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6.08.26 19:01 수정 : 2016.08.26 20:39

3월부터 도시양봉을 시작했다
아카시아·밤꽃이 피고 진 사이
단층이던 벌통은 어느새 2~3층
여왕벌 살아있나 자주 벌집검사
‘벌 엄마·아빠’ 정도 되는걸까

벌집 91장을 여의도로 옮겼다
19장 채밀했더니 꿀 30㎏ 나와
“진하다, 맛있다” 어머니의 호평
꽃 종류, 시기 따라 꿀맛 제각각
도시 속 벌과 꽃 키울 땅 찾고파

지난 3월 말 서울 은평구 은평공영차고지 인근 텃밭에서 도시양봉을 시작했다. ‘어반비즈서울’ 박진 대표가 벌집을 들고 강의 중이다. 박 대표는 종종 방충복을 입지 않고 벌을 만난다. 전성열씨 제공
[토요판] 르포

초보농부 최우리 기자의 ‘꿀 따는 날’

▶ 방충복을 입으면 기분이 좋았습니다. 벌이랑 같이 있으면 굳이 말을 시작하지 않아도 돼 편안했거든요. 가을이 오면 도심에 벌떼가 출몰했다는 기사가 나옵니다. 사람이 먼저 공격하지 않으면 쏘지 않는 벌이지만, 양봉하다 다른 주민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되겠지요. 도시에서 행복하게 양봉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처럼 취미로 양봉을 하고 싶은 도시 남녀를 위해 조례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윙~. 윙~.’

목적지에 가까워질수록 웅웅거리는 소리는 커진다. 멀리 집단 비행을 하고 있는 상대가 보인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저 소리와 저 몸짓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다섯달이 지난 지금은 익숙해졌다. 대신 방충복을 고쳐 입으며 혼잣말을 한다. “얘들아, 나 왔어.”

지난 20일 토요일 아침 7시, 서울 은평구 은평공영차고지 근처 아파트 공사장 인근의 야트막한 야산에 서 있었다. 나를 포함한 도시양봉가 20여명은 지난 3월 말부터 1~2주에 한번씩 이곳을 방문해 양봉을 배우는 중이다. 산림형 예비사회적기업 ‘어반비즈서울’의 1년 과정 수업인데, 벌통과 벌, 양봉 장비 등을 나눠 받은 다음 우리는 각자의 벌을 관찰했고 아껴줬다. 단층이던 벌통은 어느새 2~3층씩 쌓아올려졌다.

이날은 그동안의 정성을 확인하는, 꿀 따는 날이었다. 벌의 먹이인 꿀을 가져가려니 미안하기도 했지만 설레기도 했다. 만화 주인공 ‘곰돌이 푸’가 된 기분이랄까. 영화 <도둑들>의 카리스마 넘치는 전지현도 살짝 상상해봤다.

밀랍으로 방 입구가 막힌 벌집을 꺼냈다. 더는 꿀을 채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벌은 밀랍으로 방 입구에 얇게 막을 친다. 무게가 꽤 나갔다. 벌집에 붙은 벌을 솔로 슥슥 털어냈다. 이날 모인 8인의 도둑은 한 시간 동안 꿀이 가득 찬 벌집(소비) 91장을 훔쳐 나왔다.

얌전히 앉아 꿀을 뺏길 벌이 아니다. 머리와 상체를 보호하는 방충복을 입었지만 다리에 쏘였다. 따끔했다. 청바지 위로 벌 한 마리가 온 힘을 다해 엉덩이를 비비며 침을 꽂고 있었다. 집에 가서 보니 잘 익은 복숭아처럼 허벅지가 빨갛게 부풀어올랐다.

양봉장에 입장하며 ‘나 왔어’라고 친근하게 건네는 말은, 날 쏘지 말아달라는 일종의 주문이다. 또르르 땀이 흘러 몸을 타고 내려갈 때, 혹시 이건 땀이 아니라 방충복 안으로 벌이 들어온 건 아닐까 상상하면 더위가 가실 정도로, 벌침은 아프다. 양봉장 옆 텃밭에서 고구마를 키우는 주민 박일금(81)씨는 “손가락 마디가 아팠는데 벌이 쏜 뒤로는 안 아프더라”라며 봉침 효과를 일러줬으나, 초보 농부는 아직 그 경지에 다다르지 못했다.

