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신당의 두 ‘입’ 조영권(왼쪽)·박은지 대변인은 발랄한 상상력을 무기로 우리 사회의 ‘다른 목소리’를 꾸준히 대변하겠다고 얘기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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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뉴스분석 왜?
두 대변인이 말하는 진보신당의 존재감
▶<한겨레>의 전·현직 정치부 기자들에게 물어봤습니다. “딸깍발이” “등대지기만 있는 등대정당” “통합진보당 2중대·민주통합당 3중대” “공부량은 엄청난데 요령이 부족해 사법시험에서 낙방하는 만년 고시생”…. 그들 눈에 비친 지금의 진보신당은 대체로 부정적 이미지였습니다. “사회가 나아가야 할 진보적 방향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고 긍정하지만 “과연 국민들이 관심이나 있을까” 싶다네요. 실제로 진보신당의 지지율은 1%대에 불과합니다. 존재감 없는 진보신당의 이유 있는 고집을 들어봤습니다.
“오르고 싶지 않은 무대다.”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가 지난해 10월 대표직 출마를 선언하며 꺼낸 첫마디다. 4·11 총선이란 ‘전쟁터’를 앞두고선 “소멸을 무릅쓰는 용기”부터 얘기한다. 비례대표 후보자(박노자 교수)는 한술 더 뜬다.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느냐는 건 내게 전혀 관심사가 아니다”라고. 피 튀기는 전쟁터에 선 장수치곤 영 빵점이다. 유권자들은 헷갈린다. ‘표를 달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이에 반해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이 한목소리로 외치는 ‘반엠비(MB) 야권연대’란 구호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노회찬·심상정·조승수 등 옛 진보신당의 ‘스타’들도 미래를 기약하며 그 무리에 합류했다.
“진보언론마저 외면”하는 진보신당. ‘그들은 도대체 왜, 무엇을 향해 가고 있을까?’ 기자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두 대변인에게서 진보신당의 고민을 수다 떨듯 들어봤다. 아무래도 홍세화 ‘대표님’보다는 편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으리라는 현실적 기대도 한몫했다.
통진당은 진보를 자칭하는 ‘우파’
-요즘 진보신당 상황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박은지(이하 박) “제삿날 닥친 없는 집? 거기에 더해 새 부모를 찾고 있는 고아 같은 느낌이랄까? 과거 진보신당을 이끌던 유력 정치인들이 다 나갔잖아. 그때 난 고아가 된 느낌이었다. 아, 학교는 누가 보내주나, 내 학비는 누가 대주나. 최연소 여자 대변인이 되고 나니 이 당을 내가 완전히 책임져야 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음… 소년·소녀 가장들의 집합소 같다. 거기에 갑자기 할아버지가 나타난 거지. 홍세화! 내가 니들 할배다, 내가 키워줄게. 하하.”
-믿음직한 할아버지신가?(웃음)
박 “음…아니다.(웃음) 믿음직한 할아버지라기보다는 갓 쓰고 글 읽는 옛날 할아버지? 약간 딸깍발이 이미지가 있지. 이를테면 우리 엄마, 아빠는 그래도 나랑 잘 놀아주기기라도 했어. 그런데 우리를 떠났다. 그때 우리를 돌봐준다고 나타나신 할아버지. 틀린 말 하시는 건 전혀 없지만, 나랑 놀아주기보다는 공자·맹자 가르쳐주시는 할아버지다.(웃음)”
조영권(이하 조) “앞으로의 바람 같은 걸 수도 있는데, 나한테 지금의 진보신당은 얼음이 녹아 ‘헐거워진 땅’ 같다. 봄이 오고 얼음이 녹아 새싹이 돋아나기를 기다리는 그런 상황이랄까.”
-분당을 겪은 박 대변인에겐 아직 상실감이, 새로 합류한 조 대변인에겐 기대감이 느껴진다. 그런데 당 대 당 통합을 할 땐 대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잖아. 하지만 진보신당과 사회당의 결합은 극단적 이상주의자의 집합, 래디컬한 이미지 강화로 비쳐 되레 마이너스 요인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조 “래디컬해졌다, 그리 보일 수도 있겠지. 내가 진보신당으로 올 땐 현실과 만나고 싶다는 갈증이 있었다. 그런 갈등은 사회당 당원들에게 다 있었다고 본다. 현실과 만나고 싶어 당명까지 포기하고 (사실상) 진보신당에 흡수·합당했다는 걸 생각하면, 반드시 이상적인 쪽으로만 강화됐다고 평가하는 건 맞지 않다.”
