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뉴스분석 왜?
효녀연합 vs 어버이연합
▶ 정대협 수요시위에서 어버이연합과 논쟁을 한 효녀연합 홍승희씨가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누리꾼들은 효녀연합을 어버이연합의 대항마로 치켜세웠습니다. 그런데 정작 홍씨는 어버이연합과 다툴 의도가 없다고 합니다. 이유가 뭘까요. 현재 스물여섯인 홍씨는 알고 보니 청소년 때인 2008년 촛불집회에 나왔던 촛불소녀였습니다. 홍씨를 만나보았습니다. 더불어 어버이연합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 사회 갈등의 원인과 해법은 무엇인지 짚어보았습니다. ‘효녀와 어버이’ 사이 소통이 가능할까요.
13일 오후 2시 서울시 종로구 중학동 주한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이 자리를 지키고 섰고 십수명의 대학생들이 소녀상 주변 바닥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소녀상을 지키러 나온 이들이었다. 하늘에서 눈발이 흩날렸다. 얇은 천으로 만들어진 검정 치마와 흰 저고리를 입은 여성 셋이 소녀상 곁으로 걸어왔다. 청년예술가네트워크 소속의 활동가들이었다. 100여년 전 소녀 유관순을 연상시켰다. 홍승희(26)씨도 그중 한명이었다. 이들은 씻김굿을 하듯 하얀색 천을 들고 느릿느릿 춤을 추었다.
이들의 춤이 다 끝나갈 즈음, 시민단체 ‘대한민국 어버이연합’ 회원 수십명이 소녀상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70대 이상의 노인들이 손팻말을 들고 정부의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를 비판하는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을 비판했다. 이어 홍승희씨를 비난하는 말들도 나왔다. 소녀상 주변에 원래 모여 있던 시민들이 어버이연합을 의식한 듯 또 다른 구호를 외쳤다. 경찰이 둘 사이에 인간장벽을 세워 충돌을 막았다. 소녀상 주변 일대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효녀연합 홍승희씨가 지난 13일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인근에 행사를 위해 나타났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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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보수의 행동대 역할을 해온 어버이연합에 맞서 효녀연합이 떠오르자 누리꾼들은 열광했다. 어버이연합은 효녀연합이 자신들을 모욕했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어버이연합 추선희 사무총장이 지난 13일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인근에 행사를 위해 나타났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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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연합 조롱할 생각 없어
어르신들도 우리 시대 피해자
‘얼굴도 예쁜데 개념도 있네’
그런 말들이 내 영혼 짓눌러” 추선희(어버이연합)
효녀연합은 어버이연합 모욕
국민 뽑은 대통령도 무시하던데
통진당 활동 반성부터 해야
‘꼰대’라 한 것도 사과해야 홍승희, 개인 신상이 털리다 -통합진보당이 해산되기 전 당원 수가 12만명이다. 그들이 모두 종북은 아니지 않나? “홍승희는 이석기 전 의원 구명운동을 했잖나. 그러면 홍승희도 이석기 추종세력이지.” -억울함을 이해하는 것과 추종하는 건 다른 것 같은데. “만약 대화를 하고 싶다면 우리에게 꼰대라고 한 것부터 사과하라 해라. 또 통합진보당 활동을 한 것에 대한 자기반성을 해야만 만날 수 있다. 홍씨가 이전에 ‘청와대는 너희 집이 아니고, 역사도 너희 집 가정사가 아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서 있는 것도 봤다. 이런 식의 사고를 하는 자가 우리와 대화를 하려는 의도가 의심스럽다. 국민의 과반 이상이 뽑아준 대통령을 적으로 보고 있는 거다. 대통령을 무시하는 성향.” -효녀연합이라는 말은 어떻게 생각하나? “효녀가 아니라 불효녀다. 언론 보도 보니 제 아버지 말도 안 듣는 것 같던데? 효녀라면 아버지 말을 잘 들어야지 왜 안 듣나. 김정은이한테나 효녀이지 대한민국의 효녀는 아니다. 효녀연합은 어버이연합을 모욕하려고 만든 말 같다.” -젊은층에선 지금 어버이연합의 활동에 반감이 많다. “2000년 전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가 ‘나라를 망하게 하는 건 젊은이고, 구하는 건 노인들’이라고 했다. 젊은이들은 경험이 없다 보니 무작정 일을 저지르고 보지만 노인은 경험과 지혜가 있다. 노인 세대의 경험을 무시하면 안 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아베 일본 총리와의 합의를 못 받겠다고 하는데 왜 어버이연합은 이 합의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나? “정치는 100% 만족은 할 수 없는 거다. 폭행사건이 벌어져 경찰서에 가서 합의했다고 치자. 그때 100% 만족하는 합의가 되나? 박근혜 대통령은 최선의 노력을 한 거다. 일본 외무상(기시다 후미오)의 공식 사과를 받아냈다.” -사과 자체도 중요하지만 형식이라는 게 있다. 과거 독일 빌리 브란트 총리는 유대인 학살에 대해 무릎 꿇고 사과했다. 우리는 왜 그렇게 요구 못하나? “유대인 학살과 성폭력 사건이 같나? 학살은 사람을 죽인 건데.” 추선희 어버이연합 사무총장의 논리는 간단하다. 종북세력과는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를 어떻게 종북세력으로 구분지을 것인가. 또한 사상의 자유가 있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종하는 것을 범죄화하는 게 옳은지에 대한 문제도 남는다. 철 지난 낡은 사상은 비판의 대상이지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반론이다. 추 사무총장은 홍승희씨가 통합진보당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종북세력이 아닌지 의심한다. 