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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3.10.18 19:55 수정 : 2013.10.18 21:02

[토요판/르포] 엘빠 기자의 가을야구 관람기

▶ 2013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이 무르익고 있습니다. 지난 14일까지 치러진 준플레이오프에 이어 16일 플레이오프 1차전이 열렸습니다. ‘골수 엘빠’인 한겨레 토요판팀 최성진 기자가 그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엘지의 플레이오프 상대인 두산 베어스, 그리고 한국시리즈에서 맞붙게 될(?) 삼성 라이온즈 팬 여러분께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다만, 엘지한테는 11년 만의 가을잔치랍니다. 한번만 봐주십시오.

지난 5일 토요일, 별다른 일정이 없는 주말이었기에 하루 종일 집에 틀어박혀 책을 뒤적이거나 낮잠을 잤다. 티브이(TV)는 켜지 않았다. 엘지(LG) 트윈스의 2013 한국프로야구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를 외면하려고, 나는 최선을 다했다. 친한 회사 후배로부터 휴대전화 메시지가 도착한 것은 저녁 7시57분이었다.

“엘지 2위인가요.ㅎㅎ”

엘지 2위라니. 이 말이 성립하려면 두 가지 경우의 수가 맞아떨어져야 했다. 우선 이날 같은 시각(오후 5시)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시작한 넥센 히어로즈-한화 이글스 경기에서 넥센이 한화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이와 함께 서울 잠실야구장에서는 엘지가 두산 베어스를 꺾어야 가능했던 것이 ‘엘지 2위’였다. 우선 시즌 후반기인 지난 9월 하순부터 부쩍 힘이 떨어진 모습을 보이던 엘지가 막강 공격력과 수비력을 갖춘 두산을 이긴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시즌 막판 무서운 상승세를 보인 넥센이 부동의 ‘꼴찌’ 한화에 무릎을 꿇는 장면은 더욱 상상하기 어려웠다. 두 가지 경우의 수 가운데 하나라도 어긋나 시즌 내내 1위 자리까지 넘봤던 엘지가 결국 3~4위로 처진 채 황망히 시즌을 마감하는 장면은 보고 싶지 않았다.

박용택이 울었다, 나도 울었다

메시지를 확인한 뒤 ‘얘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마음으로 비로소 티브이를 켰다. 8회 말 트윈스의 공격이 막 끝났고, 그때까지의 엘지는 5-2로 두산을 앞서고 있었다. 다시 빠르게 넥센-한화전 상황을 살피려 채널을 돌렸다. 경기는 이미 끝난 뒤였다. 넥센의 한 점 차(1-2) 패배였다.

‘아…’ 짧은 탄성이 튀어나왔다. 9회 초 두산 공격만 잘 막으면 엘지 2위가 맞다. 9회 초 엘지 마운드에는 마무리 투수 봉중근이 올라왔다. 내 마음속 리그 최강의 클로저(closer), 등번호 51번 봉중근이었다. 그는 두산의 마지막 타자 정수빈을 우익수 뜬공으로 잡으며 경기를 끝냈다. 교체 투입된 엘지의 우익수 양영동이 정수빈의 타구를 잡아내며 무릎을 꿇는 순간, 엘지의 모든 선수는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왔다. 엘지 선수에게도 팬에게도 그 순간은 무척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시즌 막판까지 노려봤던 1위 자리는 아니었지만, 2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는 게 어딘가.

나는 보았다. 뜨겁게 달아오른 타격감으로 멀티히트를 자주 기록하는 ‘용암택’, 아니 이제는 ‘가을택’ 박용택이 울고 있었다. 엘지 입단 이후 팔꿈치 인대 수술만 세번을 받고도 모자라 마지막 남은 팔 인대마저 팀을 위해 바치겠다고 약속했던 투수 이동현도 눈물을 훔쳤다.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과 국내 복귀 등 방황을 거듭하다 돌아와 올시즌 팀내 최다승인 12승을 거둔 선발투수 류제국의 눈가도 촉촉이 젖어 있었다.

