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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1.11 21:53 수정 : 2016.11.12 10:47

[토요판] 커버스토리
10대들이 광장에 모이기까지

지난 9일 저녁 강원도 원주시 단계동 장미공원에서 원주시 중고교생 200여명이 모여 ‘민주주의 수호 결의대회'를 열었다. ‘저희가 배운 민주주의, 어디 갔습니까?'란 펼침막을 든 채 이들은 밤늦게까지 현 시국에 대한 ‘자유발언'을 이어갔다. 집회 주최자 이채린(ㅅ여고 2학년)이 사회를 보고 있다. 홍명호씨 제공

▶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2주 연속 5%를 기록했습니다. 부정 평가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습니다.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엔 최소 50만에서 최대 100만명의 시민들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때의 인원을 뛰어넘을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그곳엔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청소년들도 많습니다. 최근 어느 때보다 많은 청소년들이 거리로 나오는 이유를 ‘그들의 3일’을 따라가며 들었습니다.

“채소 할 때 채, 린스 할 때 린. 채린이에요.”

지난 9일 늦은 오후 강원도 원주시 단계동 장미공원은 이미 어둑했다. 공원 근처에서 원주 ㅅ여고 2학년 학생이 이름을 또박또박 발음했다. 한 시간 뒤 이채린(17)은 자신이 제안한 집회를 앞두고 있었다. 그에게 물었다.

“집회 신고를 언제 했어요?”

“월요일(7일)이요. 오후 5시에 했어요. 원주경찰서에 가서요.”

또래 십대들이 그렇듯, 채린도 짧은 문장을 여러개 이어붙이는 방식으로 말했다.

“집회 신고 해본 게 처음 아니에요?”

“맞아요. 그래서 금요일(4일)에 경찰서에 미리 가 봤어요. 경찰관한테 (어떻게 신고하면 되는지) 물어보고, 다시 월요일에 (집회 신고서) 작성해서 간 거예요.”

경기도 군포시 부곡중앙고 2학년 김민석군이 작성한 집회 신고서. 김민석군 제공

민주주의 국가에선 누구에게나 집회의 자유가 보장된다. 집회 주최자의 나이나 자격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채린이 친구들과 집회를 여는 것도 자유다. 단 집회 신고를 하려면 요구 조건이 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야간 집회의 경우 성인인 ‘질서유지인’(신고 인원 10명당 1명)을 두도록 하고 있다. 집회를 열기 720시간(한 달) 전부터 48시간 전까지 집회 신고서를 관할 경찰관서장에게 제출해야 한다. 채린도 학원 선생님 등 주변 성인들에게 부탁해 질서유지인으로 등록했고, 48시간 전인 7일 오후 원주경찰서에 집회 신고를 했다.

“그전에 집회나 시위 같은 거 나가본 적 있어요?”

“딱히 없어요. 지나다가 구경해본 정도?”

“근데 어쩌다 집회를 주최까지 하게 됐어요?”

“얘기해보면 원주에서도 하고 싶어하는 애들 진짜 많아요. 근데 (서울 등에서 하는 큰 집회는) 못 간다고 해요. 그래도 어떻게든 뭔가 의견을 내고 싶다는 생각은 들고.”

궁금할수록 답답해졌다

중고등학생들이 움직이고 있다. 교과서에서 배운 민주주의 원리와 현실에서 겪는 ‘민주공화국 한국’의 모습이 크게 다르다는 사실을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보며 깨닫고 있다. 역사 서술이 잘못됐다며 교과서를 뜯어고치는 대통령이 정작 자신은 교과서의 가치와 정반대로 정치를 해왔다는 사실을 청소년들도 알아버렸다. ‘돈이 능력’(최순실 딸 정유라의 글)인 사회에서 할 말을 잃은 그들이 교과서의 언어가 아니라 스스로의 언어를 찾으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채린은 지난 5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집회(2차 범국민대회)에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다. 원주에서 서울까진 기차로 1시간, 버스로 1시간30분가량 걸리는 거리가 십대에겐 멀다. 보충수업에 야간자율학습, 학원과 독서실을 돌며 온종일 공부만 하는 수험생에겐 특히 그렇다. 지난 주말 열린 광화문 집회에 20만명(주최 쪽 추산)이 모였다는 소식을 채린과 친구들은 뉴스로만 접해야 했다.

