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권도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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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
유기구역: 버려진 개와 사람의 땅 ① 살아남기 위해
인간 손길 안 미친 곳 없는 북한산
버려져 산으로 올라가 번식한 ‘들개’
인간을 피해 올라간 산으로 그들을
잡으려는 인간 덫도 따라 올라왔다
사진 권도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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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버려져 산으로 올라간 ‘들개’가 어둠 내린 산봉우리에서 불 밝힌 인간들의 도시를 내려다본다. 북한산. 평지 인간의 눈높이에선 보이지 않는 세계가 그 산 위에 있었다. 버려지고, 잡혀가고, 쫓기면서도, 살아남는 한 멈추지 않는 이야기가 고도를 높여 펼쳐졌다. 도시는 골라내고 솎아내며 팽창했다. 도시가 품지 않는 개와 인간의 운명은 다르지 않았다. 번영과 발전에 끼지 못한 존재들이 도시가 시선을 거둔 ‘유기구역’에 모여들어 생존을 구했다.
들개는 인간의 다른 얼굴이었다. <한겨레>는 외톨이 들개 ‘찡찡이’의 길을 따라가며 팽창하는 도시와의 상관관계를 추적했다. 버려진 개들의 운명과 그 개들을 떨구며 질주하는 개발, 개들의 처지에 투영된 사람들, 인간 중심의 세계와 ‘우리’가 밀어낸 소수자들의 얼굴을 그 길에서 만날 수 있길 소망한다. 3회에 걸쳐 연재한다. 등장하는 개들의 이름은 사진작가 권도연과 북한산 주변 주민들이 지었다. 찡찡이와 들개들의 시간을 기록해온 권도연 작가의 개인전 ‘북한산’(서울 종로구 평창동 누크갤러리)이 12월5일부터 19일까지 열린다.
숨어든 야생 그 구역은 ‘위’에 있었다. 끄응…, 끼잉끼잉…, 왕왕. 목에서 쇳소리를 내며 발을 구르던 새끼 개들(지난 5월)이 어미를 보고 짖었다. 등산로를 벗어난 가파른 산비탈을 가시철조망이 둘러치고 있었다. 새끼 ‘들개’ 두마리가 철조망으로 다가가다 뒷걸음쳤고, 낑낑거렸다. 가시를 잔뜩 세운 철조망이 둘둘 말린 덩굴풀처럼 포복하며 그들의 접근을 막았다. 철조망을 훌쩍 뛰어넘은 어미 들개 단비가 너머에서 가만히 새끼들을 기다렸다. 철조망을 통과하는 일은 오직 새끼들의 몫이었다. 통과하지 않고 철조망을 건널 길은 없었다. 깊은 산속이었지만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었다. 인간의 영역에서 내몰린 개들이 숨어든 야생조차 인간이 관리하는 영역이었다. 길목마다 포획틀이 입을 벌리고 그들을 유혹했다. 인간에게 버려진 개들이 인간을 피해 올라간 산으로 그들을 잡으려는 인간의 덫도 따라 올라왔다. 마취총을 맞고도 살아남은 들개 찡찡이(수컷)가 멀찍이서 단비와 새끼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단비는 함께 포획(2018년 10월)된 무리의 대장과 그 짝이 낳은 새끼였다. 무리가 해체된 뒤 ‘무리의 왕따’였던 찡찡이가 부모 잃은 단비를 돌보며 가족을 이뤘다. 북한산. 평지 인간의 눈높이에선 보이지 않는 세계가 그 산 위에 있었다. 버려지고, 잡혀가고, 쫓기면서도, 살아남는 한 멈추지 않는 이야기가 고도를 높여 펼쳐졌다. 뾰족한 경고 앞에서 쩔쩔매던 새끼들이 가시에 몸을 내주며 철조망 사이를 빠져나갔다. 긁히고 찔리길 두려워해선 넘을 수 없는 경계들이 있었다. 경계를 넘지 않고선 생존할 수 없는 땅에 그들은 있었다. 