-재밌네. 일반인들은 진보신당도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데.(웃음) 더 왼쪽에 있었다고 볼 수 있는 사회당 입장에선 현실과 더 가까웠다고 할 수도 있겠네. 기존 진보신당 쪽은 어떤가?
박 “사회당과의 통합이 끝이 아니잖아. 1차 통합 마무리일 뿐. 노동계나 대중단체들 보면 ‘아, 통합진보당은 진짜 아닌데, 통진당의 신자유주의 세력과 어떻게 같이할 수 있어’라고 생각하는 많은 분들 있다. 그런데 이분들 보시기에 진보신당이 아직은 딱히 맘에 들지 않는 거다. 총선 끝나면 이런 분들 싹싹 끌어모아야지. 사회당과의 통합은 진보좌파정당이라는 제2의 창당을 위한 초석이 될 거라고 본다.”
-쉬운 말로 하면 진보좌파정당이란 건 뭔가?
박 “진보를 자칭하는 ‘우파’가 생겼다. 통진당 얘기지. 통진당과는 다른, 진보 중에서도 좌파 정당이다 정도?”
조 “유럽 등을 보면 우파 정당 있고, 사민주의 정당, 좌파당, 녹색당, 심지어 해적당까지 등장하는 상황이잖아. 그런 연장선에서 진보 우파와 진보 좌파가 분화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남들이 당명 바꿀 때 저희는 세상을 바꿉니다”
진보좌파정당, 제2창당… 그럼에도 당장 코앞에는 힘겨운 관문이 놓여 있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코앞에 닥친 4·11 총선으로 이어졌다. 이번 총선에서 정당 지지율 2%를 얻지 못하면 진보신당은 해산 절차를 밟아야 한다. 두 사람은 설령 해산되는 운명을 맞더라도 세력을 규합해 재창당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스타급 정치인들이 다 떠났다. 선거 필승 전략은?
박 “2008년 창당 당시와 비교해 딱 하나 좋은 조건이 있다. 그때는 창당 한달 만에 총선을 치렀거든. 그래도 지금은 4년 된 정당이잖아. 요즘 우리는 ‘남들이 당명 바꿀 때 저희는 세상을 바꿉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쓴다.”
-다른 정당들은 청년층 민심을 듣겠다고 20·30대 후보를 배려하던데, 진보신당에선 청년 후보가 따로 안 보인다.
박 “맞다. 20대가 (국회에) 들어간다고 해서 청년정책 잘될 거라 생각지 않는다. 30대, 40대가 청년 정책 하면 안 되나?”
조 “내가 28살 때 국회의원에 출마했었다. 그때만 해도 ‘아니,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라는 분위기였는데, 참 많이 변했다.(웃음) 국회에 누가 들어가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청년과 관련된 정책과 공약을 얼마나 준비하고 고민해 왔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박 “통합진보당에서 청년 비례대표 후보를 뽑는다고 ‘위대한 진출’이란 경연을 해서, 김재연 후보를 1등으로 뽑았잖아. 정파 구도가 뚜렷한 (옛)민노당의 당권파 주자인 김 후보가 조직표로 당선될 거라는 건 이미 예견된 결과였지. ‘고대녀’ 김지윤 후보가 막판에 주목을 받았지만, 당내 기반이 적어 이길 수 없는 구조였지. 이걸 갖고 청년 비례 공천 경쟁 시스템이라고 하는 건 우습다.”
-조 대변인은 현실에 다가가기 위해 진보신당에 왔다고 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느끼기엔 진보신당도 현실을 생각하지 않는 정당처럼 보이긴 매한가지다. 반엠비 연대에 들어가지 않은 것도 그런 선택처럼 비친다.
조 “민주노동당과 새진보통합연대는 자기 것을 놓고 국민참여당과 손잡으면 더 많은 대중을 만날 수 있다고 본 거잖아. 하지만 나는 현실이 그렇지 않다고 본다. 원칙과 현실이 이율배반적이지 않은 국면은 분명 온다. (그때까지) 끝까지 원칙적인 목소리를 내줄 수 있어야 하고, 그럴 때 대중의 호응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린 민통당과 통진당을 ‘두통연대’라고 불러. 이들이 한-미 에프티에이와 관련해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에프티에이에 반대한다’는 식으로 얼버무렸잖아. ‘에프티에이를 전부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 분명 있는데, 그분들의 정치적인 것을 대변하는 현실적 대안은 진보신당밖에 없다.”
