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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04 20:26 수정 : 2013.10.04 20:26

게이 코러스 ‘지보이스’ 단원들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중구 을지로 서울청소년수련관에서 2주 뒤에 있을 창단 10주년 기념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르포] 게이 코러스 ‘지보이스’ 10주년 공연

▶ 13일 오후 6시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게이 코러스 ‘지보이스’ 창단 10주년 기념 정기공연 ‘열, 애’가 열립니다. ‘열, 애’에는 열렬한 사랑, 지보이스를 향한 10년의 사랑, 열 가지 다른 사랑이란 뜻이 담겨 있습니다. 41명의 단원과 객원 단원 등 총 57명이 무대에 올라 18곡을 부른답니다. 그중 14곡은 지보이스의 자작곡이고요. 공연 예매는 마포아트센터와 인터파크에서 가능합니다.

“다시 일어서자 업/ 달려보자 엉덩이 흔들며 셰이크 셰이크/ 다시 노래하자 업/ 춤을 추자 엉덩이 흔들며 셰이크 셰이크/ 언니들과 함께 엉덩이 흔들며 셰이크 셰이크/ 언니들과 함께 컴 컴/ 언니들과 함께.”

흥겨운 노래가 귀에 닿기 전에 남자 40여명의 군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관객을 향해 손짓하는 대목에선 자못 뇌쇄적인 눈빛도 내뿜었다. 춤추며 허벅지를 찰싹찰싹 때릴 때의 ‘짝짝’ 소리도 추임새처럼 노래에 착착 달라붙었다. 노래 ‘업’(Up)은 동성애 인권운동의 시발점이 된 미국의 ‘스톤월 항쟁’을 모티브로 삼았다. 스톤월 항쟁은 1969년 동성애자·트랜스젠더 등이 자주 모이던 미국 뉴욕시 인근의 ‘스톤월 인’이란 술집을 경찰이 대대적으로 단속하자, 집회·시위를 통해 집단적으로 맞선 사건이다. ‘힘들어도 즐겁게 싸우자’는 내용이 ‘업’에 담긴 메시지였다.

“꿈에서 공연장 천장이 무너졌어요”

가사도 춤도 발랄했지만 어쩐지 몸은 그 흥을 따라가지 못했다. 아이돌그룹 ‘크레용팝’의 5기통 춤을 패러디한 40기통 춤은 몇번을 반복하고야 박자가 맞았다. 그래도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사무국장인 이종걸(34)씨는 “귀엽긴 하겠다. 크레용팝이니까”라며 즐거워했다. 하지만 안무가의 눈은 날카로웠다.

“춤 시작할 때 멈칫하시는 분들 굉장히 잘 보이거든요? 기계적으로는 잘하는데 느낌 좀 넣어주세요. 로봇 같아요.” 이 곡 안무를 맡은 ‘상언니’ 이아무개(31)씨는 웃으면서도 할 말은 다 했다. 상언니는 1월부터 친구사이 활동을 시작한 뉴페이스다. 퀴어퍼레이드 때 ‘끼’를 보여준 덕에 지보이스에 스카우트됐다 이참에 안무가로도 데뷔했다. “춤이 만족스럽냐”는 질문에 “직렬 40기통은 구멍은 좀 있어요. 아무래도 합창단이다 보니 몸으로 하는 건 어려워하네요”라며 아쉬워했다.

지난달 29일 오후 4시30분 서울 중구 을지로 서울청소년수련관에서 게이 코러스(합창단) ‘지보이스’(G Voice) 10주년 정기공연 연습이 시작됐다. 긴장은 계속됐다. 상언니와 바통을 터치한 지휘자 ‘르마’(29)는 오프닝 곡 ‘게이데이’(Gayday) 합창이 끝났는데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악보 펴보세요. 음으로 승부 볼 수 있는 시간은 지났어요. 화음을 잘할 때예요. 조금만 더 잘했으면 좋겠고. 열여덟번째 마디 다시 해볼게요.” 르마씨의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13일 열리는 10주년 정기공연 ‘열, 애’까지 불과 2주가 남았다. 게다가 이번 공연은 첫 유료공연이다. “지보이스 공연 때문에 잠을 설쳐요. 오늘 꾼 꿈에선 공연장 천장이 무너졌어요.” 부담 백배인 르마씨가 압박을 주려 한 말이지만 그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단원들은 오히려 “공연 대박 나겠는데?”라며 좋아한다.

이날 연습의 유일한 관객이었던 나는 이 ‘특별한’ 공연이 마음에 들었다. 노래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부르는 사람이 특별해서 특별한 공연이었다. 13일 무대에 오를 지보이스 단원 41명은 모두 게이다. 지보이스의 이름으로 무대에 오른다는 건 곧 커밍아웃을 뜻한다. 그러나 비장하지만은 않았다. “나 어릴 적 조금은 이상한 아이였죠”(‘피스맨’)라며 정체성 혼란에 방황하던 어린 시절을 긍정하고, “울지 마라 울지 마라 이 거리 누군들 슬프지 않으리”(‘낙원동 블루스’) 하며 고된 하루를 위로하다가도, “너희가 미움을 가르칠 때 우리는 사랑을 하리라”(‘길고양이의 노래’)며 마음을 다잡는다.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자신의 언어를 찾지 못한 이들에게 노래는 말이 되어준다. 고백의 설렘도, 이별의 아픔도, 편견이 주는 상처도 노래와 함께 흘려보낼 수 있었다.

