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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14 19:23 수정 : 2016.10.14 21:47

[토요판] 르포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해보니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를 할 때의 고비는 의외로 메뉴 선정에서 온다. 삼겹살은 비교적 쉬운 선택이다. 하지만 삼시 세끼를 삼겹살만 먹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 전체 식사량에서 70~75%를 지방으로 섭취하고 탄수화물은 5~10%로 대폭 줄이는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가 화제입니다. 탄수화물만 멀리한다면 무엇보다 식욕을 억제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다이어트가 습관인 이들이 하나둘 지방 다이어트로 갈아타고 있습니다. 184㎝에 83㎏으로 초기비만인 오승훈 기자가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에 도전했습니다. 나흘 동안 탄수화물을 거의 끊고 지방 위주의 식사를 한 그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요? 그는 과연 성공했을까요? 그의 ‘웃픈’ 체험기를 전합니다.

10일(월) 오전, 부서 주간회의 시작을 앞두고 느닷없이 기사 아이템이 떠올랐다.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체험기.’ 급조한 아이템이었다. 여기저기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관련 기사가 많으니 당연히 킬(기사로 채택이 안 된다는 뜻의 언론계 은어)될 것이라 생각했다. 기자들에게 가장 좋은 일은 이런 면피성 아이템 발제(무슨 무슨 기사를 쓰겠다고 데스크에 보고하는 일)가 킬되는 일. 발제 생색은 내고 기사는 안 써도 되니까.

‘웬열~.’ 공들여 발제한 아이템은 킬시킨 최우성 에디터가 이 아이템은 ‘재밌겠네~’라며 쓰라고 했다. 어어어 이건 아닌데. 내 꾀에 내가 넘어진 꼴이었다. 아~ 평소 ‘면식범’(麵食犯)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면을 애정하는 내가, 필동면옥과 오장동 흥남집을 옮겨가며 ‘물냉’과 ‘비냉’으로 점심 한 끼를 먹는 냉매(냉면 매니아)인 내가 탄수화물을 끊고 일주일을 버틸 수 있을까. 근심 걱정이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절대 현혹되지 마라, 먹성도 아니고

‘그래~ 일주일인데 뭐. 탄수화물만 멀리하고 나머진 막 먹어도 된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이참에 씨름 샅바가 돼가는 허릿살과 터질 거 같은 볼살을 정리하자!’

이렇게 마음을 다잡았지만, 그 일주일이 고난의 연속이 되리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당장 점심 메뉴 선정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의외로 고지방 식단에 어울리는 밥집이 많지 않았다. 동료들은 “고지방 다이어트의 시작은 삼겹살이 아니겠냐”며 나를 회사 앞 식당으로 이끌었다. 끌려가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북적대는 식당에서 최 에디터가 주문했다. “여기 삼겹살 3인분이랑 소주 한 병 주세요.” 사장님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네? 삼겹살이요?”라고 되물었다. 주변 손님들이 일제히 우리를 쳐다봤다. 대낮부터 삼겹살을 굽는 인간들은 뭐냐는 눈길이었다.

고기가 다 익어가자 동료들은 공기밥을 시켰다. 이문영 팀장은 나를 가리키며 한마디 보탰다. “여긴 밥 주지 마시고요.” “….” 박현철 기자는 “점심에 먹어도 삼겹살은 맛있다”며 흰쌀밥에 고기를 얹어가면서 잘도 먹었다. 권은중 기자는 이왕 다이어트할 거면 한달은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난 못 들은 척 꾸역꾸역 고기만 삼켰다. 고기가 반찬이었고 고기가 밥이었다. 느끼함이 목젖을 타고 흘렀다. 상추에 삼겹살을 싸서 젓가락으로 쌈장을 찍을 때 팀원들이 동시에 외쳤다. “쌈장 먹으면 반칙 아냐? 밀가루 들어가 있을 텐데….” 아주 환상의 팀워크구나. 아주 나를 죽일 작정이로구나.