바다로부터 560m 솟아오른 꼭대기(A봉우리) 주변이 무리의 활동 영역이었다. 인간의 오랜 영토분쟁의 흔적(삼국시대)이 비석에 새겨진 봉우리에서 허락된 영토가 없는 들개들이 뛰어다녔다. 뿔뿔이 흩어지기 두달 전(2018년 8월) 흰다리 무리가 봉우리 주변에서 나무를 올려다보며 짖어댔다. 동물원에서 탈출한 히말라야원숭이(지난해 6월부터 북한산에서 목격돼 그해 8월 포획)가 나무를 타고 다니며 봉우리 아래까지 와 있었다. 나무에 매달린 2급 멸종위기종이 개들을 향해 송곳니를 세웠다. 무리 앞에서 흰다리(수컷)가 이빨을 드러내며 원숭이를 노려봤다. 개들과 원숭이가 사납게 겨루는 소리가 등산객들을 불러 모았다. 흰다리는 이 봉우리 들개 무리의 대장이었다. 하얀 왼쪽 다리가 갈색의 몸과 구분됐다. 성견이 된 지 얼마 안 됐지만 힘세고 용맹해 경쟁 무리와 대결할 땐 먼저 달려 나가 싸웠다. 미간에 흰색 번개무늬가 있었다. 잘생긴 외모로 암컷들의 구애를 받았다. 흰다리가 이끄는 개들은 모두 암컷이었다. 짱짱이(암컷)는 말랐지만 몸을 쭉 펴고 서 있으면 풍모가 짱짱했다. 비쩍 말라 불쌍해 보일 때도 있었고 외계 생물처럼 낯설어 보일 때도 있었다. 사자털(암컷)은 강아지로 혼자 다니다 무리에 섞였다. 새끼 때 보송보송했던 털이 성견이 됐을 땐 멋진 갈기털로 변했다. 검은입(암컷)은 입 주위가 까맸다. 흰다리 무리 중 가장 덩치가 컸다. 모두 산에서 태어난 그들은 각자의 부모로부터 떨어져 자란 독립 개체들이었다. 제각기 살아가던 그들이 어느 날 무리를 이뤘다. 그리고 찡찡이가 있었다. 사람 앞에 가면 찡찡거리는 소리를 낸다고 찡찡이를 목격한 등산객들이 이름 붙였다. 찡찡이는 독특한 외모를 가졌다. 광대가 툭 불거진 얼굴은 위협하는 듯도 했고 우는 듯도 했다. 눈은 찡그린 것처럼 찌그러져 있었고 눈물이 그렁그렁해 눈 주위가 늘 축축했다. 등엔 홍반이 있었다. 찡찡이의 생김새는 그가 겪은 시간의 결과물이었다. 북한산 외톨이 ‘최약자 들개’ 찡찡이
대장이 잡혀가며 무리가 해체된 뒤
마취총 맞고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무리의 새끼들 보살피며 가족 꾸려
북한산 들개 ‘흰다리’ 무리. 뒷줄 왼쪽부터 무리의 대장 흰다리(수컷), 사자털(암컷), 찡찡이(수컷). 아랫줄 검은입(암컷). 무리의 일원인 짱짱이(암컷)는 사진에 찍히지 않았다. 권도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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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외톨이 찡찡이는 외톨이였다. 북한산에서 가장 약한 들개 중 한마리였다. 물리고 찢기고 상처 난 흔적들이 그의 얼굴에 남아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먹이를 빼앗기지 않으려 사력을 다하는 개들과 달리 찡찡이는 개들이 으르렁거리고 접근하면 먹고 있던 것들도 내줬다. 혼자 다니다 다른 개들을 만나면 머리를 낮추고 우회하는 것으로 싸울 뜻이 없음을 표현했다. 그 찡찡이가 언제부턴가 흰다리 무리를 따라다녔다. 험하고 깊은 산은 무리에 끼지 않고 혼자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찡찡이는 흰다리 무리의 ‘더하기 일’과도 같았다. 무리를 쫓아다녔지만 무리 안에 잘 들지 못했다. 들개는 인간 세계가 허락하지 않는 존재였고 찡찡이는 그 들개들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존재하지만 존재를 인정받지 못한 존재들의 처지가 ‘왕따 들개’ 찡찡이에게 투영됐다. 