중고생들이 움직인다
교과서에서 배운 민주주의와
현실서 겪는 ‘민주공화국’이
다르다는 사실을
이들도 알아버렸다

이해 안 되는 일들
풀어내지 못한 말들이 쌓이자
친구가 말했다 “우리도 해보자”
누구나 집회의 자유가 있다
나이나 자격은 아무래도 좋다

지난주 월요일(11월31일) 최순실이 긴급체포됐다. 채린과 친구들은 한편으론 반가웠고 한편으론 화가 났다. 보고 있으면 이해 안 되는 일투성이였다. 채린은 친한 친구들과 이야기해 봤다. 친구들 반응도 똑같았다.

온갖 의혹을 받고 검찰에 출석하면서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어떻게 질문하는 기자를 째려볼 수 있을까. 조금 전까지 조사받던 사람이 조사하던 사람 앞에서 팔짱을 끼고 여유만만해하는 건 어떻게 가능할까.

전 국민 5%만 대통령을 지지(여론조사)한다는데 그들은 대통령에게 무슨 기대를 하고 있는 걸까. 채린과 친구들은 궁금할수록 답답해졌다. 풀어내지 못하는 말들이 쌓여갈 때 한 친구가 말했다.

“우리가 직접 집회를 열고 우리 말을 하자.”

다들 좋아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차 대국민 사과 담화를 발표한 지난 4일 그들은 본격적인 준비를 시작했다. 처음 해보는 집회였다. 부당한 일이 눈앞에 있을 때 집회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방법을 그들은 누구에게도 배워본 적이 없었다.

지난 9일 저녁 강원도 원주시 중고교생들의 ‘민주주의 수호 결의대회'에서 집회 주최자 이채린(왼쪽)이 사회를 보고 있다.

“112는 범죄신고 하는 데니까 가까운 지구대에 전화를 했어요. 지구대에선 ‘여기다 하는 거’ 아니래요. 원주경찰서 번호를 알려주길래 전화해서 물어봤어요. 그래도 마음이 안 놓이고 정확하게 알아야겠다 싶어서 집회 신고 전에 미리 찾아간 거예요.”

“경찰이 친절하게 대해주던가요?”

“네.”

“무섭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네. 처음엔 집회 인원이 100명쯤 될 것 같다고 했는데 경찰관이 ‘그럼 50~60명으로 잡으면 된다’고 해서 그렇게 적었어요. 질서유지인들 사인을 받아와야 한다고 해서 주변 어른들한테 부탁해서 다음날까지 받았고요.”

경찰서에서 집회 신고 방법을 알아온 채린과 친구들은 페이스북에 ‘원주 학생 연합 집회’란 이름의 홍보 페이지를 만들었다. 첫 공지를 띄웠다.

9일 저녁 7시30분. 장미공원.

페북에 올린 촛불 사진 위엔 ‘원주 고등학생 연합의 외침, 박근혜는 하야하라. 우리의 외침은 대한민국의 외침입니다’라고 적었다. 채린과 친구들 사이에선 ‘대통령 하야’ 요구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었다. ‘철없는 아이들의 일탈’로 보이지 않도록 몇 가지 당부도 적었다.

“(참석자들은) 진한 화장을 가급적 자제하고 교복을 입어주세요, 성인과 대학생의 참여를 환영합니다, 시위에 참여할 이들은 (참여 인원을 파악해야 하니 사전에) 메시지를 보내주세요.”

각자 주변 친구들에게 알음알음으로 페이스북 페이지를 알렸다.

