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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02 09:05 수정 : 2019.11.02 10:18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토요판] 커버스토리
대학 밖 20대의 주거독립

“좋은 대학 나와 직장 잡아라”
사회가 정한 그 삶 아니어도
잘 살더라 보여주고 싶었는데

대학 안 가도 지속가능한
독립 공동체 만들고 싶어
5명이 함께 산 ‘거부하우스’
말 통하는 또래라 안전·편안해

공공 지원 ‘사회주택’ 원한 청년들
종잣돈 마련 등 높은 문턱 실감
“그래도 주거 실험은 계속된다”

사진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그래픽 박향미 기자 phm8302@hani.co.kr

“라면 끓일 건데 먹을래?” “맥주 마실 건데 같이 먹을래?” 이 집에선 대학을 가지 않아도 괜찮았고,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잘려도 의지할 사람이 있었다. 사회가 정한 ‘정상적 삶’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방식으로 당당하게 살 수 있었다. 대학 밖 20대들의 모임 ‘투명가방끈’은 시민들로부터 출자금을 모아 셰어하우스(공유주택)를 꾸렸다. 사회에 일찍 나온 젊은이들이 성인으로서 당당한 삶으로 인정받고자 ‘주거 독립’의 첫발을 뗀 것이다. 이들은 소규모 셰어하우스를 넘어 ‘일하는 20대’가 맘 편히 살 수 있는 공동주택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를 상상한다. 저임금 일자리를 잃어도 월세 걱정을 덜 할 수 있는 주거 안전망, 다양한 선택을 한 사람들이 정보와 경험을 공유하는 집, 소외감·불안감·고립감을 함께 극복할 수 있는 집을 꿈꾼다. 공공의 지원도 받아 이런 ‘사회주택’을 20대의 손으로 직접 만들 순 없는 걸까. 남들보다 먼저 사회를 경험하고, 누구보다 주거독립을 절실히 원하는 투명가방끈 회원들이 청년 주거난의 해법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대학 밖 20대의 주거독립 운동기’, 지난 4년의 이야기를 담았다. 글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공동주거 프로젝트 ‘거부하우스’에서 마지막 인사를 전합니다. 2018년 3월4일로 2년 집 계약이 만료됐습니다. 아쉽게도 추가 입주자를 구하지 못해 각자 새 삶을 이어나가는 결정을 했습니다. 출자금과 이자는 약정서대로 계좌에 입금될 예정입니다.”(2018년 3월, 입주자들 드림)

여기 특별한 실험을 한 ‘입주자’ 젊은이들이 있다. 부모에게서 독립해 삶을 꾸리고 싶었지만, 이들은 보증금이라는 높은 장벽에 가로막혔다. 젊은이들의 주거독립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출자금을 모아 보증금을 내줬고 이들은 은행보다 높은 이율(연 5%)로 갚기로 했다. 그리고 2년 뒤 거부하우스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전하며 출자금을 돌려줬다.

이들은 부모 집에서 살면서 대학 등록금을 지원받는 20대 젊은이들과 조금 다른 삶을 택한 사람들이다. 대학 비진학자 모임 ‘투명가방끈’ 회원인 이들은 그저 관행에 따라 ‘대학생’이 되기보다, 일찍 사회에 나와 성인으로 독립한 삶을 꾸리고자 했다. 2011년 대학 입시를 거부한 이들이 모여서 시작한 투명가방끈은 현재 60여명이 정기회원으로 활동한다. 부모에게서 독립해 경제적 자립을 꿈꾸는 이들에게 ‘주거독립’은 성인의 삶을 꾸리기 위해 내딛는 첫걸음이다. ‘고졸자’라는 이유로 가정에서 지지받지 못하는 이들이 모여 셰어하우스를 만들고, 대학 안 간 20대가 맘 편히 살 수 있는 사회주택을 꿈꾼다. 이런 노력을 해온 공현(31·이하 활동명), 난다(28), 피아(20)를 지난 10월16일과 28일에 만나 ‘투명가방끈의 주거독립 프로젝트, 그 4년간의 기록’을 되짚어봤다.