봉우리 위로 반달이 떠올랐다. 봉우리에서 달을 이고 선 짱짱이의 모습이 짱짱했다. 북한산은 서울 은평·서대문·종로·성북·강북·도봉구와 경기 고양·양주·의정부시로 뻗으며 32개 봉우리를 잡아당겼다. 인간에게 버려져 산으로 올라온 개들이 그 봉우리들을 뛰어오르며 인간들보다 먼저 달빛을 받았다. 도시보다 먼저 있었던 산도 도시의 침범으로 졸아들고 있었다. 도심을 빽빽하게 채운 아파트들이 북한산 밑까지 몰려와 산을 파먹었다. 도시가 팽창하며 산을 조여 오자 산도 깎이고 압박당하며 쫓겨 올라갔다. 도시가 밀어올린 산과 개들이 달빛 아래에서 서로를 껴안았다. 산에서 나고 자란 흰다리 무리가 어떤 뿌리에서 기원했는지 아는 인간은 없었다. 새끼를 내며 몇 대까지 번식했을지 모를 그 개들의 첫 세대는 분명 인간들 곁에 있었다. 인간에게 유기된 개들이 생존을 위해 야생화되면 ‘들개’라 불리며 제거 대상(아래 상자기사)이 됐다. 개발이 들끓는 땅에서 들개들이 태어났고, 도시가 확장되는 경로를 따라 들개들도 번식했으며, 들개의 발생 경로를 따라 자치단체들의 포획 사업도 전국으로 번져갔다. 서울시 뉴타운사업은 한국 사회에 들개를 퍼뜨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너희도 살길 찾아서….’ 사업 착공(2004년 12월) 2년 뒤 은평뉴타운 철거민 원정자(68)는 북한산 기슭에서 풀을 뽑고 있었다. 세입자였던 그는 갈 곳 없는 주민들과 마지막까지 버티다 철거 직전 개울 건너 지축(고양시 덕양구)으로 이주(2005년 2월)했다. 빚을 내 시작한 호프집은 주민들의 이사로 손님이 줄어 오픈 1년 만에 폐업했다. 생계 수단을 잃은 그는 새로 심은 나무들 사이를 기며 잡초를 제거(공공근로)했다. 호미질을 하다 산속에 숨어 자신을 지켜보는 개들과 눈이 마주쳤다. ‘나처럼 산까지 올라왔구나.’ 삶터를 잃고 쫓겨날 때 원정자는 자신처럼 쫓겨나는 개들을 봤다. 집들이 헐리고 땅이 뒤집힌 동네(은평구 진관내동)에서 주인에게 버려진 개들이 풀밭과 둑을 떼 지어 돌아다녔다. 그 개들이 하나둘씩 사라졌다. 텅 빈 집에서 목줄에 묶인 채 굶어 죽거나, 주인 떠난 집을 맴돌다 개장수에게 잡혀가거나, 배고픈 노숙인들에게 잡아먹히는 과정을 원정자는 지켜봤다. 그렇게 살아남은 개들이 산으로 올라와 살기 위해 산으로 올라온 원정자를 지켜봤다. 산 아래에서 산에 의지해 살았던 원정자가 산에서 처음 보는 개들이었다. 그들이 야생화되기 시작한 개들의 초기 세대(북한산관리사무소의 들개 포획 기록도 2007년 처음 등장)라고 원정자는 짐작했다. 도토리 줍고 버섯 따러 북한산을 오르내렸지만 뉴타운개발 전까지 산에서 번식한 개를 본 적이 없었다. ‘타운’은 골라내고 솎아내며 팽창했다. 2002~2006년 지정된 서울시 26개 뉴타운 사업지구(23.8㎢)는 지난 30년(1973~2003년) 동안 완료된 주택재개발 시행 면적(10.1㎢)의 2.4배였다. 내몰린 사람(2008년 당시 사업지구 내 35만가구 중 23만가구(69%)가 세입자)과 버려진 개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도시가 품지 않는 인간과 개의 운명은 다르지 않았다. 거부당한 인간과 거부당한 개가 밀려나고 밀려올라가 산에서 만났다. 원정자가 풀을 뽑다 말고 도시락을 먹으면 굶주린 개들이 혀를 빼물고 입맛을 다셨다. 하루 일을 마친 뒤 원정자는 일부러 남긴 밥덩이를 산에 두고 내려왔다. 멧돼지와 싸우다 죽은 개들을 산속에서 발견했을 땐 나뭇잎으로 덮어주며 극락왕생을 빌었다. 그 개들의 후손이 서로 섞여 새끼를 낳고 다시 여러 세대를 건너며 종류와 출신지를 알 수 없는 흰다리 무리로 이어졌는지도 몰랐다. 원정자는 버려진 개들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봤다. 그도 개들도 살아남으려면 강해져야 했다. 개발 과정에서 버려져 야생화된 개들