“원주가 쫍짢(좁잖)아요! 웬만하면 다 건너건너 아는 애들이에요.”

곧바로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2반 출동” “가자앗” “이날 혹시 연습 있음?” “같이 콩밥 먹이러 가자” “너 하고 싶다며” “중학생은 안 되나요?”….

적극적으로 집회 참여를 권유하는 댓글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역사적 사건은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여 못하시는 분들 와서 직접 보시기라도 하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댓글을 단 학생들은 다시 자기 친구들을 페이지에 ‘태그’해 집회 일정을 알렸다. 원주 청소년들의 시국집회 개최 소식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지난 9일 강원도 원주시 중고교생 200여명이 모여 ‘민주주의 수호 결의대회'를 열었다. 집회 전 물품을 준비 중인 모습. 박기용 기자

학교도 문제삼지 않기로

“학교에선 뭐라고 안 하던가요?”

“제가 친한 선생님께 일요일 저녁에 전화로 미리 말씀드렸어요. 제가 일 하나 쳤다고. 흐~.”

채린의 이야기를 들은 선생님은 다음날 교장·교감, 학생부 선생님과 회의를 열었다. 회의 결과 ‘순수한 마음에서 하는 일이니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고 선생님은 전했다. “동아리 홍보하는 전단지도 일일이 학생부 도장을 받아 붙여야 할 만큼 원주에서 가장 교칙이 엄하다”는 채린의 학교도 이번엔 그랬다.

7일 채린은 원주경찰서에 정식 집회 신고를 냈다. 신고서에 그는 제목을 ‘원주 중고생들의 민주주의 수호 결의대회’라고 썼다. 신고를 마친 채린은 다음날 점심시간에 교실에서 집회 용품을 만들었다. 선언문을 쓰고, 대자보도 썼다. ‘박근혜 퇴진하라’ ‘박근혜 하야하라’는 문구를 적은 손팻말도 만들었다. 다른 반 아이들이 와서 구경했다. “나도 갈게” “열심히 해” “파이팅” 응원도 했다. 선생님들도 모른 척해줬다.

“고등학생 시각에서 가장 화나는 게 뭐예요?”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라고 우리가 배워왔잖아요. 그런데 돈과 권력만 있으면 다 된다는 거잖아요.” 그의 말이 조금씩 빨라졌다.

“저희는 아침에 진짜 힘들게 일어나요. 일어나기 진짜 싫은데 일어나고요. 피곤해 죽겠어요. 솔직히 야자 10시에 끝난다고 바로 10시에 귀가하면 공부 잘하는 애들이에요. 중하위권 애들은 바로 집에 안 가요. 다 학원 가고 독서실 가고 새벽까지 공부하다 들어가요. 저는 시험 기간엔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새벽 2시나 돼야 집에 가요. 그럼 씻고 뭐 하다 보면 3시에 자요. 7시 반에 일어나도(오전 8시10분까지 등교) 4시간 반밖에 못 자요. 저나 친구들이나 그렇게 공부해서 시험 봐요. 다들 다크서클 내려와 있고. 그런데 정유라는 메달 딴 5개 중 4개가 혼자 대회 나가서 딴 거라잖아요. 2등 줬다고 항의했다고 하고. 이화여대는 없던 특별전형까지 만들고. 이화여대가 그냥 가는 학교가 아니잖아요. 원주 같은 지방에선 최상위권이어야 가는 학교인데.”

역사 교과서 논쟁 때도 채린이는 화가 났었다.

“그땐 울 학교 선생님들도 시위했었어요. 농협 앞에서. 그냥, 역사를… 자기네 집안 이야기도 아니고. 위안부 내용도 줄여버리고. 박정희가 위대한 사람처럼 이렇게 막 해버리고. 옛날에는 그런 거 뜯어고치지 못하게 막아놨었잖아요. 조선시대 때도.”

