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3.04 19:46 수정 : 2016.03.06 12:22

혁신학교의 교실에는 설교도 있지만 설득도 있다. 아이들은 교사에게 일방적인 가르침을 받지 않고 마음껏 질문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학교 규칙을 습득한다. 교사는 요령있게 질문과 답변을 소화한다. 서울 가재울초등학교 1학년 라온반 아이들이 3일 오전 이지영 담임교사에게 질문하기 위해 손을 번쩍 들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르포
초등 1학년 교실을 가다(상)

▶ 3월은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는 달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이 설레는 표정으로 학교에 입학하는 사진들이 신문에 실리곤 하지요. 그런데 이 아이들이 무슨 생각과 무슨 질문을 하며 첫 사회생활의 하루를 보내는지 살펴볼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아이들은 요즘 어떤 교육을 받으며 자라고 있을까요. 서울 가재울초등학교 1학년 라온반의 선생님과 23명의 새싹들을 찾아 함께 지내보았습니다.

엄마의 뱃속에서 탯줄을 만났던 우주는 빛의 조우와 함께 울기 시작했고, 이어 젖을 삼켰고, 똥을 뱉는 경험을 했다. 잠자고 일어나기를 또다른 거대한 우주의 시간만큼 반복했다. 영원히 굽어 있을 것만 같았던 관절은 기지개를 펴며 몸뚱이를 세웠고, 입술을 오물거리며 눈앞의 것들과 대화했다. 엄마와 아빠는 경이로운 우주의 성장을 기뻐했다. 아이는 그 자체로 하나의 우주. 아이의 나이가 한국식 계산으로 여덟살이 되었고 이제 학교를 가는 날이다.

“만나서 반가워요!” 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있는 가재울초등학교 ‘라온’반의 담임 이지영(30) 선생은 자신을 찾아온 23명의 우주를 맞느라 분주했다. 이제 이 어린아이들은 사회적 용어로 ‘초등학교 1학년’으로 불린다. 대강당에 모여 선생님과 첫인사를 나눴다. 입학식이 열렸다.

“이름이 뭐예요?”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가 아이의 입에서 나와 이지영 선생의 귀로 들어갔다. “네가 ○○이구나. 이거는 선물이야. 앞으로 잘 지내보자!” 수줍어하는 여학생의 목에 사탕 목걸이가 걸렸다. 남학생들은 좀더 씩씩하게 다가와 선생님과 인사를 한다. 가재울초등학교 오종열 교장의 도장이 찍힌 ‘입학 허가증’을 받아들고 즐거운 표정을 짓는다.

반은 우주인 반은 사람

“설레요. 늘 신입생을 받을 때는….” 이지영 선생 옆에 서 있던 박현주(54) 선생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그는 24년차 경험 많은 교사이지만 1학년 입학식을 맞으면 마음에 봄바람이 불고 심장이 파르르 몸을 떤다. 임승연(32) 선생도 마찬가지다. “1학년은 긴장이 안 될 수 없어요. 아이들 하나하나가 다 다르고 새롭거든요. ‘화장실 가도 돼, 화장실 가도 돼’ 이 말을 사람 수만큼 해줘야 하는 나이예요. 순백의 도화지 같은 아이들….” 이래서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반은 우주인, 반은 사람’이라는 말이 떠도는가 보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고무공 같은 나이다.

가재울초등학교는 서울시교육청 지정 혁신학교다. 입시 위주의 획일화된 교육에서 탈피해 아이들의 창의력을 높이고 자연스럽게 학습능력을 키우는 교육 실험을 진행한다. 대체로 학급 인원은 25명 이하로 제한하고, 담임 교사에게는 수업 외 행정 업무를 맡기지 않는다. 교사들은 수업 내용을 토의하면서 자유롭게 결정하곤 한다. 가재울초등학교는 남가좌동에 가재울 뉴타운이 들어서며 올해 새로 개교했다.

혁신학교답게 학급의 명칭이 모두 특이하다. 숫자가 없고 고유 한글 이름들이다. 가온(세상의 중심), 누리(세상), 다움, 라온(즐겁다), 마루, 보담(더 나은 삶), 새솔(새로 난 소나무), 이솔(소나무의 기상을 이루다), 자올(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냄), 찬슬(슬기로움으로 가득 찬), 큰솔(큰 소나무), 토리(도토리), 푸름, 한울(큰 울타리), 해오름 등의 이름을 쓴다.

이 학교의 개교를 위해 교사들은 지난 겨울방학 내내 학교에 나와 이런저런 준비로 분주했다. 교사들끼리 토론하고, 학습하고, 학교를 청소하고, 새 집기를 나르는 등 새 학교의 새 색깔을 모두 교사들이 입혔다. 교사들의 열정과 노고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아이들은 입학식날 웃고 떠드느라 바쁘다. 대강당에 마련된 개인 의자에 앉아 꼼지락꼼지락, 두리번두리번거리는 1학년 아이들을 부모님들은 뒤편에 서서 초조하게 바라보았다.

