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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06.13 18:51 수정 : 2014.06.17 17:31

미군 헌병 4명, 카투사 병사, 용산경찰서 소속 경찰이 지난 5월23일 금요일 밤 한미합동순찰을 하는 모습. 한미합동순찰은 1994년부터 시작됐다. 최근엔 매일 밤 11시와 새벽 1시 두차례 실시한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르포, 이태원 파출소의 밤

▶ 잊을 만하면 또 나옵니다. 미군 범죄 이야깁니다. 지난해 주한미군 하사관이 이태원에서 한국의 시민들에게 비비탄을 쏘며 난동을 부렸습니다. 이런 사건 때문에 국제도시 이태원의 분위기가 나빠집니다. ‘이태원 프리덤’이라는 노래에 미군 범죄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미군 헌병대와 용산경찰서의 한-미 합동 순찰을 따라가 봤습니다. 트랜스젠더 바 골목과 클럽 거리를 함께 돌았습니다. 금요일 밤 ‘이태원 프리덤’을 지키는 일은 힘들어 보였습니다.

이태원은 즐거움의 최전방이다. 쾌락과 범죄 사이엔 희미한 형법의 선이 있다.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치료목적 대마가 합법이지만 한국에서는 무조건 불법인 것처럼, 때로 그 선은 희미하다. 쾌락과 범죄 사이에 국적의 문턱도 있다. 지난해 3월 주한미군 하사관이 이태원에서 한국 시민들에게 비비탄총을 쐈다. 1997년 미국인 군속이 저지른 것으로 추정되는 ‘이태원 살인사건’을 여전히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코즈모폴리턴 이태원은 외국인 범죄의 최전선이다.

“아이 라이크 오바마” 어느 외국인의 횡설수설

‘비비탄 사건’이 벌어진 뒤 1년이 지난 이태원을 찾았다. 지난 5월23일 금요일 밤 이태원에서 범죄의 흔적을 찾기는 쉽지 않다. 이날 최고기온은 27.8℃였다. 이날 밤 3번 출구를 나오자마자 1층 생활용품점 ‘올리브영’과 2층 ‘Marrakech(마라케시) 모로코 레스토랑’ 간판 아래 무심하게 웃으며 지나는 사람들이 보인다. 얼마 전까지 바로 그 건물에 미국 햄버거체인 ‘버거킹’이 있었고 1997년 버거킹 화장실에서 미국인 군속에게 한국 청년이 살해당한 사건이 있었음을 아는 행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용의자 아서 패터슨이 아직도 한국 법정에 송환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행인은 더욱 적을 것이다. 3번 출구 앞 인도에 면한 ‘Ankara Picnic’(앙카라 피크닉) 간판 아래 되네르 케밥(원통 모양으로 수직으로 고기를 쌓아 익히는 터키식 고기요리)을 익히는 수직오븐 열기가 없었더라도 밤 10시의 이태원은 여전히 더웠을 것이다. 밤 10시5분 이태원 파출소 앞은 벌써 붐볐다.

밤 10시50분께 미군 헌병 4명이 이태원 파출소 옆에 서서 담배를 꺼내 문다. 그중 한명이 파출소에 들어와 오늘 밤 순찰을 돌 미군 4명의 이름을 상황일지에 기록했다. 카투사 상병 한명이 미군들과 동행했다. 용산경찰서 생활안전계 소속의 박성채 의경과 김기운 순경이 오늘 밤 이들과 함께 순찰을 돈다. 이태원을 찾는 미군이나 외국인들의 범죄에 한국인이 피해자가 되거나 연루될 가능성이 많다. 능숙한 통역자가 필수다.

이태원은 밤 10시50분에 서서히 깨어난다. 인도에 오고가는 사람의 절반은 외국인이다. 미군 헌병 한명에게, 아랍계인지 흑인인지 불분명한 중년 남성이 다가와 된소리를 가득 섞어 “아이 라이크 오바마”(I like Obama)를 외치며 횡설수설하다 사라진다. 술 취한 사람의 절반도 외국인이다. 이태원은 메트로폴리스 서울 안의 국제도시다.