채린이 미리 받은 메시지로 어림잡은 이날 집회 참석 예상자는 200명이었다. 집회 순서도 채린이 짰다. 행진은 계획하지 않았다. “위험할 것 같아서” 뺐다. 집회 장소인 장미공원은 원주 시내 번화가인 단계동에 있었다.

“근데 여기 너무 공원 안쪽 아닌가? 밖에서 잘 안 보일 거 같은데요?”

“큰 소리 나면 다 볼 거예요. (원주의 단골 집회 장소인) 중시(중앙시장)에서 하려면 길을 막아야 하거든요. 거기서 시위하는 거 볼 때마다 ‘저렇게 길 막고 하면 사람들 불편하겠다’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집회 준비 중에 원주시민연대의 이선경 대표가 도착했다. 시민연대에서 학생들에게 촛불, 손팻말, 마이크, 앰프 등을 빌려주기로 했단다. 원주에서 집회나 시위를 자주 하는 단체가 어딘지 찾아본 채린이 먼저 이 대표에게 연락했다.

“이분들이 늘 집회를 하시니까 그런 물품들이 있을 것 같았어요.”

이 대표도 흔쾌히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기특하잖아요.”

우리가 배운 민주주의는

채린은 집회 전 걱정이 많았다. 친구들이 많이 올지, 진행이 제대로 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걱정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날 집회장에 나온 원주의 청소년은 채린의 말대로 200명은 족히 돼 보였다. 준비한 촛불 150개가 금세 동났다. 집회는 채린이 짜놓은 순서대로 진행됐다. 구호를 함께 외치고, 미리 써온 시국선언문을 읽고, 준비된 6명의 발언자가 순서대로 발언하고, 참가한 청소년들의 자유발언으로 이어졌다.

“보통 집회에서 선언문 같은 건 가장 마지막에 다 같이 읽는 게 일반적인데….”

“악! 몰랐어요. 미리 말씀해주시지!”

첫 발언자를 소개하고 무대 뒤로 나온 채린이 아쉬워했다. 첫 발언자는 ‘중고생혁명’의 최준호(18) 대표였다. 그가 마이크를 잡고 물었다.

“여러분이 생각하시기에, 이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인 것 같습니까?”

“아니요!”

“우리 중고등학생들이 힘들게 하루하루 생활하는 동안 대한민국 정부는, 박근혜는 무엇을 했습니까. 세월호 참사에 대한 미흡한 대응으로 300여명의 고등학생들을 희생시켰습니다.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시키며 우리들의 머릿속까지 재단하려 했습니다. 말로는 교육개혁을 외치면서 무상급식을 방해하고 학생인권조례를 무시했습니다.”

최준호는 연설에 능했다. 중고생혁명은 20만명의 시민이 모인 지난 5일 서울 광화문집회 때 ‘중고생이 앞장서서 혁명정권 세워내자’라고 쓴 펼침막을 들고 행진했다. 그날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다. 교복을 입고 나온 청소년 시위대를 그가 이끌었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라고
우리는 배워왔다 그런데
돈과 권력만 있으면
다 된다는 거잖나”
화가 났다

“국민들이 뽑은 행정부에 대한
믿음을, 신뢰를 저버린 거다
‘최 대통령 하야하고 박 대변인 사퇴’
얼마나 분노했으면
그런 말을 하겠나”

준비 과정에서 채린은 ‘집회 선배들’인 ‘중고생혁명’이란 단체에 연락했다. 채린은 집회 순서는 어떻게 짜고, 선언문은 어떤 식으로 작성하는지, 손팻말이나 촛불 제작 비용은 어떻게 마련했는지 등을 물었다.

최준호는 최근 몇년 동안 중고생연대란 이름의 청소년단체를 만들어 활동해왔다. 얼마 전까지 120여명 수준이었던 회원 수는 지난 5일 집회를 거치며 700명가량으로 불었다. 중고생혁명은 중고생연대의 ‘비상시국 버전’이라 할 수 있다. 9일 원주 집회에 앞서 만난 그는 “청소년들이 느끼는 분노가 극에 달해 있다”고 했다.