-민주주의가 후퇴한 현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그래도 반엠비 전선에 합류하는 게 현실적 선택이라는 지적도 있다.
박 “엠비정권을 물리치면 뭐가 좋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엠비’라는 악마화된 정치인 하나만 사라지면 뭔가 새로운 것이 생길 것처럼 생각하는 건 환상 아닐까. 새누리당만 몰아내면, 박근혜만 대통령이 되지 않으면 될까? (지금 상황에선) 야권 주자 누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노무현 시대를 넘어서지 못할 것 같다.”
-진보신당이 새누리당보다 민주당, 통진당 등 다른 야당들에 유독 더 각을 세운다는 비판에 대해선?
박 “최근 논평에서 새누리당을 가장 많이 언급한 게 우린데…. 다른 당은 공천 문제 때문에 바빠서 못해.(웃음) 새누리당에 각을 안 세운다는 건 오해다.”
조 “새누리당의 뉴스는 어디에 누굴 공천했다는 게 대부분인데, 무슨 말을 하겠냐.”
-특히 이정희 대표 고소 건을 두고 그런 말이 많잖아.
박 “이 대표를 고소하는 이유를 내 이름으로 논평했더니, 나더러 ‘진보계의 강용석이냐’는 말까지 나오더라고.(웃음) 그런데 고소 건은 분명히 짚고 갈 부분이 있다. 이 대표가 계속 우리 입장을 왜곡했거든. ‘진보신당은 정책연합만 하지 선거연합은 안 한다더라’는 식으로. 우린 야권연대 참여 의사를 분명히 밝혔는데도 말이야. 그 이유는 분명해. 진보 몫을 통진당이 다 차지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죽어줘야겠지. ‘정치가 다 그런 거다’ 식으로 이해는 하지만, 반칙은 하면 안 되잖아. 욕하는 쪽도 있지만, 남의 당 입장을 두고 거짓말하는 건 참을 수 없다며 시원하다는 반응도 있던데.(웃음)”
비아그라 복제약 허용과 FTA 철폐를 연동?
두 사람은 조금도 물러서지 많았다. 원칙과 상상력. 이들 입에서 되풀이해서 튀어나온 단어다.
-진보신당과 통합진보당이 절대로 함께하지 못할 그 차이가 뭐냐고 사람들은 여전히 궁금해한다.
조 “진보신당에 와서 들은 얘기 중 재밌는 말이 있다. ‘너희(통진당)에겐 정진후가 있고, 우리에겐 정진우가 있다’는.(웃음) 정진후와 정진우, (이름) 한 끗 차이지만, 이 한 끗 차이가 원칙과 현실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거다. 통진당은 어쨌든 (국회의원) 의석 하나를 더 늘리기 위해 현실적인 문제에 더 치중하다 보니까 도저히 용납이 안 될 사람들까지 출마시키는 상황 아닌가. 지금 통진당은 너무 현실 쪽으로, 이를테면 우경화됐다. 한번 기우는 게 문제가 아니라, 기울어지면서 점점 더 그런 경향성이 더 커지는 게 문제다.”
박 “통진당은 민노당, 국민참여당 그리고 우리 당에서 나간 새진보통합연대 등 크게 세 세력이 규합한 당이잖아. 이 당에선 이 세 세력이 합의할 수 있는 정도의 정책밖에 나올 수 없다. 대학 평준화? 세 세력이 동의할 수 있을까? 핵발전소 전면 철폐, 비정규직 완전 폐지? 동의 못하겠지. 세 그룹이 합의할 수 있는 수준은 딱 국민참여당 수준의 정책이다. 제일 약한 수준이지.”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까지 복지 이슈를 얘기하는 상황이다.
박 “맞다. 진보정당의 정책들을 전부 다 베껴간다. 좋은 걸 가져간다는데, ‘도둑놈, 이거 내놔’ 할 수도 없고.(웃음) 우리는 이제 복지 얘기 더 이상 안 하려고. 이제 복지 하자는 얘긴 과거에 ‘민주주의 하자’는 말하고 비슷해진 느낌이다. 우리 사회의 여러가지 문제 가운데 복지로 해결되지 않는 것 많다. 정책적인 차별성 두는 것들을 중심으로 결코 무겁지 않게 얘기하려 한다.”
