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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4.22 20:28 수정 : 2016.04.23 10:34

지난달 28일 도쿄 메구로구 도쿄대 고마바 캠퍼스에서 열린 박유하 교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다양한 의견을 주고받고 있다. 도쿄/3·28집회실행위원회 제공

[토요판] 르포
일본 기자가 본 <제국의 위안부>논쟁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일본 군인을 ‘동지적 관계’라 부른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쟁이 일본 학계에도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한쪽에선 ‘한-일 화해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명저’라고 긍정적 평가를 내리지만, ‘논쟁할 가치가 없는 형편없는 책’이라는 비판적 목소리도 나오기 때문이다. 지난 3월28일 일본 도쿄대 고마바 캠퍼스에선 <제국의 위안부> 찬반론자들이 참여한 토론회가 열렸다. 일본 <도쿄신문>의 쓰치다 오사무 기자가 일본 내 <제국의 위안부> 논쟁을 바라보는 글을 보내왔다.

“일-한 화해의 길을 여는 명저다.”

“자의적 해석이 많아 학술서로서의 가치가 없다.”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저작 <제국의 위안부-식민지배의 기억과의 싸움>의 평가를 둘러싸고 의견을 나누는 ‘연구집회,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마주할까-박유하씨의 논저와 그 평가에 대하여’가 3월28일 도쿄도 메구로구 도쿄대학 고마바 캠퍼스에서 열렸다. 행사를 주최한 3·28집회실행위원회는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대화의 장을 만들기 위해 이번 토론회를 마련했다. 이날 행사에선 이 책의 ‘옹호파’와 ‘비판파’ 연구자·시민활동가 10여명이 일본군 위안부 제도와 식민지주의의 이해방식을 두고 약 5시간에 걸쳐 의견을 나눴다.

이 책과 관련해 전 ‘위안부’ 피해자(이하 위안부 피해 할머니) 9명이 “위안부가 일본군의 협력자이며 동지였다는 허위의 사실을 유포하고 있다”며 명예훼손에 의한 손해 배상과 출판금지를 요구하는 민사소송을 냈고, 명예훼손죄로 형사고소까지 한 상태다. 이와는 달리 일본 국내에선 많은 연구자들이나 언론이 이 책을 높이 평가해 제27회 아시아태평양상특별상(2015년 10월), 제15회 이시바시 단잔 기념 와세다저널리즘대상 문화공헌부문 대상(12월)을 수여했다.

“위안소의 ‘행복’이야말로 성노예 피해”

 토론회에선 먼저 이 책의 ‘옹호파’인 니시 마사히코 리츠메이칸대학 교수와 이와사키 미노루 도쿄외국어대학 교수, ‘비판파’인 정영환 메이지학원대학 준교수가 등단했다. 니시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의 선용(善用)을 향해’라는 제목의 보고에서 “(이 책이) 국가 간, 민족 간의 정치적 대립의 구도가 쌍방에게 ‘민족주의적인 폭언’을 조장하고 있는 상황을 낳아 결과적으로 ‘문제의 해결’을 지연시키고 있는 현상에 대한 타개책”을 제시하는 것 뿐 아니라 “학술적인 수준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 제기를 포함하고 있어 (중략) 국경을 초월해 운동을 한층 더 확대하기 위한 지혜를 포함하고 있는 책”이라며 높은 평가를 내렸다.