홍씨의 해명은 14일 오전 전화로 들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세간의 시선에 대해 여성으로서 겪는 심리적 부담, 통합진보당 활동 전력에 대한 시비 등으로 힘들다고 그는 밝혔다. 일주일 사이에 그는 수많은 격려와 함께 또한 개인 신상이 털릴 정도로 호된 검증의 대상이 됐다. 스물여섯 인생에서 처음 겪어보는 일이다. -무엇이 가장 힘든가? “사람들이 내게 종북 딱지를 붙이기 이전에 여성에 대한 혐오와 편견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을 맞닥뜨릴 때 너무 힘들다. ‘얼굴도 예쁜데 개념도 있네’라는 말, ‘얼굴은 예쁜데 개념은 없네’라는 말 모두 불편하다. 아주 사소하고 개인적인 것처럼 보이는 그런 것들이 내 영혼과 감각을 짓누르고 있다. 주변에 물었더니 이게 ‘젠더 감수성’이라 하더라. 우리 사회에 여성 혐오가 공기처럼 존재한다. 페미니즘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으면 내가 하는 말이 누군가에겐 폭력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어버이연합은 당신의 통합진보당 활동 경력을 문제 삼는다. “2008년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그때 느낀 게 정치가 바뀌려면 정당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주목받던 정당이 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과 통합해 생긴 통합진보당의 전신)이었다. 그때 입당했고 계속 활동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는 어떤 (엔엘이나 피디 같은) 정파와 관련한 사람이 아니다. 사람들은 내게 그런 것을 계속 묻는데 나는 그런 정파가 없어진 세대의 사람이다. 대학의 학생회 같은 조직이 다 와해된 세대다. 나를 어떤 특정 정파의 사람으로 규정하는 시선이 불편하다. 또한 ‘나는 종북이 아니다’라고 표현하는 것도 경계하고 싶다. 그것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 통합진보당은 민주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해산당했다. 통합진보당원이었다는 이유만으로 ‘종북좌파 주홍글씨’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꼰대’ 발언은 어떻게 나왔나 -꼰대 발언은 왜 한 건가? “지난해 인터넷방송 <국민티브이>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꽃보다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꼰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눌 때 한 발언이었다. 그건 어버이연합을 지칭한 게 아니다. 그런데 악의적으로 편집되어 ‘짤방’이 돌아다니고 있다. ‘어? 이게 뭐지?’ 했는데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당황스럽다.” -어버이연합은 부모 말을 잘 안 들으면 불효녀라고 주장한다. “부모 말을 무조건 따르는 게 효녀가 아니다.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거나 양심을 거스르는 행동을 하는 부모에게 충고를 해줘야 효녀다. 소녀상 앞에서 예의를 지켜달라고 피켓을 들었던 이유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어버이연합이 소녀상 앞에서 한 행동이 예의가 아니었다.” -또래인 20대 청년들이 어버이연합을 어떻게 바라보았으면 하나? “정말 우리가 비판해야 할 대상을 명확히 보는 게 중요하다. 어버이연합의 활동 뒤에 숨어 있는 진짜 문제 세력들을 비판해야 한다. 어찌 보면 어버이연합 어르신들도 시대의 피해자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극단의 혐오가 난무하도록 만든 세력에 대한 각성과 책임이 필요하다. 어버이연합을 보면 우리 사회의 모순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어버이연합에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나? “나는 어버이연합 어르신들을 신념을 갖고 활동하는 분들로 본다. 마찬가지로 어버이연합도 내가 하는 말에만 집중해주었으면 한다. 내 뒤에는 아무런 배후도 없다.” 홍씨는 어버이연합과의 대화를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보수적인 군인 출신이라고 한다. 정치적 견해가 많이 다르다. 하지만 아버지와 친하게 잘 지낸다. 혈육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사회 진보와 보수도 그렇게 지낼 수는 없을까 고민한다. “우리 사회가 위험한 시기를 걷고 있는 것 같아요. 최근의 보수는 진보를 제거해야 할 적으로 여기는 듯해요. 새누리당 일당독재가 계속되면, 히틀러 나치당이 밟은 수순을 그대로 우리가 따를 것 같아요. 서로를 이해하고 대화하려는 노력을 중단해선 안 돼요.” 우리 사회 소통의 길을 복원하려는 20대 청년 홍승희씨의 소망은 이뤄질 수 있을까. 그는 자연의 순리에서 답을 찾는다.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나무는 손잡지 않아도 그 뿌리가 같음을 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이웃의 고통에 아픔을 느끼는 건 착해서가 아니라 연결된 감각 때문이다. 공감은 연결된 생명의 촉수다. 너의 아픔은 우리의 아픔이고 너의 잘못은 우리의 잘못이다. 생명의 질서를 거스르는 권력은 연결의 감각을 잃은 잘려나간 나뭇가지다. 단절된 생명은 썩어 없어지고 거름에서 연결된 새싹이 자란다. 생명이 순환하는 과정과 거대한 저항 속에 우리가 있다. 생명의 질서보다 중요한 질서는 없다.” 홍씨는 어버이연합에 보낸 편지 마지막에 “꼭 답장을 바란다”고 썼다. 추선희 사무총장은 15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일단 홍씨의 이메일 주소를 달라. 고민해보겠다”고 밝혔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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