“엘지 2위인가요 ㅎㅎ”
회사 후배의 문자를 보고
5일 비로소 티브이를 켰다
울컥 쏟아지는 눈물을 삼키며
짜장면과 군만두를 먹었다

플레이오프 1차전을 보러
16일 잠실야구장을 찾았다
선발투수는 ‘승부남’ 류제국
엘지가 질 수 없는 경기였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온종일 정체를 알 수 없는 초조함과 불안감, 착잡함에 휩싸여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나의 저녁 메뉴는 (하필이면) 짜장면과 군만두였다. 울컥 쏟아지는 눈물을 삼키며 짜장면을 먹을 때 느꼈다. 그래, 이것이 진정한 ‘가을야구’의 맛이구나.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한테 우승을 내준 뒤 다시는 포스트시즌에 초대받지 못했던 엘지였기에, 나는 그 맛을 잊고 있었다. 날아오를 듯 기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뭔가 묵직하게 복받치는 감정. 골수 엘지팬(엘빠)인 내게 11년 만의 가을야구는 불어터진 짜장면 맛으로 다가왔다.

가을야구, 곧 포스트시즌은 정규시즌 3·4위팀이 벌이는 준플레이오프, 준플레이오프의 승자와 2위팀이 맞붙는 플레이오프, 그리고 플레이오프 승자와 1위팀이 최종 우승을 놓고 겨루는 한국시리즈로 이뤄진다. 따라서 가을야구에 진출한다는 것은 9개 팀(지난해까지는 8개 팀) 가운데 4위 이상의 자리를 확보했다는 이야기다. 또 이 말은 지난해까지 엘지가 10년간 8개팀 가운데 4위 이상을 한번도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규시즌에서 2위 자리를 확보해 플레이오프로 직행한 올해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오랜만에 올라온 포스트시즌인데, 내친김에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가봐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한국시리즈에 먼저 도착한 삼성을 꺾고 우승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플레이오프만이라도 통과하자는 것인데 얼마나 소박한가.

자 와라 붙어보자 곰돌이, 으하하하!

지난 8일 포스트시즌 개막과 함께 넥센-두산이 준플레이오프를 시작했을 때, 나는 엘지의 플레이오프 승리를 위한 3대 선결조건을 (내 멋대로) 제시한 바 있다. 첫째, 준플레이오프 승자는 엘지만 만나면 비정상적인 경기력을 뽐내는 넥센 대신 그래도 해볼 만한 상대인 두산이라야 한다. 둘째, 넥센과 두산은 5전3선승제의 준플레이오프에서 반드시 5번 이상 경기를 치러야 한다.(상대전적 2승2패 상황에서 최종전인 5차전마저 비기면 재경기를 치르게 돼 있다.^^) 셋째, 어느 팀이 준플레이오프 승자가 되든 투수력을 최대한 소진한 채 올라와야 한다.

이런 시나리오는 거의 맞아떨어졌다. 두산은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1~2차전을 모두 내주며 벼랑 끝으로 몰렸다. 두산이 힘 한번 못 쓰고 무너지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두산은 3~4차전을 잡아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뒤, 최종전인 지난 14일 5차전에서 연장전까지 치르는 접전 끝에 넥센을 물리치며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넥센과 두산의 이번 준플레이오프는 대단히 치열했다. 5경기 가운데 4경기가 한 점 차 승부였고, 3경기가 끝내기 승부였으며, 연장전도 세 차례나 치러졌다. 넥센도, 두산도 모든 전력을 쏟아부어야 했다. 특히 두산은 시즌 중반 부상으로 한동안 선발 로테이션을 거르면서도 12승4패를 거둔 리그 최강의 선발투수 더스틴 니퍼트를 4차전과 5차전 불펜으로 연속 등판시켰다. 엘지에 강했던 좌완 선발투수 유희관도 5차전 선발투수로 나섰으니, 적어도 플레이오프 1~2차전(16~17일)에는 이 두 선수의 등판이 불가능했다. 자, 와라. 붙어보자 곰돌이, 으하하하.