점심부터 밥도 안 먹고 삼겹살만 족히 2인분을 먹고 나니 ‘배는 부른데 배가 부르지 않은’ 신묘한 경험을 했다. 탄수화물이 주는 포만감이 없는 데 따른 것 같았다. 와잎(와이프)에게 삼겹살 사진과 함께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를 시작했다고 알렸다. 와잎은 “살 더 쪄서 개뚱땡이 되는 거 아냐? ㅎㅎㅎ”라고 답을 보내왔다. 아~ 놔.

오후 4시, 밥때는 멀었는데 벌써 허기가 밀려왔다. 평소보다 더 배가 고픈 것처럼 느껴졌다. 예전 같으면 비스킷이나 쿠키로 군것질을 할 시간이었다. 하는 수 없이 물배를 채웠다. 7시 반 저녁 약속. 취재원에게 고지방 다이어트 사실을 알렸다. 살집이 있는 편인 그는 다짜고짜 효과가 있냐고 관심을 보였다. “아직 한 끼밖에 안 해봐서요.” 그는 근처 족발집으로 날 인도한 뒤 족발 중자와 소맥을 시켰다. 허겁지겁 족발을 쓸어 담았다. 문득 의문이 일었다. ‘이렇게 먹는데 과연 살이 빠질까?’ 날 보고 취재원이 말했다. “다이어트를 하니까 먹성이 더 좋아지셨군요.” “….” 절대 현혹되지 마라, 먹성도 아니고…. 그는 입가심을 하자며 막국수를 주문했다. 난 입맛을 다시기만 했다.

고지방에 맞게 치맥으로 2차를 가자는 취재원을 겨우 달래 집에 보냈다. 족발 뒤에 치킨을 먹을 자신도 없었거니와 몸살 기운처럼 몸이 춥고 기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약간 어지러움증도 있는 듯했다. 탄수화물을 급격히 끊으면 뇌로 보내지는 포도당이 줄어들어 현기증이 난다는데 그 때문인 것 같았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 짓을 하나. 니글니글거려 죽을 거 같았다.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도전
냉면이라면 환장하는 인간이 과연?
첫날부터 삼겹살에 족발, 치즈 야식
배가 부른데 배가 부르지 않은 경험
“엥간히 해라” 둘째날 찾아온 위기

당 떨어지니 우울하고 어지럼증도
변비로 들락날락 “더러워 죽겠네”
직장인, 밥과 면 빼고 먹을 게 별로
도시락 아니면 고지방 식단 어려워
체중변화는 글쎄…“먹고 운동” 결론

집에 와 내 방에서 옷을 홀딱 벗고 몸무게를 쟀다. 83㎏. 원래 몸무게와 별 차이가 없었다. 캔맥주에 쥐포를 뜯고 있던 와잎이 방문을 열고 말했다. “벗는다고 덜 나갈 거 같으냐? 하하하. 뒤에서 보니 아주 한 상 푸짐하게 차렸구나.” 깜딱이야. 니 등빨이나 신경 쓰시지. 그나저나 184㎝의 키에 한때 76㎏까지 감량을 했던 때가 언제였나 싶었다. 아휴 당 떨어져. 슬라이스 치즈 두 개를 먹고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한밤중 불현듯 찾아오는 야식 갈망을 달래는 데는 치즈가 제격이다.
이튿날인 11일은 마침 ‘비만예방의 날’이었다. 내 비만은 예방되지 못하고 재발되었다고 아랫배는 쓸쓸히 말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집에 아무도 없었다. 식전 댓바람부터 고기를 구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유 한 잔을 마시고 집을 나섰다. 점심을 같이 먹기로 한 고경태 신문부문장한테서 11시께 카톡이 왔다. “점심 만두전골 어때?” “거기 다른 메뉴도 있나요? 저 지방 다이어트 체험기 써야 해서 ㅜㅜ” “그럼 뭘 먹어야 하는데. 얼어죽을 다이어트” “ㅜㅜ 걍 가시죠” 지방 다이어트의 1차 위기였다.