“청소년들 발언을 들어보면 박근혜 퇴진 집회인데도 교육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얘기가 하야 문제 못지않게 나와요. 청소년들이 당장 느끼는 건 두발규제나 교육제도 문제, 주입식 교육, 체벌 같은 것들이지만, 그 비민주성이 중고생 사회 안에서만 벌어진다고 할 수 없거든요.”

그는 지난 5일 중고생혁명의 집회 준비를 거의 혼자 다 했다. 기자들에게 연락하고, 집회 물품을 챙기고, 펼침막을 주문해 받아오고, 앰프를 빌리고, 연설문을 짜고, 집회 식순을 짰다. 당일 단체 깃발 아래로 수백명의 청소년이 모여들었다. 혼자선 감당할 수 없는 규모였다.

“청소년들 분노도 극에 달해”

중고생혁명은 12일 집회를 준비하며 새로 모인 회원들과 집행부를 꾸렸다. 5일 집회 때 연락처를 주고 간 이들만 490여명이었다. 그중 20여명이 집행부를 이뤄 12일 집회를 준비해왔다. 그는 “당분간은 꾸준히 집회를 할 계획”이라고 했다. “‘박근혜 하야’가 이뤄지더라도 잘못한 사람들이 처벌되고 시국이 안정화됐다는 판단이 들 때까지 꾸준히 중고등학생들의 집회를 준비해갈 생각이에요.”

9일 저녁 장미공원에선 계속해서 마이크를 잡은 중고생들이 돌아가며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발언자의 말이 끝나면 채린이 앞으로 나가 다음 사람을 소개하고 돌아왔다.

“발언자의 발언 요지를 사회자가 정리해 소개해주면 좋아요.”

이선경 대표가 조언했다.

“아, 그렇겠네요.”

채린도 동의했으나 막상 사회를 볼 땐 그렇게 하지 못했다. 마이크를 잡고 자기도 모르게 계속 앞뒤로 움직여가며 이야기하거나 악을 쓰다 들어오는 학생도 있었다. 한 중학교 2학년 학생은 이야기하다 울먹이기도 했다. 청소년다운 집회였다.

그래도 학생들은 신이 나 있었다. 이날 저녁 7시 원주시 단계동의 기온은 4℃였다. 매우 쌀쌀했다. 8시엔 2℃로 떨어졌다. 교복 위에 다른 겉옷을 입지 않겠다고 버티던 채린도 한 시간쯤 지나 외투를 껴입고 손을 떨며 사회를 봤다. 추운 날씨에도 학생들이 발언 순서를 기다리며 줄을 섰다. 집회 마무리 시간이 가까웠지만 할 이야기가 있는 학생들이 무대로 계속 모여들었다. 원주는 인구 34만명의 작은 도시다. 원주시민연대가 평소 시내에서 여는 집회엔 “500명 정도 모여도 정말 많이 모이는 것”이라며 이선경 대표도 놀라워했다.

채린이 원주경찰서에서 집회 신고 방법을 문의하고 있을 때(지난 4일 오후 5시께) 경기도 군포 부곡중앙고 학생들 8명은 학교 시청각실에 모여 회의를 열었다. 11일로 계획한 시국선언을 준비하며 이날부터 세 차례(4일, 5일, 6일)의 회의를 잇달아 열었다. 시국선언 하루 전엔 새벽까지 텔레그램 논의를 이어갔다.

지난 11일 열린 경기 군포시 학생연합의 시국선언 및 촛불집회 홍보 포스터. 김민석군 제공

“약간의 유머가 들어간 게 좋지 않을까?”

“그 ‘하야 순시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도와 대통령이 하야할 것이다. 이런 건? 넘 길군.”

“플라톤 말 인용하는 건 어때?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받는다는 것’이다.”

