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기장해수담수반대대책협의회 이진섭 공동대표가 부산 기장군 고리 핵발전소 옆 바다에서 생수병에 물을 담고 있다. 이 대표는 “부산시와 상수도사업본부가 추진하는 해수담수 공급 계획은 마치 핵발전소 옆의 바닷물을 떠다가 기장 주민들에게 먹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사진 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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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르포
기장군 ‘원전 바닷물’ 논란
▶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가 바닷물을 담수처리해 기장군 3개 읍·면에 수돗물로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해수담수화 처리시설은 고리 핵발전소로부터 11㎞가량 떨어진 곳에 완공됐다. 기장 주민들은 “핵발전소와의 거리가 너무 가깝다”며 “결국 원전 바닷물을 수돗물로 주겠다는 것”이라고 거세게 반발한다. 특히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자신은 몰라도 자식들에게는 이 수돗물을 결코 먹일 수 없다고 매일 거리에서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말 ‘물’을 먹어야 할 사람은 핵발전소와 멀지 않은 곳에 일종의 취수장을 지은 사람들이 아닐까?
“수돗물은 틀면 나오는 거잖아요. 수돗물은 선택할 수 없잖아요. 밥 짓고 음식 해 먹는 수돗물을 원전 바닷물로 만들어서 줄 테니 먹으라고요? 왜 우리가 그 물을 마셔야 되죠? 기장군민에겐 안전한 물을 먹을 권리도 없는 건가요?”
6일 오전, 부산시 기장읍에서 만난 주부 우미정(41)씨는 시가 추진하는 해수담수화 사업에 대해 불신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고 했다.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가 바닷물을 담수처리해 기장읍, 장안읍, 일광면 등 기장군 3개 읍·면에 수돗물로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담수화 처리 플랜트인 ‘부산기장해양정수센터’가 고리 핵발전소에서 11㎞가량밖에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기장 해수담수화 사업’에 대해 주민들은 핵발전소에서 방류되는 물질의 양과 종류도 알려지지 않았다며 수돗물의 방사능 오염 우려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초등학교 2학년 딸을 둔 우씨는 “나 같은 어른들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성장기의 아이들은 미량의 방사능이라도 노출이 되면 더 치명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 안전성이 담보되지 않는 물을 어느 엄마가 먹이고 싶겠냐?”고 했다.
5일과 6일 이틀 동안 <한겨레>가 만난 기장군 주민들도 대부분 시가 추진하는 해수담수화 사업의 안전성에 대해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를 반영하듯 기장읍 건물 곳곳에는 ‘해수담수 공급 반대’라는 작은 펼침막이 걸려 있었고 총선에 출마한 야당 후보들은 일찌감치 ‘해수담수 공급 철회’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동네 식당 다 망할 거다” 소문
일광면에 산다는 한 30대 여성은 “가뜩이나 원전 가까이 살고 있어서 불안한데 이젠 물도 못 먹게 생겼다”며 “원전에서 11㎞밖에 안 떨어진 곳에 취수장을 지은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상수도사업본부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여러 후보지 중 기장군 대변리가 생물학적 산소요구량(BOD) 수치가 가장 적게 나오는 등 수질이 맑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핵발전소는 담수화 처리 시설 입지조건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기장 해수담수화 사업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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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담수시설서 수돗물 공급 추진
기장 주민들 방사능 불안감 팽배해
자영업자 “누가 관광 오겠냐” 한숨
“이미 2000억 들어갔다” 현실론도 반대쪽 “삼중수소 등 정제 안 돼”
상수도사업본부 “방사능 미검출”
해수담수화 사업, 물 민영화 일환
주민들 스스로 일궈낸 주민투표
89.3% 반대 넘어 민주주의 체험 공공재인 물을 기업 이윤 도구로? 담수화 공급 찬반으로 지역사회가 나뉘게 된 연원은 20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5월,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는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 봉대산 자락 바닷가 4만5845㎡에 역삼투압식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인 하루 4만5000t의 수돗물을 생산할 수 있는 담수화 처리 플랜트를 준공했다. 인근 해변 10~15m 수심의 바닷물을 끌어와 해조류와 염분을 걸러낸 뒤 무기질 성분을 넣어 수돗물을 만드는 원리로 낙동강 수질 악화와 수질오염 사고 등을 대비한 대체상수원 확보, 원거리 공급체계 개선, 미래 물 산업 메카 도시 육성 등이 목적이었다. 국비 823억원, 시비 424억원, 민자 706억원 등 모두 1954억원이 들어갔다. 건설은 해수담수화 플랜트 수주 1위 기업인 두산중공업이 맡았다. 반대를 하는 쪽에선 애초의 사업목표 수립 자체가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기존에 낙동강 수질이 깨끗하다고 주장해온 상수도사업본부가 말을 바꾼 것도 말이 안 되거니와 원거리 공급체계를 개선한다면 인근의 명장정수장을 이용하면 된다는 점, 방사능 오염의 오명을 뒤집어쓴 상황에서 미래 물 산업 메카 운운은 빛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산시와 상수도사업본부는 안전성 논란이 불가피한 해수담수화 사업을 왜 무리하게 추진하는 걸까? 이현정 국토환경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올해 1월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에서 “2010년 녹색성장위원회·환경부·국토해양부는 함께 ‘물산업 육성 전략’ 보고서를 내놓았다”면서 그 육성전략에 따라 “이미 수십개의 지자체가 민간위탁이라는 이름으로 민영화 단계를 밟고 있고, 중앙정부는 지자체에 이를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해수담수 공급의 강행은 물 민영화 실현 계획의 일부로 봐야 한다’고 이 연구원은 강조했다. 해수담수화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재인 물을 기업의 이윤추구 대상이 되도록 허용해주는 민영화 작업이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같은 해 11월, 상수도사업본부는 본격적인 해수담수의 수돗물 공급 계획을 발표한다. 고리 원전에서 11㎞가량 떨어져 있는 곳에 센터가 세워진 것을 알게 된 주민들은 “원전 바닷물을 수돗물로 공급하려 한다”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이즈음(4일) 갑상샘암 발병과 관련해 법원으로부터 한수원의 일부 책임을 인정받은 이진섭(50) 기장해수담수 반대대책협의회 대표의 소송 결과와 이로 인한 고리와 월성 등 원전 인근 주민들 100여명의 집단 손해배상청구 소송 제기는 반대 분위기에 불을 지폈다. 주민들이 대책협의회를 발족하고 조직적인 반대에 나서자 수돗물 공급 계획은 잠시 보류됐다. 지난해 12월 초 수돗물 공급 통보 해프닝을 겪은 뒤 주민들은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주민투표관리위원회를 꾸려 지난달 19~20일 해수담수에 대한 민간 주도 찬반 주민투표를 벌였다. 투표 결과, 유권자 5만9931명 가운데 1만6014명이 참여해 1만4308명이 해수담수 수돗물 공급을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 투표의 비율은 89.3%에 달했다.
6일 오전 우미정(가운데)씨를 비롯한 주부 3명이 기장읍에 위치한 차량 회전구간에서 해수담수 공급 철회 등의 내용이 적힌 팻말을 들고 선전전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오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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