“이 집에서 난 이질적 존재가 아니었죠”

지금으로부터 4년 전인 2015년 겨울, 이들의 주거독립 실험이 시작됐다. 공현, 난다, 수달(24), 호야(27)는 서울 중구 신당동 한 다세대빌라 2층에 집을 임대해 셰어하우스를 꾸렸다. 그 이름은 ‘거부하우스’. 가정과 학교, 사회가 바라는 대로만 인생을 꾸려가길 거부한다는 뜻이다. ‘좋은 대학 나와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가르치는 세상의 잣대를 거부한 이들이 함께 독립할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생활공동체를 꾸린 것은 비싼 주거비를 아끼면서 서로 의지하기 위해서였다. 20대가 대학에 가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곳은 저임금의 불안정한 아르바이트뿐이고, 또래 대부분 ‘대학생’이 된 뒤 사회적 연결망과 소속 집단도 마땅치 않았다. 가족도 이들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비대학생 젊은이들이 함께 모여 사는 커뮤니티가 필요했다. 문제는 보증금이었다. 당장 생활비 벌기에도 벅찬 알바 일자리로는 수천만원 은행 대출이 될 리 없었다.

투명가방끈은 시민들에게서 ‘거부하우스’ 출자금을 모았다. 2015년 겨울, 서울 중구 서소문동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비대학생 20대의 독립을 지지하는 출자자를 모집했고, 은행 이자보다 높은 이율을 약속했다. 9명의 출자자가 50만원부터 500만원까지 거부하우스 보증금을 내놓았다. 출자금 2050만원에 거부하우스 입주자들이 직접 마련한 1450만원을 보탰다. 발품을 팔아 보증금 3500만원에 월세 80만원인 빨간 벽돌 빌라 2층에 거부하우스 둥지를 틀었다. 그렇게 2016년 3월, 대학 안 간 젊은이의 주거독립을 지향하는 첫 생활공동체가 마련됐다.

보증금의 벽을 넘었지만, 마음과 뜻까지 맞춰 같이 사는 것은 쉽지 않았다. 13평 거부하우스엔 방 세칸, 거실 겸 부엌, 베란다, 옥상이 있었다. 제일 큰 방을 두명이 나눠 쓰며 처음엔 네명이 살았다. 네명이서 한달에 24만~28만원을 모아 월세와 공과금을 내고, 출자금 이자를 갚았다. 이듬해부터 거실에도 입주자가 생겼다. 고3 때 집을 나와 청소년 쉼터 등을 떠돌던 피아가 월세 10만원에 거실 더부살이를 하면서 식구가 다섯이 됐다.

이들에게 거부하우스는 ‘고난의 시기에 만난 안식처’였다. “탈가정과 탈학교를 선택하고 전 어쨌든 중졸이었죠. 어딜 가든, 누구에게든, 중졸이라는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없었어요. 하지만 거부하우스, 그 집에선 나를 특별하게 보거나 이상한 애로 취급하지 않았어요.” 피아가 말했다. 가정폭력을 피해 집을 나와 쉼터 등을 떠돌던 피아는 우연히 난다를 만나 거부하우스에 입주했다. 피아는 그간 거친 여러 거처 중 거부하우스에서 유일하게 ‘안전한 곳’이란 느낌을 받았다. 거실에 살면서 돈도 모을 수도 있었다. 카페 아르바이트를 한달 내내 하면 150만~160만원을 벌 수 있었고, 몇 개월 모으니 나가 살 수 있는 최소한의 보증금이 됐다.

낭만과 갈등이 교차하는 셰어하우스

거부하우스가 좋았던 건 말이 통하는 또래가 집에 함께 있다는 것이었다. 하우스메이트(하메)였던 호야와 피아는 저학력 여성의 노동에 대해 대화를 많이 나눴다. “알바하면서 겪었던 부당한 일에 대해 말하면 서로 깊이 공감했어요.” 함께 살면서 불안정 노동의 불안을 이겨낼 뿐 아니라 혼자라는 소외감, 불안감, 고립감을 덜기도 했다. 당시 스물다섯 살이었던 난다는 커피숍 알바 자리를 구하기 위해 면접을 봤는데, 사장은 커피 만드는 능력도, 손님 응대 경험도 묻지 않았다. 그저 “대학도 안 갔는데 이 나이 먹도록 뭐했어요?”가 면접 질문이었다. 고등학교 이후 여러 활동을 했지만 관련 경력이 아니라 굳이 적지 않았던 난다는 그저 공백 기간이 긴 구직자일 뿐이었다. “대학에 가지 않은 뒤로 사회에서 나를 부를 이름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학생도 아니었고 그럴듯한 직장에 취직한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거부하우스에선 그냥 내 이름 하나면 됐죠.” 난다가 집에 돌아와 겪은 일을 말하니 하메들이 대신 사장 욕을 해주었다.