지난 16일 오후 6시 엘지와 두산의 플레이오프 1차전이 시작될 때, 나는 잠실야구장에 있었다. 이날 경기는 2위팀 엘지의 홈경기로 열렸다. 나는 1루 홈팀 응원석으로 막 들어설 때의 느낌을 좋아한다. 특히 해가 막 저물어 전광판이 하나둘 불을 밝히면 잠실야구장은 그 어떤 공간보다 근사해진다.

이날 두 팀의 선발투수는 엘지의 류제국과 두산의 노경은이었다. 류제국은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뒤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이번 시즌 국내로 복귀했다. 국내 복귀 이전까지 부상 등으로 4년의 공백기를 거친 탓에 그의 활약에는 물음표가 붙어 있었다. 그는 야구계의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번 시즌 12승2패(승률 1위·다승 7위)를 거두며 ‘야잘잘’(야구는 잘하는 사람이 잘한다) 이론을 몸으로 증명한 투수였다. 노경은은 2003년 두산에 입단해 2011년까지 ‘노망주’(나이든 유망주)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그가 잠재력을 터뜨린 것은 무려 입단 10년차에 접어든 지난 시즌(12승6패·평균자책점 2.53)이었다. 이번 시즌에도 10승(10패)을 채우며 나름의 역할을 했다.

두 팀 선발의 무게감을 본다면 어느 한쪽의 일방적 우세를 점치기 어려웠다. 다만 ‘팬심’을 조금 보태 전망한다면 이건 엘지가 질 수 없는 경기였다. 류제국의 별명은 ‘승부남’(승리를 부르는 남자) ‘승리의 아이콘’이다. 한국 프로야구 데뷔 첫해 승률왕을 차지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게다가 올시즌 그가 선발로 등판한 20경기에서 엘지는 17승(3패)을 수확했다. 그가 나오는 날은 곧 엘지가 이기는 날이라는 이야기다.

이와 달리 두산은 콧수염 노망주, 아니 노경은만 내려가면 절벽이다. 두산의 불펜은 가뜩이나 엘지에 견줘 허약했다. 준플레이오프까지 치르느라 지치기도 많이 지쳤다. 뒷문을 틀어막는 마무리투수는 아예 정해지지 않았다. 노경은이 타자 앞에서 뚝 떨어뜨리는 포크볼에 헛스윙만 남발하지 않고 차분히 투구수를 늘려 불펜투수를 최대한 일찍 끌어낸다면, 승리는 우리 것이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예상이었고.

‘승부남’에 건 압승 기대는 1회초에 깨지고…

“야구 몰라요.”

야구 해설로 잔뼈가 굵은 어떤 원로급 해설위원은 이런 명언을 남겼다. 구수한 입담을 특징으로 하는 과거 그의 해설은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지금은 변화구 타이밍으로 봐야 돼요. 타자의 머릿속에는 연속으로 들어온 빠른 공만 그려져 있을 거란 말이에요. 이때 투수가 체인지업이나 떨어지는 포크볼로 가면 타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가 이렇게 말하면 결과는 대개 벼락처럼 빠른 공, 타자의 헛스윙 삼진이다. 이때 그는 마치 구렁이가 담 넘어가듯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아, 역으로 가네요. 지금 투수가 허를 찌르는 볼배합으로 상대 타자를 완벽하게 속였어요.” 여기에 따라붙는 추임새가 “야구 몰라요”다. 그래, 야구는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정말 야구를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수십년째 야구를 해설하고 있겠지.

압승의 기대는 1회 초 이미 깨졌다. 류제국은 1회 초 두산의 공격이 시작되자마자 선두타자 이종욱에게 홈런이나 다를 바 없는 3루타를 허용했다. 후속타자 정수빈에게는 볼넷을 내줬다. 얼씨구.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무사 1·3루의 위기가 찾아왔다. 야구장을 뜨거운 함성으로 달구었던 1루 쪽 홈팀 응원석은 경기 시작과 함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의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 엘지 응원석에서 다시 함성이 터지기 시작한 건 경기 시작 20분이 더 지난 오후 6시21분, 류제국이 홍성흔을 헛스윙 삼진으로 잡고 난 뒤였다. 첫번째 아웃카운트를 잡기까지 21분이 걸렸다. 엘지는 1회 초 수비에서 3루수 정성훈의 송구 실책 등으로 두 점을 먼저 내줬다.