미드 <왕좌의 게임> 용엄마처럼…

“반려동물이나 나무 키우는 거랑 또 다르잖아요. 기자님은 제 마음 아시죠?”

옆옆옆 벌통 주인인 이지연(47)씨는 알레르기가 심한데도 2년째 양봉을 배우고 있다. 이씨는 집 근처인 서울 강남권에서 도시 양봉을 할 만한 건물 옥상을 찾고 있다. 이씨를 대신해 ‘우리는 왜 양봉을 시작했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해보자면, 벌은 매력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스러운 벌은 종아리에 노란색 화분 덩어리를 동그랗게 달고 막 벌통에 착륙한 벌이다. 자신의 일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은 사람이든 벌이든 참 멋있다.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육각형 방 안에 머리를 박고 있는 벌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방 청소를 하거나 꿀을 먹고 있다고 한다. 바삐 살고 있는 벌을 바라만 봐도 마음이 충만해진다.

벌은 혼자 있을 때도 예쁘지만, 집단으로 있으면 더 예쁘다. 양봉하는 사람들의 필독서인 <경이로운 꿀벌의 세계>에서 읽었는데, 요하네스 메링이라는 양봉가는 “꿀벌 군락은 하나의 생물, 척추동물과 같다”고 말했다. 풀이하자면, 벌통 전체를 하나의 생명체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벌통에는 여왕벌과 수벌, 일벌이 있다. 로열젤리를 먹고 자라는 여왕벌은 태어나 혼인비행 후 수만번 알을 낳는다. 수벌은 여왕벌과 교미하기 위해 존재한다. 같은 여왕벌에게서 태어났지만 여왕벌이 되지 못하는 일벌 수만 마리는 미래 자신과 같은 운명이 될 동생들을 정성껏 기르고 꿀을 만들고 벌통을 지킨다. 여왕벌과 수벌이 한 생명체의 암수 생식기관을 상징한다면, 무리의 생명을 유지하는 일벌은 몸통이란 설명이다.

실제로 벌통 안에서는 신기한 일들이 일어난다. 스스로 밀랍을 만드는 벌은 집을 지어 여왕벌이 낳은 알을 21일 만에 성충으로 키워낸다. 근처 꽃을 돌아다니며 화분과 꽃꿀을 따온 벌은 꿀과 프로폴리스를 만들어낸다. 벌통은 벌의 은신처이자 새 생명을 낳고 기르는 유치원이다. 꿀 창고이며 꿀을 따러 나간 다른 벌을 부르는 통신기지다. 정교한 건축물이기도 하다.

여왕벌의 지휘 아래 뚝딱뚝딱 왕국(벌집)을 건설해가는 일벌의 부지런함을 보면서 종종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떠올리곤 했다. <왕좌의 게임>은 일명 ‘용엄마’라고 불리는 강인한 여성, 대너리스(에밀리아 클라크)가 용 3마리를 키우며 여왕으로서 성장해가는 이야기가 드라마의 한 축을 이룬다. 우리도 ‘벌 엄마·아빠’ 정도 되는 건 아닐까. 아직 초보 농부와 벌이 소통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벌통 위에서 벌을 바라보고 있을 때, 초보 농부는 벌이 날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행복했다.

“꽃이 좋아 벌에 관심이 생겼다”는 직장인 김민영(30)씨는 “지금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뒷동산에서 벌 3통 키울 것”이라고 소망한다. 퇴직을 하고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전아무개(55)씨에겐 고양시 집 근처 텃밭에 4통의 벌통이 있다. 유기농 먹거리에 관심이 있어 8년 동안 농사를 짓다 양봉을 하는데, 아직은 꿀보다 벌과 친해지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 핸드픽트호텔의 김성호(42) 대표는 호텔 베이커리와 레스토랑에서 쓰는 꿀을 얻기 위해 옥상에 양봉장을 만들었다.

나는 수벌과는 친하지 않다

벌은 혼자서도 잘 살아가지만, 초보 농부의 손길이 아주 조금은 필요하다. 벌통에 여왕벌이 생존해 있고 산란을 하고 있는지, 벌집이 부족해 분봉(여왕벌이 일벌을 데리고 집을 나가는 경우)이 날 확률이 없는지,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등의 이유로 내검(벌집 검사)을 한다.