“추저분한 짓은 다 하는구만~”

왕만두와 떡과 칼국수 사리로 무장한 만두전골은 곳곳이 지뢰밭이었다. 삼엄한 탄수화물의 엄호를 뚫고 지방과 접선해야 했다. 미나리와 버섯만 집어 먹고 있는데 고 부문장이 말했다. “그건 먹어도 되나?” 그럼 난 뭘 먹나? 아주 날 말려죽일 셈이로구나. 살아남아야 한다. 왕만두를 집어 앞접시에 놓았다. 앞자리에 앉은 남종영 미래팀장이 득달같이 지적했다. “탄수화물 안 먹는다며?” 난 만두피를 벗겨 만두소만 먹는 것으로 응수했다. 고 부문장이 그런 나를 보고 말했다. “애쓴다.” 그동안의 먹깨비 근성에 벌을 받는 기분이었다.

도시락을 싸오지 않는 한 직장인이 고지방 다이어트로 식단을 꾸리기는 쉽지 않았다. 집 밖에서 우선 탄수화물을 빼고 먹을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삼시 세끼를 삼겹살만 먹을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리고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의 눈치를 안 볼 순 없었다. 기사를 위해서라고 말해도 돌아오는 건 ‘엥간히 해라~’라는 핀잔이었다. 아~ 나도 먹고 싶다고~. 아휴 당 떨어져.

셋째날 아침. 베이컨 100g, 계란후라이 1개, 두부 반모, 당근 반개, 두부 아욱국, 김치.
어김없이 저녁은 찾아왔다. 힘없이 가방을 싸는데 김종철 선임기자가 저녁 먹고 가라고 했다. “지방식으로 먹을 게 마땅치 않아서요.” 고민 끝에 김 선배와 회사 앞 중국집엘 갔다. 오향장육, 유린기 모두 재료가 떨어져 안 된다고 했다. 결국 탕수육을 주문했다. 소스는 따로 달라고 했다. 전분이 들어간 소스를 안 먹기 위함이었다. 김 선배는 정성이 갸륵하다고 웃었다. 그릇에 담겨 나온 탕수육의 튀김옷을 벗겨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다. 고기와 튀김옷은 이미 하나가 돼 있었다. 그냥 간장에 탕수육을 찍어 먹었다. 선배는 삼선간짜장을 시켰다. 난 그저 탕수육만 먹었다. 느끼하면 양배추 샐러드를 집어 먹었다. 케첩은 덜어낸 채. 입천장이 다 까졌다. 난 고행을 하는 걸까. 이건 다이어트가 아니라 그냥 다이야. 먹고 나니 속이 더부룩했다. 회사에서 신용산역까지 약 2.2㎞의 거리를 40분 동안 걸었다. 그래도 소화가 안 됐다. 거실에 앉아서 꺼억꺼억 트림을 하고 있는 날 보고 와잎이 말했다. “드러워 죽겠네.” 트림은 새벽 2시 반에야 잦아들었다. 우울한 밤이었다.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를 하면서 먹은 것들. 둘쨋날 만두전골집에서 메뉴를 선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셋째날 점심은 돼지국밥으로 유명한 집에서 수육을 시켰다.
고지방 다이어트 3일차인 12일(수) 아침, 일어나자마자 몸무게를 쟀다. 84㎏. 몸은 한 근 이상이 불어 있었다. 난 뭘 한 걸까? 탕수육에 붙어 있던 튀김옷이 원망스러웠다. 더 철저한 지방식으로 가야 한다. 와잎은 그런 나를 위해 아침부터 베이컨에 달걀프라이를 내왔다. 아침부터 ‘푸드파이터’가 된 기분이었지만, 먹을 만하다고 말하는 순간 아랫배에서 희미한 신호가 왔다. 고지방 다이어트를 한 이후 없던 변비가 생겼더랬다. 탄수화물을 먹지 못해 섬유질이 부족한 탓이었다. 화장실을 3번이나 들락날락했지만 여전히 뒤가 무거웠다. 와잎이 화장실 밖에서 말했다. “가지가지 한다~. 추저분한 짓은 다 하는구만~.” 이러다가 혈변을 보겠구나. 난 뒤처리를 하며 “그러니까 발제를 잘해야 한다”는 박현철 기자의 말을 떠올렸다.

