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3.13 15:40
수정 : 2019.03.13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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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가족을 구성할 권리, 가족을 넘어선 가족’ 심포지엄이 열렸다. 가족구성권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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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가족 넘어선 가족’ 시도·논의 활발
전주의 공동체 ‘비혼들의 비행’
분자가족 표방 ‘여자 둘이 살고~’
가족구성권연구소, 생활동반자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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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서울 동작구 서울여성플라자에서 ‘가족을 구성할 권리, 가족을 넘어선 가족’ 심포지엄이 열렸다. 가족구성권연구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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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과 1인 가구가 점점 확대되는 가운데 결혼이나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주거나 생활을 함께 꾸려보려는 시도나 논의가 활발하다. 그동안은 비혼이라고 하면 1인 가구만을 떠올렸다. 그러나 결혼을 하지 않고도 자신이 원하는 가족을 구성할 권리가 있고, 다양한 가족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전북 전주에는 비혼을 선택한 여성 7명이 함께 살아가는 비혼 여성 공동체 ‘비비’(비혼들의 비행)가 있다. 구성원 7명은 같은 임대아파트에서 독립된 1인 가구로 거주하며 매달 1회 정기모임과 회비를 납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2003년 여성단체 소모임에서 만나 2006년 공동체로 진화한 이들은 생애주기에 맞춰 변화하는 공동체의 모습을 함께 고민 중이다. 이들은 2010년 전주시 완산구 삼천동에 ‘여성생활문화공간 비비’라는 공간도 열었다. 비비 회원 중 세명이 상근하면서 이곳에서 독서모임, 세미나, 동아리 등도 운영하고 있다. ‘비혼 여성 아카데미’ 같은 강의도 열고 있다.
“‘비비’는 1인 가족 네트워크로서 언제든 나눔과 돌봄의 형태로 삶을 함께 하고 있어요. 원가족과도 사이가 좋지만, 가족보다 더 친한 ‘또 하나의 가족’인 셈이죠. 공동체 속에 있다 보면 단체만 있고 개인이 없어지는 경우가 있는데, 우리는 공동체 속에서 개인이 더욱 발전하는 방향을 지향하고 있어요. 그래서 조금 늦더라도 모든 결정을 만장일치로 해요. 공간을 만든 건 비비가 비혼 여성들의 허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서예요.”(비비 활동가 이미정씨)
지난달 나온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김하나·황선우 지음)라는 책도 화제를 일으키고 있다. 2년째 함께 살고 있는 두 비혼 여성의 경험을 담은 이 책에서, 저자들은 자신들을 ‘분자가족’이라고 칭한다. 이들은 “여자와 남자라는 원자 둘의 단단한 결합만이 가족의 기본이던 시대는 가고, 앞으로 무수히 다양한 형태의 분자가족이 태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지난해 인권·소수자 단체들이 결성한 ‘가족구성권연구소’는 ‘이성애 부부와 그들의 자녀’로 구성된 가족 패러다임에 문제를 제기하고, 1인 가구부터 동거 가족까지 다양한 가족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들은 2006년부터 ‘다양한 가족 형태에 따른 차별 해소와 가족구성권 보장을 위한 연구모임’을 만들어 가족구성권 논의를 해왔다. 가족구성권이란 특정한 가족 규범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논의에서 나아가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방식으로 관계를 구성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전통적 가족 형태를 벗어난 가족에 대한 법적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동성 부부 등 실질적 보호자 역할을 하는 관계가 법적 가족으로는 인정되지 않아 각종 사회 시스템에서 소외되는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2014년 19대 국회에서는 진선미 당시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의원이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 발의를 준비했지만 제출엔 이르지 못했다. 특정인 1명과 동거하며 부양하고 협조하는 관계를 맺고 있는 성인을 생활동반자로 규정하고, 배우자에 준하는 대우를 받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 19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다양한 가족 구성을 위한 동반자등록법 제정’을 공약하기도 했다.
유럽을 비롯한 국외에선 결혼 밖 동거 등 생활 공동체를 법적으로 보호하는 제도가 존재한다. 프랑스가 1999년부터 시행한 공동생활약정(PACS·팍스)법이 대표적이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함께 생활하는 이들의 관계를 결혼과는 별개로 가족으로 인정해 동일한 세제 및 사회보장 혜택을 주는 것이다.
가족구성권연구소 김유화정 연구위원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의 문제와 연결되는 생활동반자법은 이성애 결혼 중심으로 정상화해온 가족질서에 대한 재편과 다양한 관계성에 대한 인정을 촉구하는 것”이라며 “거주와 생계를 함께 하는 관계에 대해 ‘생활동반자관계’라는 이름을 부여하고, 이들에게 동거 전후의 재산 문제, 동거 관계 내 가정폭력의 문제, 의료결정권, 공공주거와 국민건강보험 등의 사회복지 접근권 등을 부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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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지향 생활 공동체의 경험을 담은 계간지 <공덕동하우스>(위)와 ‘분자가족’을 만든 경험을 담은 에세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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