“출발하시죠.” 제복 상의 팔 부분이 삼두근으로 꽉 끼는 김 순경이 모자를 꾹 눌러썼다. 제대를 2주 앞둔 박 의경은 벌써 미군 헌병들과 농담을 주고받고 있다. 용산경찰서의 하루 112신고 수는 서울시내 경찰서 31곳 중에 14번째로 많다. 평균 320여건이다. 그중 이태원 파출소에서만 매일 평균 30~40건의 신고가 들어온다. 적지 않은 신고가 외국인과 관련있다. 미8군 출장소가 이태원 파출소 안에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밤 11시 미군 헌병 4명, 카투사 1명, 용산경찰서 경찰 2명이 첫번째 순찰을 시작한다.

이태원 파출소에서 나오자마자 2분 거리에 있는 ‘Club UN’(클럽 유엔) 간판 아래 7명이 멈췄다. 헌병과 박성채 의경이 익숙하게 영어로 클럽 경비(기도)와 인사를 주고받는다. 영어가 능숙한 박 의경과 헌병 1명 등 2명이 클럽 안에 직접 들어갔다. 소프트모히칸 헤어스타일의 박 의경은 180㎝가 넘는 키에 근육질이다. 상체도 좋지만 하체가 발달했다. 햄스트링(허벅지 뒷부분) 근육 때문에 허벅지 안쪽이 완전히 붙지 않고 약간 벌리며 걷는다. 지난해 9월부터 용산경찰서 이태원 파출소에 배치돼 그때부터 한미합동순찰에 참여했다. 고등학교까지는 한국에서 졸업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한 공과대학을 다니다 입대했다. 영어를 잘해 최전방에 배치된 셈이다. ‘수경’인 그는 군대로 치면 낙엽도 조심한다는 병장에 해당한다. 그러나 ‘낙엽’을 피하기는커녕, 늘 하던 대로 최전방 순찰을 한다. 평균 일주일에 네 번 한미합동순찰에 참여한다.

그 옆에는 김기운 순경이 있다. 박 의경과 김 순경의 몸은 피지컬이 좋은 외국인들을 대할 일이 많은 이곳에서, ‘나는 보통 동양인과 다르다’는 경고를 주는 제복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클럽 유엔’을 나와 ‘PASHA-Turkish quisine & icecream’(파샤) 간판 아래를 지나면 ‘미스터 케밥 이태원점’ 앞에서 터키 남자가 “맛있어요”를 연신 외치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 소리에 슬며시 웃음을 던지고 오른쪽으로 난 왕복 2차선 도로로 우회전하자마자 간판 ‘Russian клуб Rio’ 네온사인 불빛이 한미합동 순찰대원 모자챙 아래에 긴 그림자를 만든다. ‘클루프’로 발음되는 러시아 키릴문자 ‘клуб’는 영어단어 ‘클럽’(club)에 해당한다. 러시안 클럽을 끼고 왼쪽을 보면 폭 7~8m의 경사 20˚쯤 되는 가파른 골목이 시작되는 위치에 ‘19세 미만 통행제한’ 표지판이 서 있다. 표지판의 문구를 읽으려 잠시 주춤거리는데, 이 거리가 익숙한 헌병대는 이미 성큼성큼 앞서 가 있다. 한곳한곳 들어갔다 나오며 순찰을 시작한다. 여기서부터 트랜스젠더 바가 잇달아 있다. 미군 헌병대의 핵심 순찰 지역이다.

