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2.17 22:07
수정 : 2012.02.17 22:07
|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토요판] 커버스토리
서태지라는 집에는 두 개의 방이 있다. 하나는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지극히 사적인 방이고, 다른 하나는 타자의 이야기가 담긴 지극히 공적인 방이다.
20년간 서태지가 남긴 음악적 메시지의 궤적은 자신의 이야기에서 타자의 이야기로, 다시 자신의 이야기로 순환한다. ‘난 알아요’ ‘하여가’가 자신의 이야기라면, ‘교실이데아’ ‘컴백홈’ ‘시대유감’은 타자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와 타자의 이야기가 함께 뒤섞인 ‘테이크’ 시리즈와 ‘인터넷 전쟁’ ‘라이브 와이어’를 거쳐 8집 ‘모아이’에서 다시 자신만의 세계로 회귀한다.
서태지에 대한 평가는 주로 그가 사회를 향해 던진 타자의 이야기에 집중된다. “됐어(됐어) 이젠 됐어(됐어)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교실이데아’), “한민족인 형제인 우리가 서로를 겨누고 있고”(‘발해를 꿈꾸며’), “네겐 점점 더 크게 더해 갔던 이 사회를 탓하던 분노가”(‘컴백홈’)와 같은 비판적 메시지들은 서태지의 음악을 높게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다. 서태지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 출신도, ‘꽃다지’ 출신도 아니다. 그럼에도 그의 음악적 메시지는 이들보다도 더 큰 사회적 파장을 몰고 왔다. “검게 물든 입술 정직한 사람들의 시대는 갔어”라는 가사 때문에 공연윤리위원회로부터 삭제 요구를 받았던 ‘시대유감’은 팬들의 힘으로 음반 사전심의제를 폐지하도록 만드는 기폭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타자의 이야기는 그의 음악 전 여정에서 일부분에 불과하다. 서태지가 남긴 많은 노래들 중에는 사실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더 많다. 따지고 보면, 3집과 4집에 집중적으로 담긴 사회적 메시지도 자신의 이야기를 타자와 사회의 입을 빌려서 한 것이다. 그렇다면 서태지 그 자신만의 방은 어떤 욕망을 갖고 있을까?
사소한 이야기, 사랑과 이별에 관한 이야기는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대체로 팬에 대한 이야기로, 팬들을 향한 아주 친밀하고 애틋한 사랑을 담고 있다. ‘너와 함께한 시간 속에서’ ‘너에게’ ‘널 지우려 해’ ‘슬픈 아픔’ 등은 숨겨진 연인 이지아를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대체로 팬들을 향한 애정의 은유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를 선언하고 발매한 베스트 앨범의 마지막에 담긴 “그래, 끝난 게 아냐. End가 아닌 And로 이어지는 우리 사랑”이라는 문구는 팬들에 대한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솔직하게 들려줬다.
‘인터넷 전쟁’ ‘라이브 와이어’ ‘에프엠 비즈니스’처럼 컴백 후 나온 일부 곡들에서 강한 냉소와 분노가 표출되기도 하지만, 최근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방은 대체로 추상적이고 비밀스럽고 무의식적이다. 지금 그가 느끼고 있는 것은 기억의 촉수 ‘모아이’, 그가 도달한 곳은 마음의 은유 ‘버뮤다 삼각지대’다. “네온사인 덫을 뒤로 등진 건/ 내가 벗어두고 온 날의 저항 같았어/ 떠나오는 내내 숱한 변명의 노를 저어/ 내 속된 마음을 해체시켜 본다(‘모아이’). 자연의 신비스러움으로 향하는 이 곡의 메시지는 ‘도전의식-저항-프리스타일-고백-에너지-성찰’로 이어지는 그의 음악 여정을 압축한다.
서태지 음악의 메시지는 자폐적이고 정신분열적이다. 자폐적인 성향이 사적인 방의 열쇠라면, 정신분열적 성향은 타자의 방의 열쇠이다. 결핍을 메우려는 자폐적 성향과 욕망을 분출하려는 정신분열적인 성향이 공존하는 것, 이것이 서태지 음악의 실체다. 20년간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듯 보이지만, 그는 늘 외롭고 쓸쓸하다. 음악적 몰입으로 인한 감정의 팽창으로 인해 그는 항상 사적인 방에서 다시 자신만의 세계로 침잠해야 한다. 그의 자폐적 성향은 음악적 몰입과 열정의 원천이다. 완벽한 자신만의 방, 그 잠재적인 시간이 그를 조용한 괴물로 만든다. 그리고 그 열정이 폭발하면 그는 다시 주어진 코드를 거부하고 자신의 방에서 탈주하는 정신분열자가 된다. 그리고 다시 세상으로 나와 팬들과 조우한다. 그러곤 자신만의 방으로 사라진다.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