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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09.06 19:50 수정 : 2013.09.08 16:19

첫차는 출근하고 퇴근하는 사람들로 붐볐다. 하남시에서 출발한 341번 버스 첫차가 5일 새벽 4시30분께 길동사거리 정류장을 지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토요판/르포] 첫차를 타는 사람들

▶ 서울시내 버스의 첫차는 대부분 새벽 4시에 출발합니다. 수년 전, 아는 청소노동자 한 분이 “강북, 미아 쪽에서 버스 첫차를 타면 청소하는 아줌마들로 만원버스가 된다”고 알려줬습니다. 첫차가 만원버스? 좀 생소했습니다. 오랜만에 예전에 들었던 말을 확인하기 위해 3일간 서울 강북구, 강서구, 강동구 끄트머리에서 각각 첫차를 탔습니다. 첫차는 정말 출근하고 퇴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첫차는 만원이었다.

3일 새벽 4시, 시내버스 152번 첫차는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종점에서 승객 둘을 태우고 어둠 속으로 미끄러졌다. 고요함을 깨뜨리는 ‘부우웅’ 엔진 소리가 2차선 길을 가로질렀고, 버스는 정류장마다 어김없이 멈췄다. 조명 하나 켜져 있지 않은 컴컴한 정류장에선 여지없이 네다섯명이 기다렸다. 종점에서 출발한 지 10여분이 지나자, 버스 안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24개의 좌석이 가득 들어찼다.

“벌써 자리가 없을 정도로 첫차에 사람이 많이 타네요.” 기자는 앉아 있는 김영수(59)씨에게 말을 걸었다.

“종점에서 두세번째 정류장에서 타지 않으면 자리가 없어요. 첫차가 아니라 두번째나 세번째 차를 타면 사람이 좀 적지만, 더 늦으면 일에 지장이 있으니까 대부분 첫차를 타요.”

김씨는 13년째 여의도에서 발효음료를 배달하는 ‘야쿠르트 아줌마’다. 그는 새벽 5시까지 출근해 일을 시작한다고 했다. “이 시간에 버스를 타는 승객들은 대부분 남들 출근 전에 바삐 일을 하는 사람들이에요. 저는 사무실에 야쿠르트를 배달하기 때문에 남들 출근 시간인 9시까지 일을 마쳐야 해요. 큰 빌딩 6개를 다 돌려면 시간이 부족해 최대한 빨리 가요.”

“매일 보던 얼굴 며칠 안 보이면 걱정돼”

다시 10여분이 지나자, 버스엔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사람이 가득 들어찼다. 만원버스였다. 서울 퇴계로의 한 빌딩에서 청소일을 하는 정아무개(62)씨는 출근길이 고단해 중간에 환승을 한다고 했다.

“회사까지 한번에 가는 버스를 타면 앉을 데가 없어요. 버스에서 50여분 서서 가면 무릎이랑 허리가 너무 아파서 중간에 내려 104번 버스로 갈아타요. 그 버스는 세번째 차라서 자리가 좀 나요.”

새벽 4시에 출발하는 버스 첫차가 이리 만원인 줄 몰랐다. 버스 안을 한번 둘러보았다. 10~30대로 보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여성이 80퍼센트 정도를 차지했고, 육안으로 판단한 나이는 60~70대였다.

버스 첫차는 만원이었다
“이 시간에 버스타는 사람들은
남들 출근 전 일하러 가요”
절대다수가 여성이었고
60~70대 청소노동자였다

밤새 일하다 퇴근하는
대리기사 남성들도 보였다
“서울 각지에서 귀가하니까
첫차에 대해 빠삭해요”
얼굴마다 피곤함이 묻어났다

“첫차가 이리 만원인 줄 몰랐네요. 매일 이래요?” “청소하고 경비하는 사람들은 다 이 시간에 출근해요. 우리야 이런 만원버스가 익숙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를 거예요. 버스 갈아타는 길음동 정류장에 공항버스도 오거든요. 거기서 젊은 사람들이 큰 가방 끌고서 첫차 시간에 나오면 꽉 찬 파란버스를 보고 깜짝 놀라요. 자기네들끼리 ‘이 사람들 다 어디 가는 거냐’고 묻는데요. 어딜 가긴요. 청소하러 가죠.”

