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커버스토리
장애인자립리포트 ① 하상윤의 48시간
2009년 비리 장애인 시설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서
자립 요구하며 농성했던
‘마로니에 8인’ 중 한명 하상윤과
48시간 같이 먹고 자며 동행 취재
치킨과 김치볶음밥 등
탈시설 뒤 처음 먹어본 음식들
개인 존재하지 않던 시설 생활
작년 임대아파트 살며 진짜 독립
활동지원사 도움 받아 매일 외출
지난해 12월12일 자신의 임대아파트에서 하상윤씨가 밝게 웃고 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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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윤은 선천성 뇌병변에 따른 중증 장애인이다. 그는 10년 전 ‘마로니에 8인’으로 불렸다. ‘마로니에 8인’이란, 2009년 6월4일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비리 장애인 거주 시설인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서 벗어나 자립을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한 이들을 일컫는다. 이들은 시설 안에서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지 못했다. 자신들을 눈앞에서 지우고 싶어 하는 사회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 했다. 농성은 그 삶에서 탈주하겠다는 선언이었다. 하상윤의 탈시설 자립은 투쟁 이후 9년이 지나 작은 임대아파트로 이사한 지난해 8월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성됐다. 최근 사회적인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는 ‘장애인 탈시설 자립’ 운동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장애인의 탈시설 자립에 대한 이야기는 당사자보다 주로 자립을 도운 가족이나 지원센터를 통해 이야기됐다. <한겨레>는 당사자 하상윤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48시간 동안 그의 일상에 동행했다. ‘장애인 탈시설 자립 투쟁 10년’을 맞아 2009년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서 지냈던 123명의 현재도 추적했다. 지난달 12일 자신의 임대아파트에서 만난 하상윤은 도전하는 이의 웃음을 내내 얼굴에 담고 있었다.
하상윤씨가 지난해 12월13일 오후 자신의 집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살펴보고 있다. 그는 자립 뒤 가장 잘한 일이 컴퓨터 교육은 받은 것이라고 했다. 27년 동안 시설에서 지낸 그는 지난여름부터 임대아파트에서 혼자 살기 시작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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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 생활자에 비해 3배
하루 평균 만난 사람은 5배 “시설 생활자들 사회관계 단절
부당한 일 참고 자율성 침해” 아버지, 아내 사망 사실 안 알리고
아들의 자립에도 반대했으나
46살 돼 처음 가진 하상윤의 꿈
“자격증 따서 현수막 디자이너”
꿈 이루려 공부하고 매달 저축도 ‘34㎞ 대 11㎞’ 장애인들이 시설 생활과 자립 생활에서 겪는 이동권 자유 격차는 하상윤만의 일이 아니다. <한겨레>는 지난해 12월19일부터 25일까지 자립 생활을 하는 장애인 5명과 석암베데스다요양원의 후신인 김포 ‘향유의집’ 거주 장애인 5명이 일주일 동안 이동한 거리와 만난 사람들을 견주어봤다. 지인을 만나고 여가 활동을 하며 직장에 출퇴근하는 것과 같은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데 자립 장애인과 시설 장애인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짚어보기 위해서였다. 아울러 시설의 구조적 특성이 장애인 당사자가 누리는 보통의 삶에 미치는 영향도 파악하고자 했다. 이동 거리는 ‘집에서 외출한 뒤 움직인 거리’를 기준으로, 만난 사람은 ‘한마디 이상 대화를 나눈 사람’(동거인, 활동지원사, 시설 직원 제외)을 기준으로 삼았다. <한겨레> 분석 결과, 자립 장애인 5명의 하루 평균 이동 거리는 34.1㎞로 시설 거주 장애인 5명의 평균(11.8㎞)에 견줘 3배 가까이 됐다. 자립 장애인 가운데 하루 평균 이동 거리가 가장 긴 이는 뇌성마비에 따른 중증 뇌병변 장애를 가진 한규선(57)이었다. 그는 47㎞를 이동했다. 두 다리와 왼손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한규선은 일터인 김포장애인자립생활센터부터 영화관, 교회와 연말 모임 등을 쉴 새 없이 오가는 생활로 일주일 동안 모두 329㎞나 이동했다. 가장 거리가 짧은 이는 역시 중증 뇌병변 장애를 가진 방상연(47)인데, 매일 10.1㎞ 남짓 이동했다. 일터와 야학 등 교육기관, 연말 송년 모임과 집회, 교회 등으로 이들이 다닌 장소는 다양했다. 지역도 김포시 일대와 서울 성북구·송파구·강서구 등으로 넓게 퍼져 있었다. 반면 시설 거주 장애인 5명의 하루 평균 이동 거리는 모두 합쳐도 한규선 한명보다 조금 긴 59.2㎞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이아무개(46)의 30.3㎞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동 거리가 없는 장애인도 있었다. 박아무개(34)는 일주일 동안 시설 밖에서 산책조차 하지 않아 이동 거리가 0㎞였다. 김아무개(67)는 일주일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외출했지만, 주로 시설 안에서 잠시 나와 담배를 피우거나 전동휠체어를 탄 채 시설 주변을 두바퀴가량 산책하는 정도여서 하루 평균 500m 정도 움직였다. 