 도무지 이런 정책을 이렇게 일방적으로 밀어붙여도 되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었고, 그래서 무엇보다 제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조져야겠다’ 결심했었습니다. 그는 당시 철도시설공단의 이사장이었습니다. 논란의 두 주체는 국토부와 코레일이었습니다. 정부 부처와 산하기관은 강력한 ‘갑·을 관계’지만, 당시 코레일은 사생결단 국토부에 맞섰습니다. 철도민영화가 본격화되면 코레일 조직 자체가 허물어질 가능성이 컸습니다. 또 애초 철도민영화 정책 자체가 코레일에 ‘비효율’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었습니다. 코레일은 노사 한몸이 되어, 철도민영화 정책의 허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나중에 기관장이 바뀐 뒤 코레일 사쪽은 ‘정리’됐습니다만, 여튼 당시 국토부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세상 거꾸로 돌아가니, 말세니 하는 장탄식이 나왔습니다. 국토부의 ‘이이제이’였을까요? 철도시설공단이 국토부의 ‘이중대’ 노릇을 시작했습니다. 국토부 지시라며 직원들한테 철도민영화 찬성 댓글 공작을 지시했습니다. 전 직원은 댓글을 달고, 그 댓글을 캡처해 사쪽에 보고해야 했습니다. 국토부 지시에 따라 철도민영화 광고를 언론에 내고, 홍보용 사용자제작콘텐츠(UCC)를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철도시설공단이 2012년 상반기에 집행한 철도민영화 홍보비만 6억8000만원 정도였습니다. 철도시설공단은 국토부 ‘이중대’ 노릇을 거부한 직원들을 무차별 중징계했고, 그들과의 소송비로만 수십억원을 쓰기도 했습니다. 근래 보기 드문 ‘막장 경영’이었습니다. 철도시설공단 직원들은 이런 전횡의 뿌리로 그를 지목했습니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욕먹어가며 논란의 전면에 나서는 것일까, 그에 대한 의문이었습니다. 물론 국토부와 철도시설공단의 이해관계는 잘 맞았습니다. 국토부는 산하기관인 코레일에 비해 조직력과 자금력에서는 한참 열세였습니다. 계급장을 떼고 달려드니 당혹스러웠겠죠. ‘이이제이’가 절실했을 겁니다. 대신 철도시설공단은 이번 기회에 조직을 키워야겠다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당시 철도시설공단 내부 보고서를 보면, “코레일로부터 관제권, 역사 관리권, 일반 철도 유지보수 기능을 넘겨받아 직원수를 3000여명 늘리겠다”는 계획을 잡고 있었습니다. 짐작하셨겠지만, 이런 내용들은 모두 <한겨레>의 ‘단독’ 기사들이었습니다. 열심히 취재했고, 열심히 조졌습니다. 그래도 그에 대한 의문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정치 욕심이 있다더라, 박근혜 정부 눈에 들기 위해 ‘오버’한다더라 풍문이야 많았지만, 확인된 것은 없었습니다. 철도민영화 싸움은 패배로 막을 내렸고, 저는 2년여 경제부 생활을 마쳤습니다. 사회부 법조팀으로 복귀해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목포 합동수사본부에 보름 정도 출장을 다녀왔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으로 ‘관피아’ 문화가 지적되더니,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가 ‘철도마피아’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더군요. ‘레일 체결장치 납품비리 혐의 수사라….’ 예전 경제부 기자 시절 저한테도 제보가 들어와 검토해봤던 논란이었습니다. ‘철도시설공단이 다시 타깃이 되겠군….’
노현웅 사회부 법조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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