개발에서 배제돼 밀려난 철거민들
들개들을 포획하는 마취총 전문가
그들이 얽힌 ‘우리 세계’의 이야기
북한산에서 바라본 은평뉴타운. 2002년부터 시작된 서울시의 뉴타운 개발 사업은 한국 사회에 들개를 퍼뜨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권도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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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개와 내몰린 사람 사진작가 권도연(39)의 발 앞으로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새끼들이 데굴데굴 굴러떨어졌다. 권도연이 눈을 들어 개들이 굴러오는 쪽을 올려다봤다. 짱짱이가 사는 바위굴에서 갓 태어난 새끼들이 미끄러져 내려오고 있었다. 권도연은 2년 가까이 흰다리 무리를 쫓으며 그들의 시간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그가 놓아둔 먹이를 먹으며 흰다리 무리는 오랫동안 숨어서 그를 지켜봤다. 어느 날부터 무리가 권도연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조금씩 그와 거리를 좁혔으며, 가끔 곁에 앉아 놀기도 했다. 짱짱이의 새끼들이 울며 엄마(아빠는 흰다리)를 찾았다. 권도연이 나뭇잎으로 새끼들을 감싸 굴 앞에 놓아줬다. 새끼들은 미끄러진 것이 아니라 선택받지 못한 것이었다. 짱짱이가 새끼들을 입으로 물어 바위굴 밖으로 버렸다. 새끼 8마리 중 살아남을 만한 한마리만 남기고 도태(2018년 7월)시켰다. 권도연이 올려준 새끼들도 다시 밀어 떨어뜨렸다. 낙엽에 묻힌 새끼들 위로 파리떼가 날아와 달라붙었다. 구더기가 하얗게 슬어 새끼들의 진을 빨았다. 짱짱이의 행동과 새끼들의 죽음을 사자털이 멀찍이서 지켜봤다. 짱짱이의 선택은 산에서 태어난 개들이 산에서 대를 잇는 방식이었다. 산에서는 강한 개들만 굶어 죽거나 영역 다툼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미들은 생후 3개월쯤 되면 새끼들을 독립시켰다. 먹이가 한정된 국립공원은 새끼들을 위협하는 야생의 공간이었다. 어미와 떨어진 새끼들을 까마귀들까지 떼로 덤비며 낚아채려 했다. 새끼들은 부모의 도움 없이 혹독한 생존경쟁과 인간의 추적을 이겨내야 성견으로서 한 무리의 대열에 낄 수 있었다. 죽지 않고 어른이 된 개들은 대부분 대형견들이었다. 크고, 강인하고, 늠름했다. 덩치가 작아도 도시를 떠돌며 살 수 있었지만 덩치가 작아선 정글 같은 산속에서 버티지 못했다. 번식도 살아남은 개들만의 특권이었다. 찡찡이가 검은입에게 다가가다 흰다리에게 물렸다. 놀란 찡찡이가 찡찡거리며 물러섰다. 검은입도 찡찡이의 접근을 거부했다. 검은입을 향한 찡찡이의 구애는 흰다리의 방해로 언제나 실패했다. 대장 흰다리는 무리의 암컷들과 모두 교미했다. 흰다리가 검은입과 교미 중일 때 멀리서 지켜보던 찡찡이가 다가와 힘들어하는 검은입의 귀를 핥았다. 흰다리-검은입 사이에 끼어들지 못한 찡찡이와 머지않아 짝을 이룰 단비(검은입 포획 전 출생)가 그때 잉태되고 있었다. 타앙. 몇달 뒤 총성 한발이 북한산을 울렸다. 짧은 비명이 뒤따랐다. 흰다리는 자신만만한 대장이었다. 활달하고 겁이 없었다. 무리를 이끌고 등산로 주변으로 자주 나타났다. 혼자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사자털과 짱짱이가 대장을 따라 사람들에게 노출되곤 했다. 봉우리 울창한 산을 쏘다니던 흰다리가 어느 날(2018년 10월) ‘그 남자’가 쏜 마취총에 맞았다. 무리 동료들과 달빛을 받던 봉우리 기슭에서 흰다리는 포획됐다. 검은입도 같이 잡혀갔다. 뉴타운은 들개 확산의 결정적 계기