상추에 치즈를 놓고 그 위에 수육을 쌓은 모습. 이것이 진정한 고지방식이다. 맛은 의외로 나쁘지 않다.
돼지국밥으로 유명한 음식점에서 후배를 만난 점심,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낮은 목소리로 주문했다. “수육 중자랑 소주, 맥주 주세요.” 아주머니는 별 미친놈 다 보겠다는 표정이었다. 후배 녀석은 “선배, 재밌게 사시네요”라고 이죽거렸다. 음식이 나오자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남들이 보면 파워블로거인 줄 알겠어요.” 녀석이 골을 질렀다. 소주 한 잔을 가득 채워 녀석에게 소맥을 타 줬다. 먹고 떨어져라. 가져온 치즈를 꺼내 상추 위에 올리고 그 위에 고기 한 점을 쌓았다. 녀석이 “웩” 하며 사진을 찍었다. 집에 가고 싶었다. 가서 홀로 라면을 끓여 먹고 싶었다.

저녁엔 예전 출입처 관계자를 만났다. 내 다이어트와 김영란법에 맞게 양꼬치 앤 칭다오로 메뉴를 정했다. 관계자는 얼굴이 좋아지셨다고 인사를 건넸다. 나, 다이어트하고 있는 거 맞니? 2차는 에일맥주와 햄치즈를 먹었다. 딸려 나온 크래커는 손도 안 댔다. 더치페이를 하고 새벽 1시께 무렵 택시를 탔다. 와잎이 카톡을 보내왔다. “언제 와? 살은?” 살? 니가 나한테 살을 날린 거지? 난 묻고 싶었다.

다이어트 3일째 저녁, 양꼬치 1.5인분을 먹었다. 나, 다이어트하고 있는 것 맞니?

위장이 춤추고 침샘이 폭발하다

말뿐인 다이어트 4일차인 13일(목) 아침, 마지막으로 몸무게를 쟀다. 83㎏. 그동안 뭐 한 거니? 나흘의 기적은 없었다. 나흘의 삽질이었다. 식탁엔 아침부터 소고기와 덩그러니 볶음김치가 올라와 있었다. 마지막 수행을 한다는 마음으로 식어버린 소고기와 김치로 해장을 했다. 소고기를 먹었는데 배에서 꾸르륵꾸르륵 돼지 소리가 났다. 설사가 터졌다. 똥줄이 타는지 후끈했다. 일을 마치고 거울을 봤다. 술독이 올라 붉은 얼굴이 가관이었다. 출근길, 속은 부대끼고 머리는 지끈거려 정신이 혼미했다. 국물이 필요했다. 우선 나부터 살고 봐야지. 편의점에 들어가 컵라면을 사 먹었다. 라면 면발이 그렇게 사랑스러운지는 이날 처음 알았다. 라면 국물이 이렇게 평화로운지는 이날 새삼 알았다.

점심을 끝으로 지방 다이어트를 포기했다. 탄수화물은 내게 필수화물이었다. ‘지방 다이어트는 나랑 안 맞아. 면을 먹고 운동을 하자.’ 이날 저녁 난 회사 선배와 마포의 유명한 냉면집 을밀대에 갔다. 물냉면 ‘양 많이’를 그릇째 씹어 먹었다. 냉면이 목젖을 타고 넘어올 때, 가련한 내 위장이 춤을 추고 메마른 침샘이 폭발했다. 국물에 소주를 마시며 다짐했다. 앞으론 발제 잘해야지.

글·사진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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