애플리케이션 개발자 김태훈(39)씨는 벌통에서 여왕벌이 사라져서 난감한 적이 자주 있었다. 태어난 뒤 혼인비행 과정에서 새에게 먹혔거나, 산란율이 떨어진 여왕벌을 일벌이 공격하거나, 여왕벌 실종의 이유는 사실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여왕벌이 없으면 산란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벌통의 영속성을 지켜줄 수 없다.

여왕벌이 산란을 잘 하고 있음을 확인한 다음에는 벌통 관리만 잘 하면 된다. 나의 경우 수벌 애벌레를 죽이는 것이 내검의 주목적이었다. 이 무슨 무서운 말이냐면, 벌통에 벌을 괴롭히는 해충인 응애가 기생하기 시작하면 위험한데, 응애는 수벌 방에 주로 산다는 박진 어반비즈서울 대표의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실제로 양봉할 때 응애를 유도하기 위해 수벌 방을 이용하기도 한다.

수벌 방은 수벌이 태어나는 방이다. 여왕벌은 벌집 빈방에 알을 낳는데 더듬이로 방 크기를 재 큰 방에는 무정란인 수벌을 낳고, 작은 방에는 유정란인 일벌을 낳는다. 보통 일벌 방이 더 많지만, 벌집 가장자리는 수벌 방도 꽤 있다. 어느 방을 만드는가는 벌들 마음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수벌과는 친하지 않다. 응애도 문제지만, 수벌이 여왕벌과 교미를 할 뿐 일을 안 하고 꿀만 축낸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또 수벌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배가 길쭉하고 날씬한 여왕벌이나 작지만 귀여운 일벌과 달리, 눈과 배가 모두 검은데다, 큰 수벌은 파리같이 생겼다. 수벌 방은 평평하게 입구가 봉해진 일벌 방과 달리 볼록하게 마감돼 있다. 터뜨리고 싶은 욕망을 쉽게 자극한다.

그래서 수벌 방을 발견하면 내검칼로 콕콕 찔러 애벌레를 죽였다. 다섯 달 동안 큰 탈 없이 벌을 친 건 응애를 막기 위한 개미산 처리를 잘 해서겠지만, 깔끔하게 수벌 수를 조절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이런 날 보고 누군가는 “양봉하러 다닌다더니 살생을 하러 다녔구나”라고 탄식했다. 옆 벌통 주인인 직장인 임채훈(34)씨는 나와 달리 수벌을 죽이지 않았다. 임씨는 가족들과 뉴질랜드에 가서 양봉을 할 계획이 있다. 응애 방제도 중요하지만, 생명이니 태어나는 것이 순리고, 일벌이 수벌을 다스릴 수 있다고 믿는다.

각자의 스타일은 다르지만, 모두의 농사는 ‘타이밍’이고 ‘정성’이었다. 우리는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부는 4월에는 벌이 추울까봐 보온재를 덮어줬고, 5월에는 갑작스러운 강풍에 벌집이 날아갈까 벽돌을 구해 벌집에 올려둬야 했다. 짧은 장마철에는 두툼한 은박지 우산을 씌워줬다. 무농약, 무항생제가 원칙이지만 응애방지용 개미산을 꼬박꼬박 넣어줘야 한다. 먹이가 부족해 보이면 화분떡을 넣어준다. 그동안 5월의 아카시아꽃, 7월의 밤꽃이 피고 졌다.

이른 아침부터 30도에 육박하는 역대급 폭염에 벌도, 우리도 쓰러질 뻔했다. 대신 더우면 잎에서 꿀을 내는 나무에서 나는 감로꿀이 많이 찼다. 8~9월이면 부쩍 늘어나는 말벌을 퇴치할 망도 만들어 벌통 입구에 달아줬다. 지금부터 겨울이 오기 전까지는 조금 여유롭게, 벌의 산란을 도우면 된다.

꿀과 꽃…초보농부의 꿈

이날 우리들은 벌집을 여의도 한국스카우트연맹 건물 1층 대강당으로 옮겼다.(여의도 직장인들은 잘 몰랐겠지만 이 건물 옥상에도 벌통이 있다. 명동 유네스코 건물 옥상에도 있다.) 이곳에서 채밀을 하기 위해서다.