11일 새벽 2시 넘어서까지 김민석(17·군포 부곡중앙고 2학년)과 친구들이 모인 텔레그램 채팅창은 꺼질 줄을 몰랐다. 이날 저녁 7시 군포시 산본로데오거리 이마트 앞에서 열리는 군포시 학생연합 시국선언 및 촛불집회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 행사는 민석을 포함한 친구들이 생애 처음으로 기획하는 집회였다.

아버지 어머니가 질서유지인

민석과 친구들은 ‘집회는 대학생들이나 참여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관심은 많았다.

“두 가지 이유였어요. 우선 ‘대학생이 된 뒤 나가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었고, 학생이니까, ‘정치적인 의사 표현을 굳이 해야 하나’ 생각했어요. 기계적인 중립 같은 걸 지키려고 했던 거 같아요.”

그랬던 민석에게 2주 전인 지난달 29일 참여한,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집회는 그동안의 생각을 바꿔놓는 계기가 됐다. 무엇이 민석의 뇌리에 깊이 박혔을까.

“제가 무슨 주장을 할 생각은 없었고요. 그냥 집회를 어떻게 하는지 한번 보자고 간 거였어요. 그런데 제가 상상하던 모습과 다른 거예요. 경찰과 집회 참가자들이 실랑이하는 그런 장면들을 많이 상상했던 것 같아요. 대열 선두에 서서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 앞까지 나섰는데,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과 대치하는 순간인데, 경찰과 몸을 접촉하려고 할 때, 그리고 경찰들의 방패 같은 것들을 손대려고 할 때, 주변에서 외쳐요. ‘그렇게 하지 마라’ ‘방패 돌려주라’고요. 시민들 스스로 평화 집회를 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그렇게 정당한 목적을 위해 정당한 방법으로 진행되는 집회라면 나쁘지 않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어요.”

집회를 처음 경험한 민석은 집회를 “해야겠다가 아니라 하고 싶어” 친구들에게 말을 꺼냈다. 수요일(2일)이었다. “학교 안에서 시국선언문을 낭독하려 하는데, 같이 할래?” 다음날 민석과 생각을 같이하는 10명의 친구들이 모였다.

우선 팀을 꾸렸다. “일단 우리부터 내용을 잘 알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건을 정리요약하는 팀을 만들었다. 다음은 학교에 붙일 대자보를 제작하는 팀, 시국선언 행사를 다른 학교와 외부에 알리는 대외협력팀,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과 자료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팀을 꾸렸다. 학생회장 경험이 큰 밑천이 됐다. 민석이 대표를 맡았다.

학교에서 가르친 적 없었고, 누구에게 배운 적이 없어도, 그들은 자신의 말을 논리적이고, 합리적이며, 호소력 있게 다듬을 줄 알았다. 소통하며 연대하는 과정도 배워나갔다.

▲대외협력 추진 결과

-○○고의 경우 보수적 성향의 선생님들이 많으시기에 시도조차 하지 못함.

-○○고는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음.

-○○고는 사립이라 보수 성향의 선생님들이 많아 동아리 자치적으로만.

-대외협력을 통해 함께 가는 것이 목소리를 확실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필요하긴 하지만, 연락을 기다리다가 시기를 놓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우선 일을 진행하며 대외협력을 함께.(5일 2차 회의 내용 중)

애초 민석은 11일 시국선언 및 촛불집회를 주최한다는 사실을 부모님께 알리지 않을 계획이었다. “아마 두 분 모두 흔쾌히 허락을 해 주셨을 거예요. 실제 그러셨고요. 그래도 걱정하실 테니까 죄송스러운 마음에 말씀드리지 않고 있었어요.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부모님이 반대하시면, 이미 친구들과 같이하기로 하고 제가 이끌고 있는 입장인데, 난감해지잖아요. 그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말씀드리지 않고 그냥 하려고 했어요.”

