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르포
가자에서 온 편지
▶ 이스라엘 정부의 허락 없이는 누구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열린 감옥’ 가자지구에는 오늘도 공습이 이어집니다. 200여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스러지고 집들은 폭격을 맞았습니다. ‘국경 없는 의사회’ 활동가로 1년째 예루살렘과 가자지구를 오가는 한국인 활동가 김아진씨가 <한겨레>에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세계 건너편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참상,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이 편지를 통해 묻어납니다.
이스라엘군이 지난 8일 가지지구에 대규모 공습인 ‘프로텍티브 에지 작전’을 벌이기 이틀 전, 나는 가자지구에 들어서는 길목인 에레즈 국경을 통과했다. 에레즈 검문소에는 보통 내 몸의 두 배만한 짐을 든 팔레스타인 사람들로 붐비는데 이들의 이동이 통제되는 바람에 한가하기만 했다. 국경을 넘어 분쟁의 땅인 가자에 두 발을 붙이면 몇 킬로미터 떨어진 첨단의 이스라엘과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길은 비포장이고 차들은 제멋대로 달리는데 그 사이로 당나귀들이 유유히 걷고 아이들은 뛰어다닌다. 여기저기 먼지와 쓰레기가 날아다니지만 음식도 맛있고 친철한 사람들도 많이 사는 곳, 그곳이 바로 가자다.
6일 가자지구 진료소에 들러 사람들을 만나니 언제나처럼 가자 쪽에서 로켓을 쏘고 이스라엘도 폭격을 하고는 있지만 아주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했다. 그날 밤, 잠을 자다 ‘쿵’ 굉음이 들렸다. 그게 가자에서 평화롭게 보낸 마지막 밤이었다. 가자지구에서 굉음이 들리는 건 흔한 일이어서 큰일은 아니겠지 싶어 또다시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이스라엘 쪽에서 대규모 공습을 할 것 같아. 다음날이면 검문소가 닫힐 수 있으니 일단 여길 나가는 것이 좋겠어.” 국경 없는 의사회 가자지구 현장 책임자인 니콜라는 어두운 표정으로 짐을 싸라고 했다. 응급 상황이 생기면 꼭 필요한 인력만 남는 국경 없는 의사회의 규정상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가자지구에 들어갈 때마다 짐을 들어주고 운전을 하며 필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짠 하고 나타나 모든 일을 해결하는 ‘가자지구의 N반장’(국경 없는 의사회에서 일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실명이 아닌 익명으로 전한다)은 에레즈 국경까지 나를 데려다 줬다.
늘 전쟁과 일상 가운데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은 나 같은 외국인보다 가자지구의 상황을 훨씬 정확하고 예민하게 파악한다. 전날 N과 함께 카나페를 먹기로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야 했다. “너를 언제 또 볼 수 있을까?” N의 말은 전운이 무척 가까이 다가왔다는 뜻이었다. “인샬라.”(신이 원하신다면) 나는 그에게 이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이스라엘군의 대대적 공습은 현재까지 200명이 넘는 가자의 생명을 앗아갔다. 가자에 있는 동료들과 전화를 하면 쉴 새 없는 폭격에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매트리스를 깔고 함께 모여 있다는 얘기를 전해주고 있다. 잇몸이 드러날 만큼 늘 환하게 웃는 팔레스타인 직원 M의 집도 공습으로 유리 창문이 부서져 대피를 했다. 가자지구의 국경 없는 의사회 진료소에는 현재 환자를 수술할 수 있는 외과 병동이 없다. 예루살렘에 있는 수술팀 의료진들은 에레즈 검문소가 다시 열려 가자에서 수술을 할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최근 수술팀 의료진 가운데 일부가 가자지구에 도착했다.
