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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3 09:18 수정 : 2019.11.24 16:03

지난 16일 대구 동구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 있는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 희생자 추모탑에 참배하는 세월호 유가족들. 2·18안전문화재단 제공

[토요판] 커버스토리
생명안전기본법 제정할 이유

“안전권 헌법에 명시 안돼
현행법에 피해자 권리 없어
21대 국회1호 법안 발의 목표”

지난 16일 대구 동구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 있는 대구 지하철 화재 사고 희생자 추모탑에 참배하는 세월호 유가족들. 2·18안전문화재단 제공

학계에서는 재난 피해자의 권리를 반영하도록 현행 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는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2004년 만들어진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기본법)이 재난을 총괄하는 기본법 구실을 하는데, 재난 발생 시 국가 역할의 큰 틀을 포괄하는 기본법으로서 무척 부실하다는 것이다.

재난안전기본법의 주요 내용은 재난 시 행정당국의 업무 분담에 관한 것이다. 재난의 정의에도 자연재난만 명시돼 있다가 최근에야 사회재난이 들어갔다. 하지만 여전히 △신속하고 책임 있는 대피·구조·수습에 관한 권리 △재난 대응 과정에 의미 있게 참여할 권리 등 재난 피해자 권리는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국가 철학과 정책 방향을 담지 못하다 보니 새 조항을 넣어 수십차례 개정해도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재난 때마다 개별 사고에 대응하기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세월호 참사 이후 피해 지원 등을 위한 ‘4·16세월호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세월호피해지원법)을 제정하기 위해 국가적 홍역을 치렀고,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사회적참사진상규명법)을 따로 마련해야 했다. 그런데도 제대로 진상 규명이 되지 않아 최근 검찰은 세월호 특별조사단을 꾸려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다시 수사하고 있다. 포항 지진 역시 관련 특별법이 발의돼 있지만 발생 2년이 지난 지금도 통과가 안 됐다.

재난 대응 체계가 잘 마련된 나라들이 있다. 미국의 재난법 ‘스태퍼드법’은 재난이 발생했을 때 연방정부가 개인을 어떻게 지원할지 매우 구체적으로 규정한다. 예를 들어, 재취업 지원이나 급식 쿠폰, 식권 배급, 주거 지원 등도 규정돼 있다. 일본의 ‘재해대책기본법’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전국 공공기관이 재난 시 이행할 책무로 정보의 수집과 전달, 대피 지시, 대피소 지정과 응급대책, 필요 물자 운송, 재해 복구와 피해자 구호까지 세부 사항을 법률로 규정했다.(주강원 ‘재난과 재난법에 관한 소고’) 반면 우리의 재난안전기본법은 정부의 조직 지휘에 관해 원칙만 규정하고 실제 긴급구조가 이뤄지는 절차는 시행령에 위임한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시민사회에서는 헌법에 존엄성을 가진 인간의 기본권으로서 ‘안전할 권리’, 즉 덜 다치고 덜 죽을 권리가 천명돼야 한다고 말한다. 헌법 34조에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지만, 소극적 조항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유럽연합(EU), 핀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헝가리, 캐나다, 이라크,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은 ‘모든 국민은 안전의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을 헌법에 규정하고 있다.(나채준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

재난 피해자의 인권을 반영한 새 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이어진다. 3년 전 시민단체 ‘생명안전시민넷’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과 함께 생명안전기본법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해 6월부터 매달 한차례 이상 모여 변호사와 활동가 10여명이 토론하고 조사한 내용을 공유했다. 산업안전, 교통안전 등 해당 분야 전문가 의견을 듣고 워크숍을 하고, 다른 법률 단체의 의견도 구했다. 2018년 여름 완성된 법 초안에는 “모든 사람은 성별·종교·국적·인종·세대·지역·사회적 신분·경제적 지위 등에 관계없이 일상생활과 노동 현장에서 사고와 재난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고 생명, 신체, 재산을 보호받으며 안전하게 살 권리를 가진다”는 국민의 ‘안전권’을 명시했다. 이 밖에도 국가의 책무, 재난 피해자의 법적 정의와 권리, 조사 참여권과 알 권리, 피해자 지원에 대한 구체적 규정, 재난약자의 정의 등을 구체적으로 서술했다.

또한 새 법에는 재난이 발생했을 때 기업이나 정부 등 재난안전의 과실이 있는 쪽이 고의적 불법행위를 한 것이 명확한 경우 재난 피해자에게 입증된 재산상 손해를 웃도는 금액을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을 넣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불법행위의 재발을 막기 위한 조처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제조물책임법, 환경보건법 등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다.

박순철 생명안전시민넷 활동가는 “내년 총선 이후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발의하는 것을 목표로 관심 있는 의원과 함께 준비하고 있다. 생명안전기본법 필요성에 공감하는 여론이 어느 때보다 무르익은 만큼 내년이면 성과가 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미향 기자 aro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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