채밀은 원심분리기를 이용한다. 방 입구에 봉해진 밀랍을 빵칼로 ‘포를 뜨듯’ 저민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 벌집을 원심분리기에 넣고 돌리면 솜사탕 만들어지듯 끈적한 꿀이 벽에 붙었다 아래로 떨어져 고인다. 미처 제거하지 못한 밀랍 조각들은 체에 밭쳐 액상꿀만 남긴다. 이날 91장 벌집 중 19장만 원심분리기에 넣었는데 액상꿀 30㎏을 얻었다. 박진 대표는 “벌집 한 장당 꿀 1.6~3㎏씩 나온다”고 설명했다.

이날 우리가 딴 꿀은 아카시아, 밤, 감로가 섞인 꿀이었다. 꿀도 와인처럼 꽃 종류, 시기와 지역에 따라 맛이 다르다. 맑은 색의 아카시아꿀은 달다. 진한 갈색의 밤꿀은 조금 쌉싸름하다. 감로꿀은 부드럽다. 다양한 꽃에서 나오는 다양한 색과 맛의 꿀을 찾아 맛보는 것도 양봉을 위한 좋은 공부가 된다. 외국에는 꿀 소믈리에도 있다.

꿀맛은 좋았다. 다 큰 딸이 주말 이른 아침마다 주섬주섬 짐을 싸 나가는 걸 지켜봐오신 어머니는 “진하다. 맛있다”라며 꿀통을 부엌 깊숙한 곳으로 들고 가셨다. 후배 고한솔 기자의 어머니는 “맛있다. 달지 않은데 달다. 다른 꿀은 설탕을 타거나 설탕물 먹인 벌을 가지고 만드는데 이 꿀은 다르다. 이참에 너도 양봉을 해라”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후배 방준호 기자는 “집에 있는 꿀통만 봐도 뿌듯하다. 손가락으로 조금씩 찍어 먹고 있다”, 후배 박수지 기자는 “팔아도 될 것 같다”는 말을 남겼다.

초보 농부는 벌과 꿀에 이어 꽃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 아카시아와 밤꽃이 지니 특별한 꽃이 없다. 꽃을 피우는 식물이 주변에 더 있다면 벌은 겨울이 오기 전까지 꿀을 더 많이 만들 수 있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봐도 꽃이 잘 보이지 않는다. 지난봄 양봉장 앞은 공터였는데, 어느새 아파트를 짓는 공사장 펜스가 높이 올라가고 있다.

우리는 도시양봉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사람 살 땅도 부족한 도시에서 벌과 꽃 키울 땅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초보 농부의 꿈은 자란다.

글·사진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산 바로 아래라 도시양봉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수도 있다. 텃밭을 구하기 힘든 도시에서는 건물 옥상에서 소규모 양봉을 할 수 있다. 동현 님 제공
벌은 연기를 싫어한다. 훈연기를 사용해 벌을 잠시 벌집에서 나가게 한 다음 벌집을 검사한다. 사진기를 들고 기록 중인 최우리 기자. 어반비즈서울 박찬 제공

내검 중인 도시양봉가. 내검칼로 벌집의 지저분한 부분을 정리하거나 수벌 방을 없앨 수 있다. 최우리 기자

육각형 모양의 벌집은 번데기방, 꿀방, 화분방 등으로 구분한다. 입구가 막힌 번데기방과 꿀을 먹느라 정신없는 벌. 최우리 기자

새 여왕벌을 만들기 위한 왕대(사진 아래 길쭉한 벌집)가 생기는 벌집도 있다. 최우리 기자

지난 5월 벌통 입구에 모여 있는 벌. 몇몇 벌은 노란 화분을 배달하는 중이다. 최우리 기자

다양한 색깔의 화분방. 최우리 기자

여왕벌이 사라진 벌집에는 새 여왕벌을 넣어야 한다. 여왕벌은 도시농부가 직접 키울 수도 있다. 이충 작업 중인 ‘어반비즈서울’의 박찬 실장. 최우리 기자

여왕벌 이충을 기다리는 중. 왕대가 자라고 있다. 박찬 제공

[%%IMAGE11%%]

[%%IMAGE12%%]

[%%IMAGE13%%]

[%%IMAGE14%%]

[%%IMAGE15%%]

[%%IMAGE16%%]

[%%IMAGE17%%]

[%%IMAGE18%%]

[%%IMAGE19%%]

[%%IMAGE20%%]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토요판] 르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