민석은 친구들 2명의 이름을 적어 9일 군포경찰서에 집회 신고서를 냈다. 민석의 ‘다짐’은 18살 이상의 질서유지인을 구하는 과정에서 물거품이 됐다. “그렇다고 선생님들한테 부탁할 수도 없고, 결국 부모님께 말씀드렸죠. 어머니 아버지 이름을 썼어요.”

아버지는 농담처럼 “폭력 시위 아니지?”라고 하시곤 웃으셨다.

광장 어디선가 그들이

자유발언자의 명단과 순서를 정리하고, 행사장에서 틀 노래들(‘임을 위한 행진곡’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아침이슬’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을 공유한 뒤에야 깊은 새벽까지 계속된 텔레그램 회의는 끝이 났다.

“자유발언 신청자가 한명도 없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우리 학교 학생은 물론이고 다른 학교 학생들까지 10명 넘게 신청이 들어왔어요. 포스터랑 집회 신고서를 ‘21세기 청소년공동체 희망’이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에도 올렸는데 그 게시물을 보고 일반 시민들도 ‘자유발언 가능하냐’고 문의하셨고요.”

민석은 거듭 “감동했다”고 말했다.

“세월호나 국정 교과서, 메르스 사태 등은 백번 양보해서 정부의 실정이라고 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번 ‘최순실 사건’은 그런 게 아니잖아요. 국민들 스스로 뽑은 행정부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이 있었는데, 그 신뢰를 저버린 거예요. 2주 전 집회에서 봤던 구호 중 가장 와닿았던 건 ‘최 대통령 하야하고 박 대변인 사퇴하라’였어요. 국민들이 얼마나 분노했으면 그런 말을 하겠어요.”

그래서 학생들이 나섰을 것이다. 민석은 “적어도 입시제도만큼은 아직 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정유라 입시 의혹을 보면서 그런 믿음마저 깨져버렸다”고 했다. 절망감과 분노를 느끼는데 학생과 어른이 따로 있을 리 없다.

“‘학생답지 못하다’고 하는 어른들에게 좀 건방지지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른들이 하지 않으니까 저희가 나서는 거 아니냐’고요. 청소년들에게 미안함을 느낀다면 그런 얘길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11일 저녁 민석과 친구들은 시국선언과 촛불집회를 하며 그렇게 나서기 시작했다.

9일 저녁 원주 집회 다음날 이채린은 학교에서 ‘유명인사’가 됐다.

“친구들이 저를 보고 소리지르며 ‘대단하다’고, ‘잘했다’고 해줬어요. (모른 척해줬던) 선생님들도 ‘잘했냐’고 물어봐주시고요.”

채린은 12일 서울 광화문 집회에선 최소 50만명(주최 쪽 추산)이 모일 거란 이야기를 들었다. 원주시민연대는 먼 거리와 차비가 부담되는 학생들을 위해 기차표를 미리 구해놨다. 차표를 구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지 모른다고 판단해서다. 오후 2시47분 차다.

최준호와 중고생혁명은 12일 오후 3시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별도의 집회를 연다. 단체 출범을 알리는 중고등학생들만의 집회를 따로 연 뒤 4시부터 민중총궐기에 합류한다는 계획이다. 11일 그는 새로 꾸려진 집행부들과 이 집회 준비에 몰두했다.

김민석은 11일 시국선언 및 촛불집회를 주최한 친구들과 12일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리는 집회에 함께 나간다. 오후 3시 탑골공원에서 열리는 청소년 시국대회엔 공동 주최자로 참석한 뒤 광화문광장으로 옮겨 행진 대열에 합류할 예정이다.

청와대가 바라다보이는 광화문광장 어디선가 채린, 준호, 민석이 수많은 채린들, 준호들, 민석들과 함께 그들이 준비한 구호를 외칠지도 모른다. 학교와 교육이 가르치지 않은 것을 스스로 터득하며 성장해가는 그들 앞에서 권력자가 농단한 이 땅의 못난 민주주의는 분명 부끄러울 것이다.

원주/박기용 박현철 기자 xe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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