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장학회 설립자 고 김지태씨의 유족인 장남 영구(오른쪽)씨와 차남 영우(왼쪽)씨. 김씨 유족은 2010년 6월 정수장학회 및 국가를 상대로 <부산일보>와 <문화방송> 주식반환 소송을 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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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부산일보 김주열 주검 보도뒤쿠데타 정권의 언론장악
수갑차고 한 기부가 자발이냐
김기춘·강성구·신승남 등
장학금 받은 상청회원들
끈끈한 친박 지지조직으로 부일장학회 설립자인 고 김지태씨 유족이 <부산일보>와 <문화방송>(MBC) 되찾기에 나섰다. 정수장학회와 정부를 상대로 두 언론사 주식반환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1962년 6월 박정희 군사정권 아래에서 김씨가 부산일보와 문화방송, <부산문화방송> 주식을 정수장학회(당시 5·16장학회)에 넘긴 지 48년 만이었다. 지난달 10일 <한겨레>와 만난 유족은 정수장학회에 대한 실망감이 소송의 이유라고 밝혔다. 소 제기 시점은 2010년 6월이었지만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해 12월이었다. “2005년 ‘국정원 과거사진실규명위원회’(국정원 과거사위)와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부일장학회 주식 기부는 강제헌납이라고 결정했는데도 정수장학회는 그동안의 불법을 사죄하지 않잖아요.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소송을 제외한 다른 해법이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김씨의 장남 영구(75)씨는 소송 배경을 밝히며 그동안 청와대와 국회에 제출했던 각종 탄원서와 국정원 과거사위 조사보고서 등을 한묶음 꺼내놓았다. 김씨는 “5·16 쿠데타 직후 재판받던 아버님 면회를 다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꼭 50년이 됐다”고 말했다. 1962년 김지태씨는 조선견직과 삼화고무 등을 경영하던 기업인이었고, 동시에 부산일보와 <한국문화방송>(지금의 MBC), 부산문화방송 등을 소유한 언론사주였다. 기업가와 언론인으로 승승장구하던 김씨에게 1961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으킨 5·16 쿠데타는 불행의 시작이었다. 쿠데타를 일으킨 군사정권은 권력기반 확보를 위해 부정부패 척결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김씨도 부정축재법 위반 등 혐의로 중앙정보부에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부산일보 등 김씨가 갖고 있는 3개 언론사 주식이 이때 5·16장학회로 넘어가게 된다. 김씨의 차남 영우(71)씨는 “선친이 옥중에서 쇠고랑 찬 손으로 (강압에 의해) 기부 승낙서에 서명하고 도장을 찍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가 1962년 6월20일이었다. 이틀 뒤 김씨는 공소취소로 풀려났다. 2005년 국정원 과거사위는 보고서에서 “김씨의 재산헌납은 구속수감 상태에서 강압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지낸 박근혜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부일장학회의 재산 기부는 자발적 헌납이었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정권이 김씨에게 강탈한, 혹은 넘겨받은 재산이 언론사였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국정원 과거사위 민간위원으로 활동하며 부일장학회 사건 조사를 담당한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이를 ‘박정희식 언론장악의 결과물’이라고 지적했다. “쿠데타 직후 나라를 다 가졌는데 언론사 주식에 무슨 욕심이 있었겠어요. 재산권이 아닌 언론장악 사건으로 봐야 합니다. 박 전 대통령은 4·19 혁명이 부산일보의 보도에서 비롯했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 아니었겠습니까.” 한 교수가 말한 부산일보 보도란 1960년 4월12일치 <부산일보> 1면에 실린 사진 한 장을 가리킨다. 당시 자유당 정권의 3·15 부정선거 규탄시위에 참가했다가 숨진 채 발견된 마산상고 재학생 김주열군의 사진이었다. 한쪽 눈에는 최루탄이 박혀 있었다. 일주일 뒤 4·19 혁명이 일어났다. 자유당 정권은 무너졌다.
부산일보 등 3개 언론사가 5·16장학회로 넘어간 지 50년이 지난 2012년, 부산일보는 다시 뜨겁다. 부산일보는 지난해 11월30일치에 박근혜 위원장을 겨냥해 “정수장학회 사회환원”을 촉구하는 내용의 기사를 실을 예정이었다. 기사를 막은 것은 장학회가 임명한 김종렬 당시 사장이었다. 기사를 들어낸 수준이 아니라 아예 이날치 신문을 내지 않았다. 언론사 초유의 일이었다.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은 지난 1일 “편집국에서 자꾸 경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 기사를 내려 하니까 김 사장이 ‘경영상의 판단’에 따라 윤전기를 세운 것으로 알고 있다”며 “경영권 확보를 위한 선택이었기 때문에 편집권 침해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전국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는 3일 현재 편집권 독립 및 정수장학회 사회환원 등을 요구하며 신문사 1층 복도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부산일보 사태’를 바라보는 김지태씨 유족의 심경은 편치 않다. 김영우씨는 “부산일보가 엉망이 되고 있는 것은 박근혜 위원장이 이심전심으로 자신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어느 한 사람을 앉혀놓고 (신문사를) 100%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참 딱합니다. 도대체 언론이라는 게 뭔지 모르는 사람이 앉아 있어요. 만약 최필립씨가 언론계 안팎에서 신망받는 분이었다면 부산일보 사태가 빚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이런 것이 진짜 박근혜를 위하는 길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부일장학회 설립자 고 김지태씨의 흉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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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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