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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3.02 21:46 수정 : 2012.04.18 10:58

[토요판] 뉴스분석 왜?
이준기, 정치적 색깔 뮤지컬 ‘강요된 자발’로 출연
역할·임무 범위 어디까지일까…가수 비도 차출설

영화 <왕의 남자>로 유명한 배우 이준기(30)씨가 지난달 15일 전역했다. 동장군이 기세를 떨친 매서운 날씨에도 수백명의 국내외 여성팬들이 전날 밤부터 서울 삼각지 국방부 청사 앞에서 노숙하며 그의 귀환을 반겼다. 텔레비전 연예프로그램들도 그의 전역을 크게 다뤘다. 이렇듯 민간의 눈에 그의 전역은 ‘빅스타의 복귀’였다.

그렇다면, 군의 시각으로 봤을 때는? 솔직히 손실의 의미가 크다. 지금까지 그의 인기와 이미지를 군 홍보에 잘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연예인의 사회적 인기를 군이 홍보에 차용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하나? 이런 질문을 주변 몇몇 사람에게 던져봤다. ‘당연하다’와 ‘문제 있다’는 정반대 의견이 팽팽했다. 연예병사도 ‘까라면 까야 하는’ 군인이라는 게 전자의 주장이라면, 창작의 영역까지 강요하는 것은 문제라는 게 후자의 생각이리라.

여러분은 어느 쪽에 마음이 쏠리나? 다른 방식으로 묻자면, 연예병사의 역할이나 임무가 어디까지일까? 사소한 질문인 듯하지만, 이는 병역의무를 이행중인 군인에게 국가가 요구할 수 있는 게 어디까지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군인의 인권, 개인과 국가의 관계, 국가가 침해할 수 없는 양심의 범위 등과 관련된다는 것이다. 이준기씨 사례를 통해 이 문제를 한번 생각해보자.

이준기 팬클럽에선 반대 서명운동

2010년 5월 군에 입대한 이씨는 21개월 동안 국방홍보원 소속 연예병사로 근무했다. 공식 소속은 국방부 근무지원단 홍보지원대. 국방부 영내 내무반에서 인근 국방홍보원으로 출퇴근하며 병역의무를 이행했다. 그가 맡은 일은 말 그대로 ‘국방 홍보’ 업무. 군 관련 각종 방송 및 행사 출연, 포스터 촬영 등이었다.

그런데 그가 입대 직후 6·25전쟁 60돌을 기념해 창작뮤지컬 <생명의 항해>에 주연으로 참여하면서 논란이 일기 시작했다. 이씨의 작품 참여 방침 발표 뒤, 팬클럽에서 반대 서명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본인과 소속사가 출연을 고사했는데 국방부가 강제로 출연시키려고 한다는 주장이었다. 해외 팬들을 상대로도 서명운동이 벌어졌다. 상하이엑스포 홍보대사이자 한류 스타로서 중국팬들을 생각해야 하는데 중공군과 대립하는 역을 맡았다는 점과 뮤지컬 출연 경험이 없는데 50일에 불과한 연습 기간은 너무 짧다는 점 등이 구체적인 반대 이유로 제시됐다.

한미동맹·남북대결 강조한
군 제작 뮤지컬 ‘생명의 항해’
출연거부하다 수용한 이준기
“창작활동 강요는 권력남용”

군이 주관해 제작한 <생명의 항해>는 1950년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한 미 해병대의 장진호 전투와 흥남 철수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 수많은 피란민을 태운 미국의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흥남부두를 출발해 거제도에 도착하기까지 2박3일이 배경이다. 무기 대신 피란민을 선택한 미군 선장의 인류애적인 사랑이 강조된다. 한-미 동맹을 강조하며 자연스레 대북 대결을 조명하는, 현 정권의 기조와 여러모로 맞아떨어지는 작품이었다. 이준기씨는 이 작품에서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데리고 탈출에 성공하는 주인공 ‘해강’ 역을 맡았다.

