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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4.15 19:52 수정 : 2016.04.17 10:13

4월14일 의원회관 902호의 풍경. 제19대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초선 김기식 의원은 5월30일 이 방을 떠난다. 왼쪽 공간 책상 뒤에 김기식 의원이, 소파 옆에 보좌관이 서 있다. 오른쪽 공간에 비서와 보좌관이 앉아 있다. 이들은 19대 국회 정무위원회 활동을 마무리하는 보고서를 만들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토요판] 르포
정치가 거리로 사라진 국회

▶ “한 달간 일이 거의 없었네요.” 선거 다음날인 4월14일 국회 의원회관 엘리베이터에서 청소노동자가 말했습니다. 선거 기간, 국회의원들이 민심을 구하러 전국 각지로 흩어지고 국회는 청소할 곳이 없을 만큼 고요해집니다. 의원회관 복도엔 사람이 거의 없고 의원실 문도 잠겨 있습니다. 선거 끝난 다음날, 의원회관 복도에 화분이 놓입니다.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문의 주인공들은 선거에 떨어진 의원입니다. 조용한 의원실 복도에서 말소리가 들립니다. 902호입니다. 문을 열었습니다.

서울 여의도 윤중로에 벚꽃 날리면 그대, 어린 소녀 되어라. 소녀의 친구 되어라. 길고 검은 원피스 입은 늙은 여인이 떨어지는 벚꽃 맞으며 카메라 앞에 선다. 늙은 여인이 꽃길을 걸어갈 때 여인의 친구가 그 길 끝에 앉아 사진기를 누른다. 어떤 이는 아이처럼 달밤에 벚나무에 올라 걸터앉는다. 나무에 앉아 환하게 웃는 그대 얼굴을 나무 아래 친구가 카메라에 담는다. 그대가 머리 위로 하얗게, 솜처럼 피어난 꽃잎을 보고 입을 벌리곤 “와, 예쁘다”고 말한다. 예쁘다는 말, 하지 않는 그대가. 어깨와 어깨가 맞붙는 벚꽃길을 아이가 되려 걷는다. 꽃이 지고 어른이 아이로 피는 4월의 윤중로. 윤중로 가운데 국회만이 꽃잎 떨어진 나무처럼 휑하다. 의원은 전국에 흩어지고 정치는 거리로 나간다. 의원이 민심을 구하러 거리로 나간 의원회관은 가장 고요한 시간을 맞는다. 선거 기간, 떠날 이와 머무를 자 그리고 들어올 사람이 결정된다.

의원실 문 앞에 꽃이 놓이고

선거가 치러진 4월13일 밤 후보들은 인생에서 가장 환하고 초라한 시간을 맞는다. 오후 6시 출구조사 발표를 시작으로 개표방송이 이어진다. 패배자들은 사라진다. 서울 강서갑 지역구의 신기남 의원 사무실에는 대여섯명만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 방송을 지켜봤다. 의원은 방송이 시작된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자리를 떠나고 남은 이들은 말이 없다. 출구조사 1위로 나온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후보 사무실은 개표 초반부터 잔치 분위기로 들떴다. 사무실 원형 테이블마다 자원봉사자, 주민들이 모여 앉아 텔레비전에 후보의 개표 상황이 나올 때마다 박수를 치고 환호했다. 밤 9시, 아직은 승리를 확신할 수 없다는 긴장된 표정으로 나타난 후보는 사람들과 악수를 한 뒤 자리를 비웠다. 4000표 차이로 승리가 확실해진 자정이 넘어서야 환한 얼굴로 후보는 사무실에 들어섰다. 사무실 사람들이 금태섭, 금태섭 이름을 연호하며 승리의 박수를 친다. 곧 국회에 들어갈, 더는 바랄 것이 없을 환한 밤이다.

개표가 마무리되면서 당선이 확실해진 후보들은 목에 꽃을 두르고 카메라 앞에서 두 손을 번쩍 올렸다. 충남 당진선거구 더불어민주당 어기구 당선자는 “당진 시민의 머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 의왕·과천 더불어민주당 신창현 당선자는 “국민 섬기는 머슴이 될 것”이라고 했다. 거리에 나온 후보들은 국민, 또 국민을 말한다.