일주일 동안 다녀온 곳 중 가장 먼 곳은 시설에서 270m가량 떨어진 식당이었다. 시설 거주 장애인들의 이동은 시설 안 산책, 시설 주변 식당·마트 방문 등에 그쳤다. 가끔 서울 종로구, 인천 동구로 이동한 경우도 눈에 띄었다. 장애인 야학이나 가족이 사는 곳을 방문했을 때인데, 이런 장거리 이동 비중은 자립 장애인보다 훨씬 적었다. 자립 장애인의 경우 거주하는 지역 밖으로 이동한 경우가 일주일 평균 2.8차례였던 반면, ‘향유의집’ 거주 장애인들은 김포를 벗어난 사례가 일주일 평균 1건뿐이었다. 한마디 이상 대화를 나눈 사람의 수 또한 자립 생활인지 시설 생활인지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자립 생활을 하는 장애인이 하루 평균 만난 사람은 12.3명이었다. 한규선이 언어 장애가 있어서 의사소통 속도가 느림에도 26.3명으로 가장 많았고, 48시간 동행 취재에서 많은 이들을 만났다고 생각한 하상윤이 3명으로 가장 적었다. 이들은 주로 직장 동료나 함께 수업을 듣는 장애인 야학 학생 및 강사, 같은 동네에서 자립 생활을 하는 지인, 교회 교인 등을 만났다. 반면 시설 거주 장애인이 하루 평균 만난 인원은 2.6명으로, 자립 장애인의 5분의 1 수준이었다. 앞서 하루 평균 500m 움직인 김아무개도 일주일 동안 시설 안팎에서 만난 이는 같은 시설에 함께 지내는 다른 장애인과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 식당 직원 정도로 모두 6명에 불과했다. 자립한 한규선의 30분의 1 수준이다. 이런 생활이 자립 장애인과 시설 장애인의 성격에도 영향을 끼친다. 소극적인 성격이었다가 탈시설 이후 적극적으로 바뀌는 장애인이 많다. “시설 생활을 하다 보면 사회관계가 단절됩니다. 따로 만나는 사람이 없다 보니 시설 사람들에게만 의지하게 되고, 부당한 일을 당하더라도 말도 못 하고 그냥 넘어가는 일이 반복해서 일어납니다. 자율성이 침해되는 거지요. 하지만 탈시설을 하는 경우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사람을 만나고 자신의 고민이나 문제를 이야기할 수 있고,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죠. 지극히 평범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겁니다.” 김재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의 말이다. 시설에선 연애와 그리움이 금지 하상윤이 연애를 시작하게 된 것도 자립 생활 이후였다. 여자친구 이미정(47)과 시설에서 나온 지 2년 뒤인 2011년부터 8년째 연애 중이다. 함께 영화를 보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집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다. 때로는 장애인 연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하는 여자친구의 공연을 보러 가기도 한다. 남성과 여성 생활관도 독립시키지 않았던 시설에서는 정작 연애가 금지되어 있었다. “시설에서는 성인이 되어도 연애도 못 하게 했어요. 너무 싫었어요. 성과 관련한 모든 것을 금지하니까 더 하고 싶고 그랬던 거죠. 성이 나쁜 건 아니잖아요. 우린 성인이었는데… 왜 금지된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하상윤의 말이다. 시설에서는 그리움마저 차단됐다. 하상윤은 가족에게 잊힌 존재였다. 시설 입소 전에 살던 서울 종로구 작은 집의 흐릿한 모습이 남아 있는 기억의 전부다. 형과 남동생 한명이 있다는 걸 알지만, 그들의 얼굴도 어릴 때 모습으로만 기억하고 있다. 변변한 가족사진 한장 없다. 그가 가족을 기억하는 유일한 수단은 지갑 속에 넣어둔 어머니 차금순의 증명사진뿐이다. 시설에 살던 시절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번씩 목욕을 시켜주러 왔었다. 하상윤이 좋아하는 떡볶이를 만들어서 오기도 했다. 그러다가 하상윤이 16살이 된 어느 날부터 어머니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지병으로 쓰러진 뒤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하상윤은 한참 지난 뒤에야 알게 됐다. 어머니 산소도 겨우 2년 전에야 알아냈다. 아버지가 가르쳐주지 않았다. 9살 하상윤을 시설에 넣었던 아버지는 하상윤이 자립한다고 했을 때도 강력하게 반대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가 그 이유를 물었더니, 시설에 있어야 안전하지 않으냐고 하면서 제가 장애인 관련 집회에 다니고 노들센터에 다니는 게 이용당하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했어요.” 하상윤은 뇌병변 장애로 그저 육체가 비장애인보다 좀 더 불편할 뿐인데, 아버지는 하상윤을 정신적 자율성도 박탈된 존재로 여겼다. 아버지의 편견과 달리 장애인들의 신체나 정서 발달에 퇴행이 생기는 건 되레 시설의 거주 환경 때문이다. “시설에서 늘 비슷한 사람만 만나고 새로운 자극이 없으면 발달에 영향을 끼칩니다. 특히 아동기에 새로운 자극을 경험하지 못하면 성인이 된 다음에도 신체나 정서 발달이 퇴행하는 문제들이 발생하죠. 실제 시설 거주 장애인 중에는 누군가에게 다가가 말을 먼저 걸거나 친구를 만들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밥을 어떻게 짓는지, 가게에서 물건을 어떻게 사야 하는지, 여행을 가서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등을 모른 채 살도록 하는 것은 기회의 박탈인 거죠.” 강정배 한국장애인개발원 조사패널팀장의 말이다. 12월13일 밤 10시, 하상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어머니가 이 세상에 없는 존재가 됐다는 사실, 그리고 남은 가족으로부터 죽은 어머니마저 찾아갈 수 없도록 배제됐던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 깊이 슬퍼했다. 하상윤이 2박3일 동안 유일하게 눈물을 보인 순간이다.