사실 뮤지컬 <생명의 항해> 주연은 이씨 몫이 아니었다. 2010년 1월 군 당국이 경찰청 경찰홍보단과 공군 군악대에서 병역의무를 이행중이던 조승우·조인성씨 캐스팅을 추진하고 있으며, 당사자들이 이를 고사하고 있다는 보도가 스포츠신문에 나오기도 했다. 결국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씨가 입대하면서 문제가 풀린 셈이었다.

당시 논란의 핵심은 출연 결정이 자발적으로 이뤄졌냐는 점이었다. 그해 7월1일 이씨 소속사는 팬클럽 누리집에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이준기씨가 7월1일 뮤지컬 출연 준비를 위해 육군본부로 파견됨을 최종 통보받았습니다. (중략) 저희는 뮤지컬 출연 반대를 위해 목전까지 최선을 다했고 마지막 결정 시까지 계속해서 저희 입장을 전달한 것입니다. 하지만 군인이라는 신분과 군대의 특수성상 어떤 결과가 이뤄질지는 예상할 수 없는 상황임을 말씀드립니다. (중략) 국방부 홍보지원대에 자대배치 받기 전부터 출연 요청은 끊임없이 이어져 왔고, 자대배치 받은 직후에는 곧바로 뮤지컬 출연에 대한 명령이 떨어진 바 있습니다.”

애초부터 이준기씨 캐스팅이 계획돼 있었으며 현재 출연 거부 뜻을 밝히고 있지만 역부족이란 얘기였다. 닷새 뒤인 7월6일 소속사는 또다시 글을 올렸다.

“이준기씨는 물론 저희는 계속해서 뮤지컬 출연에 대한 반대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해온 바 있습니다. 그러나 국방부에서는 뮤지컬 출연에 대한 이준기씨의 임무를 끊임없이 통보해왔고 이준기씨의 현 신분상 불가피하게 7월1일 뮤지컬 준비를 위해 육군본부로 파견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준기씨는 의견 조율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뮤지컬 오디션을 보게 되었으며 뮤지컬 출연 준비를 위해 연습에 바로 투입된 것입니다. 이는 마땅히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나 군대의 특수성과 이준기씨의 군인 신분으로 인한 불가피한 결정이었음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그런데 이 글 후반부에서는, 이씨가 오디션에 투입된 뒤 최종적으로는 출연을 수락했음을 밝힌다. “50여명의 배우(군인)들이 땀 흘리며 최선을 다해 연습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며 “현 신분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 올바른 결정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종합해보면 ‘강압 뒤 수용’ 과정을 밟은 셈이었다.

행정병·소총병과는 성격 다른 정치적 임무

이에 대해 국방부 쪽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다. 군인 신분이면 국가의 명령을 따르는 게 당연한 만큼, 홍보지원대 소속 병사가 군 홍보와 관련된 뮤지컬에 출연하는 게 뭐가 문제냐는 것이다. 당시 <생명의 항해> 프로듀서였던 이아무개 중령은 이준기씨 소속사에 편지를 보냈고 소속사는 팬클럽 사이트에 이 편지를 공개했는데, 여기에 이런 군 당국의 태도는 바로 드러난다.

“개개인의 희망을 모두 고려하여 일을 추진하면 좋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본인의 희망에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불가피하게 임무를 부여받을 수 있음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이 사안과 관련해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에게 의견을 물었다. “입대한 병사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할지는 나라가 정해주는 것이다. 소총병이 자기가 맡은 일이 싫다고 마음대로 행정병이 될 수 있느냐?”라는 질문이 되돌아왔다. 국방홍보원 관계자도 “이씨가 처음에는 힘들어했지만 나중에는 (참여하기를) 잘했다고 하더라”며 “(연예병사 역할이란 게) 안보와 관련된 내용인 만큼 불합리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군에 온 이상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내년 미국 주요도시 순회하며
인기 병사 또 참여시킨다는데
‘홍보지원대원 비’도 출연?