 ‘비판파’의 정영환 준교수는 ‘<제국의 위안부>사태와 일본의 지식인’이라는 발제문에서 “(박 교수는)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인 ‘위안부’와 같이 대일본제국의 신민인 ‘제국의 위안부’였다. 조선인 ‘위안부’도 ‘애국’적 존재로서 또 일본군 병사와 ‘동지의식’을 갖는 ‘동지적 관계’로 맺어져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교수는 “‘애국’적 존재, ‘동지의식’, ‘동지적 관계’를 논할 때 (박 교수가 활용하는) 증언과 역사의 독해가 너무나도 자의적이다. ‘여성들의 목소리(시점)가 아닌 ’병사들의 목소리(시점)‘와 대일본제국의 논리의 의해 증언을 재해석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또 이 책이 ’업자주범설‘(위안부 문제의 주범은 일본 정부가 아닌 조선인 업자라는 학설-역자 주)에 서 일본군의 책임을 극소화하고 있다는 점을 문제시했다. 즉, 이 책이 “일본군에게 물을 수 있는 것은 병사의 성적인 욕망이라는 ’수요‘를 만들어 내고, 제도를 ’발상‘해 업자의 인신매매를 묵인한 책임뿐이다. (한국이 일본에게 요구하는-역사 주) 법적 책임은 업자의 인신매매나 유과 등 범죄 행위에 대해서만 물을 수 있다는 ’업자주범설‘에 기초해 ’국가‘의 책임을 매우 한정적으로만 추궁하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이어 “(일본에서 이 책이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1980년대의 ’위안부‘의 이미지(위안부는 사실상 자발적인 매춘부였다는 인식-역자 주)를 요구하고 있는 (일본) 사회나 언론계의 욕망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얘길 듣고 싶어 하는 일본 지식인들의 문제다. 이 책이 수용되고 있는 일본의 사상 풍토 전체를 자기 점검해야 할 필요가 있다”며 말을 마쳤다. 정교수는 지난 3 월 ’망각을위한 “화해” “제국의 위안부‘와 일본의 책임”(세오리서점)을 발간.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 될 예정이다.

이후 ’옹호파인‘의 아사노 도요미 와세다대 교수, ’비판파‘의 오노자와 아카네 릿교대학 교수와 앙징자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전국행동 공동대표의 코멘트가 이어졌다. 아사노 교수는 “이 책은 일한 화해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운동가의 논리에 학문의 논리를 종속시켜선 안 된다”며 ’위안부‘ 문제 운동을 하고 있는 시민운동을 비판했다. 오노자와 교수는 “피해자의 증언을 자의적으로 잘라, ’자발성‘ ’애국‘ ’일본군 병사와 동지적 관계‘를 만들어 내고 있는 점이 문제”라며 이 책의 구체적인 기술을 인용해 발언했다.

 이어 양징자 대표는 ’위안부‘들이 말하는 “즐거웠단 추억”이나 일본군 병사와의 ’연애 감정‘을 짚은 이 책의 기술에 대해 “피해자 증언의 해석 (방식)에 큰 위화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보여주는 한 예로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그 놈들이 하자는 대로 해주면 귀여움을 받는다. ’불쌍하다‘며 좀 봐주는 군인도 있고, ’조금 쉬라‘며 그냥 앉았다 가는 군인도 있었다”는 증언을 소개했다. 양 대표는 이어 “’그 군인이 오면 기뻤나요‘라고 물으니 할머니가 ’응 기다렸지”라며 화사한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에서 위안소의 지옥 같은 생활이 생생히 전해져 가슴을 찌르는 듯 했다. 할머니가 정말 기다린 것은 그 지옥으로부터의 해방이었지만 (현실적으론) ‘좀 쉬라’고 말해주는 군인을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박 교수는 위안소엔 ‘자긍심, 사랑, 행복’이 있었다, 이것은 ‘성노예 이외의 기억’이라고 말하지만, 박씨가 말하는 ‘긍지’, ‘사랑’, ‘행복’이라고 표현한 것이야 말로 성노예였던 여성들이 받아 안아야 했던 가장 깊은 피해였다“고 말했다.