낮 12시 무사히 입학식이 끝났다. 아이들은 선생님과 입학식 기념사진을 찍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행사가 끝날 즈음 다운이(가명)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이지영 선생에게 찾아왔다. “저희 아이가 선생님과 사진 찍는 걸 잊어먹고 그냥 저에게 와버렸어요.” 다운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내가 어떤 그룹에서 이탈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아이는 처음으로 경험하고 거기에 놀랐을 거예요.” 이 교사는 돌처럼 굳은 아이의 표정이 내심 걱정이다. 모히칸 스타일의 머리를 미용실에서 하고 온 지원이(가명)는 강당에 가방을 두고 집으로 갈 뻔했다. 선생님이 챙겨둔 가방을 아버지와 함께 나타나 찾아갔다. 첫 등교에 마냥 설레다 뜻하지 않은 일을 겪은 지원이는 이날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큰일 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가재울초등학교 1학년 교실은
아이들의 질문 소리로 요란하다
“교실서 왜 신발 안신어요?”
“종은 누가 울리는 거예요?”
선생님은 빠짐없이 대답한다

혁신 교육은 설명보다 설득
‘하면 안돼’ 그냥 막기보다
안되는 이유를 깨닫게 한다
겉으론 혼란스러워 보여도
교실은 알아서 질서를 찾는다

아슬아슬한 질서, 음악을 틀자…

다음날인 3일 오전 9시40분. 학생들은 다시 학교 대강당에 모였다. 첫 수업이 있는 날이다. 길게 줄을 선 학생들은 선생님을 따라 강당을 나가 학교 정문 앞으로 걸어갔다. 재잘거리는 아이들 앞에서 라온반 담임 이지영 선생의 설명이 시작됐다. 첫 가르침이다. “내일부터는 이 문을 지나 학교에 들어와야 해요. 저 뒷문은 안 돼요.” 아이들은 질문이 많다. “왜 저 뒷문으로 오면 안 돼요?” “저 문은 차가 많이 다니는 길이에요.”

학교 건물의 위치를 파악한 아이들은 역시 또 재잘거리며 라온반 교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선생님이 앞장서고 기자가 뒤에서 아이들을 살폈다. 오른쪽 머리에 예쁜 핀을 꽂은 민선이(가명)가 자기 옆에 선 기자의 엉덩이를 손으로 자꾸 만졌다. “선생님 엉덩이가 솜사탕 같아요.” 까르르 웃는 민선이는 어른의 엉덩이를 만지는 것이 잘못된 것인지 아직 모른다.

아이들은 아직 선생님이 말을 할 때 자신들은 대화를 멈춰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북적북적대는 교실에서 이지영 선생은 설교 대신 설득을 시작했다. “선생님은 한 사람인데, 여러분은 스물세명이에요. 각자 다 떠들면 선생님 말이 들릴까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한 사람씩 손들어서 질문을 해야 해요.”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손을 번쩍 든다.

아이들은, 역시 질문이 많다. “선생님 왜 교실에서는 신발을 안 신어요?” “선생님 근데요 쉬는 시간은 몇 분이에요?” “선생님 유치원에는 교실에 카메라가 있는데 왜 여기엔 없어요?” 선생님이 차분하게 하나하나 대답을 해주자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쾅 하는 소리가 났다. 한 아이가 쓰레기를 버리려고 뛰다가 쓰레기통에 부딪혔다. 교실에서 아이들은 수시로 재잘거렸고, 수시로 뭔가에 부딪혔다. 정신없는 가운데 아슬아슬한 질서가 유지되었다.

“자, 이제 선생님이 준비한 말 해도 될까요?” 아이들은 “네”라고 대답했다. 이 교사는 아이들에게 각자의 출석 번호를 알려주었다. 이어 출석 번호대로 줄 서는 연습을 했다. 아이들은 “너 몇 번이야?”라고 물으면서 스스로 자신의 앞뒤에 서야 할 친구들과 자신의 위치를 찾았다. 시간은 다소 걸렸지만 이 선생은 억지로 아이들의 줄을 세우지 않았다. “앞으로 이 줄대로 밥을 먹으러 갈 거예요.” 밥을 먹는다는 설명은 아이들의 귀를 선생님 말씀으로 집중시키는 마법의 지팡이 같다.

아이들은 우유를 먹는 방법을 배웠다. “우유는 어떻게 먹어야 할까? 차가운 우유를 갑자기 먹으면 배가 깜짝 놀라요. 그래서 입에 넣고 혀로 맛을 충분히 느끼면서 삼켜야 해요.” 아이들은 작은 종이팩 우유를 따서 마셨다. 우유를 마시는 순간에도 아이들의 질문은 쏟아진다. “선생님 종은 몇 번 울려요?” “교무실에서 알아서 종을 울릴 거예요.”(선생님) “교무실에 어떻게 종이 있어요?” “다음주에 한번 교무실을 가보자.”(선생님) “선생님 발 시려워요.” “선생님 종은 누가 울려요?”

