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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3 09:19 수정 : 2019.11.24 16:02

4.16재단 주최로 열린 ‘재난 피해자 지원 및 권리 강화를 위한 국제 포럼-재난사회, 피해자 권리를 묻다’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 뉴질랜드에서 사회적 참사 피해자 및 지원 단체 회원들이 한국을 방문했다. 단원고 2학년 6반 신호성 학생의 어머니 정부자씨가 지난 20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단원고4·16기억교실’에서 아들의 유품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안산/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토요판] 해외 재난 피해자 단체 인터뷰

영국·프랑스 피해자 연대 모임
사업주 책임 묻는 기업살인법 제정
사고 조사 때 피해자 참여권 보장

“2차 트라우마 최소화하려면
정부, 진상 밝히고 잘못 사과해야”

4.16재단 주최로 열린 ‘재난 피해자 지원 및 권리 강화를 위한 국제 포럼-재난사회, 피해자 권리를 묻다’에 참석하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 뉴질랜드에서 사회적 참사 피해자 및 지원 단체 회원들이 한국을 방문했다. 단원고 2학년 6반 신호성 학생의 어머니 정부자씨가 지난 20일 오후 경기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단원고4·16기억교실’에서 아들의 유품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안산/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미래의 재난을 예방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우리가 겪은 일을 다른 사람이 겪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지난 21~22일 경기도 안산시에서 열린 국제포럼 ‘재난사회, 피해자 권리를 묻다’에 국외 전문가로 참석한 영국 사회학자 앤 에어와 프랑스 법률 분석가 소피아 벤 아지브는 20일 <한겨레>와 만나 피해자 연합 단체가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1989년 4월15일 리버풀 팬 등 96명이 목숨을 잃은 ‘힐즈버러 참사’의 생존자 에어는 영국 피해자 연합 단체인 ‘참사행동’(Disaster Action)에서 대외 협력을 맡고 있다. 벤 아지브(활동명 세코)는 프랑스의 참사 피해자 연대 모임인 ‘테러참사피해자단체연합’(FENVAC·펜바크) 이사다. 이들은 국제포럼에 참석하기 앞서 세월호 일반인 희생자 41명의 봉안함이 안치된 인천가족공원 세월호추모관과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단원고4.16기억교실’, 추모 조형물 ‘노란 고래의 꿈’이 놓인 단원고 등을 방문했다.

“테러든, 자연재해든, 범죄든 참사 이후 피해자의 경험은 동일하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밝혀내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애도가 가능해진다. 내 딸과 아들, 아버지, 어머니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그 안타까운 죽음이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출발점이 되도록 힘을 쏟는다.”(벤 아지브)

“피해자가 재난과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출발점은 참사 원인을 정확히 규명하는 것이다. 참사가 발생한 지 수년, 수십년이 지나도, 피해자들이 계속 문제를 제기하며 진실을 파고드는 이유다. 참사는 어느 날 갑자기 덮쳐오지만, 그 피해는 하루아침에 극복되지 않는다.”(에어)

이들은 1989년 힐즈버러 참사가 발생한 지 27년 만인 2016년, 법원에서 경찰 지휘부의 불법행위가 인정되고 2009년 에어프랑스 447편 추락 사고와 관련해 항공기 결함이 밝혀지고 형사재판이 최근 10년 만에 마무리된 사례를 들며, “(세월호 진상 규명도) 긴 여정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도 잇따른 대형 참사가 피해자 연대의 불씨를 지폈다. 영국에서는 1987년 헤럴드 오브 프리 엔터프라이즈호 침몰 사고가 계기였다. 1987년 3월6일 저녁 7시께 벨기에 제이브뤼허를 떠난 엔터프라이즈호는 선수 문이 열린 채 출항한 탓에 바닷물이 순식간에 들어왔다. 배는 90초 만에 뒤집혀 193명이 목숨을 잃었다. 에어는 “선수 문을 확인해야 할 선원은 선실에 잠들어 있었다. 그것이 관행이었다. 해운업계에 안전 불감증이 팽배했지만 법률체계가 미비한 탓에 책임자는 처벌받지 않았다. 그 후에도 런던 킹스크로스역 화재, 팬암 항공기 폭파 사건, 힐즈버러 참사 등 재난이 이어졌다. 피해자 지원 체계가 부실한 상황에서 피해자들이 손을 맞잡고 직접 행동에 나서기로 했다”고 말했다.

재난 관리와 대응이 피해자 중심적 시각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판단한 참사행동은 지난 30년 동안 다양한 입법 활동을 펼쳐왔다. 대표적 성과로는 2007년에 제정된 ‘기업살인법’을 꼽는다. 1987년 엔터프라이즈호 사고 이후 산업재해를 포함한 대형 사고에 대한 기업과 사업주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논의가 늘어났고, 20년 만에 ‘기업과실치사 및 기업살인법’이 제정된 것이다. 기업이 노동자나 공공에 대한 안전 조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 기업에도 범죄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됐다.

‘슬픈 사람들의 연대’를 의미하는 펜바크는 파리 리옹역 열차 충돌사고(1988년) 등 대형 참사를 겪은 피해자 8명이 1994년에 설립했다. 벤 아지브는 “우리는 재난 경험을 공유하고 무엇보다 피해자가 함께 기업, 정부, 언론에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한다. 또 법률을 개정해 사고 조사·수사 단계에 피해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펜바크는 국가와 협약을 맺어 사고가 발생하면 국가를 대표해 재난 현장에 출동하고 피해자 요청을 수행한다. 예를 들면 2016년 이집트에어 추락 사건에서 가족들은 희생자 반환을 요청했지만, 이집트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프랑스 사고조사위원회에서 사고 원인을 밝히고, 6개월 만에 주검을 돌려받도록 펜바크가 발 벗고 나섰다. 이처럼 지난 25년간 140여 사건의 피해자 6500명과 함께해왔다.

“(참사는 달라도 피해자들은) 서로 만나면 집에 온 것처럼 편안하다고 말한다.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알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 가까운 가족, 친구들도 ‘사고를 잊어라’ ‘과거를 묻어라’라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답을 얻을 때까지 피해자들은 멈출 수 없다. 언제, 어떻게, 어디서, 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죽음을 맞았는지, 그 기본적인 질문에 답을 구해야만 편히 잠들 수 있으니까. 그 답을 얻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고 이들은 서로 충분히 이해한다.”(에어)

참사가 발생한 뒤 트라우마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정부가 진상 규명에 적극 나서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벤 아지브는 “피해자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고 이를 외면하면 2차 트라우마가 생기고 공동체 신뢰가 무너진다. 정부의 초기 대응에 따라 참사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크게 달라진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4·3 현장을 방문해 과거 국가 권력의 잘못에 대해 사과한 것을 언급하며 에어는 “빠를수록 좋지만 너무 늦은 사과는 없다”고도 했다. 힐즈버러 참사도 영국 총리가 사과하는 데 27년이나 걸렸다.

“참사가 발생하면 사회 전체가 집단적 트라우마를 겪는다. 사회 구성원 일부가 희생된데다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 사회에 대한 신뢰마저 무너지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도 피해자들만의 고통이 아니었다. 초기에 한국 사회 전체가 광범위한 지지를 보냈던 이유다. 전세계도 지켜보고 있었다. 한국이 선진국으로서 참사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하는지 모범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했다.” 참사 생존자이자 재난 관리의 사회 심리적 측면을 연구하는 사회학자인 에어는 안타까움을 표했다.

안산/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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