연구자·시민활동가 모여 5시간 격론
옹호파 “운동에 학문 종속 안돼”
“문제해결 타개책 제시” 긍정 평가
비판파 “병사들 목소리로 재해석”
“국가 책임 가리려는 논리” 반박

“역사 해석 오류 많다” 대체로 동의
“개정판에서 오류 수정돼야” 공감대
“검찰 기소는 학문 자유 침해” 공방
지난해 11월 항의성명 참여 학자
피해자 고통 깨닫고 서명 철회하기도

정대협을 공격하려는 ‘옹호파’의 속내

연구 집회의 후반부에선 우에노 지즈코 도쿄대 명예교수, 김부자 도쿄외국어대 교수, 요시미 요시아키 주오대학 교수 등이 토론자로 등단했다. 요시미 교수는 이 책이 ”업자에게 법적 책임은 있지만 일본군과 일본정부에 법적 책임이 없다“고 하는 점에 대해, ”일본군은 군사 시설로 위안소를 설치하고 거기에 약취?유괴 또한 인신매매된 여성들을 넣어 군인 · 군속의 상대를 시켰다. 업체는 군의 손발로 사용되었다. 군의 책임이 더 무겁다“고 말했다. 김 교수도 ”박 교수는 증거 없이 ‘소녀’ ‘성노예’를 부정하고, “일본군 무죄론 ‘에 가담하는 이 책은 학술적 평가 가치가 없다”고 비판했다.

우에노 교수는 “박씨의 (글쓰기엔) 부주의한 면이 있다. 이런 식의 글쓰기는 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많지만, (위안부 문제에 대한) 식민지 지배의 죄를 추궁한 점은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종합토론에서 “박 교수는 식민지 지배가 원인이 돼 조선인 여성들이 위안부가 됐다”고 쓰고 있지만, 조선인 ’위안부‘의 모집에 있어서 ’강제연행‘은 예외적인 것이고 (대부분은) ’국민동원‘된 것이라 쓰고 있다. 박 교수가 말하는 ’동원‘이란 경제적 이유 때문에 ’자발적‘으로 매춘을 선택했다는 취지이기 때문에 “식민지 지배의 죄’에 대해 쓴 책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반론했다.

마지막 정리 부분에서는 주최자 대표로 모토하시 데쓰야 도쿄경제대 교수 등이 발언했다. 모토하시 교수는 “이 책은 실증연구라는 점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일본에선 상을 받는 등 공적으로 너무 과한 평가를 받았다. 나는 이 책을 대상으로 민사·형사재판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 (지난해 11월) 일본 학자 54명이 참여한 ‘항의성명’에 참여했다. 그러나 오늘 서명한 것을 반성한다. 성명에 ‘이 책에 의해 전 위안부분들의 영예가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할 수 없다’는 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그러자 회의장에선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연구 집회를 주최한 실행위원회는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대화의 장을 만들기 위해 이번 집회를 개최했다.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과 피해자에 대한 보상·사죄의 실현을 주장하면서도 이 책에 대해 정반대의 의견을 갖는 연구자나 시민운동가가 많다. 약 5시간에 걸친 집회에선 이 책이 제시하고 있는 ‘일본군의 법적 책임’ ‘위안부와 일본군 병사의 동지적 관계’ ‘업자의 자발적 선택’ 등 여러 과제를 둘러싼 의견 교환이 이뤄졌다. 그러나 이 책의 ‘옹호파’ 가운데 위안부 할머니들을 지원하는 시민운동에 대한 ‘혐오감’을 보이거나, 논점을 저자의 기소 문제로 전환해 ‘대화의 가능성’을 봉쇄하는 언동이 있었던 것은 유감이다.

서울에 있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평화의 소녀상’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지원단체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1992년부터 개최해 온 일본대사관 앞의 ‘수요 집회’가 2011년 1000회를 맞은 것을 기념해 설치됐다.