오전 10시40분. 80분 수업 뒤 중간 놀이시간이 30분 주어졌다. 아이들은 학교에 마련된 야외 놀이터에서 논다. 아이들은 물속을 자유롭게 헤엄치는 고기 떼처럼 이곳저곳을 뛰어다닌다. 미끄럼틀 사이로 온갖 신발들이 바람을 탄 듯 날아다닌다. 이 모습을 선생님은 가만히 지켜보았다. ‘아이들의 질문이 끝이 없는데 이 많은 것을 어떻게 소화하는지’ 묻자 이지영 선생이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아이들 발달 단계가 지금은 질문이 많을 때예요. 질문이 쏟아지면 어떤 방향을 만들어줘요. 그 방향대로 순서를 기다리면 자신에게 질문할 기회가 올 거란 것을 알게 해주지요.”

다시 교실에서 수업이 시작됐다. 수업이 시작됨과 동시에 교실은 왁자지껄이다. 한 아이는 기자의 볼펜을 빼앗아 장난을 치고 다른 아이는 기자의 무릎에 매달려 논다. 기자의 얼굴에 난 수염을 잡아 뜯는 아이도 있다. 결국, 이 교사가 비장의 카드를 꺼냈다. 교탁에 작은 라디오를 놓았다. 들릴 듯 말 듯 한 음악 소리가 교실에 내려앉았다. 프랑스 민요를 변주한 모차르트 변주곡(‘반짝반짝 작은 별’)이다. “이 음악 소리가 선생님에게는 들리는데 너희들에게도 과연 들릴까?” 그제야 아이들은 하던 말들을 멈추고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선생님은 각자의 이름을 소개하는 자기 소개 시간을 갖자고 설명했다. 이지영 교사는 이때서야 자신의 이름을 아이들에게 알려주었다. 칠판에 자신의 이름을 쓰고 아이들에게 외게 하지 않는다. 대신 노래를 불렀다. “안녕 안녕 선생님. 안녕 안녕 친구들. 안녕 안녕 행복한 날. 안녕 안녕 모두 반가워요. 나는 나는 이지영.” 아이들은 둥글게 교실 바닥에 둘러앉아 선생님을 따라 노래를 부르며 자신의 이름을 친구들에게 소개했다.

이어 급식판을 들고 차분하게 걷는 수업이다. 밥을 먹는 방법, 나아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밥을 배식받는 방법을 배운다. 밥은 교육이다. “여기 식판에 네잎 클로버 (문양) 보여요? 바로 이곳을 엄지와 검지로 잘 잡고 식판을 평평하게 들어요. 이곳 말고 다른 데 만지면 어떨까요?” “뜨거워요!” “뜨거운 국을 식판에 받고 뛰어다니면 어떻게 될까?” “다쳐요!”

2일 입학식날 눈높이를 맞추며 신입생들을 맞는 이지영 교사.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교실로 오다 길 잃고, 가방을 두고 가고…

12시가 되어 수업이 끝나자 급식소로 가기 위해 교실 복도 앞에 한 줄로 아이들이 줄을 섰다. 급식소에서 아이들은 김치, 숙주나물, 닭고기, 아이스 케이크와 밥을 차례대로 식판에 담아 식탁에 앉았다. 선생님은 아이들 중간에 함께 앉았다. 또 질문 세례다.

“선생님 김치 남겨도 돼요?” “떡 다 먹어야 해요?” “기자 선생님은 왜 안경을 써요?” “저 화장실 가도 돼요?” 밥을 먹는 건지 질문을 먹는 건지 선생님은 정신을 차리기 어렵다.

급식을 먹고 교실로 돌아오는 길에 한 아이가 길을 잃고 사라졌다 나타나고, 집에 가기 전 가방을 교실에 두고 갈 뻔하던 아이를 챙기고, 실내화를 그대로 신고 집으로 갈 뻔한 아이, 수업중인 남의 반 교실 문을 두드리는 아이들을 무사히 챙긴 뒤 이지영 선생은 라온반의 첫 수업을 마쳤다. 앳된 외모의 선생님은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 아이들을 정문 앞까지 바래다주며 하교시켰다. 노래를 부르는 ‘스머프 마을’의 광장 같던 교실에 다시 평온이 찾아왔다.

“가급적이면 규칙을 많이 만들지 않으려 해요. 규칙은 아이들에게 교감이 아닌 통제로 느껴질 수 있거든요. 하지 말라고 하기보다는 왜 이걸 하면 안 되는지 설명을 해줘요.” 아이들의 소란을 용납하면서도 곧 질서를 찾는 이 선생의 혁신학교 교습법이다. “아마 아이들도 오늘 겪은 혼란을 오늘 밤 자기 전 생각해볼 거예요. 그러면 제가 내일 수업 때 질문을 하죠. 줄을 제대로 서지 않은 친구 때문에 다른 친구들이 어떤 불편을 겪는지 설명해주지요. 아이는 이제 줄을 잘 서야 된다고 스스로 생각하게 돼요.”

우주를 떠돌던 23명의 행성이 자신들을 끌어당긴 별을 만나 이날부터 즐거운 공전을 시작했다. 가재울초등학교 1학년 라온반의 이지영 선생과 아이들은 올 한해 어떤 추억을 만들게 될까. <다음주에 계속>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르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