거부하우스엔 소소한 파티와 이벤트가 끊이질 않았다. 반찬 만들기 모임, 한강 소풍, 신당동 떡볶이 골목 투어, 크리스마스 선물 교환 같은 아기자기한 일상이 큰 행복이었다. 둘러앉기만 해도 이심전심이 되는 거실이 사랑방 역할을 했다. 한명이 거실에서 뭘 먹기 시작하면 다 같이 먹었다. “라면 끓일 건데 먹을래?” “맥주 마실 건데 먹을래?” 이런 식이었다.

2017년 12월24일 투명가방끈이 꾸린 공유주택 ‘거부하우스’에서 입주자들이 함께 맞이한 두번째 성탄절을 기념해 빨간 모자를 맞춰 쓰고 다섯명이 소소한 파티를 벌였다. 이날 케이크와 와인을 먹고 준비한 작은 선물을 주고받았다. 투명가방끈 제공
식구들이 가장 사랑한 ‘최애’ 공간은 옥상이었다. 옥상 작은 텃밭엔 상추, 고추, 파, 가지, 방울토마토, 바질 등 온갖 채소가 잘도 자랐다. 적당히 자라면 반찬을 해먹었다. 가지로는 나물을 해먹고, 고추는 열리는 대로 된장찌개에 썰어 넣었다. 바질이 하도 잘 자라서 바질 쌈을 싸먹을 정도였다. 공동생활 최고의 난제는 ‘청결 수준 맞추기’였다. 빨래는 각자했는데, 청소는 한달에 한번씩 당번을 정해 돌아갔다. 언제, 어떻게 청소할지는 당번의 재량이었다. 공동 공간인 부엌과 화장실에선 분쟁의 소지가 도사리고 있었다. 예컨대 같은 화장실을 청소해도 어떤 당번은 락스칠을 해서 새하얗게, 어떤 당번은 대충 쓰레기만 치우는 정도면 된다고 생각했다. 다툼이 날 수밖에 없었다. 한달에 한번 있던 회의 시간에 주로 공동 규칙을 정하며 해결책을 찾았다.

2년간 서울 중구 신당동 다세대빌라 2층에 대학 안 간 20대 네명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 이 셰어하우스에 살던 입주자들은 옥상 텃밭에서 상추를 길러 반찬을 해먹었다. 투명가방끈 제공

‘사회주택 만들기’ 작당 모의

임대차 기간 2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다. 사계절이 두번 지나는 동안 베란다 옆방에 1년6개월 동안 살던 수달이 국외로 떠나고, 그의 방엔 새 입주자 모히또가 들어와 6개월을 살았다. 이별도 성큼 다가왔다. 계약 만료 몇 개월 전부터 입주자들은 거부하우스를 계속 유지해나갈 것인지 서로의 마음을 살폈다. 각자 계획이 달라진 만큼, 자연스레 재계약을 하지 않는 쪽으로 결론 났다. 하지만 같이 살기 시도를 멈추고 싶진 않았다.

거부하우스가 없어도 투명가방끈의 주거독립 운동은 이어졌다. 지난해 2월, 비대학생들이 함께 모여 사는 ‘사회주택’을 만들자는 취지로 ‘사회주택 염두팀’을 단체 내에 꾸렸다. 사회주택(리모델링형)은 빈집, 고시원이나 모텔, 빈 사무실 등을 공공의 지원을 받아 리모델링해 시세보다 저렴하게 주거 취약계층에 공급하는 민간 임대주택이다. 사회주택은 대규모 택지개발이나 대형 아파트 단지를 조성해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과 달리, 도심 내 소규모 민간 소유 주택 또는 비주택을 청년 등 주거 취약계층에게 재공급하는 형식이다.