“탈시설은 지극히 평범한 삶 위한 전제”
탈시설 개념과 현황
장애인 266만8천여명 중
88만여명 여전히 시설에
자발적 입소 13.9% 그쳐
돌봄 문제가 탈시설 발목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죽임 당하지 않고 죽이지도 않고서…. 굶어 죽지도 굶기지도 않으며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다큐멘터리 <어른이 되면>의 주제곡 ‘무사히 할머니가 될 수 있을까’ 중 한 구절이다. 지난해 12월 개봉한 이 다큐멘터리는 18년 만에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나온 발달장애인 동생 장혜정씨와 언니 장혜영씨의 6개월의 첫 동거기를 담았다. 장혜영 감독이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 구절에는 발달장애인의 자립이 주는 어려움과 걱정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두 자매의 이야기는 개봉 전부터 화제가 됐다. 지난해 9월 청와대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 발표 및 초청 간담회’에 초대돼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만나기도 했다.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쓴 지체장애인 김원영 변호사도 장애인 탈시설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 가운데 한명이다. 지난해 10월 장 감독과 함께 연 북콘서트에서 김 변호사는 “저도 장애인 거주 시설에 3년 동안 있었다”며 “시설에 있던 기간 만난 사람들과 이후 대학이나 로스쿨에 진학하며 만난 사람들, 두 집단 간 갭이 갈수록 커졌다”고 털어놨다.
최근 장애인 운동의 화두가 되고 있는 ‘탈시설’의 사전적 의미는 ‘장애인을 시설에 수용하는 것에서 탈피하여 지역 사회에 거주하게 하고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나와 자립하는 것을 뜻한다. ‘시설’은 ‘장애인이 집단 또는 공동으로 거주하는 복지 시설’로 30인 이상 대규모 거주 시설과 장애인 공동생활 가정, 단기 보호 시설 등이 이에 해당한다.
탈시설 담론이 공론화한 건 10년쯤 됐다. 2005년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과 2006년 성람재단 성추행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설 거주 장애인의 인권 문제가 제기됐다. 하지만 장애인들은 여전히 시설에서 나오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해 4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17년 장애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전국 장애 인구 수는 2014년 272만6900여명에서 2017년 266만8400여명으로 5만8천여명 줄었지만, 시설 장애인 수는 80만800여명에서 88만여명으로 7만명 이상 늘었다.
장애인들이 시설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이유는 뭘까. 2012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시행한 ‘시설거주인 거주 현황 및 자립생활 욕구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스스로 시설에 들어오기로 결정했다’는 대답은 13.9%에 그쳤다. ‘나는 들어오고 싶지 않았으나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의 강력한 권유로 들어왔다’는 대답이 35.3%로 가장 많았고, ‘내가 결정했으나 실질적으로 가족 등 주변 사람들의 설득과 권유로 들어왔다’는 응답이 25.6%로 뒤를 이었다. ‘동의 없이 강제적으로 시설에 들어왔다’는 비율도 21%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시설에 입소한 이유도 ‘24시간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20.7%), ‘가족의 노령화·장애 등으로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15.3%) 등 가족들의 돌봄 문제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전문가들은 ‘탈시설’에 대한 사회적 통념부터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준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장애가 있고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시설에서 살아야만 하는 것이 그동안 한국 사회의 상식이었다”며 “탈시설은 장애인이 무조건 시설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도 공부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등 지극히 평범한 삶을 누리자는 것”이라고 짚었다. 특별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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