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6.05.13 21:24
수정 : 2016.05.14 14:38
[토요판] 르포
미리 보는 ‘오월 광주 치유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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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희성 : 5·18 자유공원 상무대 영창’. 세월에 억눌린 분노는 쇠창살 같은 억압과 구속의 표상들을 찾아 헤매게 했고 그 강제적 실체들과의 조우는 삶과 죽음 사이에서 흔들렸던 자신의 얼굴을 떠올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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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민주화운동 36주년 기념 <기억의 회복>오월광주치유사진전. 자기 생을 담은 일곱 분의 이야기들을 모아 5월16일(월)부터 23일까지 서울시청 지하 시민청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의 제목이다. 사진전 형식을 띠었으나, 시각예술로서 이미지의 작품성을 보여주고자 하지는 않는다. 5·18 피해 당사자들이 어떻게 자신의 내적 상처와 대면하면서, 그리고 어떤 용기로 자기정체성을 회복하려는 것인지 조심스럽게 선보이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참여와 속 깊은 공감의 손길을 기대하며 전시 작품 일부를 지면에 옮겨본다.
심한 내적 상처를 지닌 이의 곁을 지킨다는 건 그리 가벼운 일은 아니다. 위로를 건네야 할 때와 묵묵히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할 때를 구분하기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닌 탓이다. 외부의 개입 없이 스스로 자기회복의 길을 터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슴에 한을 품고 있는 이들을 위한 최선의 도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도를 넘은 충고나 마음을 살피지 않은 채 던지는 조언은 도리어 상처 입은 이의 가슴을 더욱 다치게 할 수 있다. 늘 곁에 있다는 신호를 보내며 가만히 귀를 기울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다. 오랜 직업이었던 언론사 사진기자를 그만두고 심리상담가의 길에 들어선 나의 기본 원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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➊ 박갑수 : 충장로 5가 80-번지 동아제재소 자리. 왠지 가고 싶지 않았던 곳. 맨손으로 싸우는 학생들을 위해 각목을 잘라 주던 그 곳을 수십 여 년 만에 찾아갔다. 13년이나 일했던 직장건물은 이미 허물어져 사라졌고 주차장으로 쓰이는 마당만 그 날의 기억을 되살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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➋ 이행용 : 5·18 기념공원. 끌려가는 시민을 형상화시킨 동상 앞에서 다시 한번 무너져야만 했다. 정면이 아닌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시키는 내내 붙잡혀 끌려가던 자신이 보였고 같은 처지의 동지들도 눈앞에 선하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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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하다 붙잡혀 지독한 고문 피해를 받은 이들과 몇 년째 사진치유프로그램을 진행해오고 있다. 대면의 도구인 ‘사진 행위’를 통해 자신에게 내재된 상처의 기억들과 마주하면서 스스로 자기의 생이 지닌 의미를 인정하도록 하는 조력자 역할이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증상 아래 심각한 수위의 불안이나 우울증을 앓고 있는 그들은 지난 36년을 잃어버린 시간이라고 말한다. 무자비한 국가 폭력 앞에 속절없이 당하면서 자존감마저 무너졌던 기억을 품고 아프게 보낸 날들이 어느새 1만3150일 남짓 쌓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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➌ 서정열 : 고등학생 시절 체포되었던 광주시 매곡동 자취방. 10여년 만에 다시 찾은 자취방은 폐허가 된 채 방치된 상태였고 나를 아끼던 주인아주머니도 돌아가신 지 오래였다. 함께 잡혔던 친구들 중 이미 죽어 5·18 묘역에 묻힌 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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➍ 양동남 : 국군통합병원 병상이 있던 자리. 폐허가 된 채 사람의 흔적 하나 없는 이 공간에서 처절하게 무너졌던 당시의 자존감을 떠올렸다. 당시 93살이던 할머니는 “저 아그가 차가운 디 있는디 내가 어케 따순 밥을 먹겄냐”고 하셨다는 얘기를 나중에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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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가만히 시선을 두어 귀를 기울였다. 움직임을 살피는 시간만 한없이 흘렀다. 그들은 외면과 회피의 감정을 거두고 기억 속 상처들과 마주하는 고통의 순간을 감내해 냈다. 지속적인 대면의 몸짓이 이어지면서 어느 순간부터 발걸음은 가벼워졌다. 잠깐씩 일그러진 심장소리가 들려올 때가 있으면 소리 없이 손을 내밀어 어깨를 감싸안았고, 그들은 이내 기운을 되살려냈다. 내가 할 일은 곁을 지키는 것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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➎ 이성전 : 5·18자유공원 고문실. 고문을 심하게 당했던 7, 8월이나 가을이 되면 몸이 아프고 우울증은 더욱 깊어진다. 몸이 약해지면 누군가 자신을 죽일까봐 두려움이 생겨나고 문소리가 나거나 자동차 경적만 울려도 깜짝 깜짝 놀라게 된다. 그들은 나를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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➏ 이무헌 : 인생의 동반자 이성전 선생. “나한테는 꼭 필요한 사람이오. 옛날에는 몰랐는디 인자 아픔을 같이 나누고 허니께 형님 마음도 이해가 되고…. 동지라는 게 참말로 이런 거구나 이제 알았으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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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길에 함께한 이들은 모두 일곱 분이다. 곽희성, 박갑수, 서정열, 양동남, 이무헌, 이성전, 이행용. 이들 5·18 고문피해자들은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잃어버린 36년을 다시 불러 일으켜 세웠다. 부실한 국가운영체제 안에서 비롯된 수많은 사회적 현안들에 떠밀려 이미 망각의 심연으로 가라앉고 있는 <오월 광주>를 제 손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여전히 기억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를 전하는 나눔의 자리를 마련했다.
임종진 사진심리상담사·달팽이사진골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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