“검문소가 닫힐지도 몰라 일단 여길 나가는 게 좋겠어”
결국 난 에레즈국경을 나왔다
그다음날부터 가자지구에선
200명 넘는 생명이 희생됐다 나는 퇴근길에 돌을 모으는
한 10대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가끔씩 무화과를 건네던 소년
친구 죽음이 슬퍼서 나섰다는
그 아이는 과연 테러리스트일까 돌멩이를 집어든 슈아파트의 소년들 나는 지금 동예루살렘의 슈아파트에 살고 있다. 조용하기만 했던 슈아파트는 한 팔레스타인 소년의 죽음으로 시위가 들불처럼 번진 진원지다. 지난달 30일 이스라엘 청소년 3명이 실종된 지 약 2주 만에 주검으로 발견되자 이튿날 팔레스타인의 17살 소년 무함마드 아부 카다이르가 슈아파트의 모스크 앞에서 납치·살해됐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법무장관은 소년이 산 채로 불에 탔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이스라엘 경찰은 지난 6일 팔레스타인 소년을 납치·살해한 혐의로 유대인 6명을 체포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소년의 죽음에 격분했다. 이스라엘은 유대인이 사는 서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인이 사는 동예루살렘으로 구분되는데 슈아파트는 동예루살렘 가운데서도 중산층이 주로 사는 동네다. 서예루살렘에 비해 물가가 싸다 보니 유대인들도 가끔 시장에 물건을 사러 온다. 슈아파트 사람들은 팔레스타인 소년이 불에 탄 채 발견되자 돌과 병을 던지고 신호등과 노면전차 도로를 부수며 이스라엘에 분노를 터뜨렸다. 이스라엘 경찰은 최루탄과 고무총을 쏘며 대응했고 그 강도가 심해지면서 도로가 통제됐다. 나는 퇴근길에 돌을 모으는 10대 청소년들을 보다 한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늘 동네에서 오가며 만나면 인사하거나 내게 다가와 무화과를 건네던 소년이었다. 소년은 나를 보더니 카피예(팔레스타인 저항의 상징인 격자무늬 스카프)를 얼굴에서 내리고 두 손을 들고 인사했다. 그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비참하게 죽어간 자기 친구가 안타깝고 팔레스타인인으로 이 땅에 살아가는 현실이 너무 답답해서 돌을 던지는 그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니었다. 우리 동네가 아랍 위성방송 <알자지라>에도 나올 만큼 유명해진 지난주, 길에서 ‘N아줌마’와 마주쳤다. 우리 집 바로 건너편에 살고 있는 다섯 자녀의 어머니인 N아줌마는 못 하는 게 없는 슈퍼우먼인데다 사람을 끄는 매력도 지니고 있어 만나면 늘 마음이 편해진다. 내가 발코니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는 걸 보면 그녀는 직접 구운 케이크를 들고 와서 말을 건네곤 했다. 독학으로 익혔다는 영어 실력은 의사소통을 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고 늘 활기가 넘쳤다. 그런데 그날따라 검은 옷을 입은 N아줌마가 수척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안부를 묻자 그녀는 갑자기 눈물을 터뜨렸다. 산 채로 불에 타 죽은 그 소년이 N아줌마의 조카였던 것이다. 그녀는 슬픔에 빠진 식구들을 위로하고 계속 시위하는 사람들을 위해 음료와 음식을 준비하고 이들이 던질 돌을 깨는 일을 했다고 한다. 자기는 정치 같은 것은 모르지만 어린아이를 그렇게 납치해서 불태워 죽이는 게 과연 용서받을 수 있는 일인지 모르겠다며 계속 울먹거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녀를 꼭 안아주는 것 말고는 없었다. 분쟁 지역을 다니며 고통에 찬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많지 않음을 느낄 때, 그럴 때는 수만의 감정들이 심장을 드나든다. 슬픔과 분노로 끓어올랐던 슈아파트의 시위도 지금 한풀 꺾였다. 우리 동네에 죽은 소년의 사진이 여전히 곳곳에 걸려 있지만 거리를 가득 채웠던 시위의 흔적은 사라지고 있다. 돌을 든 이곳 사람들도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을 안다. 예루살렘에 하루이틀에 한번꼴로 사이렌 공습이 울리며 이동이 쉽지 않게 됐다. 사람들은 눈앞에서 이스라엘의 미사일 방어시스템인 아이언돔이 하마스(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 정치단체)의 로켓을 떨어뜨리는 것을 눈으로 보았다. 로켓 조종 기술이 허술하다 보니 유대인 마을이 아닌 아랍 마을 근처에 최근 하마스의 로켓이 떨어지기도 했다. 히브리어를 해야 할지, 아랍어를 해야 할지 예루살렘에서 가자지구까지 물리적 거리는 무척 가깝다. 예루살렘에서 에레즈 국경까지 차로 1시간15분, 그곳에서 이스라엘 출국 수속을 마치고 가자 쪽의 입국 심사대까지 2㎞를 걸어야 한다. 예전에는 그 길을 차양막 하나 없이 땡볕 아래 걸어 다녔다는데 요즘에는 그나마 차양막도 있고 바닥에 아스팔트도 깔려 있다. 오가는 골프 카트가 있어서 운이 좋으면 얻어 타고 갈 수도 있다. 지난겨울 예루살렘에는 폭설이, 가자에는 폭우가 내렸다.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가자 사람들에게 겨울의 폭우는 또 다른 재앙이었다. 그 재앙은 이스라엘과 가자를 가로막는 장벽을 무너뜨렸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만 같던 인간의 분리장벽은 자연이 무너뜨렸지만 재빨리 복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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