-예를 들면?
박 “이건 내 생각인데, 아직 받아들여지진 않았다.(웃음) 총선 공약으로 비아그라 복제약 허용을 넣자고 할까 봐. 지금 복제약 금지돼 있다. 저작권, 에프티에이 문제랑 연결돼 있잖아. 의약분야에서 글리벡이라고 백혈병 치료제가 최대 쟁점이었잖아. 우리나라 사람들 글리벡 몰라. 백혈병 걸릴 거라고 생각 안 하거든. 그런데 비아그라는 전국민이 다 알지. 자기가 발기부전 걸릴 수 있다는 걸 알거든. 비아그라 복제약 허용과 에프티에이 철폐를 연동하는 공약… 솔직히 일부에선 뜨악하는 반응이지.”
-그 약이 필요한 사람으로 비칠까봐?(웃음)
박 “그래서 광고를 하더라도 여성이 발언해야지. 나는 즐기고 싶다, 그런데 돈이 없다, 복제약이 필요하다, 그런데 에프티에이가 이걸 막고 있다. 이런 식의 상상력을….”
-그렇지만 진보신당의 ‘원칙적’이고 ‘근본적’인 주장을 보면, 단지 이게 옳은 거다 주장을 하려는 건지, 진짜 정권을 잡아 바꾸겠다는 건지 헷갈리기도 한다.
박 “우리 내부에도 논쟁이 많다. ‘제1야당으로 가자’는 사람들 있다. 이른바 등대정당론. 또 집권당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고. 나는 집권당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집권해야 한다, 제1야당 해야 한다 중 어느 쪽이 많은가?
박 “반반 정도? 사회당 쪽에선 후자가 더 많을 거 같은데.”
조 “사회당 쪽에서는 등대정당, 소금정당이 되자. 그런 경향성이 컸지.”
-아휴, 현실 정치 하자고 진보신당 왔다고 했잖아.
조 “말이 등대정당이지, 등대정당도 사실 쉽지 않거든. 작기 때문에 오히려 큰 정당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정당이나 20% 정당이나 할 수 있는 일은 똑같다.”
-하지만 유권자 입장에선 집권 의지가 불분명한 정당에 선뜻 표를 주고 싶을까?
조 “진보신당이 어렵겠다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가 ‘작다’는 것 같다. 그런데 진보신당은 오히려 작은 정당이기 때문에 힘이 있다고 봐. 큰 학교의 폐단이 드러나면서 요즘 작은 분교들을 찾고,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도 나오잖아. 정당도 마찬가지다. 작은 정당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당원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현실에 긴밀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장점을 잘 발현한다면, 작은 정당으로서의 가능성과 가치가 국민에게 검증받을 수 있을 거다.”
박 “나는 큰 정당 하고 싶은데….”(웃음)
‘언론 니네가 안 써주면 우리가 쓸 거야’
진보신당은 진보언론을 포함해 기존 언론 전반에 대해 강한 불신을 갖고 있다. ‘언론 니네가 안 써주면 우리가 쓸 거야’ 하며, 정치신문 아르(R)를 만든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홍세화 대표가 언론에 섭섭함을 강하게 토로하던데?
박 “야속함 있지. 그 야속함은, 우리가 소수라서 무시한다는 그런 게 아니다. 삶이 정치고 정치가 삶인데, 정치부 기사는 ‘국회(정당) 곧 정치’인 듯, 국회 안에만 갇혀 있다. 예를 들어 어느 당에서 누구를 공천했고 누가 떨어졌다는 거, 그게 국민들의 삶의 변화랑 무슨 관계가 있나. 그런데 지금 정치 기사들은 전부 거기에 매몰돼 있다. 우리는 그런 ‘꺼리’가 없으니까 언론에 비집고 들어갈 ‘꺼리’가 없는 거고. 결국 우리는 사회단체성 이벤트를 할 수밖에 없다. ‘키스 플래시몹’ 같은 게 대표적이다. 홍대 한복판에서 애들이 키스를 한다니까 기자들 엄청 많이 왔다. 그런데 정작 보도는 ‘홍대 앞 뜨거운 키스’, 이렇게만 나와. 그 취지는 연애도, 결혼도, 애도 못 낳는 ‘3포 세대에게 연애를 허하라’는 거였는데. 심지어 모 방송에서는 키스 플래시몹 행사를 진보신당이 주최한 거란 얘긴 아예 빼버렸더라고. 아, 우리가 투명 정당인가? 정치는 재밌는 건데, 뉴스 중 정치 뉴스가 젤 재미없지 않나. 정치를 더 후진화시키는 거 같다.”