비비탄 사건 1년 지난 이태원
미 헌병과 한국 경찰 함께 순찰
새벽 1시부터 긴장감 최고조
5시까지 미군 통행금지 시간
클럽에 있다간 헌병에게 체포

98개국 2653명 외국인 사는 곳
술 취한 사람 절반도 외국인
매일 평균 30~40건 신고 접수
클럽과 트랜스젠더바 한곳한곳
들어갔다 나오면서 이상 체크

호빠 전단지와 ‘깨진 유리창 이론’

“지난 2월부터 이태원 파출소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태원에 배치된 뒤 순찰을 돌다 난동을 부리던 외국인 상대로 테이저건을 쏴본 적이 있는데 키 190㎝에 몸무게 200㎏이라 테이저건(효과)이 안 먹더군요.” 테이저건(Taser Gun)은 경찰이 사용하는 권총형 진압 장비다. 고압 전류가 흐르는 전선이 달린 전기 침 두 개가 동시에 발사되어 전기 충격을 준다. 김 순경은 조용한 말투로 설명했다. 2011년 경찰에 들어왔다. 범죄자를 잡는 일이 그의 직업이다. 폭력과 같은 실제 범죄의 결과뿐 아니라, 범의(범죄 의도)가 있는지 없는지 사전에 일분일초 판단해야 하는 긴장과의 싸움이다. 용산경찰서 배치 전에는 기동대에서 집회·시위 현장에 배치됐다. “내일(24일) 세월호 집회 있대요. 혹시 아세요? 내일은 집회 현장으로 기동대에 파견나가야 합니다.” 그는 주말인 토요일 다른 1984년생의 한국 남자들과 다른, 좀더 터프한 주말을 보내야 한다.

‘ㅁ’자 모양으로 바 골목을 순찰한 뒤, 다시 러시안 클럽 앞을 지나쳐 나온다. 건널목을 건너 해밀턴호텔 주변 식당가와 클럽거리로 향했다. 미군 헌병과 박 의경이 들어갔다 나왔다. 한미합동순찰대는 11시50분께 첫번째 순찰을 마치고 맥도널드에 요기를 하러 들어갔다.

그들이 순찰하던 사이 용산경찰서 산하 여러 지구대에 소속된 경찰 4명이 오늘 밤 이태원 자전거순찰팀 ‘참수리’가 돼 순찰한다. 이화여대 교육공학과 2학년생으로 지난해 경찰에 들어온 정혜인(23) 순경은 제 또래의 여자들이 앉아서 맥주를 홀짝이거나 남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해밀턴호텔 뒤편 레스토랑 거리를 제복을 입고 걷는다. 대학생인데 경찰이다. 용중지구대 소속으로 ‘주간-야간-비번-휴무’로 이어지는 4교대 근무를 한다. 야간 근무가 있는 날과 비번인 날 수업을 몰아 듣는다. 이날 밤 용산경찰서 김정환(54) 생활안전과장도 순찰에 함께했다. 그는 “깨진 유리창 이론”을 말했다. “호빠 전단지 길바닥에 뿌리는 것부터 잡아야 됩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은 미국 뉴욕 시장 줄리아니가 치안에 적용한 범죄이론이다. 깨진 유리창처럼 사소한 위반과 무질서한 분위기가 범죄를 낳는다는 주장이다. 김 과장에게 이태원의 치안은 ‘깨진 유리창’을 보수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접착제가 발라진 호빠 전단지를 도로에 붙이는 행위가, 생활안전과 이해권(44) 팀장의 표적이다. 자전거 순찰을 마친 12시부터 1시까지 해밀턴호텔 주변을 계속 돌았다.

용산경찰서(서장 진정무)는 지난 3월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관광특구 ‘이태원 종합 치안대책’을 발표하고 금·토요일 밤 경찰력을 집중 투입해 외국인 범죄와 불법주차 등을 단속 중이다. ‘클린 이태원 선포식’도 열었다. 용산구청도 지난해 10월 이태원 특화거리 조성식을 여는 등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정책은 책상에서 나오지만, 정책의 집행은 현장에서 벌어진다.