당선된 934호 새누리당 유기준 의원실(왼쪽 사진) 문 앞으로 화분과 난이 놓였고, 탈락한 826호 새누리당 정희수 의원실 문 앞은 비어 있다. 박유리 기자

선거 다음날. 전날 힘든 선거를 치른 의원실은 대부분 불이 꺼져 있다. 적막한 의원회관 복도 양옆으로 화분이 하나둘 놓인다. 꽃 배달원들이 복도를 두리번거리며 주소 적힌 종이를 보느라 고개를 묻는다. 한 손에 화분을, 또 한 손에 주소를 든 아저씨 그리고 똑같은 화분이 잔뜩 놓인 손수레를 덜덜덜 끄는 아저씨. 조용한 복도에 이방인들이 방을 찾아 헤맨다. 934호 새누리당 유기준 의원실 문 앞으로 배달원이 자주색 꽃화분을 놓고 간다. ‘외교통일위원회 직원 일동’이 보냈다. “영광스러운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보낸 난이 그 옆에 놓인다. 930호 더불어민주당 전해철 의원실 문 앞, 통일부 장관이 보낸 난이 앉았다. 907호 새누리당 주승용 의원실 문 앞에 통일부 장관, 선문대학교 총장이 보낸 난이 놓였다. 910호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실 문 앞에도 통일부 장관이 보낸 난이 있다. 926호 더불어민주당 박남춘 의원실 문 앞에 근로복지공단 이재갑 이사장이 보낸 난이 도착했다.

곧 의원실을 떠날 방 문 앞은 적막하다. 826호 새누리당 정희수 의원실 문 앞으로 아무것도 배달되지 않는다. 832호 국민의당 최원식 의원실 문 앞에는 읽지 않은 우편물이 쌓여 있다. 의원실에서 키우다 시든 나무도 버려진 듯 놓여 있다. 전날 당선된 648호 원유철 새누리당 의원실 문 앞도 텅 비었다. 선거 참패를 한 여당 원내대표의 문에 화분이 찾아오지 않는다. 거리로 나간 정치는 이렇게 국회로 돌아왔다.

벚꽃 날리는 4월 여의도
정치가 거리로 흩어지고
의원이 민심을 찾아갈 때
떠나고 머무를 이가 결정될
가장 고요한 시간의 국회

선거 다음날 불 꺼진 의원실
문 앞에 축하의 꽃이 놓이고
무엇도 놓이지 않는 방의 주인
지난 4년과 이별을 맞는다
어떤 이별은 슬픈데 예쁘다

떠날 사람의 준비

“리스트 정했어요? 보고서 쓸 리스트부터 뽑고 추가하거나 뺄 거 있음 빼죠.”

지난 14일 의원회관 902호 사무실에 불이 켜져 있다. 더불어민주당 초선 비례대표 김기식 의원이 보좌관들이 앉아 있는 책상 앞에서 말을 건넨다. 그는 지난달 22일 서울 강북갑 지역 총선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 경선에서 탈락했다. 선거가 치러진 다음날 그는 국회 정무위원회 의정활동을 마무리하는 보고서를 준비한다. 20대 국회에 넘길 자료다. 국회에는 연습이 없다. 처음 의원이 된 이들도 국회라는 공간에서 소관부처를 견제하고 감시하고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

“당선이 되면 국회의원 생활이 어떤 거라는 의례적인 몇시간 교육을 받을 뿐 의원 개개인이 알아서 준비하고 적응하는 것이지요. 세상에 어떤 조직도, 신입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 전혀 없는 곳은 없을 거예요. 시스템적인 문제라고 예전에도 말했어요. 제가 19대 의원인데, 18대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참고할 만한 자료가 전혀 없었어요. 4년간 간사로 일한 정무위원회 활동을 정리해서 보고서로 만들려고요. 쟁점이 무엇이고 야와 여가 어떻게 갈렸는지. 성과, 쟁점, 제언을 담는 거지요. 19대 때 쟁점이 됐다가 처리되지 않은 법안이 다시 제출될 수 있잖아요. 초선이든 재선이든 정무위에 처음 오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해요. 국회나 당 차원에서도 이런 작업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임기는 달라져도 법안은 연속선상에 있으니까요. 그런데 국회나 당에 제가 뭐라 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니까 개인적으로 하고 있어요.”