2002~2006년 지정 26개 사업지구
1973~2003년 완료 재개발의 2.4배
사업지구 거주 가구 69%가 세입자
사자털은 목에 멋진 갈기털을 갖고 있다. 흰다리가 포획됐을 때 그의 새끼를 임신한 상태였다. 권도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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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개는 인간의 다른 얼굴” ‘겁을 내면 달려든다.’ 동물을 잡으려면 기싸움에서부터 이겨야 한다는 문장은 ‘그 남자’ 채만철(가명·68)이 엽사로 산 50년 동안 마음에 새겨온 철칙이었다. “들개에겐 자기보다 센 놈인지 약한 놈인지를 구분하는 제6의 감각이 있다”고 그는 믿었다.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뒷산(295m 높이의 안산)에서 잡은 50㎏짜리 개도 그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도망쳤”다. “너무 커서 소방관들도 뒷걸음치게 만든 개”였다. 채만철은 북한산관리사무소와 서울시가 들개 포획을 위탁한 마취총 전문가였다. 야생화된 개들은 미끼 물린 포획틀로는 잡히지 않았다. “1세대 유기견은 배가 고프면 틀 속으로 기어들어갔지만 산에서 태어난 개들은 자라는 동안 포획틀의 정체를 학습”(북한산관리사무소)했다. 틀을 처음 보는 새끼들이 주로 걸려들었다. 2015년부터 증가한 서울시의 들개 포획 건수(2014년 8마리→2015년 32마리→2016년 115마리→2017년 153마리→2018년 154마리)는 채만철의 ‘솜씨’ 덕이었다. 사거리가 짧고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주사기로 개의 엉덩이를 정확하게 맞힐 수 있는 엽사는 그뿐이었다. 입소문을 타면서 들개가 목격되는 전국 자치단체들로부터 포획 요청이 잇따랐다. ‘등산로나 동네에 들개가 나타나 무섭다’는 민원을 전달받으면 채만철은 잡을 뿐이었다. 그동안 붙잡은 개체 수를 굳이 세지 않았고, 포획한 개들 중 흰다리와 검은입이 있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발견 장소: 북한산 ○○봉우리 인근. 특이사항: 양 귀 쫑긋. 코 검정. 눈곱. 경계 심함. 겁 많음.” 지난해 10월 서울시 유기동물보호관리시스템에 흰다리의 사진이 떴다. 위엄 넘쳤던 대장의 모습 대신 겁 먹은 얼굴의 흰다리가 철장 안에 웅크리고 있었다. 20일 뒤 흰다리는 안락사(포획 뒤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을 경우)됐다. 인간 세계는 배제된 존재들을 위험시했다. 인간에게 버려진 개들이 산으로 올라가 생존력을 확보하는 순간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 몰려 박멸 대상이 됐다. “들개는 인간의 다른 얼굴”(동물권행동 카라 전진경 상임이사)이었다. ‘인간들 밖’으로 밀려난 존재였지만 인간을 반사하는 거울로서 ‘인간들 안’에 있었다. 흰다리와 검은입이 잡혀가자 무리도 해체됐다. 흰다리의 새끼를 임신한 사자털은 혼자 떠돌았고, 짱짱이와 찡찡이는 생사를 알 수 없었다. 권도연은 자괴감을 느꼈다. 그는 본래 흰다리 등을 무리가 아닌 개별 강아지 시절부터 만났다. 