월세 80만원을 고스란히 건물주에게 ‘바쳐야 하는’ 거부하우스보다 주거비를 절약할 수 있는 주거 모델을 만들어 키우고 싶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에 가지 않으면 부모와 함께 사는 게 요즘 20대들의 상황이지만, 대학을 갔든 안 갔든 부모 집에서 독립해 살고 싶은 게 이들의 마음이기도 하다. 투명가방끈이 사회주택 사업자가 되어 비진학 20대들에게 낮은 주거비를 받고 공동체를 운영하는 방법을 모색했다. 지난해 투명가방끈 활동가 2명이 서울시 사회주택종합지원센터에서 ‘청년사회주택 활동가 육성사업-작당모의’ 강의를 들으며 구체적인 방법을 찾았다. 고졸자의 30%(2019년 진학률 70%, 교육기본통계)가 대학에 가지 않는 선택을 하는데, 이들이 주거 불안을 해소하고 서로 정보를 교류해 사회에서 소외되지 않는 커뮤니티를 형성하면 좋겠다는 게 투명가방끈의 생각이었다.

대학 대신 다양한 삶의 방식을 택한 젊은이들의 모임 ‘투명가방끈’은 대학 밖 20대의 주거독립을 위해 4년째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10월28일 서울 마포구의 한 스튜디오에서 공현, 피아, 난다(왼쪽부터)가 ‘월세 걱정 없는 집’ ‘소외감·고독감·불안감 없는 집’ ‘정보와 노하우를 공유하는 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고민의 결과로 투명가방끈이 기획한 공동주거프로젝트 ‘다다다’가 나왔다. 대학에 안 가는 선택을 한 뒤 생존, 아르바이트에 내몰린 20대들의 주거독립을 위해 서울에서 청년 주거 빈곤율이 높은 관악구에 사회주택을 세우는 프로젝트다. 난다는 “월세를 못 내면 공동 공간 청소 노동으로 대체할 수 있고, 지역화폐도 쓸 수 있는 집으로 꾸리자는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도 나왔다”고 전했다.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달팽이집), 모두들청년주거협동조합(두더지하우스) 등 젊은이들이 직접 사회주택 사업자로 나서서 셰어하우스를 꾸리는 사례도 참고했다.

청년 사회주택, 실제 진입 어려워

하지만 투명가방끈의 도전은 장애물을 만났다. 사회주택을 세우려면 상당한 자기자본은 물론 공동주택 운영과 관리 역량도 갖춰야 해서다. 서울에서 부동산 시세가 저렴한 자치구에 3~5층 안팎의 노후 주택을 찾아낸 뒤 이를 리모델링해 사회주택을 만든다고 가정해보자. 건물을 사는 경우, 집값은 서울시와 에스에이치(SH)공사의 몫이지만 리모델링 공사 비용은 사업자가 부담해야 한다. 리모델링 비용 보조금은 최대 2억원이지만, 난방·설비·전자제품 설치·공유 공간 개조 등 서울시 주거기준에 맞추려면 보조금보다 많은 약 4억원 안팎의 리모델링 비용이 필요하다. 결국 2억여원의 자기자본이 있어야 한다. 2억원 중 70~80%가량을 서울시 사회투자기금에서 빌린다 해도 자기자본 수천만원이 여전히 남는다. 남철관 전 서울시 사회주택종합지원센터장은 “경제력이 부족한 청년층이 중심인 그룹이 사회주택에 진입할 때 좀더 차별화된 지원이 필요하다”며 “보조금 지원 규모도 더 높이고, 덜 위험한 금융상품으로 자본을 모을 제도 등이 보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사회주택사업 희망자가 꼽는 장애 요인 1순위는 ‘사업 자금 부족’(48.1%), 2순위는 ‘사업 경험 부족’(37%)이었다(‘2019 서울시 사회주택 사업자 발굴을 위한 현황 조사와 향후 정책지원 방향’). 지난해 청년 사회주택 활동가 육성 사업 ‘작당모의’ 강의를 들었던 다섯개의 청년모임이 각각의 추진 계획을 내놨지만 실제 사회주택 설립으로 이어진 팀은 없는 게 현실이다. ‘아무나건축주협동조합’ 팀은 신혼부부, 형제자매 등 여섯명이 사회주택 ‘하우스아무나불광’을 설립할 계획을 세웠지만 실행하지 못했다. 이 팀의 정순문씨는 “시가 땅을 산 뒤 우리가 건물을 짓는 형태의 사회주택(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을 모색했는데, 서울 땅값이 비싸 토지 매물을 찾는 단계부터 계속 실패했다. 건물을 짓더라도 투입한 자기자본을 회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서울 중랑구 면목동 ‘서울시 책 테마 거리’의 시 소유 땅을 빌려 사회주택 건물을 신축하는 기획을 했던 ‘해품달팀’도 초기 사업비용이라는 난관에 부닥쳤다. 이런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의 경우, 70평짜리 토지를 저리로 임대받아 175평 규모 건물을 지으면 평당 단가 최저 500만원이라고 해도 건축비가 10억원 가까이 든다. 사업자 자기자본이 적어도 2억~3억원은 드는데, 이 금액을 젊은이들 그룹이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청년 주거운동 당사자인 배정훈 해맑은주택협동조합 대표는 “사회주택 건축 비용의 20~30%가량은 자기자본으로 충당해야 하지만, 사회주택은 주변 시세의 80% 이하에 장기임대로 공급해야 해 수익성을 맞추기 어렵다”며 “그나마 규모를 키워서 규모의 경제 효과를 극대화해야 하는데, 청년들이 큰 규모로 시작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2015년 서울시는 주거문제 해결의 한 대안으로 사회주택 공급을 시작했다. 빈집, 유휴 공간 등을 다시 활용해 도시재생도 함께 꾀했다. 하지만 현재 준비된 조례와 지원책만으로는 사회주택에 진입하기란 녹록지 않다. 진입 장벽이 높아 몇년간 공급량도 서울시의 목표에 미치지 못한다. ‘서울시 사회주택 공급 활성화를 위한 과제와 제언’(2018) 보고서를 보면, 방치된 빈집을 발굴하고 리모델링해 사회주택으로 만드는 ‘빈집 살리기 프로젝트’(2015~2017)는 서울시의 당초 계획인 총 185동 925호보다 훨씬 적은 38동 236호 공급에 그쳤다. 고시원·모텔·빈 사무실 등 유휴 공간을 리모델링해 시세 80% 이하로 공급하는 리모델링형 사회주택도 당초 계획은 2016년 400호, 2017년부터는 연간 2천호 이상 공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2018년 6월 기준 사업 실적(2016~2018)을 보면 12동 240호 공급에 그쳤다.