새벽 1시 두번째 순찰 때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한다. 새벽 1시가 현재 주한미군의 야간 통행금지 시간이다. 야간 통행금지 시간은 시기에 따라 달라져왔으나, 잇단 주한미군 범죄로 2012년 이후 주말·평일 구분 없이 ‘새벽 1~5시’다. 즉 새벽 1시 이후 어느 클럽에서건 미군임이 드러난 순간, 그 병사는 미 헌병에게 체포된다. 새벽에도 다시 트랜스젠더 바와 클럽을 위주로 순찰했다. 새벽 1시20분께 박 의경과 헌병들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바 골목을 올랐다. 185㎝가 넘어 보이는 흑인 한명이 걸어 내려왔다. 짧은 헤어스타일을 했다. 미군 헌병과 박 의경이 순간 눈짓을 주고받았다. “헤이 맨, 캔 아이 체크 업?”(잠시 검문하겠습니다) 박 의경은 익숙하게 외국인의 신분증을 보고 돌려줬다. “생큐 베리 머치.”(대단히 감사합니다) 일부러 길게 발음해 티 나게 감사를 표하는 ‘베리 머치’는, 공손한 ‘쿠드’(Could)가 아니라 툭 던지는 ‘캔’(Can)으로 말을 건 것과 어울리지 않아, 묘한 긴장의 끝맛을 줬다.

용산경찰서는 지난 3월 ‘이태원 종합 치안대책’을 발표하고 금·토요일 밤 경찰력을 집중 투입해 외국인 범죄와 불법주차 등을 단속 중이다. 경찰의 노력으로 ‘이태원 프리덤’은 즐길 만한 것이 된다. 강재훈 선임기자
출입국관리소 통해 인상착의로 신분 확인

이날 순찰은 새벽 2시쯤 끝났다. 오늘은 다행히 아무 사건도 벌어지지 않고 끝났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미군 범죄는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6월1일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한 물놀이장에서 미군 3명이 여직원의 몸을 쓰다듬고 출동한 한국 경찰을 폭행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들은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한미행정협정(주둔군지위협정·SOFA) 탓에 경찰의 적극 수사도 쉽지 않다. 국민으로부터 미군과 함께 비판받는 일도 적지 않다. 이태원 파출소는 늘 이런 일을 경계한다. 정책은 서장과 서울경찰청의 책상에서 나오지만, 실행은 생활안전과장, 의경, 순경 등이 전방에서 담당한다. 그들이 ‘지오피’(GOP·전방초소) 근무자다.

“(이태원 파출소가) 불친절하다는 말도 나오는데, 실제 그런 건 아닙니다. 업무에 시달리다 보니 날카로워지는 경우가 많아요. 술 먹고 난동 피우는 분들이 많아서… 여건도 좋아졌으면 해요. 그 넓은 이태원을 돌아다니는데 순찰차가 3대뿐이에요. 삶이 거칠어져요.” 박 의경은 몇번의 순찰을 더 한 뒤, 6월12일 제대했다. 그는 다시 1990년생의 평범한 청년으로 돌아갈 것이다. 영어를 잘하는 신임 의경 2명이 박 의경의 후임으로 최근 이태원 파출소에 배치됐다.

“같은 범죄라도 외국인이면 처리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가령 신분 확인도 쉽지 않아요. (신분증이 없는 경우) 출입국관리소에 일일이 인상착의를 말해서 물어 확인해야 하죠.” 김 순경이 설명했다. 용산구청의 통계를 보면, 이태원동에 98개국 출신 외국인 2653명이 주민신고를 했다. 한국인은 1만8858명이다. 신고하지 않은 거주자나 주말에 방문하는 외국인 수치는 훨씬 많다. 2013년 한해 이태원 파출소에 모두 1136건의 112신고가 접수됐다. 적지 않은 수가 외국인들과 관련있다.

5월24일로 넘어가는 새벽 2시17분 이태원역 3번 출구 앞에 아직 사람이 많다. ‘앙카라 피크닉’ 간판 아래 터키인 요리사가 피곤한 표정으로 하품을 하며 칼을 수직으로 움직여 되네르 케밥을 썬다. 클럽 B1의 간판 불빛이 이태원 파출소를 시야에서 덮어버린다. 이태원은 쾌락의 최전방이다. 쾌락과 범죄의 경계선은 흐릿하다. 그 쾌락의 분계선에 이태원 파출소가 있다.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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