정씨는 청소일을 7년간 해왔다고 했다. 회사에 도착하는 시간은 새벽 4시50분 남짓,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5시부터 일을 시작한다. 정씨가 청소를 맡은 구역은 12층짜리 건물의 한 층이다. 그는 이 한 층에 있는 큰 사무실 3개, 작은 사무실 3개, 남녀 화장실을 도맡아 청소한다. 사람들이 출근을 시작하는 8시까지 청소를 마치고, 아침 식사를 한다.

“8시까지 정신없이 청소를 해요. 어떨 땐 너무 집중해서 청소하고 있다가 일찍 출근한 사람과 마주치기도 해요. 그럴 땐 깜짝 놀라서 얼른 마무리하고 나오죠. 식사 이후엔 기계실 같은 곳에서 잠시 쉬다가 중간중간에 쓰레기통 비우고 화장실 청소하러 나와요. 그렇게 일하다가 오후 4시에 퇴근합니다.”

정씨는 길음동에서 내렸다. 다시 버스 안을 둘러보았다. 얼굴마다 피곤함이 묻어났고, 앉아 있는 사람들의 절반은 눈을 감고 있었다. 한쪽에 서 있는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버스 첫차를 타는 분들을 취재하고 있는데요. 두 분이 아는 사이인가 봐요.”

서로 다른 정류장에서 탄 박영순(75)씨와 최영실(64)씨는 매일 아침 버스에서 만나는 사이라고 했다. 박씨는 “18년째 청소일을 하며 첫차를 탔다. 다들 아는 얼굴들”이라고 말했다. 최씨가 덧붙였다.

“비슷한 일을 하면서 매일 새벽에 보니까 서로 알고 지내요. 매일 보던 얼굴이 며칠 안 보이면 걱정도 돼요. 3~4일 넘게 안 나오면 틀림없이 그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버스 안에서 서로 안부도 묻고, 일자리도 소개해줘요. 우리에겐 버스 첫차가 복덕방이나 다름없어요.”

장충동에 있는 5층짜리 건물에서 일하는 박씨는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한다고 했다. 4시에 버스를 타고 회사에 4시40분 도착해 청소를 시작한다. 퇴근 시간은 오후 4시이고, 집에 도착하면 5시가 다 된다. 출퇴근 시간을 합치면 하루에 13시간을 일하는 데 쓰는 셈이다. 을지로에 있는 외환은행 건물에서 청소를 하는 최씨도 출퇴근 시간이 비슷하다.

최씨와 박씨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버스는 동대문 평화시장을 지나고 있었다. 시간은 새벽 4시 반. 도매시장이 새벽까지 열렸는지 시장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동대문에서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내렸다.

밤 내내 일하고 아침에 퇴근하는 대리기사들

청소 이외에 다른 직종의 이야기를 듣고자 한 남성에게 말을 걸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박아무개씨가 무뚝뚝하게 말을 받아줬다. “7년째 시내에 있는 8층 건물에서 청소를 하고 있어요. 나이 여든에 이렇게 할 일이 있다는 게 그나마 고맙지.” 박씨는 대답하자마자 버스에서 내릴 준비를 했다. 버스는 을지로에 다다랐다. 사람들이 우르르 내려 흩어졌고, 건물 속으로 사라졌다.

버스는 갑자기 한적해졌다. 대여섯 남은 사람들은 다들 자리에 앉아 잠을 청했다.

다음날인 4일 새벽 4시, 김포공항 인근의 서울 강서구 외발산동 정류장에서 시내버스 650번의 첫차에 올랐다. 종점에서 네번째 정류장인 ‘화곡전철역’에서부턴 빈자리가 없었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영등포구의 한 건물에서 8년째 청소일을 한 서아무개(70)씨는 “이 시간에 버스 타는 사람은 대부분이 청소 아니면 경비”라고 말했다. 조심스레 한달 급여와 살림살이에 대해 물었다. 옆에 있던 이아무개(63)씨가 답했다.