2003년에 태어나 2006년에 재탄생

지보이스는 올해로 열번째 생일을 맞았다. 1994년 2월 만들어진 친구사이의 문턱을 낮추려고 2003년 태어났다. “게이 대중들과 같이 할 수 있는 활동이 필요했어요. 게이 단체에 가면 무조건 커밍아웃 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있어서 거리감이 있었거든요. 쉽게 할 수 있는 활동이 뭘까 생각하다가 합창단을 떠올렸죠. 입소문을 내고 홍보하니까 10명 정도 모였어요. 친구사이 소모임으로 그렇게 시작했죠.” 당시 친구사이 운영진이었던 ‘코러스보이’(전아무개씨·43)가 말했다. 의도는 적중했다. 합창단에 ‘낚여’ 이종걸씨가 친구사이 문을 두드렸다. “게이 포털사이트 ‘이반시티’에서 보고 두번째 연습부터 참여했어요. 자연히 친구사이에도 참여하게 되면서 공개적으로 활동하게 됐고요.” 노래 부르다 ‘진성 게이 인권활동가’가 된 이종걸씨는 2011년부터 사무국장으로 ‘정권’도 잡았다.

“로봇 같다”는 안무가 지적에도
“더 잘해야 한다”는 지휘자 말에도
연습이 즐겁고 좋은 단원들
무대 오르는 건 커밍아웃이지만
당당하게 맞서려 노래를 부른다

김조광수·김승환씨 결혼식 때
오물 맞고도 노래한 지보이스
그들이 직접 만든 노래들은
세상의 편견과 상처에
맞서 싸워줄 무기가 되었다

제2의 탄생은 2006년 지보이스란 이름을 얻으면서부터였다. 소모임으로 활동하면서 찬조 공연만 다니다 보니 단원들 간의 결속력이 약화됐다. “2004년 친구사이 10주년 행사 때 저희 무대가 노래패 ‘꽃다지’ 다음이었어요. 무대가 너무 많이 비교되더라고요.” 이종걸씨 말에 코러스보이가 당시 상황을 보탰다. “그때 지인들에게 ‘애 장난같이 이런 걸 계속하느냐’, ‘왜 실력이 안 느냐’, ‘너희 취미생활을 위해 왜 우리가 고통받아야 하느냐’는 말까지 들었었어요.” 단원이 3~4명만 남는 상황까지 이르자 2006년부터는 지보이스 이름을 달고 정기공연을 시작했다. 이때 또 ‘건져’ 친구사이 대표까지 오른 인재가 있었으니, 노래방에서 실력을 뽐낸 덕분에 스카우트됐다는 박재완(41)씨다.

중학생 때부터 성 정체성 고민을 시작한 재완씨는 오랫동안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이러면 안 된다’, ‘인정할 수 없다’며 스스로를 부정하고 억압하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건 서른이 넘어서부터였다. 하지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게이로 살 것이냐 말 것이냐’의 산을 넘기니 ‘게이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또다른 산을 만났다. “혼자 고민할 게 아니라 나 같은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아는 사람을 통해 코러스보이를 소개받고 친구사이에 나오게 됐어요. 그리고 지보이스를 통해 답을 찾게 됐죠. 1년 열두달, 하루 24시간을 게이로 살겠다고. 게이로도 잘 살 수 있다고요.”

지보이스는 재완씨에게 소통할 수 있는 언어와 사람을 선물했다. 남이 만든 노래가 아니라 게이들이 스스로 작사·작곡한 노래들은 그 누구보다 더 잘 그의 마음을 보듬었다. 1주일에 한번씩 만나는 사람들과 생로병사, 희로애락, 일상사를 공유하며 ‘무조건 믿고 지지해주는’ 내 편도 늘어갔다. “내 마음을 노래로 부르고 또 부르면서 스스로 강해지는 걸 느꼈어요. 노래는 지금의 나를 긍정하고, 앞으로의 나는 지금보다 더 즐거울 수 있다는 믿음을 줬죠.”

재완씨는 세상의 편견과 그로부터 오는 상처에 가장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는 무기 중 하나가 노래라는 걸 삶으로 깨달았다. 그 깨달음 덕분에 그는 지난달 7일 김조광수·김승환씨의 동성 결혼식 축하공연 직전 이 결혼을 반대한다는 한 기독교인이 뿌린 오물을 뒤집어쓴 지보이스 단원들에게 “노래 부를 수 있지?”라고 말할 수 있었다. 지보이스는 서울 종로구 청계천에서 열린 이 결혼식에서 ‘너의 버릇’, ‘컨그래출레이션’ 두 곡을 불렀다. “그 분위기에 눌려서 울고 내려와 버렸으면 아무것도 안 됐을 거예요. 노래 덕분에 그걸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동성애를 혐오하거나 편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재완씨는 자작곡을 통해 말한다. “세상아 너의 죄를 사하노니 사랑 또 사랑이었네.”(‘세상아 너의 죄를 사하노니’) 열심히 싸우는 사람은 즐겁게 싸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는 법이다.