1990년 한국 내 37개 여성단체의 연합체로 결성된 정대협은 ‘위안부’ 문제의 해결뿐 아니라 전시하 여성에 대한 성폭력의 근절을 목표로 활동의 폭을 세계로 넓히고 있다. 박 교수는 책 안에 정대협이 피해 여성에게 ‘억압된 민족의 딸’로 존재하기로 강요하고, 그 운동은 “평화가 아니라 불화만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일본 지식인 가운데서도 정대협의 운동이나 소녀상 설치에 혐오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런 혐오감과 <제국의 위안부>가 공명해 소녀상 철거를 뒷거래 하고 있는 아베 정권과 일본의 우익의 ‘전전회귀’(戰前回歸)에 손을 빌려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번 집회에서도 옹호파인 아사노 교수는 ‘비판파’에게 “운동의 논리에 학문을 이용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시민사회로부터 독립해 존재하는 학문이란 무엇일까. 그 옛날 ‘앙가주망’(사회참여)을 제창하며 노동조합운동이나 학생운동의 선두에 섰던 프랑스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나 뉴욕의 오큐파이 운동에 참가해 대중항의운동에 큰 영향을 준 미국의 경제학자 조세프 스티글리츠 등이 듣는다면 비웃음을 당할만한 시대착오적인 생각이다.

아사노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양징자 대표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박 교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민사소송에 대해 얘기하는 도중에 갑자기 “할머니들을 자유롭게 만나게 해달라”고 발언해 장내의 실소를 샀다. 아사노 교수는 정대협이 피해 여성들의 언동이나 재판을 조종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민사·형사 소송을 일으킨 것은 ‘나눔의 집’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9명이다. 스스로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커밍아웃해 명예회복운동을 이어 온 위안부 할머니들의 주체성을 부인할 근거는 어디 있을까. <제국의 위안부>를 옹호하는 학자들과 일본 언론 가운데 퍼져 있는 “정대협 공격”을 간과해선 안 된다.

‘넷우익’의 배외주의와 닮은꼴

연구 집회에서 또 하나 문제가 된 것은 한국 검찰이 박 교수를 명예훼손으로 기소한 것이다. 일·미의 학자 54명이 “공권력이 특정의 역사관을 갖고 학문과 언론의 자유를 봉압하고 있다”는 항의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대해 비판파는 법정에서 형사 책임을 묻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이 책으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직접 제소·고소하고 있어 ”기소에 대한 평가“는 자제하고 있다.

이번 연구 집회가 이 책의 평가에 대해 토론이 이뤄졌음에도 종합토론에서 우에노 교수는 ”형사고소는 부적절했다는 점에 대해 합의를 할 수 없겠냐“며 비판쪽을 몰아세웠다. 양씨는 이에 대해 ”논점을 바꿔치기 하는 것“이라며 ”이 문제가 법정까지 간 것이 바람직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질 신문을 거부하거나 최종적으로 검찰의 조정안을 거부한 것은 박 교수다. 더 진지하게 피해 할머니들과 마주했다면 화해가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연구 집회에선 이 책이 ”증언과 역사의 해석이 자의적이어서 오류가 많아 학술적인 평가 대상이 아니다“는 의견이 대세를 점했다. ’옹호파‘의 니시 교수도 ”(이 책이) 위안부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입구(입문서)로서 활용될 수 있다“면서도 ”오류는 개정판에서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학문과 언론의 자유‘라는 가치관을 근거로 피해 할머니들의 민·형사상 고소나 한국 검찰의 기소를 비판하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진정한 피해자는 다름 아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다. 할머니들을 ’자발적으로 간 매춘부‘라는 이미지나 ’일본군‘과 함께 행동하며 전쟁을 수행한 사람’이라고 하는 잘못된 인상을 주는 언론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을 리가 없다. 아무런 근거 없이 타자는 모독하고 상처를 준다는 점에서 배외주의나 헤이트스피치와 다름이 없다.

자료의 자의적 선택이나 오류에 근거해 피해 할머니들을 상처 주는 언론을 용인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를 지키는 것이 아니다. 학문과 언론의 자유를 ‘방패막이’ 삼아 이 책이 갖는 치명적인 문제점에 눈을 감는 자들은 스스로 설치한 덫에 빠진 것과 같다. 박 교수의 기소에 대한 항의성명에 서명한 모토하시 교수는 연구집회 이후 위안부 피해자들이 받았을 고통을 깨닫고 서명을 철회했다. 모토하시 교수의 진지한 태도와 용기를 보고 (새로운) ‘대화의 가능성’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쓰치다 오사무 <도쿄신문> 기자, 번역 길윤형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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