“한달에 100만원 정도 벌어요. 이 월급으로 살려면 버스비도 만만치가 않아요. 지금은 한달에 6만원 안에서 해결되지만, 지금보다 더 오르면 걱정이죠. 점심 식사는 회사에서 반찬 없이 밥만 나와요. 돈을 안 쓰려고 반찬을 집에서 가져가죠.”

서씨는 실제 일하는 시간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사람들 출근하기 전까지 청소 다 하려면 새벽 5시부터 일을 시작해요. 그런데 계약서에는 오전 6시부터 오후 4시까지로 근무시간이 적혀 있어요. 청소하는 분들 중에 오전 6시부터 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그 시간부터 일하면 첫차에 왜 이렇게 사람들이 타겠어요.”

기자가 사흘 동안 버스 첫차를 타면서 봤을 때, 첫차의 최대 우량고객은 단연 청소노동자였다. 한두명의 청소노동자만 잡고 물어도, 간접고용과 비정규직 노동의 실태를 엿볼 수 있었다. 불공정 근로계약서와 최저임금을 보장하지 않는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버스 안에서 잠시 스친 분들도 그런 사례를 말해주었다. 하지만 청소노동자들의 삶의 여건에 대한 기본적인 실태조사 자료조차 없다. 민주노총이나 공공노조 등 국내 노동단체들은 청소노동자들이 국내에 40만명가량 있다고 추산할 뿐이다. 단일 직종으로는 손꼽히게 많은 숫자다. 2011년 11월 홍익대가 청소노동자를 해고하자, 이들의 근로 여건은 잠시 사회적인 관심사가 됐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선 울산과학대의 청소노동자 김순자(58)씨가 무소속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아직도 많은 청소노동자들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들은 그저 첫차에 몸을 싣고 출근해 묵묵히 청소를 하고 있다. ‘나이 들어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가 이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다.

버스가 양천구 목동을 지나 영등포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가득 들어찼다. 이날도 버스는 만원이었다. 청소 직종이 아닌 사람을 찾기 위해 일부러 중년 남성을 골라 말을 걸었다. 대리기사 일을 하는 김아무개(49)씨는 “어젯밤 9시부터 대리를 뛰고, 지금 퇴근하는 길”이라며 “이번에 내려야 한다. 미안하다”고 말하고는 급하게 내렸다. 버스 뒤쪽에 앉아 있는 다른 남성을 찾아 말을 걸었으나, 손을 내저으며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앞쪽에 정장을 입고 있는 남자가 눈에 띄었다. 빼곡히 선 사람들 틈 사이를 헤치며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있고, 다른 한 손으로 스마트폰용 게임을 하고 있었다. 한 손만으로도 비행기 게임을 능숙하게 하는 그가 게임을 마치기를 기다렸다. 화면에 ‘게임오버’가 뜨자, 말을 걸었다. 대리기사 일을 하는 박태훈(50)씨는 퇴근길이라고 했다.

“어제 저녁 7시부터 일을 시작해 지금 마치고서 귀가하는 길이에요. 오늘은 4건 하고 10만원 벌었어요. 중개수수료와 통신비, 교통비 등을 감안하면 하루에 15만원은 벌어야 하는데 요즘 경기가 안 좋아요.”

박씨는 손님들에게 신뢰를 주기 위해 정장을 입었다. 많이 걸어야 하는 직업인데도 정장에 넥타이, 구두를 고집했다. “대리기사들은 콜을 부르는 손님들에게 갈 때 대부분 걸어다녀요. 택시를 타면 남는 게 없거든요. 오늘도 하루에 7~8㎞ 걸었어요.”

박씨에게 첫차는 퇴근버스였다. “더운 날에 많이 걷다 보면 피곤하죠. 조금 일찍 들어가고 싶어도 새벽 4시까진 꼼짝없이 있어야 해요. 그래도 최근 심야버스가 늘어난다고 하니까, 그게 생기면 좀 빨리 퇴근할 수도 있겠죠.”

