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04 17:24
수정 : 2016.05.06 18:16
[토요판] 르포 / 하도급업체 노동자의 캄캄한 밤
조선소 체불임금 노동자 이효준씨
조선업 몰락으로 벼랑 끝에 몰린 하도급업체 노동자를 만났습니다. 이효준씨는 매월 20일 나오는 월급으로 가족의 생계형 대출 이자를 갚아왔지만, 임금체불로 더 이상 그 이자를 낼 여력이 없습니다. 별명이 소년가장이라는 이씨는 하루라도 빨리 밀린 임금을 받고 농성을 끝내고 싶어합니다. 어두운 밤하늘을 보며 눈을 지그시 감는 이씨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합니다. 업계 불황으로 고성, 거제, 통영 지역 임금체불 규모는 지난해에 견줘 2배나 늘었습니다. 이씨 이야기를 통해 임금체불로 신음하는 조선소 하도급업체 노동자들의 캄캄한 현실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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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은 하도급업체에 체불임금 지급하라!”
지난달 22일 저녁. 경남 고성군 동해면 에스티엑스(STX)고성조선해양 정문 앞에서 조선소 하도급업체 ‘삼원’ 직원인 이효준(25)씨가 회사 대표 및 동료와 원청인 에스티엑스고성조선해양을 상대로 임금 체불에 항의하며 구호를 외쳤다. 퇴근길 집회에 참가한 지 16일째다. 배의 핏줄로 불리는 케이블 설치 작업자 이씨는 작업 환경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며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포설’ 직종이 제일 지원을 못 받아요. 배 아랫부분에서 용접자들이 일을 하면 위로 ‘흄’(fume·퓸)이라는 유독가스가 올라오는데, 우리한테는 마스크를 비롯해 보호 장구 지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요. 그 가스를 하도 마셔서 머리가 아프고 코를 풀면 시커먼 게 나와요.”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10시간 일반근무는 1공수, 그리고 저녁 7시부터 밤 10시까지 3시간 야간근무는 0.5공수로 1공수당 10만원을 받는 이씨는 매주 두번씩 야간근무를 하며 2월에만 26.5공수를 일했다. 하지만 임금은 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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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저녁 조선소 정문 앞에서 임금체불에 항의하며 퇴근길 집회를 마친 이효준씨와 동료가 폐드럼통 불에 몸을 녹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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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드럼통에 불을 때기 위해 산비탈에 쓰러진 나무를 주워 농성장으로 향하고 있는 이효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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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는 3월분 임금 체불로 부산 사상구 모라동 아파트에서 월세로 살고 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내지 못했다. 아버지의 건강 문제와 누나의 생계형 카드대금 연체로 4천만~5천만원 원금과 그 이자 갚기에 허덕이고 있는 가족은 매달 20일인 이씨의 월급날을 기다린다. 이씨의 가난한 집안 사정은 고교 시절 이전부터 계속됐다. 정비 일을 하던 아버지는 건강 문제로 일을 계속하기 어려웠고 수입은 미미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한 이씨는 실질적인 가장이 돼 돈벌이 전면에 나섰다. 그러다 일은 고되지만 더 나은 벌이를 위해 지난 겨울 조선소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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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준씨와 동료가 조선소 앞 농성장 시멘트 바닥에 앉아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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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성장 시멘트 바닥에 놓인 밥과 반찬. 낮은 기온과 강한 바람으로 식당에서 주문한 도시락은 금방 식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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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집회를 마친 이씨는 이날 늦은 저녁 농성장 시멘트 바닥에 대표 및 동료와 둘러앉아 식당 도시락을 먹기 시작했다. 흐린 날씨에 바람까지 불어 밥과 반찬은 금방 식었다. 이씨는 차가운 농성장의 추위를 피하기 위해 한 동료와 함께 인근 산비탈에 쓰러진 나무를 가져와 불을 지폈다. 이씨는 “농성 처음에는 비가 오는데 미처 비옷을 준비하지 못해 물에 젖어 추위에 시달렸어요. 지금은 폐드럼통에 불도 때고, 좋아졌죠”라며 16일차 농성에 적응한 듯 웃음을 지었다. 식사를 마친 이씨는 밤샘농성 당번조에게 수고하라며 인사를 한 뒤, 빈 도시락 용기를 식당에 반납했다. 식당 아주머니가 힘내라며 ‘파이팅’을 외치자 이씨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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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준씨(오른쪽)와 동료들이 고성군 거류면 ‘삼원’ 기숙사로 가는 길에 식당에 들러 도시락통을 반납하자, 식당 아주머니가 ‘화이팅’을 외치며 응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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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기숙사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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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로 가는 길에 이효준씨가 차 안에서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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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30분께 조선소에서 10분 남짓 거리에 있는 고성군 거류면 새평지아파트 104동 501호 ‘삼원’ 기숙사로 돌아왔다. 바닥에는 10여명의 작업복과 일상복 등이 뒤엉켜 흩어져 있었다. 이씨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모두가 쉬는 날인 일요일이 되면 함께 대청소를 해서 깨끗했어요. 임금 체불을 놓고 순환식으로 야간농성을 하다 보니 2주 넘게 청소를 못 했죠”라고 말했다. 임금 문제가 해결돼서 농성이 끝나면 뭐 하고 싶으냐고 묻자, 이씨는 다시 일도 하고 대청소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원’이 기숙사 월세 80만원과 관리비를 넉 달째 못 내고 있어, 이씨와 동료는 대청소는커녕 당장에라도 기숙사를 비워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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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마음에 이효준씨가 기숙사에서 나와 동갑내기 동료와 인근 바닷가 항구에 앉아 캔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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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에 돌아와 샤워를 마친 이씨는 이날 밤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동갑내기 직장 동료 이석진씨와 인근 바닷가 항구로 나가 등대 옆에서 캔맥주 한 캔을 홀짝홀짝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별명이 소년가장이야. 친구들은 내가 집에 할 만큼 다 했다는데, 지금 내가 이렇게 안 하면 가족은 더 힘들어지니까 어쩔 수 없지. 돈 받고 농성도 빨리 끝나야 하는데.” 대화 도중 밤 10시30분께 요금을 못 내 발신이 끊긴 이씨 휴대전화로 누나의 전화가 왔다. 언제 체불 임금 받고 집회가 끝나는지 묻는 누나에게 이씨는 “걱정하지 마”라고 말하며 캄캄한 밤하늘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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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인 23일 새벽 5시40분께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일어난 이씨가 “집회 가자”며 옆에 누운 동료를 흔들어 깨웠다. 통근버스가 도착하는 아침 6시40분에 앞서 이씨와 대표 및 동료 12명은 17일차 출근길 집회를 열기 위해 조선소 정문에 도착했다. “집회가 계속돼서 지친다. 다음주에는 끝나면 좋겠다.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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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숙사 방 벽면에 에스티엑스고성해양조선 작업복이 걸려있다. 이효준씨는 2월달 임금을 못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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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수 에스티엑스고성조선해양 경영기획담당 부상무는 23일 오전 조선소 안 회의실에서 “도급계약과 관련해 기성금을 모두 줬다”며 조선소 하도급업체 ‘삼원’ 대표의 임금 횡령 의혹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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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글·사진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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