-이제 곧 4월 임시국회가 열리잖아요.

“새로 국회의원이 선출돼 있고 20대 법안 처리를 목전에 두고 있는데 임기를 마치는 사람들이 뭘 결정하는 것도 부적절하겠지요.”

초선 의원인 그가 이례적으로 4년간 정무위원회 간사를 맡았다. 깐깐하고 까다롭다. ‘금융권의 경계 1호’, ‘김기식만 없으면…’, ‘정책파워 일당백’, ‘재계 떨고 있나’ 같은 기사들이 그를 따라다녔다.

-만들고 있는 보고서엔 뭐가 담겨요?

“19대 국회 때 대부업체 이자를 낮추고 서민금융 시스템을 법제화했어요. 서민 입장에서 대부업법 최고 이자를 무려 12.5% 인하시킨 것은 일하면서 가장 큰 보람 중의 하나였어요. 최고 이자를 낮춰 국민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1조원이 넘으니까요. (본사, 대리점 불공정거래로 논란이 된) 남양유업 사태 이후 갑을관계를 시정하기 위해 남양유업 방지법이라고 이야기하는 법안을 만들었습니다. 대기업과의 거래관계에서 하도급 업체를 보호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도입한 것도 성과였어요. 인터넷전문은행 같은 경우는 은산분리(은행과 산업자본 분리)를 무너뜨리자는 거라 막았는데 20대에도 법안이 제출되겠지요. 그 법안이 20대 국회에서 처리 가능할 거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죠. 19대 국회에서 이명박 정부 때 느슨해진 은산분리 규정을 강화했거든요. 금융감독 체계를 개편하고 금융소비자를 보호하는 법을 만들고 싶었는데 여야간 이견으로 만들지 못했지요. 그것도 쟁점으로 남을 거예요.”

그는 4년 전 국회에 들어올 때 세금을 받는 자로서의 책임에 부합하는 의원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임기가 두 달도 채 남지 않은 시간, 사안을 정리하는 작업도 그런 의미다.

“다짐이 두 가지였어요. 누가 봐도 세금 아깝지 않게 일해야 한다, 그리고 국회의원이 4년 비정규 계약직인데 정규직이 되고자 하는 욕망으로부터 스스로 경계하겠다. 국회의원 해보니까요, 세상에 대충대충 지내면서, 일하면서 행세하기에 이렇게 좋은 직업이 없어요. 그 반면에 정말 열심히 마음먹고 일하려면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직업이에요. 저희 정무위 같은 경우 5개 소관부처 공무원만 2000명이 넘는데 그들이 하는 일을 국회의원 1명에, 7명의 보좌 직원이 대응한다고 쳐 보세요. 토요일, 일요일, 이건 뭐 잠자는 시간 빼고 일해도 감당하기 어렵죠. 끝이 없는 일이에요. 의원은 재선을 위해 노력하는 게 자연스러운 거잖아요. 하지만 세금 받는 자의 도리를 하지 않으면서 재선만을 위해, 정규직 의원 그 자체를 위해서 활동한다면 올바른 태도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선거 끝난 다음날의 국회 전경.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벚꽃·단풍 구경도 못 했지만…

-떠나면서 보니 정치가, 국회가 어떤 곳인 것 같아요?