다 내리고 한산해져도 해는 뜨지 않고…

서울시는 3개월간 시범운영한 2개의 심야버스 노선을 9월12일부터 9개로 확대하기로 했다. 이 버스는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40~50분 간격으로 운행할 예정이다.

박씨는 노량진 수산시장 인근 정류장에서 내렸다. 버스가 영등포와 노량진을 지나자 다시 한산해졌다. 스티로폼 박스를 얹은 수레를 옆에 두고 앉아 있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김경수(46)씨는 먹자골목과 유흥가에서 ‘아이스케키’와 ‘망개떡’을 팔다가 귀가하는 길이라고 했다.

“매일 이 시간까지 장사를 하고 첫차를 타고 집에 가요. 오늘은 강서구청 뒤쪽과 목동사거리 쪽에서 장사를 했어요. 날씨가 쌀쌀해지니까 이제 아이스케키는 잘 안 팔리네요.”

한적해진 버스 안에서 김씨는 살아온 삶을 묘사했다. “제가 원래 양식요리사인데요. 갑자기 간질이 생겨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발작이 나요. 그래서 직장에서 잘리고, 십수년간 가구공장, 웨이터 등 취직한 모든 곳에서도 다 쫓겨났어요. 한번 발작이 나면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여기 팔에 흉터를 봐요. 온몸에 이런 상처가 가득해요. 이게 발작 중에 난로를 껴안아서 생긴 거래요. 그나마 이 장사는 몸이 안 좋아도 할 수 있으니 다행이죠.”

취재 셋째 날인 5일, 새벽 4시에 서울의 동쪽 끝인 강동구 상일동역에서 351번 버스에 올라탔다. 강북이나 강서 쪽에서 버스를 탔을 때보다 사람은 더디게 들어찼다. 하지만 버스가 천호역 인근을 지나자 여느 첫차와 마찬가지로 만원이 됐다. 절대다수는 여성이고, 청소노동자였다. 뒤쪽에서 서 있는 채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두 남성에게 말을 걸었다. 배아무개(69)씨는 강남구 삼성동의 건물에서 일하는 청소노동자였다.

“여기 대부분 청소하는 사람들이죠. 건물 청소도 남자가 하는 일과 여자가 하는 일이 따로 있어요. 여자들이 화장실, 복도, 사무실 등에서 쓰레기통을 비우고 걸레로 닦는 청소를 하면, 남자들은 기계로 진공청소를 하고 분리수거를 해요. 15년째 이 일을 하는데 몸이 성한 데가 별로 없어요.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다 약 한두가지를 먹는다고 보면 돼요.”

시간은 오전 4시40분을 가리켰다. 버스는 다시 한산해졌다. 뒷자리에 앉아 있는 전아무개(61)씨에게 다가갔다. 15년간 대리기사 일을 해온 전씨는 첫차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자랑했다.

“대리기사들은 서울 각지에서 귀가하기 때문에 첫차에 대해 빠삭해요. 서울 시내의 파란색(간선) 버스는 모두 만원이라고 보면 되고, 녹색(지선)은 버스마다 달라요. 특히 사람이 많은 첫차는 상계동에서 출발하는 146번, 성남 쪽에서 오는 462번, 사당동을 지나는 4212번이죠.”

전씨는 기자가 사는 곳을 묻더니, 스마트폰을 보지도 않고 어디서 환승해 몇번 버스를 타면 집 앞까지 간다고 알려줬다. 버스가 강남구청을 거쳐 압구정, 고속버스터미널을 지나자 출근하는 사람들은 다 내렸다. 반포에 닿자 버스 안에는 기자와 전씨만이 남았다. 불과 10여분 전에 만원버스였던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고, 어스름한 하늘이 도시를 내려다봤다. 그렇게 첫차는 어둠 속을 달리고 있었다.

윤형중 기자 hj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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