그가 주는 먹이를 먹으며 그의 뒤를 따르던 각각의 새끼들이 성견이 된 어느 날 한 무리가 돼 그의 앞에 나타났다. “내가 무리 형성의 계기를 제공하지 않았다면 잡혀가는 일도 없었을까.” 찡찡이도 채만철의 마취총에 맞았다. 엉덩이에 주사기를 꽂고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어딘가에서 쓰러졌을 텐데 채만철의 눈에 띄지 않았다. 채만철은 “호랑이와 표범 빼곤 다 잡아봤”다. 그의 들개 포획은 스무살 때부터 단련해온 “사냥꾼의 본능적 감각”에 의지했다. 포획의 적기는 겨울이었다. 수풀이 제거돼 마취총을 맞고 도망간 개를 찾기 좋았다. 들개 민원이 발생하면 주변 산 위로 올라가 “먹이(냄새가 강렬한 고등어 통조림)를 뿌리며 포획에 유리한 장소로 유인”했다. “나무가 듬성해 시야 확보가 쉬운 곳을 택해 매복”했다. ‘목사냥’(동물의 이동경로를 파악해 목을 지켜 잡는 방식)은 기다림이었다. 마취총 사거리(최대 40m) 안에 개가 들어올 때까지 밤새 끈질기게 기다렸다. “우두머리가 나타나면 다른 개들이 짖고, 핥고, 배를 깔았”다. “우두머리부터 잡아야 무리의 체계를 허물 수 있었”다. 표적을 발견하면 즉시 쐈다. “허락된 시간은 단 1초”였다. “개보다 아래쪽에 자리 잡고 위를 보며 사격”했다. 빗나가더라도 개가 산 위로 뛰어야 추적이 용이했다. “나는 개돼지 백정이오.” ‘그 일’이 있고부터 채만철은 자조적인 말로 자기소개를 했다. 지난해 9월 월드컵공원(마포구 상암동)에서 잡은 개 4마리 중 한마리가 쇼크사(마취총을 맞은 채 달아나다 심장압박으로)했다. 비난 여론이 일었고 마취총 포획을 막아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있었다. 채만철은 “남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살았는데 고의로 죽였다는 이야기까지 듣자 낙담해” 포획 작업을 그만뒀다. 그는 “짐승은 무섭지 않았지만 여론은 무서웠”다. “사람도 만나기 싫어 강원도 양구에서 멧돼지만 잡고 지냈”다. 채만철이 일을 중단하자 올해 서울시의 들개 포획 건수는 급감(2018년 154마리→2019년 7월말까지 44마리)했다. 채만철도 개들의 운명이 안쓰러웠다. 그가 잡은 개들은 대부분 입양되지 못하고 안락사됐다. 그래도 “사람의 안전이 개보다 우선”이란 생각은 변함없었다. 존재하나 인정받지 못한 존재들의
처지가 왕따 들개 찡찡이에게 투영
도시가 지우고 싶은 ‘얼룩’이지만
지우려 할수록 선명해지는 존재들
찡찡이가 눈 덮인 산속을 가로지르고 있다. 권도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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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려 할수록 선명해지는 닦아내려 해도 말끔하게 닦이지 않는 얼룩 같았다. 채만철의 마취총을 맞고 모습을 감춘 찡찡이가 몇달 뒤 북한산 B봉우리에 살아서 나타났다. 회색뾰족귀(수컷)가 다가와 찡찡이를 위협했다. B봉우리는 뾰족귀 무리가 지배했다. 무리의 대장인 흰뾰족귀는 수컷을 바꿔가며 임신과 출산을 반복했다. 수많은 새끼를 낳아 A·B봉우리 들개들의 어머니로 통했다. 흰다리도 흰뾰족귀의 새끼로 추정되기도 했다. 시베리안허스키를 닮은 회색뾰족귀는 최근 몇년 동안 흰뾰족귀의 짝으로서 곁을 지키며 행동대장 몫을 했다. 싸울 일이 생기면 무리를 대표해 싸웠다. 두 뾰족귀의 새끼 중 한마리가 지난해 겨울 그들의 은신처인 낭떠러지 바위굴 앞에서 얼어 죽었다. B봉우리엔 탁 트인 풍광을 보며 쉬거나 점심밥을 먹으려는 등산객들이 몰렸다. 들개들이 음식을 얻어먹기 좋은 장소였다. 힘세고 서열 높은 개들이 B봉우리를 차지했다. 