최경호 한국사회주택협회 정책위원장은 “유럽에서 시작된 사회주택 모델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아기에 해당한다. 촉진기, 성장기를 거쳐 성숙기에 이르기까지 대폭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현재 지방자치단체 조례에만 사업을 의존하고 있는데, 국회에 계류된 관련 법이 통과돼 사회주택 설립 절차가 공식적인 법에 따라 추진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서울의 높은 집값과 대규모 택지개발이 필요한 공공임대주택을 보완할 수 있는 모델로 확장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거부하우스 현관문에 붙어있던 쪽지. 투명가방끈 제공
실험은 끝나지 않는다

“방에 불은 껐는지, 가스 불도 껐는지, 난방은 외출로, 휴대폰·교통카드 잘 챙겼는지, 좋은 하루 보내삼들ㅋ~.”

거부하우스 현관문에 붙어 있던 노란 쪽지에서는 온기가 느껴졌다. 겨울에 방마다 난방 텐트를 치지 않으면 코가 시릴 정도로 외풍이 들어왔지만 다섯 명이 함께라서 참 따뜻했다. 부엌 전기밥통엔 따뜻한 밥이, 냉장고엔 ‘반찬 당번’이 만든 밑반찬이 가득했다. 거실엔 언제든 모일 수 있는 앉은뱅이 식탁이 식구들을 기다렸다. 따뜻한 봄가을엔 걸어서 한강에 소풍을 가고, 여름엔 옥상에 상추를 길러 먹으며, 겨울엔 크리스마스 파티를 열고 선물을 주고받았다.

갈등도 있었지만, 결국엔 함께여서 행복했던 거부하우스의 추억 때문에 투명가방끈은 주거독립 실험을 멈추지 않는지도 모른다. 20대 중에서도 가장 먼저 학교 밖을 나와 사회를 경험하는 이들, 가정에서 독립이 누구보다 절실한 이들, 대학 비진학자 모임 투명가방끈은 청년 주거난 속에서도 가정으로부터 독립을 포기하지 않는다. 대학에 가지 않은 사람들이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집, 정부의 주거복지에서 소외된 이들도 주거권을 보장받는 집. 이런 집을 스스로 만들기 위한 투명가방끈의 ‘대학 밖 20대 주거독립 운동’ 여정은 오늘도 계속된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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