공연 무대에 올라 인사하고 간 아버지

10년 세월만큼 무대 위에서의 추억도 가득하다. 이종걸씨가 잊지 못하는 순간은 2011년 5월15일 아이다호데이(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를 기념한 거리공연이었다. 이전까지의 공연은 실내에서 제한된 사람을 대상으로 했지만, 이 자리는 마로니에공원에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공연이었다. 오가는 사람들의 시선이 지보이스에 꽂혔고, 그 와중에 ‘아우팅’(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성 정체성이 다른 사람에게 드러나는 것)이 벌어졌다. 노래를 부르던 단원을 부모님과 직장 동료가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한 단원은 “너 그거였어?”라고 묻는 직장 동료에게 “어, 나 그거였어”라고 받아쳤지만, 부모님을 만난 단원의 갈등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지보이스를 떠나지 않았다.

“불특정한 사람들에게 나를 보여주는 상황이니 다들 떨렸고, 저런 예상치 못한 사건들도 있었죠. 하지만 이 공연 뒤로 저는 반대로 우리가 거리에 자주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공연을 하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무의식 중에 한번은 쳐다보거든요. 우리를 드러낼수록 쳐다보는 사람도 늘고, 그만큼의 관심도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종걸씨가 말했다. 사람들 앞에 게이인 나를 드러내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지보이스 단원들은 용기가 있어서 무대에 오르기도 하지만, 무대에 오르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도 있었다. 마로니에공원 거리공연은 종걸씨뿐 아니라 다른 단원들에게도 그런 힘을 줬다. “이 공연 준비하면서 한 친구가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하게 분장을 하고 배용준 가발을 썼어요. 근데 거울에 비친 자기를 보면서 너무 슬펐대요.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고요. 결국 공연할 때는 가발 없이 그냥 무대에 올랐어요.”

박재완씨는 2010년 11월28일 ‘장애여성공감’의 장애여성학교 졸업식 축하공연을 최고의 순간으로 기억한다. “공연 제안이 쉬운 일이 아닌데 부탁해준 것”이 고마웠다. 무엇보다 무대에서 느꼈던 ‘소수자들 사이의 공감’은 재완씨에게 위로가 돼주었다. “졸업식이라는 기쁜 자리에 우리를 초대해줬고, 우리의 노래를 즐거워해줬어요. 한명 한명 표정에서 기쁨과 공감을 느낄 수 있었고 함께 호흡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죠. 관객과 공유하는 즐거움, 공감, 소통, 호흡이야말로 지보이스다운 모습이니까요.” 박재완씨의 말처럼 어떤 사람들도 와서 노래를 느낄 수 있도록, 이들의 공연에는 항상 수화·자막 등이 등장한다. 그들 자신이 소수자이기에 자연히 신경쓸 수밖에 없는 부분들이다.

이렇듯 소통할 수 있던 무대는 언제나 최고의 무대였다. 소통은 지보이스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이다. “게이 커뮤니티 안에도 다양한 소모임이 있어요. 그들은 게이들 사이에서만 활동하지만 지보이스는 달라요. 행사도 대대적으로 홍보하면서 대외적으로 드러내려고 하거든요. 게이들에게는 이렇게 자기 표현하면서 긍정하고 용기 내는 사람들이 있고, 일반 사람들에게는 게이들도 이렇게 열심히 산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이 지보이스의 뚜렷한 목적이니까요.” 이종걸씨가 말했다.

소통에의 노력은 불가능해 보이던 가족과의 화해도 끌어냈다. 코러스보이는 지난해의 감동을 떠올렸다. “한 단원 부모님이 공연에 오셨어요. 우리는 그 단원이 지은 ‘엄마 아빠가 변했어요’라는 노래를 불렀고, 아버지는 무대에 올라와 인사를 했죠. ‘우리 아들 착하다. 애인 없으니 데려가라’고 자랑과 홍보도 하셨고요. 감동적인 자리였어요.”

8년째 하는 정기공연이지만 코러스보이에게 무대는 여전히 어렵다. “커밍아웃 한번 한다고 해서 사람들이 항상 기억해주거나 인정해주진 않잖아요. 가족이나 친한 사람들은 여전히 불편해해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항상 새롭게 커밍아웃을 해야 하고요. 편하게 무대에 서는 게 아니에요.” 그러나 그가 작사한 지보이스의 첫 자작곡인 ‘벽장 문을 열어’ 가사처럼 당당히 세상에 맞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 그는 이번에도 무대에 오른다.

“혼자인 줄 알았네 벽장 속에서 그러나 용기내어 문 열었을 때 그가 내민 손 잡고 나왔을 때 나는 깨달았네 혼자가 아니란 걸 이제는 당당하게 맞서야 할 때 달라도 같은 세상 만들기 위해.”(‘벽장 문을 열어’)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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