흰다리도 B봉우리로는 올라가지 않았었다. 뾰족귀 무리는 찡찡이의 출현을 ‘침범’으로 간주했다. 회색뾰족귀가 찡찡이를 물어 쫓아냈다. 회색뾰족귀에게 쫓겨나길 되풀이하면서도 찡찡이는 먹이를 얻으러 B봉우리에 계속 접근했다. 살아 돌아온 찡찡이는 더 이상 찡찡거리지 않았다. 찡찡이에겐 지켜야 할 가족이 생겼다. 흰다리와 검은입의 새끼 단비가 곁에 있었다. 찡찡이가 어른이 된 단비와 낳은 새끼 두마리도 함께였다. 무리의 대장과 그 짝이 잡혀간 뒤 무리의 최약자였던 찡찡이가 그들의 새끼를 지켰다. 괄시 받던 개가 가장 오래 살아남아 보호자 노릇을 했다. 찡찡이 가족이 통과한 철조망 근처에 빈 고등어 통조림 깡통이 떨어져 있었다. 위험이 가까이 왔다는 신호였다. 좀 더 안전한 은신처를 찾아야 했다. 찡찡이가 단비와 새끼들을 이끌고 산을 가로질렀다. 산기슭에 안긴 절이 저녁 타종을 했다. 어둠이 내리는 산속에서 개들이 종소리에 맞춰 컹컹거렸다. 찡찡이도 따라 짖었다. 밝고 맑은 도시는 혼자 힘으로 밝고 맑을 수 없었다. 더럽고 위험한 것들을 몰아넣은 땅이 있어야 그들 없는 깨끗하고 안전한 도시도 완성됐다. 들개들은 도시가 지운 존재들이었지만 도시가 그들을 지우려 할수록 그들의 존재는 선명해졌다. 인간들에게 쫓겨 올라간 깜깜한 산에서 들개 찡찡이가 인간들의 불 밝은 도시를 내려다봤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정체 없는 유령 같은 존재
한국에 종(種)으로 자리 잡은 들개는 없다. 동물권 단체 등은 ‘들개’가 인간의 유기 책임을 개에게 돌려 ‘위험한 존재’로 낙인찍는 용어라며 ‘야생화된 유기견’이란 표현을 사용한다.
산에서 태어나 산에서 자란 개는 ‘법적 정체’가 없다. 주인이 있는 유기견(동물보호법 적용)도 아니고 유해야생동물(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적용)도 아니다. 유해야생동물처럼 사살할 수 없어 구조·포획한 뒤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안락사시킨다.
정확한 개체수도 파악되지 않는다. 북한산관리사무소는 현재 산속에 99마리가 서식 중이라고 추정했고, 서울시는 자치구(북한산 서식 개체 포함) 안의 잡히지 않은 개를 200여마리로 추산했다. 서울시 등 전국 자치단체들은 “위협을 호소하는 시민들이 있으므로 발생한 개체들은 모두 포획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근본적으로는 생태계 교란을 일으키는 ‘야생화된 동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동물권행동 카라는 “무엇을 야생화로 정의할 것인가에 대한 합의가 있어야 하지만 합의된 적도, 연구된 적도 없다”며 산의 개들을 중성화해 인간과 함께 살 수 있도록 돕는 보호소 설치를 요구한다.
버려진 개들이 산으로 올라간 시기, 발생 원인이 된 도시 개발과의 관계, 세대 분화 정도,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등은 국내에서 체계적으로 조사된 적이 없다. 현재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환경부 용역으로 보고서(‘산에 사는 유기견 서식 실태 및 관리 방안’)를 쓰고 있지만 지금까지 발표된 자료와 언론 보도 등을 취합하는 정도다.
찡찡이는 무리의 대장 흰다리와 그 짝 검은입이 잡혀간 뒤 그들의 새끼인 단비(오른쪽)를 돌봤다. 단비와의 사이에서 새끼도 낳았다. 권도연 작가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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