-인터뷰 전, 진보신당 게시판에 들어가 봤다. 사회당과 합당 전 그대로더라. 민생 상담 게시판엔 음란광고까지. 새출발하는 정당이 아니라 폐허가 된 정당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박 “(목소리가 커지며) 새로 웹진 만든 거 봤나? 정치신문 아르(R)는 ‘언론 니네가 안 써주면 우리가 쓸 거야’ 하고 만든 거다. 사실 민생 담당하는 쪽 당원들이 통합진보당으로 다 가버렸다. 구멍이 좀 나 있지. (인터뷰 며칠 뒤 게시판에 다시 들어가 봤다. 광고 문구들은 삭제됐다.)
-마지막으로 왜 진보신당이어야 한다고 한번 더 묻는다면?
박 “현존하는 정당이 7, 8개인가? 그중에서 우리 같은 얘길 할 수 있는 당이 있을까? 에프티에이나 노동정책 등은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 진보신당 등 대개 다 비슷해. 하지만 예컨대 우린 평창올림픽(개최)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논평을 냈다. ‘득보다 실이 많을 수도 있다. 과도한 환상 뿌리지 말라’고. 보수언론들이 ‘고춧가루 뿌리는 진보신당’이라고 난리, 난리가 났죠. 만약 진보신당이 소멸해버린다면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정당이 없어지는 거다. 그래서 이 당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대마초 비범죄화, 낙태 합법화, 이런 거 과연 어떤 당이 얘기할 수 있을까? 우리밖에 할 곳이 없다.”
조 “나는 정당 구도가 지금처럼 고착될 거라 생각지 않는다. 총선 결과에 따라 이 판, 구도는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현재 진보신당이 갖고 있는 가장 큰 힘은 원칙을 갖고 그 이후를 준비하고 있는 거라고 본다. 진보좌파정당에 통진당에 가지 못한 세력을 끌어안겠다고 했지만, 사실 선거 이후 통진당도 불안하다고 봐. 진보의 재구성 외치며 뛰쳐나온 진보신당만 흔들리지 않는 것을 부여잡고 있다. 총선이란 정세 속에서 통진당이 만들어졌지만, 궁극적으로는 진짜 진보들의 정당이 완성되는 쪽으로 가지 않을까.”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진보좌파정당, 그 첫걸음은 사회당과 합당 정치에 크게 관심 없는 이들에게 진보신당을 설명하려면 솔직히 ‘민주노동당’ 시절 얘기부터 해야 할 것이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을 만들어냈고, 노회찬·심상정 같은 ‘괜찮은’ 정치인이 몸담았던 정당….” 그제야 “아~” 하는 소리가 나온다. 오래된 옛 명함을 꺼내들고 ‘나’를 소개하는 이 아이러니, 존재감 없는 진보신당의 현 위치가 그렇다. 언제부터인가 언론 보도에서 진보신당이란 이름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진보신당에 대한 보도는 여야의 논쟁 끝자락에 “한편 진보신당은…”으로 시작되는 한 줄 ‘논평’으로 첨부되기 일쑤다. 지난해 말 창당한 통합진보당도 ‘진보당’이란 약칭을 쓰기도 하니, 두 당을 헷갈려 하는 사람도 태반이다. 지난 5일 진보신당과 사회당의 통합 소식은 보도조차 되지 않았다. 홍세화 상임대표는 “<한겨레>까지 포함해 종이신문 모두 진보신당을 철저히 왕따한다”며 최근 “쓸쓸함”을 토로하는 글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다. 2007년 대선 패배 그리고 이후 민주노동당에서 분당해 진보신당 창당을 하면서부터 예상했던 ‘풍찬노숙’이다. 2008년 총선에선 3%(2.94%)도 얻지 못해 원내 진출에 실패했고, 2009년 재보궐선거에서 어렵사리 1석(울산북구 조승수 의원)을 확보했지만, 언론관계법·세종시·4대강 논란 등 대형 이슈 앞에서 진보신당이 내세운 ‘생활 진보’ 이슈는 왜소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4·11 총선을 앞두고 거세진 ‘반엠비(MB) 야권연대’의 바람은 가뜩이나 좁은 진보신당의 입지를 더욱 축소시켰다. 국민참여당 등과의 합당을 둘러싼 논란으로 민주노동당과의 당 대 당 통합이 결렬된 뒤, 노회찬·심상정·조승수 등 당의 ‘얼굴들’이 당을 떠났다. 조 의원의 탈당으로 진보신당은 도로 원외 정당이 됐다. 