하지만 일부 팬 등은 “뮤지컬 강제 차출은 권력남용”이라고 주장한다. 당시 이씨의 뮤지컬 출연 과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생명의 항해> 제작팀 이아무개 중령은 이준기씨가 입대하기 4~5개월 전 한 신문 인터뷰에서 캐스팅과 관련해 ‘군인이라고 모든 명령에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며, 배우와 소속사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준기씨 쪽이 참여 거부 의사를 거듭 밝혔는데도 오디션에 강제 차출하고, 며칠 동안 계속 놓아주지 않아 압력을 가하고 미안한 마음을 갖게 했다”고 말한다. 군이 말을 바꿨다는 것이다. 행정병이나 소총병 업무는 누구나 동의하는 병역의무 이행의 하나지만, 정치적인 내용이 담긴 뮤지컬 출연은 그와 다르지 않으냐는 주장도 내놨다.


국방부 홍보지원대에서 복무중인 가수 비.
참고로, 현재 이준기씨 쪽은 이 문제가 불거지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 이씨 소속사 관계자는 “제대를 한 마당에 군복무 시절 이야기가 이슈화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본인은 자신의 의지로 출연해 열심히 공연했고, 좋았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출연을 거부하다 이를 번복하게 된 것과 관련해서는 “소속사가 바뀌어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결국 문제의 초점은 연예병사의 임무 범위를 어디까지로 보느냐로 모인다. 소총수나 행정병 등 일반적인 업무를 넘어 창작의 영역에 해당하는 연기와 작품 출연이 병역의무 범위에 해당하느냐는 것이다.

법무법인 다임의 성주목 변호사(전 국방부 인권과 법무관)는 “연예병사는 국방 홍보나 장병 사기진작을 위한 역할을 하는 만큼 그 임무를 다할 책임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군이 일방적인 이데올로기를 홍보하거나 특정한 나라를 옹호하기 위해 연예병사를 활용하는 것은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는 것이어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군 당국이 나서서 기준을 논의하자

사실 연예인의 사회적 영향력이 갈수록 확대되며 연예인 출신 군인을 군 홍보에 활용하는 정도와 빈도는 늘어가는 추세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가 1~2년 전 연예병사를 군 홍보에 좀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라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연예병사의 역할 범위에 관한 사회적 합의나 뚜렷한 가이드라인은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국가와 군에 관한 태도나 철학의 차이에 따라 정반대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올해 초 ‘6·25전쟁 60주년 3차연도 사업’을 발표했는데, 여기에는 “<생명의 항해>를 보다 진취적이고 역동적으로 보완”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최근 입대한 인기 연예인 병사들을 다수 참여”시키고 “내년에는 미국 주요도시 순회공연을 함으로써 미래지향적인 전략 동맹관계 발전에 기여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군 안팎에서는 또다른 빅스타인 비(본명 정지훈)가 차기 주연으로 캐스팅될 것이란 말들이 돌았는데, 마침 5사단 신병교육대 조교로 일하던 비는 최근 홍보지원대로 소속이 바뀌었다.

예상대로 캐스팅이 추진된다면, 비는 이를 거부할까, 수용할까? 아니면 이준기씨처럼 ‘거부 뒤 수용’을 택할까? 또다시 논란이 일기 전에, 군 당국이 나서서 상식선에서 공감할 수 있는 연예병사 활동 범위와 기준에 관한 논의를 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 고백하건대, 과거 군대에 있을 때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 있었습니다. 바로 체육부대 소속 운동선수들과 <국군방송>에 출연하는 연예병사들이었습니다. 같은 국방의무를 이행한다지만 그들은 군대에서도 자신의 ‘업’을 이어가는 이들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각자 삶의 무게가 있듯이, 연예병사에게도 남모를 아픔이 있나 봅니다. 때로는 대중적 인기가 족쇄로 작용한다고나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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