“국민들이 보기에 정치가, 국회의원이 실망스럽고 탐욕스럽고 자기의 욕망을 위해 해선 안 되는 일을 하는 것도 있겠지만 말이에요. 제가 참여연대 만들고 1994년부터 의정감시 활동을 해왔거든요. 참 많이 변하고 좋아졌어요, 옛날에 비하면. 동료 의원들 가운데 저 사람 왜 국회의원 할까, 저런 사람 뽑아준 유권자는 저러고 있는 걸 알까, 보좌진이 써준 것도 소화를 못하는 평균도 안 되는 의원도 있지만 정말 소명의식을 갖고 성실하게, 치열하게 의정활동 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그 개개인의 활동들이 정치 일반에 대한 불신, 국민을 실망시키는 몇 가지 말과 행위에 도맷금으로 덮여 욕을 먹어서 그렇지요.”

-어제 당선된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재선 이상 의원들은 국회 경험도 해봤고, 초선 의원들도 사회 경험 속에서 어떤 고민과 생각을 갖고 들어오시겠지요. 제가 뭐라 말하는 게 적절하지 않겠지만 꼭 말한다면… 특히 초선 의원은 의정활동에 초점을 두었으면 좋겠어요. 상임위에 준비 없이 보좌진이 써준 종이 들고 오는 분이 있는데 뻔히 행정부 공무원들이 알거든요. 의원이 쪽팔리진 않아야 해요. 제가 이 의원실을 처음 구성할 때 보좌관, 비서관에게 요구한 게 이거예요. 의원, 보좌관, 비서관들에게 나이 많은 정무부처 국장, 과장, 장관, 차관도 굽신굽신하는데, 내가 의원, 보좌관이라는 계급장을 떼고 일대일로 토론 붙었을 때 상대 공무원이나 기업이 동의는 못해도 니 말에 일리는 있다, 그렇게 주장할 수 있다고 상대가 인정하는 수준, 그 수준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요.

제가 참여연대 창립 때부터 후배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지금 이 순간부터 운동가의 자부심, 도덕적 자부심은 가슴속 깊이 안에만 두고 이제부터 우리의 성실함과 우리의 치열함과 우리의 능력이 기업보다 최소한 같거나 더하지 못하다면 스스로 자격이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도덕적 우월감으로 다른 대상을 무시하면, 그런 식으로 세상 못 바꾼다고요. 우리 (의원실) 식구들의 성장이 굉장히 빨랐어요. 의원과 보좌진은 권력적 관계라기보다는 좋은 선후배이고, 저를 비롯한 이 팀이 성과를 낼 것이냐가 주요 관건이잖아요. 보좌진 개개인들이 장점을 살리고 잘 성장할 수 있을까, 그게 제겐 중요했어요.”

-국회에 추억이 될 만한 공간은 있어요?

“4년 내내 윤중로 벚꽃 구경도 못했고, 가을 단풍 필 때는 국정감사 하고 바빠서…. 의원회관과 본청만 왔다 갔다 하며 보냈네요.”

20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본관 건물 가운데 몇 개 방은 수리 작업이 한창이다. 문이 반쯤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정무위원회 문 사이로 의원들의 명패, 노트북, 두고 간 서류들이 보인다. 당선된 이름과 떨어진 이름이 교차한다.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비서실은 “각 의원실에서 사용 중인 노트북을 수거 정비하여 20대 국회 개원시 재보급한다”고 알림문을 붙여 놓았다.

5월30일 선거에 패배하거나 불출마한 이들이 떠난다. 당선된 현역 의원은 머무르고, 초선 의원들이 6월1일 국회에 들어온다. 승패를 가르는 선거가 이어지고 누군가는 떠나고 국민의 선택을 받은 자들만이 입성하는 시간이 국회에 퇴적된다. 1948년 5월31일 제헌국회가 시작되어 2013년 10월22일 접수된 누적 의안이 5만개를 넘어섰다.

꽃도, 난도 문 앞에 놓이지 않은 의원회관 902호. 다음 사람을 위한 배려, 먼저 일했던 자로서의 책임, 떠나는 이의 마무리가 깃든 방을 나왔다. 전쟁 같은 선거, 승패가 좌우하는 정치에서도 아름다운 이별이 있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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