노·심·조는 통합진보당 창당 합류를 “진보 대통합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부득이한 선택”이라고 했지만, 진보신당은 “진보정치의 가치를 모두 선거에 국한된 정치공학적 셈법 속에 구겨넣은 것”(홍세화 대표)이라며 ‘독자노선’을 선택했다. 진보신당이 선택한 독자노선은 이른바 ‘진보의 재구성’이다. ‘녹색 가치의 깃발을 든 전태일’의 정당을 만들겠다는 것인데, 새누리당엔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도 선뜻 내키지 않는다는 진보를 어울러 ‘진보좌파정당’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사회당과의 합당은 그 첫 발걸음인 셈이다. 그 시험대가 될 4·11 총선 전망은 밝지 않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를 앞두고, 박은지 대변인은 “없는 살림에 닥친 제삿날” 같다고 표현했다. 김한주 후보(경남 거제) 등 36명의 후보가 지역구에 출사표를 냈고, 김순자(청소노동자)·홍세화·이명희(평택교육생협 이사)·정진우(희망버스 구속자)·장혜옥(전교조 전 위원장)·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박은지(대변인) 등 7명이 비례대표 후보로 이름을 올렸지만, 목표치(지역구 2석 이상, 정당 득표율 3%) 달성이 녹록지 않다. 명망가가 떠난 지금, 당의 지지율은 1%대다. 총선을 앞두고 만들어진 국민생각(2%)보다 못한 수준이다. 정당 득표율이 2%에 못 미치면 정당 등록이 취소될 수도 있다는 걱정이 앞설 법도 하다. 하지만 핑크빛 전망으로 나선 길은 아니다. “총선 때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뛰고, 안 되면? 그다음에 다시 시작하면 된다.” 박은지 대변인의 말이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박은지 ‘내 전략은 문자폭탄’
>>>조영권 “기자들 다 어디갔어” ‘딩동딩동.’ 문자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벨소리가 울린다. 아니나 다를까. 또 박은지(33) 진보신당 대변인이다. 진보정당을 취재하는 기자들은 박 대변인으로부터 적게는 하루 6건, 많게는 8건의 문자를 받는다. 전 국민에게 대출 권하는 김미영 팀장님 ‘저리 가라’ 수준이다. 정치·사회 영역에서 벌어지는 각종 현안에 대한 ‘논평’과 ‘브리핑’이 거의 실시간으로 들어온다. ‘정치의 계절’이라지만 한 사람이 이렇게 많은 논평을 생산해낸다는 게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노(회찬)·심(상정)·조(승수)가 떠난 당에서 그는 입당 4년 만에 대변인으로 “초고속 승진”을 했다. ‘한줌’에서 ‘한숨’이 안 되도록 당을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이 그의 어깨를 누른다. ‘문자 폭탄’은 그가 택한 전략이었다. ‘한편 진보신당은~’으로 시작돼도 좋으니, 진보신당이란 이름이 단 한번이라도 언론에 더 언급되게 하자는 것이다. 박은지 대변인이 쌍코피를 터뜨리기 직전, 조영권(37) 대변인이 힘을 보탰다. 지난 5일 진보신당과 사회당이 합당하면서, 사회당 쪽 조 대변인이 대변인실에 합류한 것이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사회당 당사)에서 여의도(진보신당 당사)로 사무실만 옮겨 비슷한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생활은 완전히 달라졌다. “정치가 원칙·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을 조율하는 건데, 사회당엔 현실이 없었구나.” 진보신당 합류 일주일 만에 그가 깨달은 사실이다. 현실 여의도 정치판의 하루하루는 그에겐 ‘전쟁’의 연속이다. 대변인실 합류 일주일 만에 애써 찌워놓은 살이 3㎏이나 빠졌다. “정작 대변인실 입성 일주일 동안 기자 한 명을 못 봤다.”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작은 정당도 큰 정당 못잖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는 걸 목표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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