곧바로 이어진 1회 말 반격에서 엘지의 2번 타자 이병규(등번호 7번)가 동점 투런포를 쏘아올렸다. 주위의 수많은 엘빠와 뒤섞여 이병규를 연호할 때는 더없이 행복했다. 그래 이것이 가을야구로구나, 나가자 엘지! 싸우자 엘지!

1차전 경기는 6회까지 2-2 팽팽하게 진행됐다. 날카로운 신경전은 두 팀 응원단의 앰프 싸움으로도 이어졌다. 프로야구 경기에서 홈팀 응원단은 대개 원정팀보다 두 배 더 많은 앰프를 쓴다. 그런데 잠실야구장을 함께 쓰는 엘지와 두산은 이번 플레이오프만큼은 홈팀과 원정팀 구분 없이 똑같은 음량의 앰프를 사용하기로 했다. 문제는 원정팀 두산의 앰프 소리가 더 크게 울렸다는 사실이다. 엘지 응원석 곳곳에서 항의가 터져나왔다. 결국 장내 아나운서는 4회 초 두산 공격 때 두산 응원석을 향해 “경기중에는 과도한 앰프 사용을 자제해달라”고 당부하기에 이르렀다.

승부의 추가 두산 쪽으로 기운 것은 7회 초였다. 다시 정성훈의 실책이 엘지의 발목을 잡았다. 선두타자 이종욱에게 안타를 맞은 것이 좋지 않았다. 엘지가 아웃카운트 두 개를 잡는 동안 1루 주자 이종욱은 한 베이스씩 차근차근 진루했다. 2사 3루 상황에서 두산의 4번 최준석과 맞닥뜨린 투수는 엘지의 중간계투 유원상이었다.

유원상의 공은 나쁘지 않았다. 최준석을 상대로 땅볼을 유도하는 데도 성공했다. 불행이라면 그 공이 1회 초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던 3루수 정성훈 쪽으로 크게 튀어 날아갔다는 사실이었다. 지난해부터 내야 강습타구 수비시 포구에 적잖은 문제를 보였던 정성훈은 아니나 다를까 최준석 타구를 글러브 밑으로 빠뜨리고 말았다. 그사이 3루 주자 이종욱이 득점에 성공했다. 홈팀 응원석에 또다시 익숙한 침묵이 찾아왔다. 반면 3루 응원석에서는 난리가 났다. 두산의 흰색 응원막대가 춤을 췄다. 그래, 이것이 엘지 야구다. 뭔가 될 듯하면서도 안 되고, 이번 고비 한번만 넘기면 될 것 같은데, 번번이 그 한번의 고비를 넘지 못해 고개를 떨구는 답답한 야구는 지난 11년간 엘지 야구의 특징이었다.

결국 엘지는 이날 2-4로 졌다. 두 차례의 실책이 모두 점수로 연결된 것이 결정적 패인이었다. 승리를 부르는 남자 류제국을 내고도 지칠 대로 지친 두산을 상대로 질 수 있는 것이 야구다. 야구는 모르는 것이기에 그 어떤 것도 가능한 결과라고 생각하면 편할 텐데, 이런 마인드 컨트롤이 가능했다면 나는 이미 부처가 됐겠지.

17일 열린 2차전에서는 엘지가 레다메스 리즈의 강속구를 앞세워 두산을 2-0으로 꺾었다. 전날 패배로 되살아났던 ‘그러면 그렇지’라는 익숙한 체념은 단 하루 만에 장밋빛 희망으로 바뀌었다. 자, 그러니까 따져보자. 3차전에서 상대 선발 더스틴 니퍼트는 준플레이오프 4~5차전의 연투로 많은 공을 던질 수 없을 테니 최대한 많은 공을 던지게 하고, 동시에 타석에 최대한 가까이 붙어 니퍼트의 강점이라 할 수 있는 몸쪽 공을 쉽게 던질 수 없게 만든다면….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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